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이 깼다.
어두컴컴한게 아직 새벽인거 같은데, 여기가 어디인지 모르겠다.
설마 모텔인가 싶어 두리번두리번 거리기를 한참 한 후에야 여기가 내 집인걸 그제서야 깨달았다.
'내가 또 술을 마시면 사람이 아니다' 라는 이 세상에 살고 있는 한
지킬 수 없는 말을 하면서 잃어버린 소지품이 없나 살펴보다가 휴대폰을 확인했다.
전화가 많이 와있었다. 내가 전화한 기록도 있었다.
문자도 몇 통 있고. 단톡방도 난리가 난게 이게 뭔 난리인가 싶었다.
그 와중에 한 친구에게 날라온 문자가 내 마음을 심란하게 만들었다.
문자 내용도 비범했다.
'내가 너한테 어떤 존재냐'
여자였으면 모를까, 새파란 남정네가 감히 이딴 문자를 보낸거에서부터 사태의 심각성을 깨달았다.
...물론 그 친구가 핥짝핥짝 하기 좋... 그만하자.
이러다가 '성 정체성을 깨달은 한 남자의 이야기'가 될까 싶어 다급하게 어제 끊긴 기억을 찾으려 노력했지만
내 집인것도 모르고 5분간 두리번 거릴 정도로 술을 쳐마신 한 동물이 혼자서 필름을 찾기는 불가능했다.
일단은 해장겸 아침겸 해서 밥을 먹었다. 속이 쓰렸다.
아침이 되자 일단은 어제 같이 술을 마신 친구1에게 전화를 했다.
"여보세요"
"어제 나 우짜된거냐"
"뭔 말이여 너 어제 집 잘갔잖아"
"...???"
친구1에게서 내 필름에 대한 단서는 찾지 못하였다.
일단 어제 술을 마실때 진상은 부리지 않았음에 안도하며 어제 술을 같이 마시지 않은 친구2에게 전화를 걸었다.
어제 문자를 보낸 친구였다.
"정신 챙겼냐"
...여보세요도 아니고 정신챙겼냐 라니,
뭔가 이 놈에게 지랄을 시전한거 같았지만 일단 내색은 하지 않았다.
"야 어제 뭔 문자여"
친구2가 한숨을 내쉬는 소리가 내 고막을 통해 들려왔다.
"아니 왜 한숨을 쉬고 난...ㄹ"
"됐고, 이따가 술이나 사라"
"어? 야 새끼야 나 아직 숙취가 심..."
"필름 찾고 싶어, 안찾고 싶어"
"...알겠습니다"
이 새끼가 술값을 아끼기 위해 수작을 부리는건지, 아니면 멘탈이 나가서 그런건지 이때는 감이 도통 잡히지 않았다.
밤이 되고, 약속된 곳에 나와있는 친구의 얼굴을 보아하니 후자였다.
"야 너 얼굴 표정이 왜 그랰ㅋㅋㅋㅋㅋㅋ"
"닥쳐 이새꺄...."
"아 근데 오늘 술 꼭 마셔야 겠냐 나좀 살려주...ㄹ"
"내가 널 죽이기전에 저기 술집으로 들어가렴 ^^"
술집에 들어갔다. 결코 친구의 살기가 심상찮아서 그런건 아니었다.
술을 몇잔 멕인 후 본격적으로 심문에 들어갔다.
"자 말해봐 내가 어제 뭐했길래"
"기억 하나도 안나냐"
"안나니까 내가 니한테 술을 쳐맥이지"
"병원가야된다 넌 진짜"
"이새끼가 아직 새파랗게 젊은 놈한테 병원은 무슨"
"니 액면가를 보고 이야기해 견적이 안나와 견적이"
"...그러니까 어제 그 문자는 뭐냐"
어제 밤, 오랫만에 건전하게(?) 놀고 집에 복귀하던 친구2가 내게 전화를 받았다.
곧 꽐라가 된다는 전화였었다고 한다.
