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였을까.. 그런마음을 먹은것은
가만히 하늘을 올려다보며 생각에 잠긴다.
나는 스스로를 최고라 자부하며 살아왔고…….
다른 이들또한 나를 최고라 불러주었다.
가만히……. 가만히 그 때를 돌아보면,
아직까지도 선명히 떠오르는 무언가들이 있었다.
카서스로 쿼드라킬을 했을 때, 다이애나와 럭스를 자신있게 픽하던 때…….
그 때의 나에게, 나는 물어보고 싶다.
"뭐가 다른거지?"
조용히 질문을 읊는다.
허공에 던져지는 질문은 의미없이 흩어지고 대답없는 혼잣말은 스스로에게 되돌아온다.
처음부터…… 대답은 알고 있었다.
그는, 세계 최고 AP 미드 정민성은 조용히 고개를 숙였다.
가장 중요한것이 달라져있었다.
· · ‥…··─━☆
새장의 문을 열어본 적이 있나?
그 말이 다시금 떠올랐던것이 얼마 전 일이었다.
계기가 있었던것은 아니다.
늘 가지고 있었던 불안함이 수면 위로 떠올랐던것에 불과했다.
가슴에 가지고 살아왔던, 그 한 문장이 솟아난것에 불과했다.
하지만 그것은 동시에 그의 마음 속을 대변하는 문장이 되었고…….
어느샌가, 그 말에 자신의 감정을 담아가기 시작했다.
· ‥─━☆━─‥·
"뭐해?"
동갑내기 정글러인 동진이 그에게 말을 걸어왔다.
민성은 그 말에 대답하지않고, 가만히 마우스 위에 올려진 손가락을 까딱거릴 뿐이었다.
화연에 띄워진 패배라는 글자를 바라보는 민성의 눈은 담담했다.
평소에도 있었던 일이다.
아무것도 특별할 것은 없었다.
그러나 민성은 가만히 무언가를 생각하듯이 그것을 바라보고 있었다.
동진은 그런 민성의 모습을 잠시 바라보다가, 이내 천천히 몸을 돌렸다.
동진의 배려를 아는지 모르는지…… 민성은 그저 가만히 화면을 바라보고 있었다.
가만히, 가만히, 가만히…….
……그러다가, 민성은 이를 악물었다.
분했다.
자신에게 화가 났다.
게임에서 지고, 모니터에 패배라는 단어를 띄우게 하고, 또, 또, 또…….
……그런데도 화가 나지 않는 자신에게 화가 났다.
어느샌가 게임에서 지는게 당연한 일이 되어가고 있었다.
일일이 화를 내는게 바보스러워질만큼, 그래서 화를 내기보단 다음 게임을 준비하는게 나을만큼…….
그런 자신에게, 민성은 화가 났다.
더이상 화가 나지 않았다.
지는게 분하지가 않았다.
게임에서 이기고 싶어 밤잠을 새는 날도 줄었다.
지면 지는대로, 이기면 이기는대로…….
어쩔수 없다는 말을 변명으로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그렇게 타협하며 살아가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한 사실을 가만히 생각해본 뒤에야 알 수 있었던 자신에게…… 민성은 화가 났다.
하아……. 그의 입술 사이로 깊은 한숨이 샜다.
그리고선 조용히 이를 악물곤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섰다.
베란다로 나가 천천히 하늘을 올려다본다.
소리없는 밤하늘은 여전히 은은했다.
그런 당연한 사실에 괜히 그는 웃음을 지었다.
새장의 문을 열어본 적이 있나?
새삼스럽게 그 문구가 다시 올라온다.
자신이 느껴왔던 그 마음을 완벽히 대변해주는 문구라고 생각했다.
피식, 민성은 다시 웃음을 터트렸다.
그래, 새장이었다. 문득 떠오른 생각에 민성은 미소를 지었다.
자신은 새장의 문을 열어본 적이 없었다. 아니, 열어주고 싶지 않았다.
내가 아는 나의 모습과, 남들이 보는 나의 모습…….
둘 중 아느 것이 내 진짜 모습인지는 알 수 없다.
그것들은 모두 비슷하지만 다르며 똑같은 것은 단 하나도 없다.
우리는 모두 새를 키운다.
마음이라는 새장에 이미지라는 새를 키운다.
자신이 생각하는 자신, 남들이 생각하는 자신은 모두 그들이 마음속에 기르고 있는 새일터였다.
