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압주의. 꿈은 꿈일뿐....]
꿈 속에서 나는 평소처럼 일하고 있었다.
첫날 아침에 일본에서 미사일이 제주도 남해안으로 발사되었다는 소식이었다.
아무런 피해도 없었지만 갑작스런 발사에 우리나라 사람들은 당황했고 정부에서는 강력한 입장표명을 했다.
하지만 일본 정부는 아무런 말도 없었다.
점심 시간을 이용해 각종 사이트에 들어간 나는 사람들의 글을 보았다.
대부분 사람들은 일본이 드디어 맛이 갔다던가 지진으로 인해 침몰하기 전에 한국땅 오려는건가 하는 우스갯소리를 했다.
어떤 사람은 진지하게 일본이 이대로 전쟁을 감행할 경우의 가상 시나리오를 쓰기도 했으며
누군가는 싸우면 누가 이긴다는 식의 글을 올리고 있었다.
에이 북한도 아니고 무슨 일본이 우리나라 선공이야 국제사회에서 따당하겠지. 우리나라에 미군기지도 있잖아 ㅋ.
다음메인에 올라온 어떤 신문에서는 독도를 얻기 위한 일본의 무력도발이라는 글이 올라왔다.
나는 이렇게 생각하며 컴퓨터를 끄고 밥을 먹으러 갔다.
점심을 먹고 다시 일하던 중 쾅하는 단발적인 포성과 전투기 날아가는 소리가 들렸다.
예비역들은 알 것이다. 군입대 전에는 이런 소리 들려봐야 공사하나? 훈련하나? 시끄럽네 이 정도겠지만
군입대하고 전역하고 나서 이런 소리 들으면 아주 짧게나마 불안감이 스쳐지나간다. 전쟁났나?
그때였다. 바깥에서 "전쟁이다!!!"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전쟁은 무슨. 북한이라도 왔나?
전쟁이다라고 외친 사람은 직장상사였다. 문을 열고 들어온 그는 바로 티비를 켰다.
티비에서는 "일본에서 선전포고"라는 글귀와 함께 여러 장면들이 나오고 있었다.
동해에서 우리나라 해군과 일본 해자대가 각각 출발하는 영상이 나오더니 서로 대치하고 있었다.
뿐만 아니라 남해에서도 일본군(자위대가 아니라 일본군이라고 적혀나왔다)이 상륙시도하고 있으며
일본에서 미사일이 날아오고 있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박근혜 정부는 이를 좌시치 않을 것이며 국제사회에 연락할 것이며, 미국이 절대 가만두지 않을 것이라고 방송하고 있었다.
이때 일본측 방송해석이 나오는데 일본에서는 미국의 제국주의에 맞서 아시아권을 하나로 만들기 위함이라며
이대로는 아시아가 미국의 식민지 밖에 안된다고 부득이하게 일어선 일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방송마다 한국에 항복을 권고했다.
약 10여분 동안 빠르게 각종 방송을 체크한 나는 핸드폰으로 부모님께 연락했지만 핸드폰이 꺼진 상태였다.
나는 일 때문에 부산에서 살고 있었기에 부모님이 사는 고향과는 멀어 하나하나 확인할 수 없었다.
나를 제외한 나머지 사람 중 가족이 있는 사람들은 먼저 가족에게 가고 있었다.
일을 하는 사람은 없었다. 다들 순식간에 빠져나갔다.
나도 자리에서 일어났다. 우리집은 여기서 택시를 타면 얼마 안 걸리지만 거리에 나오자 그곳은 혼란으로 가득했다.
민방위사이렌 소리와 함께 전투복을 입은 사람들이 하나둘 보이기 시작했다.
나는 어떡해야 좋을까?
그때 지나간 것이 "전쟁이 날땐 군에 있는 것이 가장 안전하다"라는 옛날 선임이야기였다.
택시는 잡히지 않았다. 택시마다 사람이 가득했다. 어떤 택시 안에는 전부 전투복을 입은 사람 뿐이었다.
나는 집으로 달려갔다. 옷장을 열고 올해 예비군 훈련 후 짱박아둔 세탁하지 않은 전투복을 꺼내 입었다.
그 옷을 입고 거울을 한번 보았다. 그때 슈우우웅하고 지나가는 소리가 들렸다.
전투기인가? 전투기 소리와는 미묘하게 달랐다. 미사일? 아, 미사일인가?
