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친구는 참견의 끝은 과연 어디까지인가 궁금할 정도로 오지랖이 넓다.
그래서 녀석의 별명은 한동안 오지랖이었다가 나이를 먹으며 더 빠르고 넓어진 광대역 LTE급 오지랖은 우리는 녀석을 오지랖이 아닌
오지랄로 부르고 있다.
녀석의 오지랖을 처음 본 건 대학 때 술을 마실 때였다. 우리 옆자리에 남자 둘과 여자 둘이 술을 마시고 있었는데 (자세한 대화 내용은
기억이 나질 않는다. 그리고 커플이라 하나도 부러웠다.) 그 일행 중 남자 한 명이 계속 "어불성설을 어불설설" 이라고 발음하고 있었다.
나 같은 보통 사람은 "저 남자가 발음이 안 좋거나 어불성설을 어불설설로 잘못 알고 있구나" 하고 넘어갔을 텐데 녀석은 오지랖이
발동했는지 온 몸을 꿈틀거리고 있었다.
"아무래도 어불설설이 아니고 어불성설이라고 알려줘야 할 거 같아. 저 사람이 나중에 중요한 자리에서 말실수할 수도 있잖아."
녀석은 낯선 사내의 잘못된 사자성어 표현의 교정을 넘어 한 남자의 미래까지 걱정해주는 프로 오지랖 정신을 발휘하려 하고 있었다.
물론 우리는 녀석을 말렸다.
"야. 그냥 신경 좀 꺼. 니가 왜 저 사람 미래까지 걱정해. 그리고 참견하다가 시비라도 붙으면 어떻게 하냐."
그 순간 옆자리의 그 남자는 다시 한 번 "어불설설"이라는 말을 정확하게 발음했다. 잘못 알고 있는 게 확실했다.
녀석은 더는 참지 못했는지 우리에게 '화장실 좀!' 이러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화장실을 다녀오면서 우리 옆 테이블로 가더니 남자에게 뭐라 말을 하더니 귓속말을 하고 있었다.
"저 자식 한 대 맞고 오겠네."
"저 녀석 혹시 귀에 혀 집어넣고...핥핥핥.."
"저 남자 분명 저 녀석 얼굴에 맥주 부어 버리고, 옛다 안주다! 라면서 과일도 함께 던질 거야!"
우리는 앞으로 벌어질 상황을 상상했다.
다행히 귓속말을 들은 남자는 우리의 예상과 다르게 녀석에게 주먹을 날리지도, 얼굴에 맥주를 뿌리지도 않았다.
우리는 녀석에게 그 남자에게 뭐라 귓속말을 했는지 물어봤다.
"응~ 처음에 죄송한데 꼭 드릴 말씀이 있어요. 절대 기분 나쁘게 듣지 말아 주세요. 어불설설이라 계속하시는데 어불 성 설이 맞거든요."
녀석을 때리지 않은 그 남자가 성인군자로 보였다. 심지어 그 남자는 우리 테이블로 쥐포도 보내줬다. 그는 진정한 대인배였다.
나 같았으면 녀석이 돌아섰을 때 '어불성설 개나 줘버려'라 외치며 똥침이라도 했을 텐데 말이다.
그리고 기억에 남는 녀석의 오지랖은 인천의 차이나타운으로 짜장면을 먹으러 가기 위해 인천행 1호선 지하철을 탔을 때였다.
종로에서 출발한 우리는 정통 짜장면을 먹는다는 설렘으로 들떠 있었다. 그리고 신도림역에서 우리 옆자리에 아주머니 두 분이
앉으셨고 한 아주머니께서 말씀을 시작하셨다. 바로 시어머니의 영원한 맞수인 며느리 흉보는 이야기였다.
그냥 뻔한 "우리 며느리가 건방져요. 어른을 공경할 줄 몰라요." 이런 이야기였으면 우리는 아마도 큰 관심이 없었을 것이었다.
하지만 이 아주머니 말솜씨는 예사롭지 않았다. 이 아주머니는 어디 스피치학원에서 언변을 배우셨는지 강약중강약을 적절하게 섞으며
긴장의 끈을 놓치지 않게 하는 목소리 톤과 전생에 아니면 현직 떡장수인지 말씀하는 한 마디 한 마디로 지하철에 있는 사람들을
찹쌀떡으로 만들어 버리고 있었다. 우리는 찰진 아주머니 말씀과 라임에 적절한 반죽이 되어가고 있었다.
