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www.jabo.co.kr/sub_read.html?uid=20115§ion=sc22%20/ 그렇지만 유시민 일파는 2004년 총선을 앞두고 개혁당 독자 생존을 바라는 많은 개미 당원들의 '당만은 그대로 놓고 가라.'는 간곡한 호소에도 불구하고, 당을 불법적으로 해체시키고 열린우리당으로 몰려간 결과 일부는 국회의원이 되고, 장관도 되고 누릴 것 다 누리고 살아왔다.
그런데 지금 유시민 의원 등 친노 사수파들은 통합신당파들의 탈당과 당 해체 시도를 구태라며 과거 개혁당 독자생존파가 그랬던 것처럼 "나갈테면 그냥 나가라."고 외치고 있다. 유시민 장관도 지난 4월 27일 "당은 우리(친노파)가 지킬 테니 떠날 사람은 떠나라."고 일갈했다 한다. 문제는 왜 이 같은 입장을 자신이 만들고 몸담은 단체의 사람들에게는 그토록 매몰차게 외면했는가이다.
실제로 2003년 당시 개혁당 해체를 주도했던 유시민 일파는 당 해체가 뜻대로 안되자 결코 '곱게' 나가지 않았다. 당헌에도 없는 편법으로 개혁당 해산을 시도하다 중앙선관위로부터 불법이라는 판정을 받았고, 그럼에도 불복하고 개혁당의 잔재를 완전히 없애기 위해 이미 열린우리당으로 당적을 옮겼음에도 불구하고 이삿짐센터 직원들을 동원하여 개혁당 집기들을 강탈해가는가 하면, 잔류 당원들의 개혁당 홈페이지 인수를 방해하는 등 온갖 불법을 저지르다 결국 개미 당원들로부터 유시민 의원과 김원웅 의원은 '손해배상 청구(채권 가압류) 소송'까지 당했다.
비록 합의 끝에 소송은 취하됐지만, 그제 노 대통령의 통합신당파를 향한 신랄한 지적처럼 '당을 깨지 않고 남겨 두고 나가면 혹시라도 당이 살아서 그들이 가는 길에 걸림돌이 될 것 같아 두려운 나머지, 일부는 당을 박차고 나가서 바깥에 신당을 조직하고 일부는 남아서 당이 아무 일도 할 수 없도록 진로방해를 하면서 당을 깨려고 공작하는' 짓을 서슴지 않았다. 잔꾀 정도가 아니라 비열하고 불법적인 파괴 공작까지 펼쳤던 것이다.
유시민으로서는 무엇보다 오옥만의 부정 사실이 밖으로 알려지면 안 되는 일이었다. 진상조사위가 꾸려졌다. 오옥만과 가까운 사이인 홍진혁이 진상조사위 간사가 된 것도 선선치 않지만, 제주도 컴퓨터 부정의 당사자인 오옥만 휘하 고영삼이 진상조사위원으로 참여한 것은 더욱 석연치 않은 일이었다. 이런 사람은 대개 자기가 한 일을 다른 사람도 했을 것이라는 반사적 착각에 빠질 위험이 있다.
통합진보당 오옥만 비례후보에게 270명 몰표가 나온 건설회사 사무실. 이 회사에 직원은 60명으로 등록돼 있으나 사무실에는 1명 밖에 있지 않았다. 이 회사의 이사인 고영삼(하얀색 원 안)씨는 1차 진상조사위원으로 활동했다.ⓒ 민중의소리
유시민과 조준호의 제휴
크게 기대한 것은 아니었지만 총선 결과는 비례순번 6위에서 커트되어 9위 오옥만의 낙선으로 나타났다. 게다가 참여계가 지역구 하나만을 건진 초라한 결과는 향후 문재인과의 야권연대에서 주도적 역할을 하려고 했던 유시민의 야심에 찬물을 끼얹은 것이었다.
하지만 유시민이 누구인가? 마침 민주노총 출신 조준호도 총선 결과에 상심하고 있는 터였다. 억지를 부려 민주노총 몫 후보 이영희를 10번에서 8번으로 올리기는 했지만, 국회 입성이 좌절된 것은 10번이나 8번이나 매한가지였다. 자기가 공동대표가 되는 데 막강한 배경이 되었던 민주노총에도 할 말이 없게 되었다. 유시민이 조준호와 급속도로 가까워진 것은 이때부터인 것으로 나타난다. 유시민은 이정희에게 당 주도권을 달라고 요구하면서, 이를 받아들이지 않으면 무서운 보고서가 터질 수 있다는 것을 암시했다고 한다.(이것은 이정희 측 인사의 증언을 한 사람 건너 전해들은 말이다.)
급기야 조준호는 진상보고서라는 사제폭탄을 터트렸다. 이후 그는 <오마이뉴스>등과 인터뷰를 하면서 마치 노무현 사건 당시 확인되지도 않은 피의사실을 교묘히 흘리곤 했던 검찰기획관처럼 주로 센세이셔널 한 내용을 담은 부정 의혹들을 마구 흘렸다. IT에 무지한 데다 팩트 확인에는 태만하면서도 유독 특종에만 관심이 있던 기자들은 이것을 받아쓰는 데에 급급했다. 조준호가 의혹을 제기하면 으레 유시민이 후발로 나서 확인, 보강해 준 언론플레이의 흔적은 이른바 진보언론들의 도처에 남아 있다. 이렇게 하여 여론은 걷잡을 수 없이 이정희의 당권파에게 불리한 쪽으로만 증폭되었다.
역시 유시민이었다. 경쟁 부문 비례 후보 전원 사퇴는 유시민과 조준호의 고뇌를 단방에 해결할 수 있는 묘안이었다. 동시에 야권연대의 주체가 되고 싶었던 심상정과 노회찬으로서도 마다할 이유가 없는 것이었다. 그러나 이는 이정희 측으로서는 도저히 수용할 수 없는 것이기도 했다. 당원 투표로 뽑은 국회의원을 간부 몇 사람이 무효화한다는 것은 정당하지도 않을 뿐더러 가능한 일도 아니기 때문이었다. 유시민과 조준호의 요구는 이정희의 완강한 거부에 부딪혔다.
http://m.vop.co.kr/view.php?cid=545372 민중의 소리 논설을 가져온것은 여기에 적합하지 않을수 있는데
적어도 김인성교수의 발언과 유시민행적에 관해 어느정도 연관이 있어 가져옵니다
그리고 자꾸 유시민에 의문을 제기하면 통진당이라고 하는데 김인성 교수의 글은 정치적인것보다 당시 시스템 기술자로서 시스템에 의한 반박을 하고 있고 그것에 근거해서 의문을 제기하는것 조차 통진당으로 몰아가는거야말로 메카시즘을 앞세운 새누리와 다를게 뭐냐 생각이 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