그때서야 직감했다. 아, 전쟁이구나.
핸드폰을 다시 열었다. 3G 무제한 갤2는 온갖 문자와 카톡으로 난리였다. 갠톡은 그래도 조용했지만
단톡방들은 하나같이 난리였다. 군시절 친한 사람들끼리 모인 단톡방에서는 가장 선임이었던 형이
다들 전투복 입고 근처 부대로 가라며 어드바이스한 내용이 15분 전 올라와 있었다.
다시 이곳저곳 전화를 하려고 했지만 전화는 되지 않았다.
나가려고 했지만 뭔가 들고 가야하지 않을까 싶었다.
내가 집에서 키우던 고양이는 어쩌지? 이 전쟁상황에 데려갈수도 없고 근처엔 맡길 사람도 없다.
자취하는 곳이라 중요물품도 별로 없었다. 핸드폰과 지갑, 볼펜과 종이 하나만 들고 나왔다.
고양이는 바깥에 풀어주었다. 그 짧은 순간 생각난 건 그거 하나였다.
몹시 미안하다는 생각을 하면서도 고양이를 바깥에 두었다. 고양이가 냐옹하고 나를 쳐다보았다.
하지만 집안에 계속 둘 수도 없고, 데리고 갈 수도 없었다.
집앞에 밥통을 두고 사료 두 팩 있던 것을 하나는 뜯어서 다 부어버리고 한 팩에는 간단한 메모장을 남겼다.
혹시 이글을 보는 사람이 이걸 봤을 때 아직 밥통과 고양이가 있고, 밥통에 사료가 없다면 이걸 넣어달라고.
또한 사정이 된다면 이 고양이를 데려가달라고. 나는 부대에 가야하니 지킬 수 없으니 부탁한다고 남겼다.
뭔가 더 좋은 생각이 있었을지도 모르지만, 전쟁 때문에 머리가 좁아진 나로선 그게 한계였다.
집앞을 벗어나지 않고 나를 보는 고양이를 뒤로 하고 도로로 나갔다.
길가의 사람들은 숫자가 줄어있었다. 나처럼 전투복을 입은 사람들만 즐비했다. 다들 근처 군부대로 합류하려는
예비역들로 보였다. 하지만 지나가는 택시는 계속 만원이었다. 그때였다. 사람이 타고 있던 것으로 보이는 택시가
내 앞에 섰다. 앞좌석에 앉은 예비역이 문을 열며 말했다. "53사에 가십니까?"
그래, 내가 부산에서 예비군 훈련받던 곳이 53사다. 그렇다고 답하자 뒤에 타라고 한다.
뒷좌석에도 예비군이 하나 있었다. 나보다 훨씬 앳되보였다. 굉장히 긴장해보였다.
택시기사가 대체 이게 무슨 난리냐며 투덜거린다. 앞좌석 예비군은 침착하게 "설마 전쟁까지 가겠냐. 단순한 무력도발일 것이다"
라는 식으로 말했지만 이미 바닷가쪽에선 뭔가 불타고 있었다. 새카만 연기가 올라오고 있었다.
그리고 사이렌 가운데 다시 방송이 흘러나왔다. 원래라면 여기와 정반대이고 들리지 않아야 할 소리인데 여기까지 들려왔다.
"여기는 남구청입니다. 일본군이 상륙하고 있습니다! 반복합니다! 일본군이 상륙하고 있습니다!
모든 시민들은 대피하여 주십시오! 반복합니다! 모든 시..." 이후부터는 방송이 들리지 않았다.
불안감은 커져갔다. 하나하나 걱정되었다. 가족, 친구, 지인들. 다들 괜찮을까? 다시 핸드폰을 켰다.
아버지에게서 문자가 왔다. 나도 괜찮고 엄마도 괜찮다. 다행이었다. 나는 지금 53사로 가고 있다며 나중에 고향에서 보자는 답장을 날렸다.
택시타고 가는 동안에 사방이 난리였다. 특히 대피하기 위해서 차량으로 가는 사람들이 많았는데, 우리 반대쪽 차선은 전부 부산을 빠져
나가는 차량으로 빽빽했다. 우리가 이용하는 차선은 대개 비어있었고, 신호등은 꺼져 있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53사 가는 길이야말로 부산 외곽으로 나가는 길인데 안막혔다, 어쨌든 꿈에서는 그랬다)
어느 순간 다들 말이 없어졌다. 나는 다시 핸드폰을 들고 오유를 켰다. 다행히 들어가졌다.
