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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게시물ID : soda_4401
    작성자 : arithmetic
    추천 : 42
    조회수 : 4588
    IP : 175.206.***.242
    댓글 : 59개
    등록시간 : 2016/09/19 21:30:06
    http://todayhumor.com/?soda_4401 모바일
    의료사고 극복기.
    옵션
    • 외부펌금지
    주의: 다쓰고 나서 올려보니 엄청 김. 긴거 싫어하면 뒤로가기 클릭.
           퇴고를 안했기에 엄청난 오탈자가 있을수 있음 고로 프로불편러 분들께선 뒤로가기 클릭 요망.

    사람들이 추석을 집에서 쇠지 왜 내 펜션에서 쇠는지 이해할수가 없어서 음슴체.

    본인 장인이 작년에 돌아가심.
    제작년 폐암 초기 판정을 받으시고 복강경 수술 후 1년간 평소 사랑해 마지않던 술과 담배를 끊으심.
    짝과 보루로 사랑하시던 평소의 모습을 과감하게 버려 심하게 놀람. 사람이 저렇게 변할수도 있는가 싶음.

    그렇게 1년이 흘러 완치 판정을 받고 모두가 해피해피 하던 찰나
    작년 추석즈음에 화장실과 본인 방 그리고 거실에서 자꾸 넘어지심.
    균형감각을 잃은듯함. 동내병원에 엑스레이를 찍어보니 큰병원으로 가라고 함.

    폐암을 치료했던 *릉**병원에 다시 가서 ct를 찍음. 머리에 종양이 있다고 함.
    아니! 왜! 폐암 완치 판정 후 재발 검사를 1년 정도 정기적으로 하면서 전신 스캔을 한번도
    안했을까 본인 혼자 분개하며 의아해함. 전의를 의심하며 전신 스캔을 한번쯤 하는게 일반적일텐데..
    근데 의사들이 바보도 아니고 없던 종양도 낮은 확률로 단시간 내에 크게 될수 있으니
    그려려니 하면서 수술 날짜를 잡음.

    집도의는 실력이 출중하다는 전문의.
    본인은 그간 해오던 자영업을 정리하고 펜션라이프를 즐기기위해 준비하던 중이라
    마나님과 장모님이 병수발을 듬.
    집도의가 워낙 자신만만하게 이야기해서 처형들과 처남 그리고 나머지 식구들도 별 걱정 안함.

    Day 0

    수술 당일이 되고 저녁에 마나님으로 부터 청천벽력 같은 전화를 받음.
    전화기 넘어 마나님의 대성통곡이 대부분인 소리로 인해 뭔일인지 잘은 모르겠지만
    어쨌든 큰일이다 싶어 병원에 가니 이미 코마 상태.
    집도의는 온데간데 없고 레지던트들만 우왕좌왕.
    집중치료실에서 모니터를 보니 혈압과 심장수치가 거의 식물인간 수준.
    이미 이성의 끈을 놓고 좌절해 있는 처가 식구들을 보고 나라도 정신을 차려야 겠다 싶어
    임종 이후의 일을 생각함. 그리고 이건 직감적으로 의료사고 같다 생각함.

    그렇게 몇시간 뒤 장인께선 하늘나라로 떠나심.
    천공한 두개골을 미처 다시 넣지 못하고 미봉으로 덮은 상태라 선혈이 낭자한 배게와 
    바닥에 널브러진 피묻은 거즈들 그리고 알수 없는 링거줄과 전선줄.
    그리고 오열하는 4명의 딸과 한명의 아들 그리고 장모님.
    망자가 떠난 자리는 그야말로 아비규환이었음.
    더이상 그자리에 같이 있다가는 나도 졸도 하겠다 싶어 신선한 공기를 찾아 밖으로 나옴.