"...진상도 가지가지로 하는구나. 이젠 꽐라도 예고해주냐"
"아이씨 내가 죽겠다는데 이 새 ^*%^$&$&^$*^$*$"
졸지에 기상청에게서 꽐라 예보를 받은 친구는 나를 데려가기 위해 시내로 나섰다.
그런데 내가 전화를 안받았다고 했다. 그제서야 친구들이 왜 내게 전화질을 해댔는지 깨달았다.
"...그럼 그 문자는"
"거 좀, 아직 시작도 안했어"
"난 끝내고 싶은데"
"애초에 거기서 끝냈으면 니가 평소에 하던 지랄이라고 생각했겠지"
"그건 맞... 아니 이새끼가?"
"내 말이 틀렸냐?"
"...미안하다"
시내를 30분동안 뒤지고 다녀서 마라토너로 전직한 친구2가 분노에 휩싸여서 16번째 전화를 걸은 그때였다.
"어"
"야이 미친새끼가 어디야 지금 눈도 내리겠다 내가 널 오늘 눈사람으로 변신시켜줄게 &^&%^$%^%^$%&"
"나 기차역이여"
"오냐 5분만 기다려라 목닦고 있어"
내 모가지를 비틀기 위해 만반의 준비를 마친 친구가 길바닥에서 발견한건
이미 눈과 함께 눈사람으로 셀프전직한 나였다.
"이새끼가 사람으로 있으랬지 누가 눈사람으로 먼저 변신하래"
"..."
"정신차려 새끼야 집좀가자"
"누구세요?"
"어??? 이새끼가 드디어 돌았나 집가자니깐"
"아 감사합니다..."
"..."
순간적으로 멘탈이 안드로메다로 가버린 친구에게
내가 한 짓은 울어버리는 거였다.
"저기요... 제가 누군지 모르겠어요 ㅠㅠ"
"세상이 뭐이렇게 힘들어요? ㅠㅠ"
"집에 가고 싶은데 절 데려갈 친구가 없어요..."
친구 찾으러 왔다가 졸지에 집을 잃어버린 미아를 줍게된(?) 친구는
마침 근처에서 경찰들이 순찰을 돌면서 주취자들을 파출소에 데려가고 있었기에
친구는 이 미아새끼를 그냥 버리고갈지, 경찰에게 인계를 할지 고민을 했었다고 한다.
그렇게 멘탈이 나가버린 친구는 집에 복귀후에 일정에도 없던 맥주를 마시게 되었다는 말과 함께
나와의 우정(?)을 곱씹어보며 문자를 보냈다고 했다.
"...내가 진짜 그랬다고?"
"내가 살면서 누구세요가 그렇게 소름 끼친 말인지 몰랐어 새끼야"
"아니 소설쓰지 말고 진실을 말해 진실을..."
"동영상 찍어놓을걸 그랬네. 혼자보기 아깝던데"
"..."
"어디 좋은 병원 알아봐줄까? 아니면 요양원갈래? 이새끼야. 뒷동산이 보이는곳으로 골라줄까 바다가 보이는 곳으로 골라줄까"
"술을 끊어야지 진짜"
"미칠거면 곱게 미쳐 미친새끼야 제발좀..."
그렇게 나는 x년지기 친구에게 내 머릿속의 지우개를 시전한 사람이 되어버렸다.
경찰서에서 설렁탕이 먹고싶어 그 지랄을 했냐는 친구의 한마디는 덤이었다.
출처 |
어제도 술마시고 필름끊겨 기억을 찾는중인 본인 |
이 이야기가 퍼지는걸 막기위해 필사적으로 친구에게 술을 먹였지만
결국 이 소식이 하이에나(?) 들에게 퍼져버렸고 난 결국 '지우개', '알츠하이머' 같은 내 나이에 안어울리는 타이틀을 얻게되었다.
"...근데 다음날 일어났을때 삭신이 엄청 쑤시던데..."
"아 그거? 니 맷집 좋더라. 아니면 머리가 청순해져서 안아픈건가"
역시 이래야 내 친구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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