베오베나 베스트에는 이번 전쟁에 대한 글로 가득했고, 특히 사람들의 참전글이 많았다.
그중 베오베에는 "도망가면 모두가 죽습니다"가 있었다.
눌러보자 글쓴이는 자기는 이 한국을 별로 좋아하지 않고 징병제도 반대하지만
이 좁은 땅덩어리에서 도망가봐야 모두 죽는다며 지금이라도 싸울 수 있는 사람들은
내 가족 내 친구 내주변사람들을 위해 싸우는게 맞다며 지금 물러설 수 없다
그리고 일본이 이기기라도 하면 다시 옛날 일제강점기 시절처럼 될것인데 그걸 그냥 두고 볼거냐.
말로만 떠들던 애국보수들 지금이야말로 일어나서 싸울 때다. 뭐 그런 글이었다.
밀리터리 게시판을 눌렀다. "참전하러 갑니다" "근처 군부대가 어디죠?" "싸우면 이길 수 있나요 근데?"
등등이 있었다. 참전하러 간다는 글이 압도적으로 많았다. 웃긴건 그 시점에서 댓글이나 찬성이 엄청 많았다.
그때 속으로 이사람들은 전쟁 났는데도 이런 글 쓰고 있구만 ㅎㅎ 멋쟁이들 같으니... 하고 웃었다.
물론 그중에는 자기는 도망갈거다, 그냥 항복하면 아무도 안죽고 괜찮지 않느냐 이런 글도 있었지만 폭풍반대를 먹었다.
어느새 53사에 도착했다. 택시기사는 자기는 다른 사람 나르러 가야하니 뒤를 부탁한다며 슝 날아갔다.
내 옆에 앉았던 앳된 예비역이 갑자기 토하기 시작했다. 군부대 앞에 오자 그때서야 더욱 실감났다.
거기는 안으로 들어가려는 예비역들과 그들을 하나하나 분류하고 있는 현역들이 보였다.
그때 화면이 전환되었다.
나는 행군하고 있었다. 저 뒷편은 불타고 있었다. 불타는 곳은 부산이 아니었다. 서울이었다.
전쟁 7일 후였다.
전국이 불타고 있었다. 일본군이 상륙에 성공한 이후부터 남부는 쭉쭉 밀렸다.
한국정부에서는 급히 남쪽으로 군을 보내려고 했지만 북한 때문에 전력을 낼 수가 없었다.
박근혜 정부는 급히 북한에게 함께 일본을 상대하자고 연락했지만 김정은 돼지년은 그럴 맘이 없었던 것 같다.
그는 그대로 남진하기 시작했고 한반도는 북쪽에서 북한, 남쪽에서 일본이라는 최악의 상황이 되었다.
박근혜 정부는 끝까지 미국과 유엔을 믿었다. 물론 그들이 아무런 도움을 주지않은건 아니다.
하지만 일본과의 미묘한 관계가 있어서인지 자세한건 모르겠지만 그들은 민간의료단이나 외교로 전쟁중단을 외칠 뿐
직접적으로 돕지 않았다. 한국에 있던 미군들은 철수했다. 왜 그들이 철수했고 그들이 방관하는지 나를 비롯한 군인들은
이해할 수 없었다.
박근혜 정부는 괴멸되었다. 서울 지하 방공호에서 지휘를 하던 그들은 사흘째 되는 날 서울이 북한군에 포위되면서 연락이 끊겼다.
북쪽에 있던 우리 군인들이 아무일도 하지 않은 건 아니다. 하지만 일본이 침공한 이후 있었던 각종 혼란 속에 제실력을 발휘하지 못했다.
일본은 북한과 한국 모두의 적인데 설마 우리를 칠까하는 낙관론이 있었지만 북한은 북한이었다. 그들은 일본과 공조하여 한국을 공격했다.
박근혜 정부 괴멸 후에는 곳곳의 지역에서 항전이 있었다.
웃긴건 이때 우리를 도우러온게 중국이었다. 중국은 북한과 일본 두곳에 모두 강력한 경고를 했고 북한이 움직이고 얼마 후 중국도 움직였다.
중국에선 북한국경에 부대수를 늘렸고, 더이상 남침을 강행하면 북한을 공격하겠다는 입장표명을 했다.
