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래는 큰오빠 편을 쓰려고 했으나 너무 노잼이라 보류했다.
어느날 부턴가 집 앞에 쌓이는 분리수거 되지 않은 쓰레기가 작은 오빠를 괴롭히고 있었다.
평소에 분리수거 담당인 작은 오빠는 누가 실수를 했나 하고 몇번 치우다가 짜증이 울컥 올라오기 시작했다.
여름이 될 수록 심각해졌다. 과일 껍질 같은 것도 함께 버렸기 때문이다.
잠복도 해보고 경고문도 붙였지만 소용없었다.
작은오빠: 잡히면 내가... 아주... 죽여버릴거야.
그렇게 몇 달이 흐르고, 나는 보았다. 범인을.
1. 제 1차 투기 대첩- 오전
우연히 현관 밖에서 들리는 소리에 마음이 이끌려, 양치를 하다 말고 밖으로 나갔다.
어떤 아줌마가 쓰레기를 내놓고 있었다. 저 사람이구나, 얼굴을 보자. 하는 마음으로 조용히 기다렸는데,
뒤돌아서는 아줌마는 옆집 아줌마였다... 매일 같이 보는 사람이었는데.
너무 충격적이라 뭐라 말도 못하고 들어와서, 거실에서 TV를 보던 막내에게 말했다.
막내: 진짜?
나: 진짜!
막내: 헐. 대박 충격이네. 그래서 뭐라고 했어?
나: 말 못했어. 나도 대박 충격이었거든.
막내: (일어나며) 나나 가자. 할 말은 해야지.
기세 좋게 막내는 옆집으로 향했다. 띵동, 띵동. 벨을 누르고 기다렸다.
아줌마: 누구세요?
막내: 안녕하세요~ 옆집인데요. 쓰레기 가져가세요.
아줌마: 무슨 소리예요?
막내: 버리시는거 봤어요.
아줌마: 안 버렸거든요.
인터폰이 끊어졌다. 몇번 더 벨을 눌렀지만 묵묵 부답이었고, 막내는 그냥 돌아왔다.
나: 내가 너 그럴 줄 알았다. 뭐 그렇게 공손해?
막내: 어? 나 사납게 말했는데.
나: 공손이 사람으로 태어나면 너일 듯.
2.제 2차 투기 대첩- 오후
막내와 나는 거실에 앉아서 무기력하게 당한 패배를 곱씹고 있었다.
그 때 작은 오빠가 귀가를했고, 죽상으로 앉아 있던 두 동생이, 오빠를 보자마자 하소연을 하기 시작하니 굉장히 당황해했다.
하지만, 쓰레기 범인을 알아냈다는 것에 기쁨과 동시에 분노를 표출하며 작은 오빠가 전투에 참전하기로 결정을 내렸다.
평소 다혈질으로 전투력이 높은 작은 오빠의 참전에 막내는 천군만마를 얻었다며 크게 기뻐했다.
띵동. 띵동. 벨을 누르고 다시 기다렸다,
작은오빠: 저기요, 옆집인데요. 문 좀 잠깐 열어주세요.
아줌마: 왜요?
작은오빠: 동네 시끄러워질 것 같아서요.
잠시후, 문을 빼꼼 열고 나오는 아줌마와 우리 세 남매는 대면을 할 수 있었다.
작은오빠: 아실만한 분이 남의집 앞에 쓰레기 버리시고 그러면 안되죠.
아줌마: 누가 버렸다고 그래?
작은오빠: 우리 애들이 봤대요. 아줌마, 저기서 냄새 얼마나 나는 줄 아세요?
아줌마: 증거있어? 나 확실해?
작은오빠: 증인 있다니까요.
아줌마: 그러니까 증거있냐고.
작은오빠: 본인이 더럽다고 생각하는 거 남들은 안 더러운줄 아세요? 가져가세요.
아줌마: 진짜 웃기는 놈이네. 야, 너희 엄마가 너 이따위로 가르치디?
작은오빠: 말씀 좀 가려서 하세요. 애들 들어요.
아줌마: 왜 이래? 나간적도 없는데. 내가 버렸다는 증거 가지고 와.
나: 아까도 이 옷 입고 계셨잖아요.
하고는 문을 쾅 닫고 들어갔고, 우리 셋은 몇 번이나 문 앞에서 쓰레기를 회수해가라 말했지만
경찰에 신고하겠다는 으름장을 듣고 씩씩거리고 있는 작은오빠를 달래서 일단은 집으로 후퇴해야했다.
3.제 3차 투기 대첩- 저녁
온화한 콘트롤러 큰오빠가 이 소식을 접하게 된것은 저녁을 먹고 난 이후였다.
평소 크게 감정표현을 하거나 많은 말을 하는 사람이 아닌 큰오빠는 온화한 표정으로 우리의 억울함을 듣고 있었다.
잠시 후, 마트에서 사온 바나나와 토마토 등 과일을 쟁반에 받쳐 들고 나오는 온화한 콘트롤러.
큰오빠: 다들 따라 나와.
그리고 우린 옆집 현관 앞에 서 있었다. 이집 벨을 하루에 몇번 누르는지 모르겠는데 큰오빠는 벨을 눌렀다.
아줌마: 누구세요?
큰오빠: 옆집입니다.
아줌마: (버럭) 아 왜 또!
큰오빠: 사과드리려구요. 동생들이 낯에 결례를 했다고 해서, 문 좀 열어주세요.
작은오빠: 사과는 무슨! 형?!
큰오빠: 가만히 있어.
여차저차 큰오빠의 말에 문이 열렸다. 사과를 제대로 하고 싶으니 집 안에 잠시 들어가도 되겠느냐는 동의를 얻고
우리는 그 집 거실에 처음으로 입성을 했다. 모두 바닥에 앉아서 아줌마를 멀뚱멀뚱 보고 있었고, 아줌마의 아이들은
문 틈 사이로 우리를 흥미진진하게 보고 있었다.
큰오빠: 낮에는 애들이 잘 못 보고 실수를 했다고 들었습니다.
아줌마: (고개 돌리고) 동생들 못쓰겠어, 아주.
큰오빠: 별건 아니고, 많이 사서 나눠가지고 왔어요. 많진 않지만 드시고 화 푸세요.
아줌마: 됐어요. 뭐 이런걸로 화가 풀리겠어?
큰오빠: 저희 부모님이 이렇게 가르쳤거든요. 받아주세요.
아줌마: ...
큰오빠: 뭐해. 사과 드려.
작은오빠: 죄송합니다.
막내: 저도 죄송합니다.
아줌마: 됐어요. 다음부터 이런 일 없으면 되지.
큰오빠: 다음부터는 신경쓰겠습니다. 아주머니께서 애들 키우시면서 비양심적으로 절대 그러실 분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아줌마: ...
큰오빠: 제가 꼭 잡을게요. 쓰레기 버린 놈이요. 잡아서 또다시 사과 드리겠습니다. 구청에도 신고 할거구요, 할 수있는대로 조치 취하겠습니다.
엄청난 침묵이 거실에 흘렀다.
큰오빠: 얘들아 가자.
그 이후, 우리 집 앞에서 이름 모를 분리수거 되지 않은 쓰레기더미를 보는 일은 없었고, 3차에 거친 무단투기 대첩은 막을 내렸다.
한동안 막내는 큰형의 온화한 말투를 따라하며, 마음에 들지 않을 때마다 진지한 표정으로 "사과해, 나나"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