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2015년을 맞아 3인 가족 결성이후 첫 가족여행을 다녀왔는데 기억에 남는 일들이 생겨 오랜만에 글을 써 봅니다.
수줍고 부끄러움을 많이 타는 성격의 나와 다르게 와이프는 친화력이 매우 강한 편이다. 와이프는 요즘 출산이후 육아생활을 하고 있어 그런지
산후조리원 동기 네 명을 자주 만나는 편이다. 나는 와이프에게 그 모임의 이름을 먹방 8인방이라 지어주었다. 그녀들이 만나서 어떤 대화를 주로 나누는지 자세히는 모르지만 확실한 건 서로의 남편 자랑을 종종 한다는 것이었다. 동기 A의 남편은 집안 일을 엄청 잘한다고 한다. 동기 B의 남편은 매주 부인을 위한 깜짝 이벤트를 해준다고 한다. 그리고 동기 C의 남편은 항상 부인에게 존대말을 하고 한 번도 화를 내 본적이 없다고 한다. 마지막으로 동기 D의 남편은 잘생겼다. 와이프는 D의 남편이 가장 부러운 것 같았다. 진심으로 부러워 하는 말투였다.
그에 비해 나는 집안 일도 서투르며, 와이프에게 미소를 짓게 해주는 이벤트 대신 일주일에 한 번씩 술마시고 늦게 들어가 화를 돋군 뒤 살신성인의 정신으로 인간 샌드백 이벤트만 해줄 뿐이었다. 결정적인 점은 그 모든 단점과 만행을 상쇄시켜줄 수 있는 외모도 안된다는 점이었다. 결국 와이프는 동기들에게 "우..우리 남편은 고기를 안타게 잘 구어"라고 이야기 했다고 한다. 그 덕분에 와이프의 조리원 동기들이 나를 처음 보았을 때 "그렇게 고기를 잘 구우신다면서요"라는 말을 들었다. 그리고 여행에서 고기만 구웠다. 열심히 구웠다. 안타게 먹기 좋게 육즙이 살아있게 구웠다. 식당 종업원도 감탄했다.
누가 처음 제안을 했는지는 모르겠지만, 물론 나는 유려크한 발기인으로 와이프를 생각하고 있다. 이제 아이들도 10개월을 넘었고, 2015년을 새해를 맞아 제주도로 가족여행을 함께 떠나자고 이야기를 했는데 만장일치로 찬성했다고 한다. 못생긴 샤이가이인 2글자로 압축하면 추남 나는 처음보는 사람들과 여행을 가기 싫어 여러 핑계를 생각했다. "추운 겨울에 무슨 여행이냐 따뜻한 봄에 가자", "땅콩항공 사건 이후 우리는 비행기 탑승을 보이콧 해야된다" 등의 가기 싫은 표현과 어필을 해보았지만, 이미 제주도 똥돼지를 씹는 상상을 하며 잔뜩 기대하고 있는 와이프 마음을 돌릴 수는 없었다.
결국 "아~ 모두 함께 가는 즐거운 여행이야! 아이~ 기대되!"하는 표정이지만 마음은 동원 예비군 훈련을 떠나는 전날과 비슷했다. 뭐... 가기 싫었다는 것이다. 하지만 와이프와 아이는 너무 "아이 신나" 하는 모습이라 티도 못내고, 공항으로 향했다. 여행보다 더 싫었던 것은 와이프가 다른 엄마들 앞에서 이쁘고 젊게 보여야 된다고 스키니 진을 입혔는데, 아.. 글로 작성하기에는 약간 민망한 부위가 자꾸 .. 불편한게 더 싫었다. 아.. 내 불..., 아.. 내 고....
우리가 공항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세 가족이 도착한 상태였다. 와이프들은 마치 오랜만에 친구를 만난 것처럼 반가워했다. 여행 전날도, 그 전전날도 만나서 제주도 정복 계획 세웠으면서!!!!!! 하지만 남편들인지 짐꾼인지 구분이 되지 않는 불ㅇ...아니 고...이 불편한 스키니를 입고 엉거주춤 서 있는 나를 포함한 세 남자는 뻘쭘하게 서로에게 인사를 한 뒤 가방을 들고 멀뚱멀뚱 서 있을 뿐이었다. 와이프는 내게 "어서 분위기를 훈훈하게 만들어 봐" 라는 눈빛을 보냈다. 나는 재빨리 와이프의 의중을 캐치한 뒤 이 어색함을 깨고 싶어, "하하하.. 이렇게 평일에 휴가를 내서 여행을 떠나고 다들 재주도 좋으시네요! 그래서 제주도로 떠나는 건가. 하하하.." 라고 했다.
괜히 했다. 살짝 분위기를 살펴본 뒤 내 입을 함부로 놀린 것에 대한 후회가 들었다. 한 남편이 "하하하하" 웃으면서 "유우머 감각이 있으시네요!" 라면서 분위기를 살려 보려 했지만 이미 시진핑과 아베가 만났을 때 보다, 무리뉴와 벵거가 함께 인터뷰할 때보다 분위기는 더 얼어붙었다.
부인은 민망했는지 내게 도너츠나 사오라며 멀리 보냈다. "재주도 좋아서 제주도 간다" 이거 괜찮은 드립인데, 혼자 그 드립을 생각하며 "아직 나의 개그 감각은 죽지 않았어" 하며 깔깔 웃었던 나의 어제 모습을 재생하며, 저 사람들은 삶이 힘들고 지쳐 웃음을 잃어 내 개그를 이해하지 못했을거야 라고
나 자신에게 위로를 해줬다.
마지막으로 남편이 잘생겼다고 자랑했던 D의 가족이 왔는데, 이번에도 모두 말이 없었다. 아니 말을 할 수 없을 정도로 그는 정말 잘생겼다. 그리고 그는 잔인하게 세 남편을 맥주 안주 아니 전기구이 오징어 세봉으로 포장시켜 버렸다. 그 중 나는 불ㅇ 아니 고..에 압박을 주는 스키니 입은 오징어였다.
남편들의 첫 만남에서 D의 남편은 공공의 적이었지만, 여행에서 우리는 외모보다 멋있는 그의 매력을 발견하게 된다.
"오~오~" 하는 기대하는 마음의 와이프와 아이들과 "난 누군가 또 여긴 어딘가" 하는 마음으로 아빠들은 탑승 수속을 마쳤다.
내용이 길어질 거 같아 제주도에서 있었던 이야기는 2부에 쓰겠습니다. 결론은 겨울에는 처음 제주도를 가봤는데, 좋더라구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