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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게시물ID : animation_434793
    작성자 : 홍염의포르테
    추천 : 4
    조회수 : 389
    IP : 1.240.***.33
    댓글 : 2개
    등록시간 : 2018/08/25 16:07:59
    http://todayhumor.com/?animation_434793 모바일
    분위기가 조금 어두워지긴 했지만 스릴러라서...18화
    옵션
    • 창작글

    18.

    스마트폰은 조명을 끄고 옆에 벽으로 가 기대어 주저앉았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냄새도 익숙해져, 더 이상 느껴지지 않았다. 커터칼을 바닥에 떨구고는 스마트폰을 두 손으로 쥐었다. 시간이 빨리 가길 바라면서.


    내 몸에 둘러붙은 피가 점점 말라붙었다. 조금씩 움직일 때마다 오래된 각질인 마냥 조각조각 떨어져 간다. 옷을 적셔버린 피가 점점 말라간다. 그 탓에 옷이 딱딱하게 굳어가며 몸을 싸늘하게 식혔다. 싸늘함 때문인지 몸이 점점 떨린다. 이빨이 달달 부딪힌다. 공포심 때문인지도 모른다. 어둠 때문에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몸이 식어갈 때마다 어둠이 몸을 타고 오르는 것 같았다. 분명히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데 아까의 환상이 내 눈에 보였다. 마치 각인이라도 된 것처럼.


    자신의 피로 물들어버린 옷을 입고 있는 하연이, 찔리고 베인 상처로 가득한 하연이, 이미 죽어버려 차갑게 식어버린 하연이, 그 하연이로부터 흘러나온 피의 웅덩이.


    머릿속에서 그 광경이 자꾸만 떠올랐다. 그리고 그 와중에 고통을 느꼈을 하연이의 모습도 떠올랐다. 얼마나 고통스러웠을까.


    실종은 어제. 어제부터 줄곧 이곳에 갇혀있었겠지. 얼마나 무서웠을까. 외로웠을까.


    누군가 구해주길 얼마나 애타게 기다렸을까. 결국 아무도 구해줄 수 없다는 것을 느꼈을 때 얼마나 절망했을까. 피눈물을 흘린 얼굴이 아직도 내 눈앞에 선명했다.


    뜨거운 것이 내 볼을 타고 흘렀다.


    현실 부정과 공포심이 물러가고 지독한 슬픔과 절망이 내 몸을 잠식했다.


    무력했다.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이렇게 구석에 기대어 앉아 시간이 흐르기만을 간절히 바랄 뿐이다.


    그러나 이 지하실을 밝히는 유일한 빛인 스마트폰의 액정은 천천히 흐르는 시간을 보여줄 뿐이었다. 이것은 고문이나 다름없게 느껴졌다.


    차라리 잠들어버린다면 편할 것 같지만 그것도 불가능했다.


    ...

    ...

    ...


    천천히 아주 천천히 시간이 흘렀다. 몸이 계속 떨린다. 춥다.


    ...

    ...

    ...


    드디어 계획된 시간이 코 앞까지 다가왔다. 곧 이 상황에서 탈출할 수 있었다.


    오른손의 엄지를 깨문 채, 왼손에 든 스마트폰을 주시하고 있었다. 몇 분 남지 않았다. 간절하게 기다릴 뿐이었다.


    그때 바스락거리며 풀을 밟는 소리가 밖에서 점점 가까워졌다. 나는 당황해 일단 지하실의 건너편 벽 너머 안쪽으로 몸을 숨겼다.


    지금 이 모습을 누군가 본다면 영락없는 살인마로 보일 수 있었다. 해명을 하면 되겠지만 그러는 동안 시간을 놓친다면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는 것과 다름없었다.


    나는 숨을 죽인 채 최대한 기척을 숨겼다.


    끼이이익.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들리지 않는 지하실에 녹슨 쇠의 마찰음이 울려 퍼졌다.그리고 이어진 한걸음.


    지하실에 들어온 그는 안이 어둡다고 느꼈는지 불을 밝혔다. 스마트폰인 것 같았다.


    그리고 잠깐 멈추었던 그는 다시 걸음을 옮겼다.


    누구지? 누가 들어온 거지? 경찰? 여기까지 수색을 하러 온 걸까. 엮이면 골치 아플지도 모른다. 경찰이 아니면 범인일 수도 있다. 범인은 현장에 되돌아온다고도 하니까. 범인일 가능성도 높았다. 그 이외의 사람이라면 하연이를 찾는 가족 정도겠지. 일반인은 이런 곳에 들어올 생각은 하지 않는다. 평소엔 잠겨있는 문이니까. 혹시나 초등학생이나 중학생이라면 호기심에 들어올지도 모르겠다.


    나는 빛이 새어나가지 않게 스마트폰을 가슴에 바짝 붙여 시간을 확인했다. 6시 12분. 앞으로 3분.


    조용했다.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뭐지? 나는 혹시나 들킬까 봐 얼굴도 안 내밀고 있었기에 침입자가 누군지도 무엇을 하고 있는지 몰랐다.


    그런데 만약 경찰이었다면 무전 소리가 들리지 않았을까. 문을 열고 들어온 지 얼마 안 되어 하연이를 보았을 테고 그렇다면 바로 보고를 했을 것이다. 무전으로 말이다. 그리고 수색을 나온 거라면 경찰끼리 계속해서 서로 연락을 할 터였다.