    일단 본인의 의료지식이 전무하니 변호사인 친척형에게 전화를 함.
    대충 상황이 이러이러한데 뭔가 도움이 될만한 조언이 있냐 여쭤봄.
    형도 의료전문은 아니라 큰 도움을 줄수 없고 일단 진료기록부터 확보 하라고 함.
    그럴일은 없겠지만(바램뿐이지만) 의료기록을 손댈수 있으니 반드시 빠르게 확보 하라고 함.
    그리고 의료사고 모임의 전화번호를 알려주며 거기에 전화해보라고 함.

    일단 원무과를 가서 진료기록을 확보했지만 두껍고 알수 없는 말들로 쓰여진 진료기록을 보니
    암담하다는 생각밖에 안듬. 그리고 의료사고 모임에 전화해서 망자가 고령이며 이러한 일들로
    의료사고 같다 라는 말을 전함.
    그곳에서 들려온 대답은 예상과 같이 망자가 고령이라 승소 확률은 거의 제로에 가깝다.
    병원과 싸워서는 이길수 없으며 현제 상황으로는 병원에서 타협안을 내는것도 희박한 확률이다.
    이런 뻔한 대답을 들으며 망연자실하게 전화를 끊을수 밖에 없었음.
    장인과 처가가 불쌍하다는 생각밖에 안듬. 그리고 인생 처음으로 내 자신이 매우 미약한 존재이며
    넘을수 없는 거대한 벽이 눈앞에 존재한다는 생각이 듬.

    Day 1
    의료사고라 생각한 사람이 나뿐만은 아니었음. 집도의의 말도 있고 일단 망자가 생전에 건강했기에(?)
    원무과와 대질을 함. 당연히 원무과는 정상적인 수술 중 응급상황이 발생했고 불행히 사망했다라는
    예상과 같은 대답을 하며 병원의 책임은 없고 장례절차를 밟으라고 함.
    그리고 고인의 평소 유언에 장례가 끝난 후 화장을 해야함.
    부검을 해야 그래도 무언가 희망이라도 있을텐데 라고 혼자 생각 했지만 장모를 포함한 처가 어르신들의
    말에 따라 망자의 몸에 칼을 대는건 포기함. 막내 사위라는 지위는 생각대로 미천한 자리 였음.
    내게 남은 시간은 36시간 이며 그 안에 무언가 뾰족한 수를 찾지 않는다면 
    영원히 장인께선 편히 눈을 감을수 없겠다는 생각이 듬.

    한쪽으로 치워뒀던 진료기록을 찬찬히 읽기 시작했음.
    같이 준 cd는 생각하기에 이해하기 불가능한 초음파(?) 같은 영상 자료일듯하니 아예 신경도 안씀.
    그나마 본인이 영어를 조금이나마 할수 있었던게 다행이라 생각하고
    그동안 csi, 하우스와 같은 수많은 미드를 보와왔던 깜냥이 있어 생각보다 내용들이 이해가 되었음.
    그로인해 입원부터 수술종료까지 대부분의 정황이 정리가 됨.
    진료기록을 보면서 오만가지 감정이 다 들었음
    안쓰러움, 안타까움, 슬픔, 애처로움...

    그렇게 삼일장의 첫날이 지나감.

    Day 2
    문상을 온는 사람들이 많아짐. 그간 넓은 인맥을 보유한 장인이었기에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찾아옴.
    어제부터 원무과와 몇번 미팅을 하면서 계속 같은 대답만 들음.
    식구들은 점점 지처감. 목소리 큰 처형들과 형님들은 병원 복도를 돌아다니면서 깽판을 침.
    말릴려고 말려도 안말려짐. 아비를 잃은 자식의 슬픔이 이해가 되지만 병원에 온 다른 아픈 사람들에게 피해를 주는거 같아
    참 난감했음. 대학 시절 학생운동 할때 마주친 공권력과 비슷한 사설 경비원들과 몸싸움도 다시 해봄.
    그때에 비해 내 힘이 많이 약해진건지...
    어쨌든 그 깽판으로 인해 집도의를 만날 기회가 생김. 내일 만날수 있다 약속함.
    기회는 내일 뿐이라는 생각이 듬.
    앵무새 같은 원무과 사람하고 대화해서는 아무런 결론이 안날거 같음.
    집도의에게 일말의 양심이 있었으면 하는 생각이 듬.

