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적같은 댓글과 ㅜㅜㅜ 추천에 감사드리며 3화 시작합니다 ^^ -----------
1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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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초희
유영이가 죽었다. 그것도 내 눈앞에서 말이다. 어제 일을 까맣게 잊을수만 있다면 뭐라도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교실 아이들과 아무것도 기억나지 않은 척 예전처럼 깔깔대며 웃을수 있을까. 눈물샘이 말라서 더이상 눈물 조차 나오지않는 등교길이었다.
문을 열고 들어간 교실은 울음소리 절반, 침묵 절반이었다. 유영이의 자리에는 국화꽃다발이 올려져있었다.
책상위에 바스락거리는 내 손의 편지를 살며시 올려두었다.
아침조회시간은 묵념으로 시작해 묵념으로 끝났다. 아이들이 더욱 크게 울었음은 당연했다. 몇몇 유영이와 친하지 않은 아이들이 간간히 핸드폰을 만지막거리는 모습이 눈에 걸렸지만 신경쓰지 않기로 했다. 묵념이 끝나고 담임선생님이 등하교길에 접촉하는 신문 기자들의 질문과, 집으로 걸려오는 인터넷 포털 사이트의 전화에 아무 대답도 하지말라고 신신당부 할때였다.
"실례하겠습니다."
문이 열리고 30대 초반으로 보이는 남자가 들어왔다. 작지않은 키에 조금은 사납게 생긴 생김새. 네이비색 바지, 팔을 걷어부친 하얀색 셔츠, 파란색 사선 줄이 들어간 넥타이, 검은 구두. 학생들을 만나러왔기 때문인지, 평소에도 저러는지 깔끔하게 차려입은 경찰관은 왠지 거부감이 들지않았다. 셔츠 바깥주머니에 담배와 라이터를 빼면 말이다.
아저씨라 부르기에는 젊었지만 그 외 마땅한 호칭이 떠오르지는 않았다. 한눈에 봐도 형사임이 틀림없었다. 형사라. 그런 직업을 가진 사람을 이렇게 빨리, 이런 자리에서 만나게 될줄은 상상도 하지 못했었다.
형사는 우리를 스윽 쳐다보더니 유영이 자리로 와 손에 쥐어 들어온 국화 한송이를 꺼내 가만히 그곳에 놓았다.
드라마나 영화에서 보던 그런 신경질적인 경찰관은 아니구나 싶었다.
다시 교탁으로 돌아간 형사아저씨는 그제서야 입을 열었다.
"먼저 여러분의 소중한 친구의 일에 깊은 애도를 표합니다. 저는 서울지방경찰청 극서부 경찰서 수사과
강력1팀 김민주 경사라고 합니다."
준비해온 멘트들일까. 형사아저씨는 거침없이 말을 이어나갔다. 유영이의 죽음의 의문을 풀기위해 학생들의 증언과 도움을 얻으러 왔다고 말한 형사아저씨는 뭔가가 적힌 종이를 담임에게 건네고
2층 끝방 서예반에서 기다리겠다는 말과 함께 나가버렸다.
아마도 내가 첫번째로 불려갈지도 모른다는 예감은 빗나갔고 다섯번째로 불려나가게 되었다.
착잡한 마음으로 들어간 서예반에서는 무슨생각을 하는지 창가에서 운동장을 내려다보던 형사아저씨가 담임을 돌려보낸후 나와 함께 탁자에 마주앉았다.
갑자기 긴장이 풀리며 말랐던 눈물이 쏟아질 것 같았지만 꾹 참았다.
아저씨가 입을 열었다.
"초희학생, 유영이랑 가장 친하게 지내서 이렇게 불러낸거야. 이해해 줄수있지?"
"네."
"죽은 친구를 위해서라도 거짓말을 하거나 사실을 숨겨서도 안되. 무엇보다 너희들의 증언이..."
"유영이가 먹는 물에 누가 무슨 짓을 한게 틀림없어요. 급식도 같이먹었고 요즘은 다이어트를 한다고 그 외에는 아무것도 먹지않았어요."
시시콜콜한 서두는 듣고 싶지않아 말을 잘랐다. 아저씨의 눈빛이 더욱 더 날카롭게 변한 듯 싶었다.
