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류 | 게시판 |
베스트 |
|
유머 |
|
이야기 |
|
이슈 |
|
생활 |
|
취미 |
|
학술 |
|
방송연예 |
|
방송프로그램 |
|
디지털 |
|
스포츠 |
|
야구팀 |
|
게임1 |
|
게임2 |
|
기타 |
|
운영 |
|
임시게시판 |
|
소위 '뉴라이트' 역사교과서 논쟁이 한창 진행되고 있으며, 그 논란의 중심에는 그들이 2011년 께부터 줄곧 내세우던 '자유민주주의'에 대한 논쟁이 기저에 흐르고 있다. 역사교과서 자체가 무엇이 문제인지는 차후 좀 더 자세히 비평할 것이지만, 이 글에서는 그보다는 그들이 그토록 '자랑스럽게' 여기는 자유민주주의에 대한 비판을 제기하고자 한다. 지난 글(http://blog.daum.net/liveinthought/74)이 자유민주주의 비판을 넘어 민주주의의 영역의 축소와 그로 인한 파시즘의 발현까지 연장된 비판이었다면, 이번 글에서는 그 중에서도 '자유민주주의'만을 떼어놓고 비판해볼 것이다.
Written by 무명논객
민주주의를 위하여
다소 진부할지는 모르겠으나 나는 소위 '자유민주주의'에 대한 비판을 수행하기에 앞서 그것의 건설 대상, 혹은 건설되어야만 하는 '필연적인 것' 쯤으로 간주하는 모든 사고 방식의 근본을 먼저 바라보고자 한다. 자유민주주의는 왜 건설되어야 하며, 그것이 함축하는 의미가 도대체 무엇이길래 저 '자유민주주의자'들은 그토록 그것에 집착하는 것일까? 또한, 그것이 왜 '국가'와 언제나 동일시되며 붙어 다니는 것일까? 다시 말해─'자유'라는 접두사를 떼어낸─민주주의는 대체 어째서 그들 '국가'와 언제나 한 세트가 되어 있는 것일까? 나의 문제 의식은 이것으로부터 시작한다.
통상, '자유민주주의'는 어떤 하나의 구체적 이념으로써 기능하기보다는 사실상 '공산주의'와의 대립물로써 여겨지는 경향이 강하다. 그들이 말하듯 공산주의라는 "전체주의에 대한 숭고한 저항"으로써 자유민주주의는 스스로 제 자리를 찾아가는 것이다. 때문에 "자유민주주의의 완전한 승리"라는 F.후쿠야마의 테제가 제출되었을 때, 그것은 '민주주의의 온전한 승리'라기보다는 전체주의에 맞선 '선한 자들'의 승리였으며 통제와 규율로 범벅된 하나의 시스템에 대한 자유주의(시장주의)의 승리였다. 올바르게 말하자면, 자유민주주의는 '승리한 적이 없다.'─자유민주주의가 승리했다면, 오늘날 맞이하는 민주주의의 위기는 도대체 어디로부터 기원하는 것이란 말인가?
똑바로 말하자. 그것은 자유민주주의의 승리가 아니다. 그것은─아주 온전하게, 그 어떤 '민주적' 의미도 함의하지 않은─'국가의 승리'에 불과하다. 오늘날 자유민주주의자들이 외치는 '전체주의자'라는 딱지들에서 묻어나는 그 자신감들은 사실상 '아무런 근거가 없다.' 그들은 자유민주주의의 위기를 해명하지 못하고 있으며, 정치의 범위는 점차 축소되고 그들의 '자유민주적 헌법'이 강구해낸 모든 법률 안에 포함되지 못하는 것들은 법의 저 편으로 추방되었다. 경제위기가 반복될 때마다 민주주의의 영역이 축소되고 있다는 것을 그들은 알고 있었다. 시민은 언제나 자신들의 '대표자'로 여겨지는 이들에 대한 선거권과 피선거권을 지니고 있지만, 그것 뿐이다. 경제 위기라는 총체적 난국 속에서 일개 시민이 할 수 있는 행동이라고는 고작 '경제를 살리겠다는' 정치인에게 자신들의 권리를 행사하는 것이 전부다.─그리고 '자유민주주의자'들은 그러한 선거권과 피선거권, 그리고 그러한 (자유롭게 선거할) '자유'와 (일정 연령 이상 모든 사람이 선거권을 가지고 있는)'평등'을 적극적으로 옹호하였다. 그들이 옳다면, 오늘날 민주주의의 위기는 당췌 악마의 농간이란 말인가?
문제는 여기에 있다. 오늘날 자유민주주의가 '가장 선한 것'으로 취급받는 이면에는 그것이 '자유'와 '평등'의 이념을 적극적으로 옹호하였으며, 그것을 구체적으로 실현하는데에 성공했다는 사실들이 숨어 있다.─그리고 우리의 구원자들은 악마들(전체주의자)에 맞서 이러한 자유와 평등을 지키는데 성공했다! 이런 의미에서 자유민주주의의 승리는 참으로 숭고한 것이며 그 자체로 선하고 가장 구체적이며 합리적인 정치체제를 지상에 구현한 것처럼 보인다. 나는 여기에 대해 이렇게 말할 것이다.─"이 사기꾼들!"