    그날저녁 처가의 가장 큰 어른인 큰아버님에게 욕먹을 각오를 하고 대화를 청함.
    첫 질문으로 보상금을 그쪽에서 만약 준다면 얼마를 받아야 하냐고 물어봄.
    1억이라 답하심. ..... ...... 하...
    일단 상황이 이러이러하고 현실상 패할 확률이 대부분이고 설사 이기더라도 법정까지 가면 모두가 불행해진다.
    설사 받더라도 망자가 고령이고 하니 2~3천만원이 보상금이 될듯하다.
    20대 사지멀정한 청년이 죽어도 1억은 안된다. 그리고 화장하면 증명도 불가능하다 라고
    하고싶은 말을 다 드림.
    결국 처가 어른들에게 욕을 시원하게 먹고, 패기도 없고 자기 부모 아니라고 어떻게 저럴수 있냐며..
    한쪽 자리에서 쭈구리고 있을수 밖에 없었음.

    욕은 먹더라도 현실을 환기시켜드려야 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되어서 말씀드린것이고
    내 생각대로 열불만 내던 어르신들이 뭔가 심각하게 이야기하며 현실을 자각하는 듯한 분위기가 느껴짐.

    이제 나는 나대로 내일 있을 최후의 기회를 살리기 위해 다시 진료기록을 붙들고 씨름을 하기 시작함.
    어제는 정황의 흐름이 파악되면서 감정적적으로 읽어내려갔다면 오늘은 좀 더 객관적으로 볼려고 노력함.
    그렇게 마음을 다잡고 보기 시작하니 어제 보지 못한것들이 군데 군데 보이기 시작함.
    그리고 항상 미드에서 보던 장면들이 안보인다는게 생각남.

    @1 수술의 위험성에 대한 경고 및 옵션 B에 대한 말.
    수술 동의서를 작성할때 동석했던 장모와 마나님에게 혹시 집도의가 수술 위험성이나 부작용 그리고 
    수술을 안했을시 권할수 있는 시술이나 처방 같은거에 대해서 이야기 한적 있냐고 물어보니 없다고함.
    그냥 안심만 시키고 자신있다고 호언장담을 했다고 함.

    @2 수술을 하기 전 금식 기간이 굉장히 길었음.
    보통 하루 정도 안하는데 하루 하고도 12시간 정도 금식을 했음. 진료 기록에 따르면 장인께서 계속 배가 고프다
    수술을 미루고 뭐좀 먹자 나 죽겠다 하고 허기를 토로하심. 체력적으로 수술을 견딜수 있는 한계까지 간듯함.
    그리고 수술 대기실에 들어가서도 몇시간 동안 기다림.

    @3 환자가 수술을 거부함.
    허기로 인한 것이겠지만 간호사와의 대화에서 지속적으로 환자가 수술을 거부했음. 물론 무시하면 무시할수 있을
    정황이지만 문제라면 문제일듯 했음.

    @4 수술전 검사를 안했음.
    수술전 심장초음파(?), 동위원소(?) 검사를 둘다 안했음. 내 해석이 맞을런지 모르겠지만 (구글 번역기를 쓸껄!!)
    어쨌든 수술전 환자의 상태를 파악하기 위한 검사의 진행을 안하였음. 왜 안한건지도 안나와 있음.

    @5 혈액팩 발주와 수주의 문제
    수술중 머리쪽 혈관을 건드린것 같음. 그래서 출혈이 엄청 났던거 같음. 사실 여기서 진료기록 읽기가 힘들었음.
    단순한 텍스트 몇글자였고 상황묘사는 전혀 없었지만 그 말이 나타내는 의미와 망할 미드 중독자 본인이 가진
    이미지가 겹치니 사람이 심적으로 많이 힘들었음. 어쨌든 마음을 다잡고 보니
    종류별로 10팩이상을 지속적으로주문했는데 2팩 3팩씩 받았음
    타임라인별로 지속적으로 모자란 부분을 추가로 발주를 하는데 수주되는 양은 지극히 적음.
    미천한 지식을 가진 내가 보기에는 뭔가 문제가 있는거 같음.

