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www.pressian.com/article/article.asp?article_num=30120125140432 대법원으로 간 서울대 성폭행 사건, 전말은…
[사건 추적] "1심 유죄, 2심 무죄…석연치 않은 신체 감정서"
김윤나영 기자
기사입력 2012-01-27 오전 8:20:05
"저는 다만 노리개 감이 아닌, 인권을 가진 인간이고 싶었습니다. 진심 어린 사과라는, 쉽다면 정말 쉬운 그것을 피고인은 끝까지 제대로 이행하지 않고 돈으로 해결하려 했었습니다. 저는 2심 재판기록을 읽으면서 할 말을 잃었습니다. 교수가 되고자 하는 피고인이 '그깟 여자 하나 때문에' 자신의 인생에 오점 하나 남기는 것이 싫어서 자신이 성적 불구자라고까지 주장하면서 저를 더욱 처참하게 짓밟고 있을 뿐이었기 때문입니다."
서울대학교 학부를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하고 같은 대학 대학원에 진학한 A(여) 씨. 박사 과정을 마치고 대학 교수가 되고 싶었던 그는 한순간에 모든 꿈을 접어야만 했다. 대학에서 A 씨의 논문을 지도하던 박사 과정 B(남·36) 씨에게 성폭행을 당하면서부터다. 1심에서 승소하고 2심에서 패배한 A 씨는 대법원 심리 여부가 결정되는 2월을 앞두고 "2심은 거짓된 증거를 채택해 판결 결과가 잘못됐으므로 재심리를 요청한다"고 주장했다.
A 씨가 소송을 건 계기는 지난 2010년 3월로 거슬러 올라간다. A 씨는 대학원에서 함께 프로젝트를 진행하던 선배인 B 씨와 대학원 생활의 어려움을 토로하며 술을 마셨다. 그런데 술자리가 끝난 후 B 씨는 "차 한 잔만 마시고 가겠다"고 했고, A 씨는 논문을 지도하는 선배의 독촉을 재차 거절하기 어려워 B 씨를 집에 들였다가 변을 당했다.
그 후로 A 씨는 "나는 너에게 연구를 가르쳐줬는데 너는 나에게 무엇을 줄래?", "내 아내는 아이에게 몰두해 있어서 관계가 소원하니 네가 내 욕구를 풀어줘. 그 정도는 해줄 수 있잖아", "너는 보기보다 맛있더라", "석사 때 유부녀와 관계를 했는데 그 유부녀가 신기한 체위를 많이 알고 있더라" 등의 성희롱에 시달렸다고 토로했다. B 씨는 3개월 동안 A 씨의 가슴과 엉덩이를 만지는 등 강제 추행을 했고, 출장을 가다가 모텔이 보이면 "저기 들어가자"는 말도 서슴지 않았다고 했다. A 씨가 "부인과 딸을 생각해서라도 제발 자제해달라"고 호소해도 소용없었다.
대학원 생활을 망치고 싶지 않았던 A 씨는 피해 사실을 아무에게도 알리지 않기로 마음먹었다. 그런데 A 씨가 프랑스 학회에 참가하기로 발표한 뒤 B 씨가 일정을 중국 학회에서 프랑스 학회로 바꾸는 일이 벌어졌다. 단둘이 프랑스에 가고 싶지 않았던 A 씨는 대학원 동료들에게 같이 가달라고 부탁했지만 연구 주제가 맞지 않아 거절당했다. B 씨와 같은 숙소에서 묵을 위기에 처한 A 씨는 결국 지난 2010년 6월 B 씨를 고소했다. "나만 입 닫으면 없던 일이 될 줄 알았는데 더는 당할 수 없다"는 판단에서였다.
2차 가해 이어져…"수치심과 왕따 때문에 죽고 싶었다"
고소 이후에도 A 씨는 2차 가해에 시달려야 했다. B 씨가 연구실 대학원생들에게 "무고하게 신고 당했으니 증언을 해달라"며 피해 사실을 유포하고 다닌 것. A 씨는 "연구실에 가니 사람들이 말도 안 하고 인사도 안 했다"며 "동료들이 나를 이상한 시선으로 바라봤고, 수치심과 왕따를 동시에 겪어서 죽을 만큼 힘들었다"고 말했다.
