PPT 짜던 노인
벌써 4년 전이다.
내가 갓 대학원 진학한 지 얼마 안 돼서 신림골에 내려가 살 때다.
신림역 왔다 가는 길에, 셔틀을 타기 위해 고시촌입구에서 일단 버스를 내려야 했다.
합격의법학원 맞은편 길가에 앉아서 PPT 템플릿을 짜서 파는 노인이 있었다.
팀플에 쓸 판이나 사 가지고 가려고 깎아 달라고 부탁을 했다.
값을 굉장히 비싸게 부르는 것 같았다.
“좀 싸게 해 줄 수 없습니까?” 했더니, “템플릿 하나 가지고 에누리하겠소? 비싸거든 전산원 템플릿이나 쓰우.”
대단히 무뚝뚝한 노인이었다.
값을 흥정하지도 못하고 잘 짜나 달라고만 부탁했다.
그는 잠자코 열심히 짜고 있었다.
처음에는 빨리 짜는 것 같더니, 저물도록 이리 스크롤해 보고 저리 스크롤해 보고 굼뜨기 시작하더니, 마냥 늑장이다.
내가 보기에는 그만하면 다 됐는데, 자꾸만 더 짜고 있었다.
인제 다 됐으니 그냥 달라고 해도 통 못 들은 척 대꾸가 없다.
타야 할 셔틀이 접근해 왔다.
갑갑하고 지루하고 초조할 지경이었다.
“더 짜지 않아도 좋으니 그만 주십시오.” 라고 했더니, 화를 버럭 내며, “끓을 만큼 끓어야 밥이 되지, 생쌀이 재촉한다고 밥이 되나.” 한다.
나도 기가 막혀서, “살 사람이 좋다는데 무얼 더 깎는다는 말이오? 노인장, 외고집이시구먼. 차시간이 없다니까요.”
노인은 퉁명스럽게, “다른 데 가서 사우. 난 판 엎겠소.” 하고 내뱉는다.
지금까지 기다리고 있다가 그냥 갈 수도 없고, 차 시간은 어차피 틀린 것 같고 해서, 될 대로 되라고 체념할 수밖에 없었다.
“그럼, 마음대로 짜 보시오.”
“글쎄, 재촉을 하면 점점 거칠고 늦어진다니까. 피피티란 제대로 만들어야지, 짜다가 놓치면 되나.”
좀 누그러진 말씨다.
이번에는 노트북을 숫제 무릎에다 놓고 태연스럽게 담배를 피우고 있지 않는가.
나도 그만 지쳐 버려 구경꾼이 되고 말았다.
얼마 후에야 프레젠테이션을 켜고 이리저리 돌려 보더니 다 됐다고 내 준다.
사실 다 되기는 아까부터 다 돼 있던 피피티다.
차를 놓치고 다음 차로 가야 하는 나는 불쾌하기 짝이 없었다.
‘그 따위로 장사를 해 가지고 장사가 될 턱이 없다. 손님 본위가 아니고 제 본위다. 그래 가지고 값만 되게 부른다. 상도덕도 모르고 불친절하고 무뚝뚝한 노인이다.’
생각할수록 화증이 났다.
그러다가 뒤를 돌아다보니 노인은 태연히 허리를 펴고 셔틀 줄을 바라보고 섰다.
그 때, 바라보고 선 옆 모습이 어딘지 모르게 노인다워 보였다.
부드러운 눈매와 흰 수염에 내 마음은 약간 누그러졌다.
노인에 대한 멸시와 증오도 감쇄된 셈이다.
연구실 와서 피피티를 내놨더니 선배는 이쁘게 짜놨다고 야단이다.
전산원 것보다 참 좋다는 것이다.
그러나 나는 전의 것이나 별로 다른 것 같지가 않았다.
그런데 선배의 설명을 들어 보니, 비주얼 욕심을 너무 부리면 보던 사람이 내용을 놓치기를 잘 하고 같은 장표라도 짜는 데 힘이 들며, 너무 심플하면 내용 전달력이 떨어지고 청자가 졸기 쉽단다.