    어쨌든 위의 메이저한 5가지 문제점과(내 기준으로는) 마이너한 몇가지 문제점들을 노트에 정리해서 준비해놓음.
    그리고 처형들과 형님들에게 브리핑하기 시작함.
    힘쓰는건 우리가 할테니 재부는 그걸로 한번 해보라는 처형들의 대답이 돌아옴. 아.............
    일단 깽판 치면 업무방해로 우리가 오히려 곤란해진다라고 진정시켜 보지만 어제 활개치던 처형들을 보니
    공염불 같이 느껴짐. 내일 반드시 뭔가 성과를 내야겠다라는 결심이 섬.

    day 3
    사실 장례식장에 불편한 사람이 한명 있었음. 바로 해당 병원에 근무하는 마나님의 외숙모와 외삼촌이었음.
    아마도 병원측에서는 이사람들을 통해서 우리 정황을 파악했을거임. 외숙모와 외삼촌이 우리의 "간자" 였다 하더라도
    그사람들 입장이 이해가 감. 객관적으로 봐도 의료사고라고 보기 힘든면이 많고 본인들의 직장이니 내가 할말이 없음
    그러니 나 스스로 이런걸 준비하고 있다는걸 최대한 숨길수 밖에.

    대망의 집도의와의 대질 시간이 왔음. 실낯같은 희망을 움켜진 나와 나만 바라보고 있을 마나님과 처가 식구들을 생각하니
    집에 가고 싶어짐. 3일간 잠도 거의 못잔 내 정신과 육체도 흔들거림. 하지만 장인의 원수(?)를 값아야 겠다는 의지로 버텨야겠다는
    결심을 함.

    회의실로 올라가기 전 어르신들 대표로 올라가는 큰아버님에게 독대를 청함. 오늘은 될수 있으시면 이성적으로 행동해야할듯하다고
    말씀드림. 어제처럼 그렇게 결국 질거라는 생각과 말로 지고 들어갈거냐 며 목소리를 높이셨지만 본인이 준비한게 있고
    잘하면 무언가 해결책이 있을거 같다 말씀드리니 일단은 알겠다고 하심.
    사실 회의실 들어가기 전까지 결국 모든건 무의미했고 예정된 결말로 귀결될거다..라는 불안감이 상당했음.
    회의실 복도는 스산했지만 내 와이셔츠는 땀범벅이었음. 손수건 대신 사용한 검은 넥타이는 땀이 말라 군데군데 허옇게 되었음.

    한참을 기다린 끝에 결국 집도의를 만날수 있었음. 내 신신당부에도 불구하고 처형들과 어르신은 그 의사를 보자마자
    광분+고성+오열.....아..이런게 아닌데..
    힘들게 모두를 진정시키고 집도의에게 말을 검. 

    나: 제가 지금부터 몇가지 질문을 드릴텐데 의사의 양심을 가지고 대답해주십시요.
    의: 네
    나: 혹시 수술동의서에 싸인을 받으실때 수술의 위험성에 대해서 말씀하셨나요?
    의:.......
    나: 말씀 안하셨나요?
    의: 그건 그 수술이 워낚 쉽고 안전....
    나: 그러니깐 안하신거 맞네요?
    의: 제가 그자리에 없어서...
    나: 집도의가 수술동의서 싸인을 받을 때 없으셨다고요?
    의: 그게 제가 바빠서...보통 다들 그렇게...
    나: 알겠습니다. 그럼 수술 말고 다른 대체 방법에 대해서도 아무런 말씀이 없으셨겠네요?
    의:.......네
    나: 알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이런식으로 5가지 메이저 이슈와 3가지 마이너 이슈에 대해서 질문을 하고 답변을 받는 시간을 가졋음.
    어디서 본건 있어가지고 난 집도의가 하는 말중 내가 듣고싶고 들어야만 하는 말만 듣고 변명은 자르는 식으로
    질답을 이어나갔음.
    금식에 관한 부분은 상황상 어쩔수 없었고 수술전 검사도 바빠서 못했고 거부한건 정황상 무시했고
    혈액팩은 주문했는데 안왔다 등등 예상했던 답변을 아주 힘들고 곤혹스러워하며 집도의는 답했음.