A 씨는 또한 "재판 과정에서 피고인이 나의 남자관계가 복잡하다는 허위사실을 유포했다"고 주장했다. 그는 "증인으로 나온 연구실 사람이 내가 어정쩡한 자세로 한 남자 후배와 컴퓨터 모니터를 보고 있는 것으로 보아 나와 후배의 관계가 수상하다고 증언했다"며 "단지 후배를 컴퓨터 앞에 두고 일을 가르쳐준 상황이었는데 내가 이상한 사람이 됐다"고 말했다. 연구실 동료들과도 관계가 틀어진 A 씨는 쫓겨나듯 대학원을 졸업하고 취직했다.
새 직장에 자리 잡으려고 마음먹었지만, B 씨의 가족들이 합의를 요구하며 시시때때로 집과 회사로 찾아오는 것도 A 씨에게는 또 다른 고통이었다. A 씨는 "피고인 가족들이 내 얼굴을 알아보고 내가 집에 들어가면 기다리기라도 했다는 듯이 벨을 누를 때도 있었다"며 "때로는 '지금 회사 앞에 있다'라고 문자가 와서 무서워서 퇴근도 못할 지경이었다"고 말했다. 이 과정에서 그는 "피고인의 어머니에게 '팔다리가 없냐. 그런 일을 왜 당하냐'는 수치스러운 말도 들어야 했다"고 호소했다.
1심 유죄…"피해자 진술이 구체적이고 일관돼 경험 없이 진술 어려워"
1심을 맡은 서울중앙지방법원은 지난해 6월 "피고인은 연구 지도를 빌미로 자신의 지위를 이용해 피고인에게 의존할 수밖에 없는 피해자에게 죄질이 중한 범행을 저질렀다"면서 "그럼에도 범죄사실에 대해 부인하며 반성하지 않고 있고, 오히려 피해자를 무고죄로 고소하는 등 피해자에게 2차 피해를 가했다"며 B 씨에게 징역 3년 6개월을 선고했다.
재판부는 "피해자의 진술이 구체적이고 일관돼 경험하지 않고서는 진술하기 어렵다"면서 "피해자가 피고인의 복장을 정확하게 기억하지 못하는 것은 범행 발생 3개월이 지난 후에 범행 무렵의 일상적 사실들을 모두 정확하게 기억해내기 어려운 점으로 미뤄 충분히 수긍할 수 있다"고 말했다.
재판부는 "반면에 피고인은 범행일시에 피해자가 검은색 바지를 입었다고 구체적으로 진술했다"며 "오히려 피고인의 주장과 같이 일반적인 대학원 선후배 관계에 있던 피고인과 피해자가 별다른 일 없이 함께 술을 마셨을 뿐인 상황에서 피고인이 피해자의 복장을 3개월이 지난 시점까지 정확하게 기억하는 것이 이례적"이라고 지적했다.
2심 무죄…피고인, 1심에 없던 '성기 기형' 주장
2심 판결은 정반대로 뒤집어졌다. 피고인은 기존 변호사를 해임하고 전직 법원장 출신을 비롯한 변호사 6명을 새로 선임했고, 2심 도중 보석으로 석방됐다. 2심에서는 1심에서 등장하지 않았던 새로운 증거가 제출됐다. 변호인단은 "피고가 선천적으로 발기 시 성기가 왼쪽으로 60도, 아래쪽으로 30도 휘어지는 음경만곡증(페이로니씨병)이 있어 삽입 시에는 한 손 이상의 보조가 필요하고, 상대방에게 상당한 통증을 유발할 '가능성'이 있다"고 주장했다.
서울고등법원은 지난해 12월 "피고인이 성기의 기형 때문에 한 손으로 자신의 성기를 잡고 삽입을 시도했을 것으로 보이는데도 피해자는 그런 상황에 대해 언급하지 않았다"며 B 씨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재판부는 "(피고인의 신체 특성상) 상당한 통증을 동반한 강간 피해를 당하는 상황에서 단순히 옆방에 들릴 것을 우려해 소리를 지르지 않았다는 점도 선뜻 납득하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원고 신체감정결과 의문 제기…'정확한 모양과 형태 확인 불가'
그러나 A 씨는 B 씨가 제기한 신체감정결과에 의문을 제기했다. 지난해 10월 B 씨가 모 대학병원에서 받은 신체감정 보고서에는 "피고인을 병원 내 정자 채취실에서 입실하게 하고 (2박 3일간) 발기를 유도하였으나, 사진에서 보이는 정도의(불완전한) 발기 상태에서 더 이상의 완전한 발기 상태에는 이르지 못하여 피고인의 발기된 상태의 성기의 정확한 모양과 형태는 확인할 수 없었다"고 적혀 있다.