그 때문에 북한군은 서울 점령 이후 움직이지 않았다.
나는 일주일간 북한군은 딱 한번, 일본군은 세번 정도 마주쳤다.
북한은 치밀했다. 걔들은 전투복도 우리것이었고, 사용하는 총기나 물건도 우리와 같았다.
말투도 비슷했다. 1개 분대 정도되는 그들을 만났을 때 우리는 떨어져나온 부대라고 착각했다.
아주 잠깐 인사가 오가는데 우리 분대장이 그들에게 뜬금없이 말했다. "김일성 김정일 김정은 개새끼해봐"
그들이 왜 이런 물음을 하냐고 하자 우리 분대장은 그들을 쐈다. 그리고 품을 뒤지는데 북한군이었다.
그러면서 우리에게 "북한 새키들은 이게 최고라니까."라더라. 꿈이니까 가능한 일이겠지만 이때는 간담이 서늘했다.
어디에서도 승전보는 들려오지 않았다. 내가 참전한 전투에서도 조금 싸우다보면 즉각 퇴각이었다.
전쟁은 길어졌다. 한국 정부는 괴멸했지만 한국군과 국민들은 항복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중에서도 나라를 팔아먹는 놈은 존재했다. 멀쩡히 곳곳에서 한국군이 싸우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무슨 장관이란 놈이 더이상 싸울 힘이 없고 이게 국제사회의 의지라면 따르겠다며 일본에 항복했다.
한국군도 곳곳에서 이탈이 일어났고, 일본에게 넘어가는 사람이 많았다.
어떤 놈은 일본에게 합쳐져서 차라리 다행이라며 길거리에서 외치는 녀석도 있었다.
가만히 있다가 북한에게 당하느니 차라리 일본이 낫다는 사람도 있었다.
친일친일하지만 실제로 거의 본 적은 없었고 친일파하면 유명한 놈들만 떠올랐지만 그게 아니었다.
내 옆사람이 친일이었고 뒷사람은 주사파였다. 웃기는 놈들.
항복 선언 이후 우리 대대장은 북한에게 가느니 일본에게 가겠다며 일본정부 보호아래 임시정부가 있는 부산으로 가서
투항했다. 지휘관을 잃은 우리부대는 하나둘 흩어졌다. 결국 나를 포함해 남아있던 사람들도 부산으로 향했다.
그때 우리 머릿속에 남은건 "어차피 더 싸울 수 없어서 항복해야한다면 북한보단 일본이 좋지 않을까?"였다.
어차피 그대로 있으면 우린 죽을 테니까. 목숨이 아까웠다.
가족이 보고 싶었다. 그래서 우린 부산으로 향했다.
나는 우리집에 갔고, 우리 고양이는 살아있었다!
고양이는 날 향해 반갑게 달려왔고, 나는 고양이를 끌어안았다.
누군지는 모르겠지만 사료 나머지 한팩은 곱게 뜯어져 있었다.
참 고마운 사람이다. 전쟁 때문에 힘든 와중에.
그때였다.
하늘에서 무언가가 날아왔다.
그것은 부산에 떨어졌고, 그곳에 있는 우리에게도 보였다.
나는 그게 무엇인지 모르면서도, 꿈속이니까 아마 알았겠지.
그건 북한에서 날아온 핵이었다.
그 핵은 부산을 날려버렸고, 남아있던 우리도 날려버렸다.
그리고 나는 꿈에서 깨어났다.
개꿈이라면 개꿈이지만 너무 현실적이었다.
그리고 굴욕감이 자리잡았다. 술만 마시면 내가 예비역 용사요 전쟁만 나면 당연히 달려가서 나라를 위해 싸울 군인이었는데
현실도 아닌 꿈에서 몇가지 어려움이 있다고 항복한 내 처신이 부끄러웠다.
하지만 꿈속에서 나는 느꼈다. 항복을 결심한 순간 마음이 편해졌다. 이제 나는 살아서 가족을 보겠구나. 그런 마음이 들었었다.
꿈은 꿈일 뿐이지만 꿈에서 깨고 약 30분간 나는 부끄러워 자리에서 일어나지 못했다.
나도 결국은 내 보신을 위해서 항복한 사람이 아닌가? 실로 부끄러웠다.
그 부끄러운 마음을 토로할 곳이 없어 이렇게 꿨던 꿈을 적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