도대체 민주주의의 반대말이 어째서 전체주의가 되어야 하는가? 오히려, 전체주의의 반대말은 개인주의, 자유주의로 정의되어야 마땅하다. 자유민주주의가 자유주의적 시장 이념에 민주주의를 결합해 실현한 것이라 생각할 때, 사실상 전체주의에 대한 우리의 '민주적 투쟁'들은 사실상 민주주의를 위한 정치투쟁이 아니라 자유주의적 개인주의를 옹호하기 위한 투쟁이 되며, 이것의 연장선상에서 우리의 민주주의에 대한 상상력은 근원적으로 봉쇄당하고 만다.─민주주의의 보편성이라는 측면은 시장으로부터 도피하여 의회의 영역으로 좁아졌고, 더불어 우리의 정치에 대한 상상력도 여기에서 멈춘 것이다.
이런 측면에서 볼 때 최근 벌어지는 역사 교과서 논쟁의 중심 화두로 등장하고 있는 '자유민주주의 국가 건설'이라는, 뉴라이트 세력이 제출한 테제는 사실상 민주주의에 대한 어떤 깊은 고찰이 존재한다기보다는 시장질서의 옹호이며, 시장을 보호하기 위한 국가의 옹호이다.─"자유민주주의"에 대한 열정적 열망을 표출하는 그들의 언어 속에 '어떤 공통적 분모'로써의 민주주의에 대한 상상력이 부재한다는 것은 참으로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근대화의 논리
소위 '자유민주주의'에 대한 개괄적 비판은 이 쯤에서 멈추도록 하고, 이러한 민주주의 논쟁과는 또 다른 차원에서 벌어지는 작용논리가 있다. 오늘날 자유민주주의의 열정적인 옹호자들(정확히는 뉴라이트)은 그들 자신의 논리적 일관성을 위해서라도 ('민주주의'라는 기표로 포장된) 시장질서를 옹호하는 한 편, 그것의 연장선상에서 '자유민주주의의 후퇴'를 겪었던 한국 현대사의 질곡을 해명해야만 했다. 자유민주주의를 실현했다고 믿었던 한국에서 어떻게 군사정권이 탄생했으며, 그것이 '자유민주주의'에 어떻게 기여했는가? 이러한 질문에 대한 그들의 대답이 바로 '근대화'의 논리라고 볼 수 있다.─혹은, 나는 이것을 '불가피성의 논리'라고 명명하고 싶다. 요컨대, "나도 잘 알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라는 수식어를 통해 비극을 화해시키는 것이다.
역사를 소급하여 지난 '민주정부' 10여년 간을 민주주의의 '질적 퇴보'로 정의할 수 있다면, 좀 더 과거로 올라가서 군사정권의 존재는 민주주의의 비극이었음은 두 말할 나위 없을 것이다. 자유민주주의자들은 찬란한 장밋빛 미래로써 건설된 '국가'가 어찌하여 이러한 비극을 맞이하였는지 해명하지 못했다. 다만, 이들은 그러한 비극을 화해시킬 방법을 알고 있었다. 비극적 장면을 고정해서 바라볼 때 우리는 그 안에 깃든 비장함을 엿보게 된다. 비극이 불러낸 비장함은 얼마나 아름다운가! 한국 민주주의의 질곡을 서사로써 볼 수 있다면 그것은 위기와 파국의 불연속적 파동이라 볼 수 있을 것이다. 더욱이, 분단모순으로 인한 민주주의의 파국은 더욱 걷잡을 수가 없다. 이것을 단숨에 화해시키는 방법은 의외로 간단하다. 그것에 아름다움을 부여하는 것이다. 그리하여, 군사정권 30년은 우리에게 '경제발전의 신화'로써 포장되었던 것이다.─자유민주주의자들은 이렇게 하여 그들의 논리적 간극을 돌파하였다.─"(우리의 민주주의가 불완전했음을) 나도 잘 알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경제가 성장했으므로 그들을 용서해다오.)"
여전히 해명되지 않는 위기
그들이 옳다면, 그들의 주장대로 찬란한 신화로 가득찬 한국 현대사의 연장선상에서 현재 맞이하는 민주주의의 위기는 도대체 어디로부터 오는 것인가? 내가 이 글을 쓰면서 줄곧 하는 질문은 이것이다. 그들 역시 오늘날의 민주주의의 위기에 대해 잘 알고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것에 대한 그들의 해명은 여전히 충분하지 않다. 다만 확실하게 말할 수 있는 것은, 그들은 역사교과서를 '정통성론'에 입각해 재구성했으며, 그 정통성의 중심에 '자유민주주의'라는 이념을 올려놓았다. 위기는 해명되어야 한다. 자유민주주의자들의 주장이 옳다면, 지난 민주정부 10여년 간 꾸준히 확대되어 온 시장의 영역은 오히려 '자유'와 '평등'을 더욱 확장했어야만 했다.─자유는 예속되었으며, 평등은 불균등했다. 오히려 우리에게 민주주의가 가져다 준 '정치'의 풍성함은 사실상 경제적 관계에 의해 축소되어 버렸다. 오늘날 자유민주주의자들은 이러한 민주주의의 위기를 제대로 해명하지 못하고 있다.─허울 뿐인 외침, 그들이 한국 사회를 '좌편향'으로 규정하고 '좌경 용공 세력'을 향해 "이런 전체주의자들!"이라는 비난을 내뱉는 것은 그들 자신이 민주주의자라는 것을 반증해주지 못한다. 이들은 가장 근본적인 것을 착각하고 있다. 민주주의는 '해명'되어야 할 문제이지, '건설'될 문제는 아니다.
죄송합니다. 댓글 작성은 회원만 가능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