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모든 일은 큰오빠가 없을때 벌어진 일이다.
작년 겨울, 큰오빠가 하던 일을 그만두고 훌쩍 유럽으로 떠났다.
기약도 없이, 보일러 안 터지게 잘 봐라, 술 마시고 늦게 다니지 마라, 청소 미루지 마라, 수도세 내라 정도의 잔소리만 하고 가버렸다.
집안의 온화한 콘트롤러였던 큰오빠가 당장 자리를 비우자, 하지 말라는 것은 다했던 것 같다.
집에서 맥주마시고, 다음날까지 안 치우고 설거지도 쌓이게 두고, 빨래감은 산을 이뤘다.
그렇게 한 일주일 정도는 즐거웠다. 일주일 후 슬슬 아 어쩌지, 하는 막연한 걱정이 들었지만,
우리는 모처럼의 자유를 포기할 생각도 없었다.
집안일은 분담을 해서 하는 편인데, 독일 베를린 장벽 무너지듯 경계가 모호해졌으며
당장 신을 양말이 없어서 막내는 양말트럭을 찾으러 다니기도 했다. (그 시간에 세탁기를 돌려야했는데)
아무튼 자유를 만끽했다.
그게 문제였을까. 큰오빠의 부재일까, 우리의 게으름이였을까. 어디가 시발점인지 도통 모르겠다.
보통 우리 남매간의 싸움은 나VS작은오빠/ 나VS막내 정도인데 가장 치열한 싸움은 역시 작은오빠와의 싸움이다.
평소 온화하고 평화를 사랑하는 비둘기 같은 큰오빠가 있을 때는 투닥거리다가도 금방 풀린다.
강제 풀림이라고 해서, 화를 풀지 않으면 일정시간동안 싸운 상대랑 둘이 시간을 보낸다거나 하는 규칙이
자취하면서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주로 카페나 좋은 식당같은 데에 둘만 보낸다던지,
시간을 못채우고 돌아오면 그다음날까지 미션 수행을 해야하기 때문에 내 마음의 응어리와는 상관없이 조급한 강제 화해가 이뤄진다.
작년 겨울 가장 춥다고 한 날 중 하루였을 것이다.
저녁에 집에 귀가를 했을때, 거실에 앉아 있는 막내는 외출복 차림으로 목도리까지 하고 앉아 있었다.
어쩐지 집안이 냉하다 하는 생각은 했는데 신발벗고 들어가니까 바닥이 확실히 차가웠다.
막내: 나나! 옷 벗지마!
나: (겉옷 벗으며) 왜?
막내: 집 이상해.
막내가 말을 하는데 어쩐지 입김이 나오는 거 같은 느낌? 추웠다.
나: 보일러 틀어봤어? 가스에 전화 해봤어? 집주인은?
막내: 보일러는 틀었는데 안나오고, 가스는 전화 안받고, 밤이라서 집주인한테 전화하긴 좀 그랬고.
나: (보일러 보며) 왜 그러지?
잠시 후, 큰오빠 대리인 작은 오빠한테 전화를 걸어서 여차저차 사정을 말했고 작은오빠 말하길,
작은오빠: 아 맞다, 나 가스비 안낸거 같다.
나: 야 이 씨...
작은오빠: 일단 너네 찜질방이라도 가 있을래?
...찜질방 가서 잠을 자기가 어려울 것 같아서 집에 있겠다고 했더니 막내도 찜질방에서 자기 싫다고 했다.
집에 있는 온갖 이불을 꺼내서 그날 하루를 버틴 것 같다.
문제는 다음날 아침이었다. 씻고 나가야하는데 가뜩이나 찬 바닥에서 자서 감기기운이 있는 몸뚱이에 얼음장같은 찬 물을 끼얹으려고 하니
너무 서러운 것이었다. 막내는 물을 전자렌지에 여러번 돌려서 찬물과 섞어주며 머리만 감고 나가라고 나름의 고군분투를 하고 있었고
나 역시 화장실에 쪼그려앉아서 섞어주는 물을 보고 한탄하고 있을 무렵, 작은오빠가 귀가했다.
미안함에 건치를 자랑하며 미소를 보이는 작은 오빠의 얼굴을 보자마자
서러움이 터져서 싸움이 붙었는데, 평소 짜증을 잘 부리지 않던 막내까지 짜증을 부려서 셋의 싸움이 됐다.
나: 너무한 거 아니야?
작은오빠: 미안, 오늘 처리할게.
막내: 작은 형, 내 말좀 들어봐. 진짜 너무 추웠어.
나: 넌 빠져봐. 나 말하는거 안보여?
막내: 내가 왜빠져? 어디로 빠져?
나: 지금 너 대들어?
작은오빠: 왜 니들끼리 싸워.
대충 이런 식의 말싸움. (그러나 욕설은 적지 않았다.)
물론 나중에 작은 오빠는 자신의 잘못을 시인하고 충분한 사과와 보상을 했다.
후일, 큰오빠가 돌아왔을 때 막내의 입방정으로 우리 셋은 반성의 시간을 갖고 돼지우리같은 집을 치웠다,
그 이후부터 온화한 콘트롤러의 주최아래 한달에 한번 쯤은 모두 (강제적으로) 모여 외식을 하면서 평화의 시간을 가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