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처음 기타에 관심을 보이게 된 계기는 어린 시절 동네에 농활 왔던 에디 머피를 닮은 대학생 형 때문이었다.
농활 온 형, 누나들은 낮에 어른들을 도와 농사일을, 밤에는 나와 같은 동네 꼬꼬마를 모아 놓고 함께 책도 읽어주고 노래를 알려주기도 했다.
특히 에디 머피를 닮은 형은 아이들을 모아놓고 기타를 치며 노래를 알려줬는데, 그 형은 꼬꼬마들의 순진한 소울을 흡수하는 흡성대법으로
에디 머피에서 지미 헨드릭스로 진화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그날 나는 내 영혼의 소울을 일시불로 그 형에게 빼앗긴 뒤, 음악에 굶주린 좀비가 되어
부모님께 기타를 사달라고 조르기 시작했다. 막내아들의 단식투쟁과 눈물 어린 땡깡 끝에 어머니는 내게 기타를 포기시키기 위해 읍내에 있던
음악상에 데려가 나는 아직 어려서 기타를 칠 수 없다는 것을 설득시키려 하였으나 음악상 아저씨는 "아.. 어린아이들을 위한 기타도 있습니다."
라고 말하는 순간 어머니 눈에서 표독스러운 레이저가 나가는 것을 볼 수 있었다. 결국, 음악상 아저씨는 순간 생명의 위협을 느꼈는지
매출을 포기하고 "그런데 아직 얘는 어려서 못 치겠네요..." 라면서 말끝을 흐렸다.
어머니는 내 손을 잡고 집으로 걸어오는 시골 길에서 반에서 10등안에 들면 무조건 기타를 사주겠다고 하셨지만, 그 약속은 내가 고3 때까지
내가 못나서 결국 이루어지지 않았다.
그 뒤 내 인생의 첫 기타는 동방에 방치되어 있던 줄빠진 기타였다. 회장 형에게 허락을 받아 낡은 기타는 내 소유가 되었는데,
뿔테 안경을 쓴 마치 인자한 외모지만 학점은 F만을 줄 것 같은 푸근한 인상의 이정선 님의 기타 교실을 산 뒤 본격적인 기타인생이 시작되었다.
그리고 기타를 3일째 연주하는 날 에디 머피 닮은 형이 연주했던 아침 이슬이 코드 3개로 이루어졌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기타를 5일째 연주하던 날 기억 속의 에디 머피 형을 넘어설 수 있었다.
군대 가기 전 까지 거의 매일 수업이 끝나면 집으로 바로 가 자취방 옥상에서 기타를 연습했다. 그렇게 1년간 기타를 연습하며,
몇 가지 곡들을 악보 없이 연주할 수 있을 때 즈음 건장한 대한민국의 남아라면 피할 수 없는 군대에 가게 되었다.
입대 전 선배들이 군대 가면 무조건 잘한다고 말하라고 해서 훈련소 때 조교가 특기 있는 훈련병을 찾을 때 "59번 훈련병 기타를 잘 칩니다!"
라고 자랑스럽게 말했다. 조교는 "그럼 손놀림이 아주 빠르겠군." 하면서 나를 보며 만족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 매주 벽돌 나르는 작업을
시켰다.
나는 벽돌을 나르면서 "이게 기타랑 무슨 상관이야..." 하면서 후회할 때 내 옆에 같이 벽돌을 나르던 동기는 "너는 기타 잘 친다고 왔지. 나는
일본 살다 와서 일어 잘한다고 했는데 벽돌 나르라고 하더라. 노가다 용어 잘 알아들을 거 같다고 하면서 말이야."
지금도 조교는 벽돌 나르는데 왜 우리들의 특기를 물어봤는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 그리고 무조건 잘한다고 나서라고 알려줬던 선배가 원망스러웠다.
다행히 자대 배치받은 곳의 왕고참이 기타를 배우고 싶어하는 음악 좀비 지망생 이어 몇 달간은 그 고참에게 기타를 알려주며,
편하게 지냈지만, 그 고참이 제대하고는 병장이 될 때까지 기타를 만질 수 없었다. 병장이 되고는 뭐 누구나 그랬겠지만, 동화 속 음악의 신
베짱이 같은 생활을 하고 지냈다. 지금 생각하니 인생에서 아무 걱정없이 기타를 쳤을때도 그 시기였지만, 군대에서 내가 배워온 기술은 사람을
해칠 수 있는 사악한 요리와 기타밖에 없는 것 같다.
