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일단 인터넷에 불법시위라고 근거를 들고 오는 사람들의 논리를 표현해 보면,
"경찰차 부수고 물건 훔췄잖아요. 그게 불법시위가 아니면 무엇입니까? 불법시위를 막지 않으면 어떡합니까?"
라고 나름 설득력 있는 척을 합니다만, 이 논리는 100% 이상합니다. 왜냐면 시민들이 가만히 잘 있는 경찰서에 쳐들어가 때려부순 건 아니기 때문이죠. 이미 그 전부터 경찰차가 예전에 위헌판결까지 나온 '산성'을 이루고 멀쩡한 사람들을 포위하고 해산하지도 못하게 막고 있었습니다.
한마디로 사건의 순서는
1) 평화로운 집회 (사전에 신고도 됨)
2) 그런데 집회에 모인 인원을 경찰측에서 먼저 경찰버스를 동원하여 길막. 화장실도 못 가고 해산도 못하고 뭐 어쩌지도 못하는 상황.
3) 이 상황에서 물대포를 쏘고 최루액까지 뿌림.
4) 이에 열받은(혹은 정체불명이라는 말도 있음) 극단적인 인물들이 때려부수기 시작.
즉 '경찰차가 막은 것'이 '경찰차를 때려부순 것'보다 먼저라는 이야기가 됩니다. 사실 당연하죠. 화염병 들고 경찰서를 테러하지 않는 이상.
....뭐, 외국의 사례에서도 독재국가가 아닌 이상 설령 화염병을 까부수는 거친 시위가 나오더라도 만 명이 넘는 이 정도의 대규모 인원으로 이 정도로 철저하게 길막을 하고 아예 경찰들이 시위대에게 선빵을 날리는 사례는 저는 아직까지 본 적 없습니다만.
어쨌거나 '불법 시위다!'라는 측 논리를 풀어서 설명하면
<사전신고한 집회를 경찰이 대규모 경찰력을 동원하여 '물대포에 최루액을 동원하고 완전봉쇄한' 탓에 시위대와 충돌이 벌어졌고 이 과정에서 경찰이 폭행당하고 경찰버스가 박살났으니까 이건 불법집회 → 이렇게나 폭력적인 불법집회므로 경찰이 '대규모 경찰력을 동원하여 물대포에 최루액을 동원하고 완전봉쇄하여' 시위대를 막은 건 잘한 것>
이라는 뭔가 타임 패러독스가 벌어집니다. 사건의 과거와 현재를 초월한 논리이죠. 미래에서 오셨어요?
2.
일단 전 과격시위 반대파입니다. '저놈들이 저러니까 우리도 화염병을 들고 나서자!'라는 논리는 늘 그렇듯이 위험합니다. 하지만 이번에 일어난 충돌사태는 좀 생각할 여지가 있군요. 왜냐면 경찰이 먼저 도를 넘었기 때문이죠.
비유하자면 이렇습니다. B가 A한테 잘못을 따지자 A가 B를 향해 문답무용으로 곤봉을 휘두르기 시작했습니다. 이에 맨손으로 계속 당하던 B는 결국 열받아서 A의 턱에 한 방 주먹을 꽂았습니다. 이때 누가 잘못한 걸까요? 어쩌면 백보 양보해서 B에게도 잘못이 있을 수 있습니다. '쌍방폭행'이라는 게 있거든요. 그런데 '곤봉에 맞다가 맨손으로 한 방 날린' B가 잘못했다면 원인을 제공한 A는 아주 천하의 개XX이 되는 것이지요. 한마디로 대화로 해결하려 하던 B는 무죄고 A는 유죄이던지, 그래도 주먹을 날린 B는 잘못했지만 더 심한 A는 아주 나쁜 놈이던지 둘 중 하나의 논리밖에 성립할 수 없습니다.
한마디로 폭력을 사용한 시민들에겐 잘못이 있습니다. 심지어 절도까지. 이건 확실히 잘못했죠. 이들을 비판하고 자정의 목소리를 내는 것은 옳은 일입니다. 하지만 그러려면 먼저 오만가지 법을 어기고(경찰이!) 억지춘향으로 집회에 모인 사람들과 유가족들을 억압한 경찰들부터 비판해야 합니다. 그 다음에 폭력을 사용한 시민들을 비판한다면, 전 그건 옳다고 생각합니다.