    의외로 법무팀과 상의를 안하고 온듯한 분위기였고 답변 내용 또한 매우 직설적이었음.
    충분히 회피하고 함구해도 될만한 내용들도 우리에게 말해주었으며 
    그것이 결국 본인과 병원에게 화살이 되어 돌아갈수도 있다는걸 인지하지 못하는듯 하였음.

    질답을 시작하기 전까지, 아니 그동안 내내 웃는 얼굴로(비웃음으로 보였지만) 여유있어보이던 원무과 직원도
    첫번째 질문이 시작되고 상황이 점점 심각해지자 노트를 피고 무언가를 계속 적어나갔음.
    그 사람의 얼굴에서 여유로움과 가식적인 웃음을 지우게 만들었다는것 만으로도 무언가 성과가 있을수도 있다라는걸
    직감적으로 느꼈음. 다만 이 성과를 법적으로 끌고갈 능력과 장기전에 대비할 여유가 나에게는 없다는게 큰 문제지만....

    그리고 태어나서 처음으로 말로만 듣던 사람얼굴이 흙빛으로 변할수도 있다는걸 집도의를 통해서 볼수 있었음.
    그 사람얼굴을 보면서 그 사람이 느끼고 있는 압박감과 죄책감 그리고 양심의 가책 등이 고스란히 나에게 전해지며
    내가 지금 무슨짓을 하고 있는건가 라는 자괴감이 오히려 들 정도였다. 집도의의 덜덜 떨리는 손을 보며 내가 할수 있는건
    내 모든 질문을 끝내고 그사람 손을 맞잡고 성실히 대답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라는 진심어린 감사의 말뿐이었음.

    집도의와의 대질이 끝나고 장례식장으로 내려오면서 우리는 아무런 말도 나누지 않았다.
    집도의가 한말들의 텍스트만 놓고 보았을땐 의료사고라고 치부할수 있는건 아무것도 없었지만
    그가 풍긴 분위기와 뉘앙스 그리고 행동은 그것을 인정하고 사죄하는 것이라고 충분히 느낄수 있는 것이었기에
    어제까지 느낀 단순한 아비를 잃은 분노와 절망의 원동력에서 오는 말과 행동이 아닌
    진짜 의료사고라는 암담한 현실 그리고 절망에서 오는 깊은 침묵이었다.

    내가 할수 있는 일은 모두 했기에 난 오히려 홀가분해 졌다. 그리고 잊고 있었던 피로감도 격하게 밀려왔다.
    여기가 장례식장이고 뭐고를 떠나서 깊은 잠을 몇일동안 자고 싶은 마음뿐이었다.
    그때 어제 왔다가신 어머니께서 한말씀이 떠올랐다.

    나의 외조부도 비슷하게 세상을 떠나셨다. 몇일간 같이 분노하고 행동하던 친족들이 몇일이 지나니 모두 홀연히 사라지고
    남은건 나와 몇몇 형제들 뿐이더라. 지금은 모두가 같이 분노하고 한목소리를 내지만
    싸움이 길어질수록 피폐해지는건 결국 너의 부인뿐일거다. 될수 있으면 항상 현실을 자각하고
    이길수 없는 싸움은 최대한 피하며 항상 너의 부인을 생각해라...

    오던 잠이 달아났다. 난 아직 정신줄을 놓으면 안된다....

    day 4
    어제 어르신들끼리의 회의결과 삼일장이 아닌 4일장을 하기로 결론이 났다. 무언가 결론이 날때까지 장례식장을 떠날수 없다는
    생각이신것 같음. 화장을 해버리면 진짜 끝이라는 내말이 어느정도 통한것 같음. 나에게도 하루라는 시간이 더 주어져서
    다행이다 생각이 들었음.

