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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와 K는 군대가기 전 20일을 함께 보내는 이상한 연애를 시작했고, 그런 이상한 연애가 잘될리가 만무했다.
결국 나는 입대전 S와 크게 싸웠고, 눈 두덩이가 시퍼렇게 변한채로 입대했다. 그리고 한달후 S도 306 보충대로 입대했다.
우리는 일병휴가때 다시 만났고, 나와 S는 아무일도 없었다는 듯이 여전히 무의미하고, 바보같은 휴가를 보냈다.
내가 입대할때 보충대에 따라왔던 K는 대성통곡 수준의 울음을 보여주었고, 평생 아들이 여자라고는 모르는 순진한 수도사적인 삶을 사시는 줄 알았던 어머니는 크게 놀라서 그녀를 데리고 집에가서 밥을 먹였다고 한다.
그리고 신교대 생활동안 나에게 50통의 편지를 보냈던 그녀는 백일 휴가때 나와 헤어졌다. 우정과 사랑의 분기점 같은 걸 떠나서 내가 K를 좋아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K는 견딜 수 없어했다. 내가 보낸 편지를 받은 그녀는 백일 휴가때 나름 쿨한 표정으로 내 제안을 받아들였고, 얼마후 99학번의 남자후배 하나와 다시 CC가 됨으로서 2년간 3명의 남자를 갈아치운 바람둥이 타이틀을 획득했다.
격을때는 어마어마하게 큰 사건들이었지만, 사실 군생활을 하는 나에게 그런 것은 그냥 해프닝 따위에 지나지 않았다. 나는 K와 H를 생각하는 대신 K3의 분해조립을 생각해야 했고, 복무신조를 외우고 5분대기조와 기동타격대 임무를 숙지해야만 했다.
다사다난 했던 군생활중 나는 컴퓨터를 조금 다룰줄 안다는 이유로 상병이 되기 얼마전 작전병으로 차출 되었고, 연대로 파견을 나가서 행정병생활을 다시 배워야 했다. 매일같이 아스테지를 자르고 붙이며, 작계수정과 엑셀과 파워포인트 작업에 지쳐갈때쯤 나는 미뤄졌던 상병 휴가를 나왔다.
오랫만에 돌아온 학교앞 거리는 그대로였다. 특별히 연락할 친구도 뜸했던 나는 특별히 누구에게 연락을 하지도 않고 그냥 학교앞으로 갔다. 당구장 사장님께 안부이사를 전했고, 호프집 사장님은 가게가 망해서 인사를 드리지 못했다.
당구를 한게임치고, 오락실에서 펌프를와 킹오파를 몇판 하고나서, 천천히 학교의 언덕을 올라 과방으로 향했다. 시계를 보니 오후 1시반이었다. 아마 대부분은 수업에 들어가 있을 시기였다.
학교에는 벗꽃이 지고 있었고, 대자보가 붙었고, 신입생들이 걸어다니고 있었다. 그리고 오랫만의 사회의 향기를 맡으며 찾아간 과방에는 H가 있었다.
"어라?"
"어머! 조각오빠! 왠일이예요? 제대했어요?"
"너 진짜 나한테 관심 안기울일래? 내가 벌써 제대할 타임이냐?"
"그렇지 어쩐지 간지 얼마 안된 것 같은데."
오랫만에 만난 H는 여전히 숏커트였고, 여전히 밝았지만, 어느새 신입생의 풋풋함은 사라져있었다. 능글능글해진 H와 나는 오랫만의 재회에 반가워했다.
"오빠 살빠졌네요? 팔에 힘줄도 생기고 와... 역시 남자는 군대에 가야 멋있어지는구나."
"너 진짜 그런소리 잘못하면 남자애들한테 다굴맞는다."
시시한 농담을 주고 받던 사이에 어느새 오후 수업이 끝나고 찾아온 후배들과 동기들은 너 또 나왔냐. 저번에 나온지 얼마 되지도 않은 것 같다. 왠만하면 앞으로 나오지 말고 제대해라. 등등의 악몽같은 진담을 꺼내었으며, 나는 길길이 날뛰었다.
그러나 내 동기들과 후배들은 바쁜 스케줄에도 불구하고, 오랫만에 휴가를 나온 내 지갑을 터는일에 모두 찬성했으며, 나는 극구 사양하려 했으나, 결국 그놈들에게 끌려가 지갑과 멘탈을 모두 털려야 했다.