새장 속에 가두어둔 새일터였다.
그 사람의 본모습 대신에, 새장 속의 새를 볼 터였다.
그러다가 어느 순간……. 깨닫게 된다.
그 사람의 진정한 모습을. 진짜 모습을. 새가 아닌 사람의 모습을.
그 때, 우리는 새장을 연다. 새를 날려보낸다.
나에게 있어서 나는 어떤 모습인가?
그 모습은 과연 새장 속의 새일까, 아니면 내 본모습일까?
지금까지 그것을 알 수 없어 수없이 고민해왔다.
확신이 서지 않아 생각을 거듭해왔다.
그러나……. 방금 전의 그것으로 깨닫게 됐다.
자신은 아직까지도 새장을 열지 못하고 있었다.
"새장의 문이라……."
그것은 자신에게로의 비수와 같다.
과거에 얽매여, 사라진 영광에 묶여 나아가지 못하는 자신에게 날리는 치명타와 같았다.
새장의 문을 열지 않는 사람은 언제나 새를 바라보기만 할 뿐이다.
정민성, 래피드 스타 정, 베스트 에이피 인더 유니버스.
과연 진짜 자신은 무엇이고 새장 속의 새는 누구인가.
그것을…… 이제는 깨달은 그였다.
'문을 열어주면, 우리는 빈 새장을 안고 남은 날들을 살아가겠지. 먹먹한 구멍은 평생 매울 길이 없다……. 새가 새장으로 돌아오는 일은 없으니까. 다만 추억하겠지. 때로 울면서, 후회하면서."
피식. 민성은 웃음을 흘렸다.
새가 돌아오는 일은 없다. 그래……. 어떤것이 새장 속의 새인지 깨달아버린 이상, 그 새가 추억에서 돌아올 일은 없을 것이다.
힘겨운 겨울 속에서 자식들을 보듬어주던 초식동물은 이제 그 곳을 떠났다.
자신이 있는 겨울은 예전의 아름다운 겨울이 아니었고, 남아있는 앞길은 안락함없는 힘겨운 가시밭길이었다.
그 곳을……. 자신은 걸어갈 자신이 없었다.
새를 떠나보낸 자신은 그 곳을 걸어갈 수 없었다.
떨어져도 다시 날아오르는 얼음불사조는 이제 없었다.
문이 열린 새장에는 새 대신에, 그 새와 함께 했던 추억만 가득했다.
그리고 지금은, 정민성이라는 이름의 철부지 한 명만이 서 있을 뿐이었다.
☆━─··…‥· ·
경기 결과만이 올라오던 적막한 인터넷 기사 사이트에 한 기사가 올라왔다.
래피드스타, 빠른별 정민성의 은퇴 소식이었다.
그는 갑작스런 은퇴 결정을 하게 되어 죄송하다며 선수 생활 동안 항상 응원해주었던 팬분들께 감사하다며 사과의 인사를 전했다.
이전만큼 즐거운 게임도, 팬들이 기대에 부흥하는것도 너무나 힘들었다는 그의 속내를 담은 영상도 올라왔다.
게임의 결과에 따른 희비가 무뎌졌다는것도 게임을 예전처럼 대하기 힘들다는 표현이었다.
자존심도 강하고 그만큼의 자부심도 있었던 그가 고개를 숙이는 모습은 모든 이들의 가슴을 아릿하게 적셨다.
사람들이 그에게 품었을 환상이 어떤 모습일지는 모른다.
최고의 자리에 있었던 그를 지켜보는 이들의 새장속에 그가 어떤 모습이었을지는 새장의 주인만이 알 수 있다.
그러나, 확실한것은 때로는 불사조로, 때로는 병든 새로 모습을 바꾸어 모습을 드러내는 그 새의 모습에 많은 이들이 기대를 품었었다는 것이다.
사람들의 마음에 새를 안겨주었던 그가 자신이 가진 새장의 문을 열었을때…….
그가 안겨준 모든 새장의 문이 열려 수많은 새가 날아올랐을때…….
그리고, 그 자리에 남은 새와 함께 했던 아련한 추억을 되돌아볼때…….
그제서야 그들은 깨달을 수 있을 것이다.
새로 인해 가려졌던 그를. 정민성이라는 남자를.
새장을 통해 새를 알고, 새를 통해 정민성이라는 남자를 알고…….
그리고 그 남자가 알려준, 새를 추억하는 아름다움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