서로 막장을 경쟁하는 아침 드라마를 아줌마들의 라이트 노벨이라며 찬양하는지 이해가 되었다.
그리고 다음 도착지가 주안역을 알릴 때 아주머니와 아주머니 일행이 며느리가 부부싸움을 한 날 남편의 회사까지 찾아가 직원들 앞에서
남편 망신을 줬다는 이야기를 하시면서 "아이고 벌써 주안역이네, 우리 여기서 내려야 해요."라고 하셨다.
나는 '아.. 후기가 궁금한데..이건 앙꼬 없는 찹쌀떡을 씹는 느낌인데...' 라고 생각할 때 녀석은 갑자기 벌떡 일어나더니
"야. 우리도 내리자."
"우린 종점까지 가야 해. 무슨 여기서 내려."
"지금 짜장면이 중요하냐. 짜장면은 나중에 먹어도 되지만 저 아주머니 이야기는 끝까지 들어봐야겠어."
"야 이 미친놈아! 아주머니 이야기 들으려고 내리자고? 그냥 닥치고 짜장면이나 먹으러 가. 맥아더 동상 보자면서!"
"아..이.."
녀석은 실망한 표정을 짓다가 뭔가를 결심하고 문 앞에 서 계신 아주머니에게 다가가 물었다.
"그래서 아드님께서 회사에서 싸운 다음에 어떻게 됐어요? "
아주머니는 갑작스러운 녀석의 돌발 질문에 당황할 법도 했는데, 이런 일을 많이 겪은 베테랑이신지 능숙하게 말씀하셨다.
"회사에서 반차 내고 집에 가서 대판 싸웠어요. 그리고 며느리가 지금 친정 갔어. 우리 아들은 우리 집으로 와버렸고.."
"흠.. 아직 진행 중이네요. 결말을 알고 싶었는데요...."
녀석은 마치 반지의 제왕 1편이 끝났을 때 1년을 기다려야 볼 수 있었던 2편의 내용이 궁금했던 그 날의 표정을 짓고 있었다.
그리고 더욱 놀라운 건 아주머니 또한 '이 총각한테 해주고 싶은 이야기가 더 있는데..' 하는 아쉬운 표정을 짓고 있었다.
둘은 분명 전생에 아라비안나이트의 세에라자드와 샤푸리 야르왕 이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주머니께서는 내리면서 "나중에 1호선에서 보면 내가 꼭 뒷이야기 해줄게! 총각" 이러시면서 녀석의 마음속에 여운을 남기고 내리셨다.
굳이 뒷이야기 해주시지 않으셔도 되는데, 아마도 아주머니도 녀석에 버금가는 오지랖 아주머니 일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지하철에서 아가씨 치마 옆 자크 사이로 삐져나온 블라우스를 집어넣으라고 쪽지를 주기도 하고 (그리고 변태 취급을 받았다고 합니다.),
돈을 뺏고 있는 불량 학생들에게서 선량한 학생을 구출하기도 하는 등 녀석의 오지랖은 멈출 줄 몰랐다.
그리고 대학 4학년이 되던 해 녀석은 무언가를 결심했는지, 신문 볼 때나 가끔 방문하던 도서관을 열심히 다니고 학교에서 먼 노량진에 위치한
학원에 다녔다. 그리고 우리와의 술자리도 1년 넘게 피해 다니더니 졸업 1년 후 당당하게 경찰이 되어 나타났다.
노량진에 간다고 했을 때 "수산시장에 오징어로 취직하려나 보지." 라면서 놀렸던 우리를 부끄럽게 만들었다.
결국, 녀석은 자신의 재능과 오지랖이라는 특성을 가장 잘 살린 적성에 맞는 직업을 선택한 것이다.
이 글을 읽는 분 중 서울교대 근처에서 어려운 일이 발생하거나 위기에 처하면 ㄱㅇㅊ 경장을 찾길 바란다.
그의 오지랖은 혹시라도 경찰에 실망했던 사람이라도 우리나라에 이런 경찰도 있구나 하며 감동을 주기 충분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