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아버지와 아버지 모두 장교로 복무했다. 군인이던 할아버지와 아버지를 보며 자란 이신애는 여군 장교가 돼 할아버지와 아버지를 뿌듯하게 했다.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 한 남자의 아내가 됐고 임신을 하게 됐다. 하지만 주어진 임무는 확실히 완수해내는 악바리였다.
중위로 진급한 그는 강원도 최전방 부대에서 근무했다. 부서장이 교체되거나 업무 등으로 자리를 비울 때는 그 책임을 대신 맡아 업무를 봤다. 산부인과 진료조차 제대로 받기 힘들었다. 병원에 다녀오려면 최소한 왕복 3시간이 걸리는데 최전방 전선의 지휘관이 자리를 비우는 건 쉽지 않은 일이었다.
지난 2월 어느 날 부대의 혹한기 훈련을 하루 앞두고 훈련 준비상황을 점검하던 이 중위는 갑자기 쓰러졌다. 이 중위가 뇌출혈로 사경을 헤매는 동안 아기는 제왕절개 수술을 통해 무사히 출생했지만 그는 결국 숨을 거뒀다. 꽃다운 나이 스물여덟이었다.
가족들은 이 중위의 순직을 인정해 달라고 했지만 육군본부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이 중위의 뇌출혈이 임신성 고혈압으로 인해 발생했고, 군 복무가 임신성 고혈압의 발생이나 악화에 영향을 줬다고 보기 어렵다는 이유였다. 가족들은 국민권익위에 하소연했고, 권익위는 10일 국방부에 이 중위의 사망을 순직으로 인정하라고 권고했다.
권익위는 이 중위가 사망 한 달 전 마지막 산부인과 검진에서 아무런 문제가 없었고, 지휘관 교체 및 부서장 대리 업무 등 업무부담이 급격히 늘어나 사망 한 달 전인 1월 50시간이 넘는 초과근무를 했던 점을 유심히 봤다. 또 이 중위가 임신 전후 같은 임무를 수행했음을 확인하고, 의료진 자문결과 과로가 임신성 고혈압 진행에 악영향을 줬을 가능성이 있다는 의견까지 청취한 뒤 급격한 직무 부담 등으로 뇌출혈과 임신성 고혈압이 발생하거나 악화됐다고 판단했다.
권익위 관계자는 “국방부는 권익위의 권고가 있으면 순직 여부를 재심의하게 되어 있다”며 “이 중위의 순직이 인정돼 8000여명에 달하는 여군의 권익 신장에도 도움이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정승훈 기자 [email protect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