제대 후 여자친구도 없고, 친구들보다 군대에 일찍 간 탓에 혼자만의 시간이 많아 기타를 치는 시간은 더 늘어났다. 내가 기타 치는 모습을 본
후배들은 "선배는 기타도 잘 치고 여자들에게 인기가 많겠어요~" 라고 했지만, 정작 기타치는 소울 충만한 오빠보다 인기 많은 건 영혼이 곳간채
털린 채 허무한 표정을 짓고 학교 다니던 잘생긴 오빠였다. 하긴 내가 여자에게 잘 보이려 기타를 친 것은 아니었지만....
그나마 대학생활 내내 유일하게 기타치고 여자들에게 가장 큰 환호를 받은 건 연합엠티에서 술에 취해(내가 미쳤지...) 영화 데스파라도에
나오는 안토니오 반데라스처럼 두 다리를 쫙 찢고 기타를 쳤을 때뿐이었고, 내 옆에는 셀마 헤이엑 같은 미녀가 아닌 "형 저도 기타를 배우고
싶어요. 알려주세요." 라고 하는 대니 트레조, 루이스 구즈먼 닮은 남자 후배 두 명이 붙었을 뿐이었다.
하긴. 내가 여자에게 잘 보이려 기타를 친 것은 아니었지만....
졸업 후 면접을 볼 때도 남들보다 특출난 특기가 없어 항상 특기에 '기타' 라고 작성했다. 내 특기를 보여줄 수 도 없던 몇 번의 면접에서 떨어진 뒤
난 면접장에 기타를 들고 비장하게 간 뒤 다른 면접자가 영어와 일어로 자신의 특기를 뽐낼 때 면접관에서 짧고 굵게 가겠습니다. 이렇게 말하고
랜디 로즈의 dee를 연주하고 짧고 굵게 매번 떨어졌다. 그래도 꿋꿋하게 기타 특기로 어렵게 취직을 하고, 사회 초년생 생활을 하면서 자연스럽게 기타를 연주하는 시간도 크게 줄었다. 처음에는 퇴근하면 자취방에서 혼자 기타를 연주했지만, 점점 주말에 잠깐을 지나 거의 기타를 연주하지 않게 되었다. 내가 다시 기타를 연주하게 된 건 서른을 훌쩍 넘어 여자친구를 사귀었을 때 그녀에게 멋지게 보이고 싶어서였다. 나의 새로운 모습을 보여주고
싶어 기타를 연주했는데, 그 연주를 들은 그녀는 지금 내 아들의 엄마로 살고 있다. 그리고 그녀는 지금도 "내가 그때 왜 너의 전혀 감미롭지 않던
기타연주에 넘어가서...동남아 밴드 리듬기타 치는 사람처럼 생긴 너한테..." 이러며 후회하고 있다. 그녀에게 말은 하지 않았는데, 내 인생에서 유일하게 기타치는 모습을 보고 반하고 감동해준 사람은 그녀뿐이었다.
주말 방 한쪽에 봉인된 먼지가 쌓인 기타 케이스를 아들이 만지다 쓰러뜨려 오랜만에 기타를 연주했다. 16개월 된 아들은 아버지에게 이런 모습이
있었나 하고 감동한 모습이었다. 아니면 뽀로로만 기타 치는 줄 알았는데, 아버지도 친다는 사실에 놀랐을 수도 있을 거라 생각된다.
기타에 관심을 보이는 아들에게 내가 왼손으로 코드를 잡고 아들에게 튕겨보라고 했다. 와이프는 그 모습을 훈훈하게 바라보고 있었다.
와이프를 재밌게 해주려고 빨간 옷을 입고 얼굴에 비닐봉지를 쓰고 라이터를 한 번씩 키며 불타는 기타를 쳤다.
매드맥스의 간지나던 그 처럼 보이고 싶었지만, 와이프에게 애 앞에서 이제 철좀 들으라고 맞았다.
아들은 옆에서 맞는 아빠를 바라보며 장단에 맞춰 기타를 연주하고 있다. 이놈.. 테크닉이 이미 뽀로로를 넘어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