요렇게 꼭 알맞은 것은 좀체로 만나기가 어렵다는 것이다.
나는 비로소 마음이 확 풀렸다.
그리고 그 노인에 대한 내 태도를 뉘우쳤다.
참으로 미안했다.
옛날부터 내려오는 피티는 혹 과제가 엎어지면 짜집기를 하고 데이터를 최신화하고 곧 고해상도 이미지를 붙이면 다시 그럴싸해서 과제점수가 좀체로 떨어지지 않는다.
그러나, 요새 프렛지는 내용이 한 번 어긋나기 시작하면 걷잡을 수가 없다.
예전에는 내용을 요약해 피티를 만들면 장표마다 꼭지를 붙여 정성을 들인다.
이것을 발제한다고 한다.
물론 날짜가 걸린다.
그러나 요새는 구글검색 이미지를 중심으로 대충 말로 때운다.
금방 분량이 붙는다.
그러나 견고하지가 못하다.
그렇지만 요새 남이 보지도 않는 것을 며칠씩 걸려 가며 발제할 사람이 있을 것 같지 않다.
보고서만 해도 그러다.
옛날에는 주제가 나오면 보통 것은 얼마, 윗질은 얼마, 값으로 구별했고, 구젝구정한 것은 세 배 이상 비싸다,
구젝구정이란 아홉 번 리젝하고 아홉 번 수정한 것이다.
눈으로 보아서는 다섯 번을 검토했지 열 번을 검토했는지 알 수가 없었다.
단지 말을 믿고 결재하는 것이다.
신용이다.
지금은 그런 말조차 없다.
어느 누가 남이 보지도 않는데 아홉 번씩 검토할 이도 없고, 또 그것을 믿고 세 배씩 값을 줄 사람도 없다.
옛날 사람들은 흥정은 흥정이요 생계는 생계지만, 물건을 만드는 그 순간만은 오직 아름다운 물건을 만든다는 그것에만 열중했다.
그리고 스스로 보람을 느꼈다.
그렇게 순수하게 심혈을 기울여 대단한 미술품을 만들어 냈다.
이 피피티도 그런 심정에서 만들었을 것이다.
나는 그 노인에 대해서 죄를 지은 것 같은 괴로움을 느꼈다.
‘그 따위로 해서 무슨 장사를 해 먹는담.’ 하던 말은 ‘그런 노인이 나 같은 젊은이에게 멸시와 증오를 받는 세상에서, 어떻게 아름다운 물건이 탄생할 수 있담.’ 하는 말로 바뀌어졌다.
나는 그 노인을 찾아가서 삼백집에 모주라도 대접하며 진심으로 사과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그 다음 일요일에 귀가하는 길로 그 노인을 찾았다.
그러나 그 노인이 앉았던 자리에 노인은 있지 아니했다.
나는 그 노인이 앉았던 자리에 멍하니 서 있었다.
허전하고 서운했다.
내 마음은 사과드릴 길이 없어 안타까웠다.
맞은편 셔틀 정거장의 줄을 바라보았다.
신입생들이 무심히 떠들고 있었다.
아, 그 때 그 노인이 신입생들을 보고 있었구나.
열심히 피피티를 깎다가 유연히 셔틀줄을 바라보던 노인의 거룩한 모습이 떠올랐다.
나는 무심히 ‘채국동리하(採菊東籬下) 유연견남산(悠然見南山)!’ 도연명(陶淵明)의 싯구가 새어 나왔다.
오늘 안에 들어갔더니 조원이 프렛지 시안을 뜯고 있었다.
전에 복학생을 호구로 잡아 자료조사를 시켜먹던 생각이 난다.
피피티 구경한 지도 참 오래다.
요새는 피티질 하는 소리도 들을 수가 없다.
개별점수니 가정대소사(家政大小事)니 애수를 자아내던 그 소리도 사라진 지 이미 오래다.
문득 4년 전 피피티 짜던 노인의 모습이 떠오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