"그런 짓을 할만한 짐작가는 친구는 없어?"
"적어도 우리반에는 없어요, 1학년 때 반이 그대로 2학년으로 올라온 터라 다들 허물없게 지냈어요."
"다른반이나 아니면 남학생들이랑 일어난 불미스러운 일 같은건 없었니?"
"글쎄요, 유영이 부모님이 엄한 편이라 남자친구는 물론이고 남자애들이랑 말 섞는것 조차 본 적 없어요."
"최근에 무슨 이상한 모습을 보였다거나, 평소와 다른 말을 한 적 있었니?"
"아뇨, 굳이 꼽자면 얼마 전에 중간고사를 봤는대 성적이 어떻게 나올지 걱정하는 모습같은건 있었지만 시험 본 직후마다 그러는 애라서 그러려니 한건 있어요."
수첩에 빠른 손놀림으로 내 말을 적는 형사아저씨의 모습에 새삼스럽게 지금 현실을 직시하게 되었다.
"유서에는 뭐라고 써있나요?"
"아직 누가 썼는지도 무슨 말을 썼는지도 나도 모른단다. 밝혀진대도 지금 당장 너희들에게 말하기는 어려울것 같다."
경찰관들이 수사상의 기밀은 일반인들에게 쉽게 말하지 않는다는 걸 어디서 들은 적이 있었다.
손목시계를 한번 들여다 본 아저씨는 계속 말을 이어나갔다.
"7교시가 체육시간이라고 들었어. 일주일에 한번 있는 예체능 활동수업이라 전부 체육관에 갔었다고?"
"네."
"거기서 뭘했지?"
"말이 체육시간이지 자유시간이라 공놀이 할 애들은 공놀이 하고, 앉아서 수다 떨 애들은 이야기하고, 매점 갈 아이들은 뭐 사먹으러 가고 그렇죠. 선생님들도 우리가 받는 수업 스트레스를 아니까 별 말 안해요. 그냥 그 50분은 쉬게 해주는거죠."
순간, 아저씨의 어깨가 움찔거렸다고 생각했다.
"그때 유영이는 어디있었지?"
"핸드폰으로 음악 좀 듣다 간다면서 교실에 남아있었어요. 그러고 나서 20분 뒤쯤인가 체육관으로 들어왔죠. 저는 친구들이랑 수다떨다가 유영이가 오자 같이 배드민턴을 쳤어요. 그러고 50분에 종이 쳐서 교실로 돌아갔죠."
"수업이 끝나고는 둘이 같이 교실에 들어간거야?"
"아뇨, 유영이는 7반에 체육복 빌린 친구에게 옷을 다시 돌려준다면서 그 쪽으로 걸어갔어요. 수업 시작 종이 치자마자 다시 교실로 돌아온 걸로 기억해요."
"체육시간에는 교실 문이 열려있니?"
"아뇨, 마지막으로 나오는 사람이 문을 잠그고 자기가 갖고 있다가 제일 먼저 교실로 돌아가서 문을 열어요. 그 날은 유영이가 저한테 열쇠를 맡겨서 제가 문을 열고 들어갔죠. 제 뒤에 같이 따라 들어온 아이들이 있으니 괜한 의심은 하지마세요."
형사아저씨가 갑자기 소리내 웃었다. 왜 그런지 이유를 알 수 없었다. 기분이 조금 나빠졌다.
"지금 알리바이라도 대는 거야?"
귀엽다는듯 큭큭대는 아저씨는 웃음을 멈추고 다시 진지한 표정으로 돌아왔다.
"3시 20분까지 교실에는 유영이 뿐이었어?"
"아마도요."
"어떻게알지?"
"설마 다른애가 교실에 있는대 문을 잠궜을리가 없잖아요. 그리고 애들이 모두 옷을 갈아입고 나갈때까지 유영이는 이어폰을 꽂고 음악을 듣고있었어요. 모두가 그 모습을 보고 나갔구요."
"그러면 4시에 돌아온 유영이가 텀블러에 물을 받아 마신거야 아니면 원래 있던 물을 마신거야?"
"원래 있던 물이요. 종이 치지도 전에 담임선생님이 들어와 계셨거든요."