잠깐... 경찰이 폭력을 사용하진 않았다고요? 뭐 그렇죠. 관할소방서에 허가도 받지 않고 물대포를 뿌리고 국제 규정을 어기면서 최루액을 뿌리고 산성을 쌓고 강제연행하고 길막하고... 뭐 그랬을 뿐이니까요. 소중한 것을 잃어서 열받은 어린아이를 근육질의 성인 남성이 폭력을 쓰지 않고 얼굴에다 물과 최루액을 뿌리고 화장실도 못 가게 강제로 붙잡아도 뭐 어쩌겠어요. 남성의 콧잔등을 때린 어린아이 잘못이지.
3.
태극기. 참 이거 민감하네요.... 솔직히 잘못은 잘못이죠. 태극기는 한 국가의 상징이고, 우리가 어려울 때마다 함께했으니까요.
하지만 태극기가 사람입니까? 성물입니까? 만약 혐한 일본인이 태극기를 태웠다면 마땅히 분개할 일입니다. 하지만 이번 일은 자국민이 태운 일이죠. 이 경우는 많이 다릅니다. 먼저 자국민은 자국의 정부에 항의할 권리가 있습니다. 이 권리를 표현하는 과정에서 강렬한 메시지를 전하기 위해 '자국의' 국기를 태웠다면 지나치게 극단적이긴 하지만 개썅 어쩌구저쩌구 소리를 들을 정도는 아니죠.
예를 들자면 이겁니다. 어떤 독재국가에서(얘를 들면 리비아 같은) 독재자에게 항의하는 메시지를 퍼트리고자 자국의 국기를 태워버렸다면, '저렇게까지 할 필요는 있나' 싶을 수도 있겠지만 매국노라거나 욕을 먹어야 된다거나 할 수는 없을 겁니다. 자국민이 자국 정권의 잘못을 비판하기 위해 한 행동이기 때문입니다. 물론 경우가 다르다고 할 수는 있죠. 하지만 제가 하고 싶은 말은 몇몇 사람들이 우리나라의 국기를 태웠기 때문에 무죄한 학생들을 수백이나 잃어버린 재앙 앞에서 고개를 돌리려 한다는 겁니다.
태극기는 소중하지만 사람보다 소중한 건 아닙니다.
그나마 세월호에 대한 진상규명이 제대로 이뤄지고 있으면 또 모르는데, 원인이 밝혀진 것도 없고, 책임자에 제대로 된 처벌이 들어간 것도 아니고, 제대로 안 할 거면 수사권이라도 달라니까 그건 안 된다며 뻐기고 있습니다. 거듭 말하지만 태극기를 태운 게 잘했다는 게 아닙니다. 그건 잘못입니다. 하지만 이런 상황에서 과연 태극기를 태우는 행위가 세월호 유가족들이 어떤 식으로든 입을 다물어야 할 이유가 되는 걸까요?
4.
<사람이 모였으니 어차피 폭력시위가 될 거고, 그렇기 때문에 막은 건 잘한 것>이라는 논리.
이거 참 반박할 필요도 없는 논리입니다. 그런데 다들 잔뜩 들고오는 논리이기도 하죠. 그럼, '마이너리티 리포트'라는 영화 보셨어요? '아직 불법을 저지르지 않았는데 불법을 저지를 것 같으니까 미리 산성부터 쳐두고 분향소에 가지도 못하게 막자'라는 논리는 '남자는 전부 성범죄자가 될 가능성이 있으니까 성범죄를 일으키기 전에 죄다 잡아넣자'라는 논리와 다를 게 없습니다. 공권력이란 어디까지나 사람을 지킬 수 있는 최소한도에서 작용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5.
"청와대로 가자!"라고 누가 소리질렀다고 했죠? 그거 경찰이 막은 다음에 나왔던 걸로 압니다만. 뺨을 때려놓고 화를 내니까 너 왜 이리 난폭하냐고 하는 꼴이네요.
마무리.
나름대로 정리한다고 정리했는데 두서없이 글만 길어졌습니다. 열받아서 쓴 탓에 제 생각을 제대로 표현했는지, 중언부언 한 건 아닌지, 빼먹은 건 없는지 모르겠습니다. 제 부족한 필력 탓입니다. 죄송합니다.
정말로 걱정입니다. 너무 많은 사람들이 아픈 사람들과 공감할 줄 모르고 있습니다. 이렇게라도 글을 올리지 않으면 속이 터져 견딜 수 없을 거 같네요. 그저 세월호의 진실이 완전히 밝혀지길 바랄 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