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희 집에는 이모님이 종종 방문하십니다. 이모님이라고 부르고는 있지만, 실상은 어머니의 고향친구로 언니동생하며 자라왔던 사이랍니다. 이분의 직업은 연애시장 속 전쟁을 조율하는 마담이신데.
소중한 고객님을 향해 이렇게 말하고는 합니다.
"거짓말! 거짓말! 거짓말만 일삼으면서, 본인은 자각이 없어!"
말을 하면 매번 달라지고, 그 요구에 맞추면 엉뚱한 핑계를 대지를 않나. 실제 말과 본심이 다르다는 것을 자각하면서도, 거짓말에 거짓말만. 모순을 지적하면 성질은 어찌나 부리는지.
보통은 부모가 가져오는 사진과 조건으로 시작되는 것과 달리, 이모님은 결혼할 장본인을 데려올 것을 주문합니다. 바로 여기서 거짓말이 하나 들통나지요.
사진과 실제 용모가 다른 겁니다. 사진은 전성기의 사진, 그러나 실물은 10년 후.
"이게 무슨 하와이 사탕수수농장 근로자냐?!"
여기서 '하와이 사탕수수농장 근로자'란 의미는 일제강점기 당시 조선사람들은 속아서, 혹은 실상을 알고도 일본놈 밑에서 일하기 싫어서 하와이로 이주했답니다. 당시 가방끈이 짧고 영어에 능통하지 않은 조선인이 취직하기 쉬운 곳이 사탕수수농장이었습니다. 여자와 결혼할 정도로 자산을 모은 노동자들은 고국에 본인의 사진(미국으로 오기 전에 찍은 사진)을 보내서 사진맞선으로 아내를 구했지요. 멋들어진 모습에 반해 배를 타고 온 아내들은 실망에 울며불며 시집을 갔다고 합니다. 즉, 새빨간 거짓말이라는 의미. 그때는 사진찍을 돈조차 아껴야 했으니 정상참작의 여지라도 있지만, 지금은....
이제 고객님들의 거짓말에 대해 논해보겠습니다.
사례1. 철부지 그녀.
어느날 A양이 왔습니다. 그녀는 의자에 앉아마자 그녀의 이상형을 말했습니다. 빠르고 당당하게.
A양 : 공무원에 인물은 준수하고, 부모에게 재산 좀 물려받을 사람이면 좋겠어요. 키도 크고 성격도 좋고...(이하 생략)
이모 : 혹시 직장은 다녀?
A양 : 아니요.
이모 : 자기 집안에 재산은 있어?
A양 : 아니요.
이모 : 매일 아침 거울을 들여다보면 어떤 생각이 들어?
A양 : 이만하면 예쁘다는 생각이 들죠.
이모는 암담한 마음이 들어 함께 온 어머니를 쳐다보았습니다. 그녀는 간절한 눈빛으로 '어떻게 좀 해 주세요.'라고 말하고 있었지요.
그래. 가끔씩 이런 철부지가 흘러오곤 하지.
이모 : 마침 경찰이 하나 있는데, 만나볼래?
시커먼 속내로는 키득 웃으며 맞선장소를 섭외해 주었습니다. 화를 내며 따지면 주제파악이나 하라고 일갈할 마음으로.
그런데 A양은 예상과 달리 해맑은 목소리로 감사인사를 하지 뭡니까?
A양 : "준수한 남자를 소개해주셔서 감사해요. 일평생 이렇게 멋진 남자는 처음이예요."
이모는 귀를 의심했습니다. 소개시켜 준 남자는 120kg에 대머리로 여자들마다 싫다고 딱지놓았기 때문이죠. 고도의 비아냥인가 싶어 가만히 듣고 있었습니다.
A양 : "어렸을 때부터 씨름선수를 볼 때마다 가슴이 뛰곤 했지요."
이모의 본심 : 씨름선수는 근육이지만, 그 남자는 지방덩어리야.
A양 : "수줍게 웃으며 말하는 얼굴도 매력덩어리예요."
이모 : "대머리인데도?"
A양 : "괜찮아요. 두상이 좋은걸요. 아예 빡빡 밀면 제 취향을 완전히 만족시켜요."
이모의 본심 : 진심이냐? 진심이야?
A양 : "....왜 그러시죠? 목소리가 영 안 좋으신데."
이모 : "경찰월급, 그리 좋은 편이 아니야."
A양 : "알아요. 짜죠."
이모 : "그 총각 재산을 물려받을 형편은 아니거든."
A양 : "아~. 그걸 걱정하셨구나~. 사실 될되로 되라는 심정으로 대충 말한 거였어요. 준수한 인물을 소개주겠다고 희망을 심어주고는, 어디서 멸치같은 남자들만 소개시켜 주잖아요. 어차피 이상하게 생긴 인물을 만날테니, 그 정도 조건이 아니면 결혼할 마음이 안 생기겠다 싶어서."