"잠깐만, 그보다 훨씬 전에 누군가가 뭔가를 탔을수도 있잖아, 정신없는 점심시간에라든가."
"그건 아니예요. 제가 체육관 가기직전에 제가 유영이 물을 다 마셨거든요. 수분섭취 후 땀 흘리는게 좋다해서."
내가 유영이가 마실 원래의 물을 마시고 범인에게 상황을 만들어준건 아닐까
순간, 내가 죽인것이나 다름없다는 생각이 스치자 정신이 아득해져왔다.
"그럼 3시 50분에서 4시까지 유영이 텀블러에 물을 받거나 뭔가를 넣는 학생을 본적은?"
"아뇨, 아시겠지만 제 바로 옆 자리가 유영이거든요. 10분 내내 영어 과제를 마지막 검토하느라 자리를 뜬 적이 없어요."
어제의 일들이 어제 일 답게 머릿속에서 선명하게 떠올랐다. 반질거리는 유영이의 책상위에 나와 함께 찍은 스티커사진과 최근에 여행을 가고싶다며 들여다보던 국내 여행책, 몇몇의 노트, 그리고 그 텀블러까지.
"정리해보자. 3시에 체육관에서 하는 수업이 시작됐지만 유영이는 혼자 교실에 앉아 음악을 듣다가 3시 20분경 체육관에 들어옴, 50분까지 운동을 하다가 본인은 볼 일이 있다며 7반으로 가고 교실을 여는 열쇠는 너에게 준 다음 10분뒤 교실로 돌아와, 수업시작 직후 텀블러의 내용물을 마신 후 사망."
"그렇게 되는군요..."
아저씨는 형사답게 조각난 파편들의 정황을 모아 근거있는 가설을 만들었다.
"자살이 아니라면 제가... 가장 유력한 용의자가 되겠죠?"
"형사들은 의심이 아주 많아, 용의자 선상에 있는 모든 사람들을 의심하는게 내 일이란다."
경찰이란 참 힘든 직업이구나 하는 엉뚱한 생각이 들었다.
"혹시, 수업시간에 체육관을 나간 애들은 없었니?"
"그건 모르겠어요, 배드민턴 치느라 정신이 없어서."
"너는 안나갔니?"
"네? 배드민턴 쳤다니까요? 수업 끝날때까지. 주변에 있던 친구들에게 물어보세요."
"아니, 3시부터 3시 20분까지 말이야."
"같이 이야기한 수영이랑 문희가 증인이예요. 어떤 내용의 이야기를 했는지 구체적으로 말하고 걔네들을 개별면담해서 서로 말하는 증언이 일치하면 그때 믿으시겠어요?"
아저씨는 쏘아붙이는 말에도 놀라는 기색없이 머리를 긁적였다.
"이렇게 확실한 알리바이가 있는대 무슨 유력한 용의자니. 너무 걱정하지 마라. 공부할 시간 뺏어서 미안했다."
형사아저씨는 미안한 표정으로 두손을 모으며 옅게 웃었다.
수첩을 주머니에 쑤셔넣고 하얀색 명함을 건네주더니 서예반 문을 열고 나가는 아저씨에게 물었다.
"교내에 있는 정수기에 유해한 성분이 들어있는지 아저씨 경찰서에 검사좀 의뢰해도 될까요? 억울한 유영이를 위해서라도."
손잡이에 손을 올린 아저씨가 순간 멈추더니 뒤돌아 보았다.
"이미 감식반이 어제 각 층의 정수기 물을 추출해갔단다."
드르륵. 아저씨가 나가고 그제야 온몸에 힘이 풀림을 느꼈다.
#김민주 형사
이미 학생들과 면담 전에 임시 수사본부에 먼저 들러 국과수의 결과 내용을 보고받았다.
사인은 청산가리에 의한 중독사. 사망시각 4시 7분경. 물의 온도는 냉수가 미지근해 진건지, 온수와 냉수를 함께 받았는지 미지근했고, 텀블러에는 이유영 학생의 지문과 목장갑의 무늬만 검출, 정수기 또한 별 이상이 없었다. 유서는 본인의 필체임이 확인되었다.
