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살... 전라도 여자입니다.
슬퍼서 그런데 조언은 안 해주셔도 좋으니 그냥 제 얘기만 들어주세요
누군가가 제 얘기를 들어주는것만도 감사할것 같습니다.
작년에 서울에 있는 모 대학에 합격하고 자취방을 얻어 생활하고 있습니다.
조금 엄격한 집안에서 자란탓에 고등학교때 남자를 사귀어본적도 없었고(더군다나 여고), 자취방을
얻고 나서도 놀러다니기보다는 신기한 서울 구경이나 해보자라며
혼자서 돌아다니며 즐거워했던 촌년입니다.
그러다가 작년 오티때,한 남자 선배를 알게됬어요. 첫눈에 반했다는게 어떤 감정인지 조금은
깨닫게 해준분이에요. 연예인을 할 정도는 아니지만 어느 모임을 가도 눈에 띌 정도로 생겼고,
목소리가 너무 좋아서 그 오빠가 저한테 처음으로 건내준 '이름이 뭐야?'이 한 마디를 아직까지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습니다.
지금은 도사가 되었지만, 그 오빠의 마음에 들기 위해서 친구들에게 화장하는법도 배웠고
소용없는건 알지만 그 오빠의 혈액형을 알아내고 그 혈액형이 좋아하는 여자상을 인터넷으로
알아보기도 하고 그것에 맞춰가기위해 노력하고 ㅎ 싸이월드는 매일 4,5번씩 방문하지만
혹시라도 방문자 추적기 이런거에 걸릴까봐 주소 외우고 비로그인 상태에서만 들어가고
그 오빠가 속해있는 동아리 알아내고, 일부러 그 분야에 관심이 있는 척 친구들이나 선배들에게
설레발떨고 가입하고 그것에 관해 질문하고 관심있어하는척 하며 밥도 같이 먹고 커피도 먹고했지만
제가 너무 그 오빠 앞에서 떨고 소심해져서 그런지 1학기가 끝나기전까지 그다지 친해지진 못했었어요
작년 2학기때, 정말 우연하게도 그 오빠와 같은 교양과목을 듣게 됬고 조별과제도 그 오빠와
같이 하게 되면서 급속도로 친해지기 시작했습니다. 그 시기에 오빠가 사귀었던 여자친구하고 헤어져서
마음이 심란한 상태였는데, 제가 남이 하는 지루한 얘기도 잘 들어주고 공감해주는건 잘 하거든요.
그점이 많이 맘에 드셨나봐요. 집이 서울이지만 학교 근처에서 자취를 하시는지라 주말에
'혼자 먹기 심심하다. 같이 점심이나 먹자 ㅋㅋ'하고 문자가 오면 설레서 잠 덜 깬 와중에도
부랴부랴 샤워, 몸단장하고 밥 같이먹고... 혹시나 문자 답장 늦게하거나 10을까봐 잘때도
핸드폰을 쥐고 자야했지만 너무 행복했어요.
작년 기말고사시즌, 서로 밤 새서 공부하고 으어.....하고 있을때, '난 고향 서울인데 넌 어디야?'
물어보시더라구요. 제가 사투리 하나도 안 쓰고 하니까 당연히 제 고향이 서울인줄 알고, 서울 어디에서
태어났는지 이런 소소한게 궁금하셨던것같아요. 솔직하게 전라남도 목포라고 얘기드리는 순간 '아, 그래?' 하셨는데 눈빛이 '아.. 너 전라도였냐..?'하는 눈빛이더라구요. 그땐 밤 새서 어질어질하기도 하고
시험때문에 정신줄을 놨던지라 그다지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고 잊었죠.
근데 그때부터 연락이 눈에 띄게 뜸해지기 시작했어요. 제 시간표 다 알고 공강 점심시간엔
언제나 문자로 같이 점심 먹자고 했던사람이 제가 연락하지 않는 이상 먼저 연락을 안 하시더라구요.
혼자서 전전긍긍하며 내가 뭘 잘못했지...? 밤 새서 같이 공부한게 자기 몸 간수 제대로 안 한
여자처럼 보인건가? 아니면 내가 그때 추하게 졸았나? 별의별 생각이 다 들더라구요.
그러다가 약 열흘전, 수강신청 기간에
피씨방에서 친구들과 수강신청 과목들을 맞추고 있을 때 그 오빠 목소리가 들리더라구요.
저보다 앞에 앞에줄에 친구분과 같이 앉아계셨는데, 반가운 마음에 '오빠~ 저에요'하고 싶었지만
그 동안 서먹서먹해진탓에 '수강신청 끝나고 화장실 가는척하며 아는체해야지~'하고 기회만
엿보고 있었는데 옆에 친구와 대화중에 제 이름이 갑자기 나오데요? 바로 집중해서 대화를 엿들었는데
'아 걔 고향 전라도래'라고... 기분 나쁘다는식의 말투로 말하시더라구요...
그 순간 기말고사때 그 오빠의 '너 전라도였냐?'가 휙 하고 떠오르고
이 모든게 다 내가 고향이 전라도라서 그랬던거구나. 하는 생각이 들더라구요.
차라리 내가 뭔가를 잘못해서 마음이 식었으면 좋았을걸
그랬으면 진심으로 사과하고 용서를 빌었으면 되는데.
차라리 내 성격에 문제가 있었다면. 그걸 고치고 달라진 모습으로
다가갈수 있는데.
고향은 제가 어떻게 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잖아요. 제가 태어나는순간 정해지고
죽을때까지 붙는 꼬리표인걸요.
그때 이후로 하루도 거르지 않고 술을 먹고 있습니다. 이런 모습 다른 사람들에게
보이기 싫어서 혼자 자취방에서 마시고있네요. 혼자 짝사랑을 심하게 해서 그런지 몰라도
이상하게 그 오빠를 원망하는 마음은 조금도 들지 않습니다. 그저
'내가 전라도인이 아니었으면 지금쯤 어땠을까'
'내가 전라도인이 아니었다면, 그 오빠와 크리스마스를 같이 보낼 수 있었을까'
'내가 전라도인이 아니었으면.. 곧 있으면 발렌타인 데이인데..'
이렇게 혼자 허황된 망상을 하며 그 가정속의 저를 상상하곤 합니다..
전라도고 서울이고 경상도고 그냥 태어난 고향일 뿐이고
자랑스러워하거나 비참해야할 이유따윈 없다라고 생각해왔고 지금도 그 생각에는 변함이 없습니다.
근데.. 계속 이 오빠와 관련해선 '내 고향이 전라도가 아니었으면 지금쯤 어땠을까'라는 생각이
끊임없이 드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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