멍한 눈으로 전화를 끓은 이모는 손바닥으로 얼굴을 덮었습니다.
단번에 커플이 결성되다니. 경사로구나. 기쁜 마음으로 축복해주어야 하는데.... 왜 이리 기분이 더럽지?
사례 2. 나는 활달한 여자가 좋아요.
B군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본인이 무뚝뚝하니 활달하고 애교있는 여자가 좋겠노라고. 거기에 소소하게 용돈벌이라도 할 수 있는 기술만 있으면 딱히 가리지 않겠다고.
그래. 독신생활에 지친 남자들이 그런 말을 하지. 실제로 별로 가리지도 않고.
이모는 흐믓한 미소를 지으며 미용실 처녀 C양을 소개했습니다. 활달한 성격을 좋아하니, 분위기 업 시키는 위트있는 농담을 부탁해,라고 C양에게 신신당부했습니다. 처음 보는 남자 앞에서 어떻게 그러냐는 C양을 어르고 달랬건만.
맞선이 끝나고 C양에게서 항의전화가 온 것입니다.
C양 : "정말, 정말. 이 남자. 활달한 여자를 좋아하는 사람 맞아요? 말을 하면 할수록 스마트폰만 가지고 놀잖아요!"
이모 : "아닌데. 그럴리가 없는데. 미안해. 일단 B군과 이야기 좀 해볼게."
그런데 B군도 나름대로 불만이 많았습니다.
B군 : "아니, 어떻게 된 여자가 늦었으면서 미안하다는 말도 없습니까?"
이것은 거짓말. 나중에 C양의 말에 따르면 그날따라 스타킹 줄이 계속 나가는 바람에 편의점에서 어찌 구하고 난 후에는 왠지 늦을 것 같아서 미리 전화로 늦을 것 같다고 알리고, 레스토랑에서 만난 후에 다시 미안하다는 말을 했다는 것이 밝혀졌음.
B군 : "여자라면 남자를 만나기 전에 거울 한번 들여다 볼 생각이 안난답니까? 이마에 땀이 맺혔는데도 정리하지 않고....."
일단 입을 열자, 손톱길이부터 매니큐어 색깔까지 흠을 잡기 시작했습니다.
이모의 본심 : 젠장. 보기와는 달리 까다로운 놈이었어.
일단 미안하다고 사과하고, 진짜 이상형을 알아내기 위해 이리 캐고 저리 캐보았지만.
B군 : "그냥 활달한 여자만 소개달라니까요!"
이모의 본심 : 이게 뻔한 거짓말만 하고 있네!
이모는 거짓말만 하는 고객에 질려버린 상황이라, 근무의욕이 박살나는 것을 느꼈습니다. 그래서 명단에서 대충 뽑아서 소개하고, 남자에게 항의전화를 듣는 것을 너댓번 반복한 후에 드디어 이상형의 여자를 만났다는 전화를 받았습니다.
이모 : "그 아가씨는 어떤 점이 마음에 들었나요?"
B군 : "취미가 테니스라고 말하는 순간에요."
이모 : "??"
B군 : "주말마다 함께 테니스를 치러오는 부부를 볼 때마다 내심 부러웠어요. 저런 친구같은 아내가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거든요."
이모 : "C양과 비교하면 어때?"
B군 : "솔직이 C양의 용모는 더 뛰어나지만, 수다를 떨수록 머리가 아파오는 것이. 벌써부터 이런데, 애를 키우면 더 하겠다는 생각에 안담한 마음이 들어라고요. 다음부터는 조신하게 있는 것이 좋을거라고 충고해주세요."
이모의 본심 : 임마! 말이 다르잖아!
이런 식으로 몇년을 하다보니 이모님은 고객을 앞에 두고 '거짓말을 하지 말아주세요.'라고 요구하지만.
매번 매번 고객의 거짓말에 농락당하고 맙니다. 더 큰 문제는 본인이 거짓말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는 점이지요. 마음속에는 이미 이상형이 있건만, 주변사람들의 의견을 듣고 논리적으로 짜맞춰진 것을 이상형이라고 믿게 되어서 설득은 통하지 않고, 실제로 만난 후에야 깨닫게 된다는....
이모 : "난 하루에도 수십번씩 생각해. 낳아준 부모님들에게 각서를 한 장 받고 싶다고."
엄마 : "무슨 각서?"
이모 : "귀한 자식에게는 안 될 일이지만, 무의미한 수고를 줄이기 위해서라도, 한국인의 전통방식을 채택하면 안 되겠냐고."
엄마 : "???"
이모 : "사또식으로 말이야."
엄마 : "사또?"
이모 : "특히 '저것이 진실을 말할 때까지 매우 쳐라!'라는 대목이 끌려."
그 때는 농담인 줄 알고 웃었습니다. 하지만 곧 정색하는 얼굴에서 진심을 읽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