A 씨의 동생은 "피고인이 의도적으로 완전히 발기되지 않은 상태에서 검사한 것 같다"면서 "완전히 발기된 상태에서 다시 검사한다면 정상임이 들통날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육안으로 관찰했다'는 측정 방법에도 의문을 제기했다. 육안으로 관찰했는데 몇 도가 휘어졌는지 어떻게 정확히 측정하느냐는 것이다.
A 씨도 "상대방에게 상당한 통증을 유발할 정도면 부부관계가 불가능해야 하는데, 그렇다면 딸도 있는 피고인은 부부 관계를 어떻게 해왔단 말이냐"고 반문했다. A 씨는 "1심에서 등장하지 않은 병이 갑자기 2심에서부터 나온 점이 의문스럽다"며 "감정 결과도 공식적인 진단서 형태가 아니라 '신체감정 보고서'라는 반 페이지짜리 간이 보고서에 불과했다"고 말했다.
"사회와 법정이 피해자를 더 죽이고 있다"
A 씨는 대학원 사회의 위계질서와 남성중심적인 문화가 성 범죄를 용인하기 쉽게 만든다고 지적했다. 그는 "교수가 학생 수십 명을 일일이 지도할 수 없기 때문에 박사가 석사에 대해 갖는 권력이 막강하다"며 "나는 특히 지도교수가 모르는 분야를 연구한 탓에 선배가 더 횡포를 부릴 수 있는 환경에 노출됐었다"고 말했다. 그는 "선배가 시키는 일이 있으면 부당한 일이어도 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대학원 내의 남성 중심적인 문화도 A 씨에게는 견디기 힘들었다. 대학원을 다니면서 그는 남성 동료들의 노골적인 음담패설에 자주 시달렸지만, 음담패설을 듣기 싫어하면 유난을 떤다는 눈총을 받았다고 했다. 20명이 넘는 남성 동료 속에서 여학생이 드문 것도 힘든 일이었다. 그는 "누가 내 몸을 만진다고 해서 털어놓을 데가 없다"며 "거기에서 살아남고 '여자여서 잘 못한다'는 말을 안 들으려면 '사적인 문제'를 누르고 남자와 똑같이 살아야 한다"고 털어놓았다.
법정에서도 피해자에게 불리한 환경이 조성됐다. A 씨는 "2심 판사가 피고인이 '손으로 잡고 했느냐'고 물어보더라"며 "내가 (저항하느라) 기억나지 않는다고 답하니 못 봤기 때문에 피고인이 무죄라고 했다. 내가 그 상황에서 손으로 잡았는지 아닌지를 어떻게 봤겠느냐"고 반문했다. A 씨의 동생도 "당해놓고 신고하고 싶으면, 당시에 당하는 장면을 두 눈 똑바로 뜨고 봐야 한다"며 "그런데 성폭행을 당하면서 두 눈을 똑바로 뜨고 기억하는 사람이 세상에 몇이나 있겠느냐"고 따져 물었다.
A 씨의 동생은 "성폭행은 다른 범법 행위와는 달리 피해자만 계속 피해보는 시스템"이라며 "사회적인 시선에서는 물론이고 재판하는 과정에서조차 2,3차 피해가 계속 발생한다"고 말했다. 그는 "법정도 원고의 남자관계를 묻는 등, 여성에게 수치심을 일으키는 질문을 꼭 필요하지 않아도 한다"며 "사회와 법정이 피해자를 더 죽이고 있어서 피해자는 2차 피해를 무릅쓰고 무조건 투사가 돼야 한다"고 비판했다.
한편, B 씨는 <프레시안>과의 전화 통화에서 "(현재 진행되는 재판에 대해) 어떠한 대답도 할 수 없다"며 "변호사와 상의해 보라"고 밝혔다. B 씨의 변호사는 "소송이 진행 중인 사건이어서 드릴 말씀은 없다"면서도, 피고인의 신체감정 결과에 대해서는 "비뇨기과 전문의가 감정한 내용"이라고 강조했다. 이제 진실 규명은 대법원의 몫이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