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로 11살을 맞은 공혈견(供血犬) ‘엣지’는 사람으로 치면 65살이다. 엣지는 건강을 위해 일주일에 한두 번씩 서울대 수의과대 동물병원 재활훈련장에서 운동을 하고 있다. 엣지를 담당하고 있는 이관구 수의사가 운동을 마친 엣지를 쓰다듬어 주고 있다. [김도훈 기자]
목에 주삿바늘이 다가온다. 매달 겪는 일이지만 조금 두렵다. 옆에는 핼쑥한 강아지의 모습이 보인다. 내가 잠시 아픔을 참아 친구가 살 수 있다면 이쯤 못 참으랴. 나는 대한민국의 견공(犬公)인데.
나는 엣지(edge)다. 65㎝ 키에 윤기 나는 검은 털을 가진 훈남견이다. 요즘 센스 있고 멋지다는 뜻으로 ‘엣지 있다’라는 표현을 쓰던데 딱 나에게 어울리는 이름이다. 올해로 11살. 사람 나이로 치면 65살이다. 보통 견공 같으면 은퇴하고 편안하게 주인 품에서 쉴 나이지만 나는 이제야 주인을 찾고 있다.
나는 2001년 1월 1일 미국 동부에서 태어나 이듬해 한국 관세청 사람들과 함께 제2의 고향으로 왔다. 우리 가문은 래브라도 레트리버(Labrador Retriever)종(種)이다. 순한 성격과 뛰어난 후각 덕에 탐지견이나 시각장애안내견 등 특수견을 많이 배출했다.
내 첫 기억은 인천공항 탐지견훈련센터에서 시작된다. 2002년 뜨거운 여름, 16주간의 탐지견 훈련은 쉽지 않았다. 매일 뛰고 굴렀다. 특히 냄새 인지 훈련은 어려웠다. 사람보다 40배나 뛰어난 후각을 가졌지만 밀봉한 마약을 숲 속에서 찾는 건 쉽지 않았다. 그때 같이 훈련 받던 친구들 가운데 탐지견 훈련에 통과한 개는 10마리 중 2마리에 불과했다. 관세청장 도장이 찍힌 마약탐지견 인증서가 얼마나 자랑스럽던지.
2003년부터 2008년까지 6년간의 탐지견 생활은 내 견생의 황금기였다. 탐지조사요원과 함께 한 조가 되어 인천공항에서 마약사범 검거로 명성을 떨쳤다. 아무리 꼭꼭 숨긴 마약도 내 코를 피하기는 힘들었다. 내가 적발한 마약만 해도 총 8건에 3억5000만원어치나 된다. 당시 매일 하루 4~5차례 비행기 입국 때마다 1시간씩 마약을 점검했었다.
2008년 10월 나는 탐지견에서 은퇴했다. 젊고 튼튼한 후배들이 들어왔고 후각도 예전만 못해졌다. 마약탐지견이라는 명예로운 자리는 후배들에게 양보하고 서울대 동물병원에서 헌혈을 하는 ‘공혈견(供血犬)’으로 견생의 2막을 살게 되었다. 처음에는 동물병원 생활에 적응하기 어려웠다. 매일 공항을 뛰어다녔는데 동물병원의 케이지는 좁고 산책시간은 부족했다. 하지만 내가 한 달에 한 번 300㏄씩 하는 헌혈로 다른 견공들이 새 생명을 얻는 것을 보고 보람을 느꼈다.
수혈이 필요해 오는 개는 모두 응급환자다. 사람과 달리 혈액량도 부족하고 수혈을 받을 방법도 마땅치 않기에 우리 같은 공혈견이 없으면 죽기 쉽다. 개의 혈액형은 13가지나 되는데 같은 혈액형끼리만 수혈을 할 수 있는 건 아니다. 수혈을 받는 개의 혈액과 공혈견의 혈액을 섞는 교차반응 검사를 거쳐 거부반응이 없을 경우 수혈이 가능하다. 2008년 말부터 내 피로 새 생명을 얻은 개는 50여 마리. 견공 주인의 감사하는 눈빛을 보면 헌혈을 할 때의 아픔은 잊을 만하다.
공혈견 생활을 한 지 4년째. 이제 나는 은퇴를 기다리고 있다. 되돌아보면 한평생 후회 없이 살았다. 나라를 위해서 반평생을, 다른 견공들을 위해서 반평생을 살았다. 이제 입 주변으로 털이 하얗게 세어간다. 수의사 선생은 나더러 ‘차분한 종교인’ 같다고 한다. 사실 큰 덩치에 애교도 없이 과묵한 노견(老犬)에게 어울리는 표현이다. 이제 나도 타인을 위한 희생이 아닌 나를 위한 3막의 삶을 살아보고 싶다.
◆추신=혹시 나를 찾는 주인이 없으면 나는 안락사를 맞아야 할지도 모릅니다. 저를 입양하고자 하시는 분은 서울대 동물병원 원무과 02-880-8671로 연락 바랍니다.
◆공혈견(供血犬)=수혈이 필요할 경우 혈액을 제공하는 개. 일반적으로 27㎏ 이상의 체중을 가진 빈혈이 없는 건강한 개로 질병에 대한 예방접종이 잘 되어 있어야 한다. 13가지 혈액형 중 수혈을 할 수 있는 종류는 6가지 정도이며 개적혈구항원(DEA) 부작용이 없어야 한다.
기사 퍼오기는 찝찝한데... 영 불쌍하네요 강아지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