    그동안 미루어두었던 염을 하였음. 취조실과 같이 창밖에서 염을 하는 것을 보니 그동안 참아왔던 눈물이 났음.
    창백한 장인의 안색과 오열하는 처가식구들... 그동안 정신줄을 붙잡고 있을려고 노력한 나도 그만 그 줄을 놓아버렸음.
    그렇게 염이 끝나고 내일이면 정말 화장터로 가야하는 현실. 남은 하루의 일분 일초 피가 마르는 느낌이었음.

    점심즈음해서 처가식구들을 불러모았음. 그간 내가 말을 걸어도 듣는둥 마는둥 했던 처가 식구들이 바로바로 반응을 해줌.
    비단 어르신들까지 내 말을 잘들어주심. 아마도 어제일 때문에 내 영향력(?)이 좀 높아진것 같음.

    큰아버님께 내 진심을 말씀드림. 좀 있으면 원무과에서 연락이 올듯한데 그때 하는 말이 아마도 그 사람들이 하는 마지막 말일거 같음
    우리가 싸움을 계속 한다고 해도 그때 하는 말이 그 사람들이 마지막까지 하는 말일듯하고 큰 변화가 없을듯 한게 내 생각임.
    이제는 우리가 현실적으로 생각을 하고 협상안을 내야할듯함. 우리가 비상식적으로 나가면 그쪽이 협상의 의지가 있어도
    거부할것임. 길게 끌면 무조건 우리가 불리함. 결국 끝까지 싸우게 된다면 처형들과 내 처 그리고 처남이 너무 힘들듯함.
    우리 모두가 비법조인, 비의료인이라 그 카르텔과 싸우기는 불가능에 가까움. 그러니 어르신들도 이제 그만 화내시고
    장인의 딸과 아들 그리고 장모를 생각해서 현실적인 해결방안을 모색해야할때 같음.
    말씀하신 점거농성과 플렌카드 같은것들은 영업방해 불법점거 등으로 우리가 오히려 역풍을 맞을수 있음.
    감내할수 있는건 감내하고 남은 사람들을 생각하는게 최선일듯함.

    이렇게 이야기를 하고 잠깐의 정적이 흐른 후 큰아버님이 어른들과 상의 후 답을 주시겠다고 함.
    처형들과 처남은 지칠대로 지친 심신으로 나에게 생각대로 하라고 함.
    돈은 필요없으니 병원의 과실만 인정한다면 그거라도 듣고 가겠다고 함. 그래야 장인 무덤 보기 안부끄러울거 같다고 함.
    나도 그런 생각이니 과실이라도 인정해줬으면 하는 바램임.
    얼마간의 시간이 흐른 후 큰아버님이 오셔서 독대를 하자고 함.
    2천만원 정도면 병원비랑 장례비 다 해결이 가능하니 마지노선을 그걸로 정하자고 함.
    1억에서 그정도로 깎은것도 어르신들 딴에는 대단한거라 생각하고 최선을 다해보겠다고 함.
    그리고 앞으로의 협상은 막내사위가 해보라고 함... 총대매고 아차하면 뒤집어쓰라는건가.....
    (이땐 뭔 생각으로 최선이라고 했는지 모르겠음. 내가 줄것도 아닌데...괜한 약속 아닌 약속을 했던거 같음)

    점심깨가 한참 지나서 원무과에서 연락이 옴.
    이제까지 우리가 보자고 통사정을 하고 약속을 잡아도 한두시간씩 늦던 원무과가 약속시간을 칼같이 지키니 신기했음.
    만나서 하는 말이 @1의 문제점인 수술 전 위험성에 대한 고지의 의무 불이행을 인정한다고 함.
    내가 다른 문제점들은 인정을 안하시는거냐 물으니 대답을 안함.
    재차 물으니 그 질문에 대한 답변을듣고 싶으시다면 중재위원회도 아닌 법원까지 가야될꺼라 말함.
    거기서 난 말문이 막힘. 우리가 해줄수 있는건 이게 다라는 위압감을 느낌.
    그리고 그쪽에서 원하는게 뭐냐고 물음.
    블러핑을 할려면 지금밖에 기회가 없다라는 생각이 들음.
    1억이라는 액수를 전에 이야기 했을때 코웃음치던 상판이 떠올라 차마 그렇게까진 못하고
    미리 생각해둔 말을 꺼냄.