폭탄주를 마시고, 군대 얘기를 하고, 입을 틀어막히고, 다시 술을 마시고, 게임을 하고, 바쁜 시간이 지나고, 휴가 첫날이라 집에 가려 했던 나는 중간에 인사를 하고 술자리를 빠져나왔다. 물론 아무도 신경쓰느 사람은 없었다.
나는 터덜터덜 지하철역 쪽으로 향했다. 그때 뒤에서 H의 목소리가 들렸다.
"오빠. 같이가요."
"어? 왜 일찍 나왔어?"
나는 의아한 표정으로 H를 돌아보았다.
"요즘 계속 늦게 들어가서 어제 한소리 들었어요. 오늘은 일찍 가야되요."
"11시가 일찍들어가는 거면... 너 도대체 어떻게 살았던 거냐...."
"11시면 초저녁이죠. 모범생인 척 하기는. 쳇."
나와 H는 인적이 드문 골목길을 따라서 걷기 시작했다.
"오빠, 왜 이길로 왔어요?"
"왜라니? 그냥 왔는데? 사람많은 것도 싫고..."
"군바리들은 사람많은데 좋아하잖아요? 아닌가?"
"맞는데... 오늘은 그냥..."
뭔가 더 딱히 할말이 없었다. 왜냐하면 굳이 지하철역까지 돌아가는 골목길을선택한 특별한 이유가 있는게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음. 우리 추억 때문에요?"
"추억? 난 그런거 안뜯어먹고 산다. 사람이 앞을 보고 살아야지."
"그래요? 그럼 이제 저 안좋아해요?"
H의 말에 나는 고개를 살짝 돌렸다. H가 씨익하고 웃으면서 날 바라보았다.
"요거 아주 그냥 여우가 다됐네. 남자 홀리는 기술이 장난 아니네?"
"오빠도 늑대가 다됐네요? 안넘어오는거 보니깐?"
우리는 피식하고 웃으면서 지하철역으로 걸어갔다. H에겐 6개월째 사귀고 있는 남자친구가 있었고, 다른학교의 대학원생이라고 했다. 스무살이 넘어서 처음으로 하는 연애라 H는 그 남자를 상당히 좋아하는 것 같았다.
어쨌든 거기에 내가 낄 자리는 없었다. 내가 그녀에게 아무런 감정이 남아있지 않다고 한다면 거짓말이었겠지만, 내 감정에 충실하기 위해서 그녀에게 무리수를 강요할 이유는 없었다.
나는 그저, 어쩌다 이렇게 그녀와 함께 걷는 시간을 소중히 여기기만 하면 되는 것이었다.
그리고 나도 언젠가 서툴지 않은 진짜 연애를 하게 된다면, 예전에 H라는 후배를 좋아했던 적이 있었다고 담담하게 얘기할 날도 올거라고 믿었다.
우리는 역에서 지하철을 기다리고 있었고, H의 집으로 가는 열차가 먼저 도착했다. 열차가 들어오길 기다리면서 H가 끈금없이 나에게 물었다.
"오빠. 사랑이란게 도대체 뭘까요?"
갑작스런 질문에 딱히 대답할 말이 없던 나는 어디선가 들었던 말로 대답해줬다.
"글쎄? 나도 한번 해보고 싶은거?"
H는 깔깔거리면서 웃더니 지하철에 타서 나를 향해 손을 흔들었다. 그리고 열차는 어느새 사라졌다.
집으로 가는 열차를 기다리면서 나는 H의 질문에 대해서 곰곰히 생각했다. 내가 H를 좋아했던 감정이 과연 사랑일까?
나는 확신할 수 없었다.
그 이후 나는 아주 오랫동안 나는 H의 소식을 듣지 못했다. 제대하고 복학을 하고, 졸업을 하고 취업을 하고, 20대가 모두 흘러갔을무렵, 인터넷에서 잠깐 그녀의 소식을 들었다. 그녀는 결혼을 한 듯 했고, 행복해보였다.
우리는 서로 좋아했던 사이였지만 굳이 서로가 아니어도, 행복한 인생을 살고 있었다.
그 즈음에서 나는 H의 질문을 다시한번 생각했었다. 과연 사랑이란게 뭘까?
- fin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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