피해자의 주변친구들 중 친했던 아이, 안 친했던 아이, 그저 그런 사이였던 아이들을 미리 말해두어 면담해본 결과 5명의 진술과 그들이 보았던 정황은 거의 일치했다. 앞으로 더욱 더 많은 아이들은 탐문해 나가겠지만 크게 달라지지는 않을 것 같다는 예감이 들었다.
그런대 학생들의 말을 들을때마다 정확히 꼬집어 말 할 수는 없었지만 상황설명이 뭔가가 부자연스럽다는 느낌이 들었다. 한명보다는 두명의 말을 듣고 생각할 때, 두명보다는 모두의 말을 듣고 생각할 때 알 수 없는 소름이 팔뚝을 훑고 지나갔다.
범행시간은 정확히 짚어내기는 어려웠다.
주변인들이 범인의 범행순간을 못보았다고 간주한다.
피해자가 수업시간마다 텀블러의 물을 홀짝인다고 가정하고 최대한 좁힐수 있는 시간은 2시 50분 부터 4시 사이. 김초희 학생의 목격이 틀림없다면 생각하고 더욱 좁힌다면 약 3시부터 3시50분 사이. 혼자있다고 해도 텀블러를 놔두고 교실 문을 열어둔 채 잠깐 화장실에 다녀올 수도 있고, 체육복을 빌리러 7반을 갔을 때도 꼭 물을 들고 갔으리라는 보장또한 없었다.
피해자의 사망시각 직후에 도착한 감식반에 의해 검사된 800ml짜리 텀블러 속, 약 250ml의 물에 아주 잘 희석된 청산가리는 무려 12그램. 그 또한 인위적인 힘으로 물을 세차게 섞었다는 결과가 나왔다.
시안화칼륨이라고 불리우는 청산가리의 치사량은 0.15g의 맹독성의 물질. 학생신분으로는 구하기 어려운 물질임은 물론 그 정도의 양을 구하기는 더더욱 어렵다. 친구의 장난으로 보기에는 너무 심한, 자살로 보기에는 더할나위없는 선택이었을지도 모른다.
범인에게는 장갑을 낀 채 청산가리를 넣고, 그것을 잘 섞이게 흔들만한 충분한 시간과 학교에서 범행을 저지를만한 그만한 담력이, 그리고 그 모든 상황을 뛰어넘는 동기부여가 있었을 것이다.
면식범이라면, 교사보다는 주변학생이다. 그것도 평소 행실이 바르던 학생을 죽일만한 동기를 가진 학생을 찾아야만 했다.
진동소리에 핸드폰을 확인해보았다.
-유서 내용 확인 겸 수사 1팀 이유영 사건 2차 회의.수사본부로 집결-
유난히 길다고 생각되는 복도를 걷고있는대 저 끝에서 김팀장과 그의 부하직원이 걸어오고 있었다.
3반으로 들어가는 폼인 김팀장은 나를 보더니 교실을 지나 내 쪽으로 다가왔다.
나는 가볍게 목례를 했다.
"김형사, 내가 본청도 아니고 같은 지방청 식군대 나눌건 나눠야지."
"아직 정확히 밝혀진게 없어서 말입니다."
나는 어떤 표정을 지어야할지 몰라 그냥 쓰게 웃고 말았다.
"이 많은 학생들을 탐문수색하려면 답이 없잖아. 자네 서에서 협동수사 요청이 왔어. 얘기는 들었지? 본부로 돌아가면 유서좀 확인해주고 연락좀줘."
나는 빙긋 웃으며 되받아쳤다.
"그럼 팀장님은 저한테 어떤걸 주시겠습니까?"
"7반에 피해학생에서 체육복을 빌려준 박혜진이라는 학생이있거든? 어제 나한테 전화를 걸어 이상한 소리를 하더라고."
"무슨 말 말입니까?"
"유서에 나와있을지도 모르지. 갑시다."
김팀장은 나에게 찡긋 윙크를 하고 뒤돌아서 일행들과 다시 1층으로 내려갔다. 교무실에서 어떠한 단서라도 찾으려는 것이리라.
후우 한숨을 쉬고 나도 내려가려는 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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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천하고 허접한 글을 봐주셔서 고맙습니다 ^^ 좋은 하루 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