    진료비, 장례비 면제 및 보상금 3천.
    원무과에서 진지하게 듣는거 같았음. 뭐 자기가 결정할순 없는 문제이니 상의 후 다시 부르겠다고 함.
    그리고 기다리는 동안 큰아버님께 내생각에는 1천5백에서 2천 사이가 적정선 같다. 설사 그 금액이하가 나오더라도
    그냥 받아들이시는게 좋겠다. 라고 간청하듯 이야기 하니 마지못해 수긍하시는것 같음.
    난 속으로 그거라도 나왔으면 좋겠다라고 생각함.

    1시간 남짓 뒤 다시 부름.
    법무팀 및 사고대응팀과 긴 회의 끝에 진료비와 장례비 면제 및 위로금 2천으로 결론이 났고
    그렇게 마무리 짖자고 함. 지칠대로 지친 우린 그러자고 했음.
    약자의 서러움과 원수를 일부나마 갚았다라는 안도감이 한꺼번에 밀려왔음.
    그리고 보상금이란 단어 대신 위로금이라는 단어를 사용함으로써 병원은 책임이 없다 라는
    뉘앙스를 나는 느꼈음. 

    잠시 뒤 합의서를 작성하라고 상주인 처남과 나를 부름.
    합의서에 대한 내용(앞으로 민형사상 책임을 안묻고...)에 대한 설명과 싸인은 거기 하시오 라는 말을 함.
    그리고 그 대단한 위로금은 2주 뒤에 찾으러 오라고 함. 끝까지 고자세를 유지하는걸 보니 참 아니꼬았음.
    그리고 회의실을 나갈려는 찰나 나에게 잠깐 앉아 보라고 함.
    의아한 마음에 앉아서 왜그러냐고 하니
    나보고 혹시 병원에서 일한 적이 있느냐 그리고 법조계에서 일한 적이 있느냐 꼬치꼬치 물어봄.
    아니 난 거기 구경도 한적없고 그냥 자영업 하는 장사치일 뿐이다 왜 그러느냐 물으니
    이제껏 이렇게 행동한 사람은 못봤다고 혹시 그쪽에서 일하는 사람 같아 보였다고 그러면서 웃음.
    속으로 아.....이렇게 안하면 그냥 호구가 되는것이었나....확 욕이라도 해주고 싶었지만 저 사람도
    저게 직업이라 저러는거겠지 라는 불쌍한 생각이 들어 다시 목구멍 넘어로 넘겼음.

    내 그런 모습으로 본건지 마지막으로 뭐 하실 말씀이라도? 라고 묻길래
    주치의에게 할말이 있는데 좀 전해 달라고 말함. 주치의 라는 단어에 정색하는 표정이 보임.

    "분명 그 의사선생님도 사람을 살리기 위해 수술실로 들어가셨을테고 사람을 살리기 위해 노력하셨을거라
    생각합니다. 아니 그렇게 생각하고 싶습니다. 이번 저희 장인어른의 결과가 안좋았다고 혹시나 좌절하고
    죄책감속에 살지 않으셨으면 좋겠습니다. 앞으로도 많은 사람들의 생명을 살려주시는 일을 끊임없이 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이말을 꼭 전해주세요." 라고 흙빛이된 얼굴과 덜덜 떨던 손을 보며 해주고 싶었던 말을 당사자는 아니지만
    전달해 줄수 있는 유일한 인간에게 결국 해주었음.

