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은 사람들은 한국과 대만과의 관계를 잘 모르는것 같다.
그래서 대만사람들이 한국인을 향해 때로는 지나와 수교한 배신자라고 욕하는 것에 대하여 미안한 마음을 가지는 사람들도 있다. 역사적 사실을 제대로 알고 대만인을 바라보면 지나인 못지않게 대만인이 얼마나 못된 사람인지 알 것이다.
1. 대만과 외교 단절된 나라는 한국 뿐인가?
아니다. 일본이 제일 먼저, 다음이 미국, 다음이 사우디아라비아 였다. 아시아에서 가장 늦게까지 대만과 수교하고 있던 나라는 한국뿐이었다. 1992년 한국과 지나가 수교함으로써 한국은 대만과 수교를 단절하게 되었다.
2. 누가 먼저 외교 단절하였나?
일본, 미국, 사우디아라비아, 한국 모두를 상대로 대만은 스스로 먼저 외교단절을 통보하였다. 즉, 대만은 하나의 중국이라는 명분으로인해 두개의 중국과 수교하는 나라와는 수교할 수 없다고 주장한 것이다. 지나는 북한과 수교단절 없이 한국과 수교를 맺고 싶어했으며, 한국 역시 대만과 수교단절없이 지나와 수교하기를 원했지만 대만은 이를 수용하지 못하고 한국과의 외교단절을 선언했다. 지나와 한국의 수교에 대하여 북한이 지나와 수교단절을 하지 않은 것과 대조적이다.
3. 대만인들은 한국인들을 호구로 안다?
그런면이 좀 있다. 먼저는 지나와 수교를 맺은 여러 나라들에 대하여는 그리 악감정을 표출하지 않지만 유독 한국에 대하여는 수교단절문제를 놓고 욕을 한다. 대만인들 일본, 미국에 대하여는 여전히 호의적이다. 그러나 한국인들에 대하여 유난스럽게 욕을 해대는 자들이 있다. 왜그런지 연구좀 해야 할 일이겠다. 대만인들의 한국 헐뜯기는 유별나다. 88올림필 당시에도 대만인들은 한국을 험담한 것으로 유명하다. 월그컵 당시에는 한국을 욕하는 무리중에 지나인들 만큽이나 대만인들이 한국을 폄하하혔다. 아마도 대만인들 중에는 역시 지나인들의 중화사상(왕자병)에 사로잡혀 과거 자신들에 조공 받치던 속국이라고 무시하는 것 같다.
4. 대만과 지나
대만이나 지나 둘다 한때는 두개의 중국은 있을 수 없다고 으르렁 거렸다. 국제무대에 새롭게 등장한 본토 지나와 다른 나라들이 수교를 맺자 이에 성이난 대만은 그런 나라들과 수교를 단절해버린다. 그러다가 국제사회에서 고립되다보니 최후로 생각한 것이 독립을 생각해낸 것이다. 대만 역시 본토수복의 꿈이 있었다. 그러나, 이제는 그 꿈은 사라진것 같다. 오로지 독립만을 부르짖는 것 같다. 그와 반대로 과거 본토수복을 부르짖으며 하나의 중국을 꿈꾸던 국민당은 지나 공산당과 손을 잡고 평화적 통일을 기약하고 있는 것이다. 한국사회를 두고 요지경이라고 하지만, 대만은 더욱 요지경인 것이다. 냉정한 현실을 읽지 못하고 자기에게 잘 못보이면 재미없다는 식의 똥배짱의 인간들이 대만인이다. 그리고 한다는 것이 가장 오래도록 우방으로 남아줬던 한국까지 스스로 차버리고, 오히려 한국이 배신했다고 욕을 하고 있는 것이다.
5. 여전히 한국을 비하하는 한국인
이런 정황을 모르고 한국인 중에는 자국을 욕하고 비하하는 자들이 난무하다.
대만과의 수교단절은 지나에 대한 굴욕외교라고 욕을 해댄다. 한국은 지나와 수교하는 조건으로 대만과 수교를 단절하려 하지 않았다. 우리는 특사까지 보내려했지만 대만이 먼저 단교를 통보하고 특사도 사양했다. 만약, 대만과 단교할 것이 두려워 지나와 수교를 취소했다면 그것은 반대로 대만에 대한 굴욕외교가 아니런가?
나는 한국인들이 왜이렇게 자신의 모국을 혐오하고 비하하는지 모르겠다. 걸핏하면 사대외교한다고 조롱하고, 남이 잘못한 것도 한국이 잘못했다고 하는지 모르겠다, 아무레도 그들은 한국인이지만 한국 종자가 아니던가. 아니면 한국말하는 외국인이 아닐까?
여하튼, 나는 한국과 대만과의 관계사를 다시 조명하며... 우리가 대만에 대하여 그토록 비정한 나라는 아니었음을 말하고자 한다. 한국인들은 그렇게 비정한 사람들이 아니다. 더불어 남을 함부로 욕하는 사람들도 아니다. 우리가 베트남을 욕하는 것 보았는가? 우리에게 욕하지 않는 나라에 대해서는 한국인은 절대로 욕하지 않는다. 현재 한국인들이 욕을 하는 주변나라는 그들이 먼저 한국을 욕하기 때문인것이다.
지금이라도 대만이 한국과 수교를 원한다면 한국은 언제라도 수교할 준비가 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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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자료 1]
1949년 중화인민공화국이 세워지자 국민정부는 타이완으로 옮겨왔다. 1948년 8월 13일 한국은 타이완과 단독수교를 맺고 상호 상주공관을 설치했다. 양국은 항공협정(1952. 3),무역협정(1961. 3),문화협정(1965. 5),해운협정(1983. 9),항공운수협정(1986. 11) 등을 체결하여 관계를 긴밀히 유지해왔다. 1949년 장제스 총통이 한국을 방문했으며, 1966년 2월 박정희 대통령이 타이완을 방문했다. 양국은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반공국가로서 서로의 입장을 지지해왔으며, 모두 아시아의 신흥공업구가로서 경제협혁 규모를 지속적으로 늘려왔다. 타이완은 본토수복을 정치적 목표로 삼아 반공친미정책을 추진해왔다. 그러나 중국이 국제무대에 새로이 부각되기 시작하면서, 자유진영의 우방들을 잃게 되었다. 1971년 중국이 국제연합(UN)에 가입하자 국민정부는 탈퇴했으며, 1972년 일본의 중국 승인으로 대일외교관계가 던절되었다. 1979년 중미상호방위조약이 미국과 중국의 수교로 파기되었다. 1990년 타이완은 사우디아라비아와 단교함으로써 아시아에서는 한국만이 유일한 수교국가로 남게 되었다. 그러나 1992년 8월 한국이 중국과 정식으로 수교함으로써 타이완과 한국의 외교관계는 단절되었다. 타이완은 국제적으로 고립노선을 취하고 있으나, 실질적으로는 미국,일본 등과 민간관계의 활동을 계속하고 있다.
[관련자료 2]
대만은 한국과 중국의 역사적 수교를 하루 앞둔 지난 92년 8월 23일 먼저 한국에 '단교'를 통보했다. 대만이 한국 정부 수립 이듬해인 1949년 1월 4일 한국을 승인, 명동에 대사관을 개설한 지 44년 만의 일이다. 대만은 이어 항공기 운항금지와 한국산 과일 수입거부, 자동차 수출쿼터 취소는 물론 1천억달러 규모의 6개년 국토개발계획 한국업체 참여 거부 등 일련의 보복 조치를 단행했다.
원본출처 :
데일리 차이나 한민족님의 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