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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을 논하기 전에 먼저 불행에 대해서 논할 필요가 있다. 사람들은 행복과 불행을 자주 혼동한다. 불행을 행복이라고 잘못 판단하고 필사적으로 불행을 지킨다거나 행복을 불행이라고 잘못 판단하고 행복을 무시한다거나 하는 상황이 벌어진다. 이러한 것도 사람들이 기분으로 느끼는 감정적인 상태에서 본인이 제어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만을 인정한 상황이고 그것이 진짜 행복인지는 알 수가 없다. 불행은 자기가 의식적으로든 무의식적으로든 스스로 만들어내는 것이다. 그것을 행복이라고 믿고 열심히 만들어내는 것은 불행 중에 찾아오는 행복만이 자기가 감지할 수 있고 그것을 행복으로 규정짓고 불행을 기꺼이 조장하고 받아들이는 것이다. 하지만 그것은 행복이 아니다. 불행은 만들어낼 수 있지만 행복은 만들어내는 것이 아니다. 행복은 자기가 인지하지 못하고 있는 상태에서 찾아오는 것이다. 행복은 본래 존재하고 있던 기류로서 이리저리 움직이다가 어떤 조건이 성립된 사람에게 옮겨 붙는다. 행복한 사람은 행복을 인지하지 못한 상태에 놓여져 있고 그 상태로서 행복한 것이다. 그러한 행복의 조건이라는 것이 정확하게 무엇이라고 규정짓기는 어렵다. 불행은 본인이나 타인 모두가 확인할 수 있는 사항이고 그 불행에서 벗어나는 것이 행복이라고 한다면 행복의 조건에는 반드시 불행이라는 필수불가결한 조건이 있어야 한다는 침울하고도 암담한 현실에 직면하게 된다. 행복의 조건을 규정짓는게 불가능하다면 과연 어떻게 해야하는 것일까? 행복을 갈망하면서도 본인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행복이 찾아올때까지 마냥 기다리고 있어야 한다면 가만히 있을 사람은 없다. 이러한 점 때문에 불행을 조장하고 그 대응으로서 행복이라고 믿는 기분을 잠시나마 느끼려는 사람들의 욕구에 대한 본성은 고스란히 행동으로 나타난다. 우리는 이제 더 이상 그런 과정이 없어도 행복이 찾아오게끔 할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해야 한다.
그렇다면 사람들은 왜 행복을 갈망하는가. 사람은 항상 자신이 만족하지 못하고 있다고 여기고 더 큰 만족을 위한 여분의 공간을 늘리는데 전념하고 있다. 그렇다고 사람들에게 만족감을 줄이라고 한다면 그렇게 할 사람은 없다. 자구책으로 물질에 대한 선호는 그 여분의 공간을 물질로 채울 수 없을 만큼 크고 넓기에 현명한 사람이라면 행복으로 그 공간을 채우고 싶어 한다. 물질로 채우는 것보다 불확실하더라도 행복으로 채우는게 더 희망적이기 때문이다. 물질로 조금씩 채워나갈 만큼 사람들의 만족감에 대한 확장의 범위를 물질이 따라오지 못한다. 사람의 관점에서 보면 행복은 이처럼 사람의 무한에 가까운 만족감을 단번에 해소해줄 수 있을만큼 강력하고 위대하다. 행복이 기류라고 한다면 그리고 정확한 조건이 없다면 행복이 찾아오는 것은 단순히 행운이나 운명적인 것으로 봐야 하는가. 행복이 무작위로 누구를 선정하는 것은 아닐 것이다. 행복의 조건이 무엇이라고 누군가가 알아내서 규정해놓면 사람들은 그렇게 할 것이고 그러면 행복이라는 것의 본래 의미에 부합하지 못해서 기껏 노력만 하고 행복을 성취할 수는 없을 것이다. 행복은 본인이 의식하지 못한 상태에서 행복한 것이다. 행복을 얻기 위해 의식적인 행동을 하고 의식적으로 느끼는 것이 아니다. 그럼에도 우리는 행복을 쟁취해야 하고 그 비밀을 밝혀내야 한다. 행복의 기류에 동화되기 위해서 그 기류가 어떤것인지 알고 닮아가려고 한다면 그것을 행복의 조건으로 불러도 무방하지 않을까. 그렇다면 행복의 기류란 무엇인가?
기류란 일반적으로 공기나 날씨나 환경이나 원소로 본다면 행복의 기류를 맑은 공기나 쾌적한 날씨나 풍요로운 환경이나 인체에 이로운 건강한 원소라고 보고 행복의 조건은 맑은 정신과 쾌적한 기분과 풍요로운 상태와 건강한 신체일까. 완전하지는 않지만 행복에 가깝게 근접할 수는 있을 것이다. 사람이 기체로 변하여 기류를 파악하고 휩쓸릴 수는 없는 노릇이니 이렇게라도 해서 유지하는데 전력을 쏟는 방법이 있다. 하지만 이런 것 보다는 편하게 처음부터 완전한 행복의 상황에 둘러싸여 잃어버릴 염려를 하지 않아도 될 정도가 되는 것이 나을 것이다.
행복은 소유하는 것도 아니고 누가 누구에게 전해주는 것도 아니며 거부한다고 해서 없어지는 것도 아니다. 행복은 그 존재로서 살아있는 무기체이고 그것과 닮으려면 어떤 사람이 되어야 하는가 또는 어떠한 방식으로 살아야 하는가하는 의문에서 시작해야 할 것이다.
이 의문을 풀기에 앞서 사람들은 이렇게 생각할 것이다. 차라리 행복한 사회를 만들자. 그러면 그 행복은 누가 정하는가. 그리고 그 행복은 정말로 행복이 맞는 것인가. 임의적으로 정한 행복의 조건에 부합하면 그 사람은 행복한 사람이라고 인정해주자는 사회적인 약속을 성립한건 아닌지 생각해봐야 할 것이다. 어쩌면 사람들은 행복을 포기하고 불행을 원하고 불행에 집착하고 있지는 않은지 우리들의 사회를 객관적으로 판단할 필요가 있다. 행복이 없는 사회에서 개인이 행복할 수는 없다. 행복한 개인들이 모여서 행복한 사회가 된다고 봐야 할 것이다. 그러므로 행복은 개인에게 달렸다.
그렇다면 행복한 사람이 되기 위해서는 어떤 사람이 되어야 하는가. 우선 진실된 사람이 되어야 한다. 기류는 실제 존재하는 무기체이고 사람도 실제 존재하는 유기체이다. 자기를 속인다는 것은 본인의 실존성을 망각하는 것으로서 존재를 잊어버린채로는 실제 존재와 조우할 수 없다. 일단 기류를 받아들일 준비된 상태가 되어야 한다. 그리고 행복의 기류는 일반 기류와는 다른 특별한 기류일 것이다. 행복이라는 요소를 담고 있기에 무게나 농도가 많이 들어있을 것이다. 그러므로 사람도 많은 것을 담고 있는 상태 즉 진지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
또한 어떠한 방식으로 살아야 하는가. 행복의 기류는 누구를 구분하는 엄격한 성질을 갖고 있다. 사람도 되도록이면 좋은 사람과 사귀고 어울리려고 해야 한다. 좋은 사람이라는 확신이 들면 바로 융화할 수 있는 포용성을 가져야 한다. 행복의 기류는 그 존재를 영원히 잃지 않으므로 사람도 그 어떤 것에 휘둘리지 말고 본인의 가치를 느끼면서 변치 않는 자부심을 가지고 살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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