    장례식장으로 다시 내려온 난 결국 영웅 아닌 영웅이 되었고 장모와 큰아버님은 나에게 큰 빛을 졌다며 내손을 잡고 안놓으심.
    난 별거 아니라고 모두가 열심히 노력한것이라고 애써 태연한척 했지만 이제껏 살면서 가장 잘한일 중 하나가 아닌가
    혼자 생각해 봄.

    뭐 그렇게 모두 그나마 홀가분한 마음으로 장례식장을 나왔고
    눈물과 비통함 속에 화장터로 갔으며 유골은 단지에 잘 담아 평분묘로 매장까지 함.
    상조회사 직원들도 이렇게 원만하게(?) 해결된건 처음봤다라고 해어질때 은근히 이야기 해줌.
    자기들은 병원눈치를 많이 봐야하는 입장이라 그동안 말은 못했지만 속으로 응원 많이하고 걱정 많이 했다고 함.
    대단하다고 칭찬 들음. 뭐 오늘만큼은 칭찬 들어도 좋은 날이다 싶어 헤헤 웃기만 함.

    매장을 하고 절하면서 생전에 나와 장인의 공통된 취미 아닌 취미였던 믹스커피 한잔을 타서 술대신 드림.
    처갓집에 가면 항상 나 마시라고 한잔 타주시고 본인도 한잔 하시던게 어떻게 보면 유일한 기억이었는데
    이젠 그것도 마지막이다 싶으니 갑자기 눈물이 남....

    집에 돌아오는 길에 와이프한테 나 잘했냐고 물어봄. 와이프가 잘했다고 대견하다고 함. 몇일만에 처음으로 웃는 얼굴을 봄.
    내가 뭐해줄거냐 물어보니 뭘 원하느냐고 반문함. 흠.....한참 생각하다가 내가 살면서 엄청 큰 실수를 하더라도 한번은
    용서해 달라고 함. 한참 있다가 알았다고 대답함. 그러다가 갑자기 바람은 절대 안된다고 함. 내가 에이...이러니깐
    그럼 너죽고 나죽고다 이러길래 그럼 그건 빼고 라고 답함.

    덧 1.
    사실 고인이 생전에 들었던 아주 옛날 보험에서 천만원 정도 나오는 사망 보험금이 있고
    부조금으로 들어온 돈으로 치료비와 장례비는 해결이 가능한 상태였음.
    그리고 장모께서 보상금으로 나온 모든 돈을 다른 식구들 몰래 나와 마나님에게 줌.
    한사코 거절해도 내가 한 일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라고 집 분양받는데 보태라고 주심.
    더 거절하는건 예의가 아니라고 생각되고 그 돈 없어도 잘 사실 분이라 받음.

    그리고 그간 장사치라고 처가에서 무시아닌 무시를 받는 경향이 있었는데 이일 이후로
    처형들이 전부 엄청 예의바르고 공손하게 나를 대하기 시작함. 그리고 펜션 인수했다고 하니
    모두 달려와서 자기 일처럼 청소해주고 일을 거들어줌. 이번 성수기에도 장모님과 처형들 덕에
    무사히 잘 넘김. 이게 처가 잘만난 덕인거 같음.

    덧 2.
    아마 우리나라에서 의료사고로 이기는건 하늘의 별따기 보다 어려운일일듯함.
    그전에도 여러 시사프로그램이나 뉴스에서 봐왔던일이었지만 내일이 아니니 크게 신경 안썼지만
    막상 내일이 되니 참 암담했음. 그나마 잘 견뎌줬던 내 정신줄이 기특할뿐.

    덧 3.
    장인어른 잘 계시죠? 저 잘한거 맞죠?
    편히 쉬세요. 따님 잘 보살피며 살께요.
    아, 다음달에 제 딸 나와요. 하늘에서 잘 보살펴 주세요. 저희 잘 살께요.
    그리고 몇일 뒤에 돌아오는 첫 기일에 산소에 맞난 커피 사들고 갈께요 같이 마셔요.
    출처 커피숍 하고 있지만
    역시 커피는 달달한 믹스커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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