    하지만 그렇다기엔 너무 조용했다. 경찰은 아니다. 그렇다면? 초등학생이나 중학생 같은 호기심에 온 애들이라면 놀라서 소리치거나 도망치거나 주저앉았겠지. 그런 것도 없었다. 하연이의 가족이라도 크게 다르지는 않을 것이다. 얼굴은 가려놓았지만 아마 짐작하겠지. 그리고 슬퍼하거나 놀라거나 둘 중 하나였다.


    그렇다면 지금 여기에 온 것은....


    범인.


    범인일 가능성이 있었다.


    마른침을 삼켰다. 발소리가 들리지 않는다. 숨소리만 간신히 들릴 정도였다. 옷이 마찰하는 부스럭 거리는 소리만 조금씩 들릴 뿐이었다.


    그렇다면 하연이를 보고 있는 건가. 자신이 죽인 하연이를 보면서 무슨 생각을 하는 걸까. 아무리 생각해도 행동이 이상했다. 일반인은 아닌 것이 분명했다. 범인일 것이다. 저렇게 행동하는 것은.


    어느새 공포와 긴장은 점점 사라지고 분노와 증오가 차올랐다. 그러나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없었다. 시간은 6시 14분. 이제 1분밖에 남지 않았다. 범인을 확인하더라도 의미가 없었다. 어차피 잊어버릴 테니. 계획이 세워진 게 없으니 과거의 나에게 전달할 수도 없었다.


    ... 아. 기시감이 도움이 될 수 있을까. 이전에 교통사고에서 모르는 사람의 얼굴이 익숙했던 기억이 있었다. 그리고 과거로의 감정역류. 이번 리와인드 직후에 구토할 뻔했던 기억이 있었다. 만약 내가 범인의 얼굴을 보고 강한 증오와 분노를 가진 채로 과거로 돌린다면, 과거로 돌아간 직후의 나에게 전달될지도 모른다. 실험해볼 가치는 있었다. 실패하더라도 계획은 유지된다.


    문제는 상대방에게 들키지 않고 확인하는 것이다. 나는 스마트폰의 카메라를 켜고는 렌즈 부분만 벽 밖으로 내밀었다.


    그리고 액정에 비추는 광경 붉게 물들인 바닥에 스마트폰의 불빛을 비추고 있는 남자. 키와 덩치는 나보다 훨씬 큰... 험한 얼굴의 남자....


    체육선생이었다.


    저 사람이 하연이를 죽였다. 저 사람이 범인이었다. 그 순간 그가 나를 보았다. 렌즈롤 바라보고 있었다. 나는 그제서야 실수를 깨달았다. 하연이의 가지런한 모습. 그리고 바닥으로 여기까지 이어진 나의 피로 찍힌 발자국.


    지하실 안에 쿵쿵 발소리가 울렸다.


    나는 급하게 스마트폰을 당겼다. 카메라 앱을 끈 뒤 리와인드를 실행했다. 하지만 아직도 6시 14분이었다.


    그리고 그 순간 나는 바닥과 천장이 뒤바뀌는 경험을 했다.


    쾅!


    “... 허억. 꺽. 꺽.”

    정신이 없었다. 숨이 쉬어지지 않았다. 간신히 할 수 있었던 것은 손에서 스마트폰을 놓치지 않은 것이었다.


    머리에서 핑하고 골 울리는 소리가 났다. 등판이 떨어져 나간 듯이 아팠다. 팔다리가 덜덜 떨린다. 말소리가 안 나온다. 아니, 숨도 쉴 수가 없었다. 체육선생이 내 멱살을 잡고 있었다. 나를 위에서 짓누르고 있었다. 어두워서 무슨 표정을 짓고 있는지 알 수 없었다. 검은색의 두 눈동자가 나를 노려보고 있다는 것만 알 수 있었다. 정신을 잃지 않기 위해 필사적으로 애썼다. 몸에 힘이 들어가지 않았지만, 필사적으로 고개를 돌려 스마트폰을 보았다. 6시 15분.  드디어.


    나는 정면을 바라보았다. 제대로 보이지도 않는 체육선생의 얼굴. 숨도 제대로 쉬어지지 않는 상황이었다. 그런 상황에서도 나는 필사적으로 힘을 내 증오심과 분노를 담아 그에게 침을 뱉으며 리와인더의 버튼을 눌렀다.



    ------


    우웅.


    물리치료를 받으며 살짝 노곤함에 취해있을 때 진동이 울렸다. 그리고...


    “아악.”


    신음성이 입을 비집고 나왔다. 배에 쥐가 나서 제멋대로였다. 고통 때문에 절로 몸을 웅크리자 등도 덩달아 땡기는 기분이었다. 게다가 속이 답답하고 화가 울컥 솟아오르는 기분이었다.


    제정신을 차린 건 10분 정도 지나서였다. 신음 소리를 들은 물리치료사가 와서 쥐가 풀릴 때까지 마사지를 해준 덕에 훨씬 나아졌다.


    나는 그제야 스마트폰을 확인 할 수 있었다. 침을 꿀꺽 삼켰다. 굳이 확인하지 않아도 무엇인지는 알고 있었다. 당연히 리와인드일 것이다. 중요한 것은 시각이었다. 리와인드를 발동한 시각. 나의 계획에 따른 리와인드가 실행된 시각.


    리와인더 앱을 켜자 확인된 시간은 6시 15분. 오차는 없었다.


    그리고 그걸 확인하자. 갑자기 입안이 바싹 마르는 기분이었다. 하연이와 지석이 둘 중 하나에 무슨 일이 일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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