헐... 부인 덕분에 베오베를 2번이나 갔네요. 재미있게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리고 다행히도 부인은 오유를 하지 않습니다.
7살 어린 부인과 결혼했는데, 몇몇 분들 상상하는 것 처럼 어린 동생과 사는 느낌은 절대 아닙니다. 세대차이라는 것도 별로 느껴지지 않구요.
굳이 세대차이를 느낀다면 노노노 라는 노래 제목을 들으면 저는 하수빈을 부인은 에이핑크를 먼저 생각하는 정도랄까요.
부인과 제가 세대차이를 서로 느끼지 않는 이유는 제가 심각한 동안이라 말하지만 남들은 추남이라 하는 점도 있지만, 둘 다 책을 좋아하고
같이 책 이야기하며 토론하다 가끔은 폭력이 오가는 같은 취미가 있어서 그런거 같지 않나 싶습니다. 그럼...
부인은 키도 큰 편이지만 떡대도 상당히 좋은 편이다. 연애할 때 조심스럽게 과거 운동을 한 적이 있냐고 물으니 그녀는
호탕하게 웃으며 중학교 때 축구하는 모습을 본 체육선생님의 권유로 테니스를 했었다고 했다. (축구를 잘했는데 왜.. 테니스를....)
참고로 나는 생긴 건 NBA출신 특급 흑인 용병인데, 운동 능력과 감각은 흑인 신생아 수준이다.
그녀는 크게 웃을 때, 혹성탈출의 분노한 시저처럼 잇몸을 들어내며 웃을 때 내 등짝을 때리기도 했는데 그때마다 발끝까지 저렸는지 이해가 되었다.
부인은 나서거나 적극적인 성격은 아니었지만, 신체를 활용하는 스포츠나 게임 등을 할 때는 180도 돌변해서 승부사 다운 승부욕을
보였다. 그녀의 승부사 기질과 타고난 체력을 온가족 앞에서 증명한 일이 있었는데, 올 해 추석 우리 고향의 시장에서 추최한 아줌마 팔씨름
대회에 출전하였을 때 였다.
그 발단은 온가족이 함께 장구경을 갔었는데, 아버지께서 우리 가족 중 누구든 시장에서 열리는 대회에 1등을 하면 100만원을 주겠노라고 말씀하셨다. (물론 진심은 아니셨다.)
첫째 날은 노래 자랑, 둘째 날(이 날이 추석 당일 메인 이벤트 였다)은 아줌마 팔씨름 대회와 남자 씨름대회가 열렸다.
첫날 노래 자랑 대회에 출전한 자칭 고추밭 에미넴이라 불리는 작은 형은 시골 할머니들 앞에서 에픽하이 노래를 부르며
현란한 랩과 삿대질 퍼포맨스를 선보였지만 "저 새파랗게 젊은놈이 시방 뭐라고 하는겨," 라는 평가와 함께 철저한 외면을 받은 채 탈락했다.
그리고 둘째 날 과감하게 씨름대회에 출전한 나는 1차전에서 흑인 신생아 다운 운동 감각을 뽐내며 시작과 동시에 바닥에 누웠다.
신생아는 절대 혼자의 힘으로 서있지 못한다.
소나 끌고 다니던 쟁기를 내 몸에 부착하고 밭을 갈던 모습을 기억하시던 아버지는 내심 나에게 우승은 못하더라도 집안 망신은 시키지 않겠지
라고 생각하셨는데, 모래를 털며 "헤헤 발이 미끄러졌네~"라는 표정을 지으며 씨름장을 나오는 내게 "네놈에게 그동안 먹인 쌀밥이 아깝다" 라는
표정을 지으셨다.
이제 마지막 남은 건 여자 팔씨름에 출전한 막내 며느리, 바로 부인이었다. 물론 다른 사람들이 봐도 부인은 우승 후보감 이었다.
함께 출전한 아줌마, 할머니들은 "저것은 반칙이여, 왜 아마추어 노는데 프로가 와" 하는 표정이었다.
예상대로 조조를 떠나는 관우가 여섯 명의 장수 목을 거침없이 베어 나가듯, 10년 넘게 가위질로 단련된 손목힘의 달인 미용실 아줌마도,
20년 고추농사로 단련된 고추근육을 가진 아줌마도 부인 앞에서는 맥없이 쓰러졌다.
드디어 결승전, 결승전에는 최근 몇년간 장터 팔씨름 대회의 맹주로 군림하였던 떡집 아줌마가 기다리고 있었다.
들리는 소문에는 남자도 들기 힘들다는 쌀 한가마 정도는 가뿐하게 지고 다니신다는 읍내에 소문이 자자한 괴력의 소유자 였다.
그동안 미소를 지으면서 여유있게 손목 스냅만으로 부드럽게 상대를 제압하던 부인도 살짝 긴장한 표정이었다.
첫 판부터 다른 경기와 다른 분위기가 연출 되었다. 그동안 조용히 상대를 제압했던 부인은 그동안 외치지 않던 사자후를 시골 장터가 떠나가라
크게 외치며 힘을 집중하였고, 상대하는 떡집 아줌마도 "젊은 것이 호락호락하지 않구나"라는 표정과 함께 얼굴에 핏줄을 세우며
힘을 집중하였다. 첫 판은 젊은 패기를 앞세운 부인이 힘겹게 이겼다.
나는 승리한 부인을 보며 흥분해서어깨를 주무르며, "**아 몸을 너무 이쪽으로 치우치지 말고 이렇게.."라고 훈수하자
부인은 다정하게 "닥쳐, 말할 힘도 없어" 라며 화답하였다.
하지만, 북산이 산왕에게 어렵게 승리한 뒤 거짓말처럼 나머지 경기를 져서 탈락했듯이, 부인은 3판 2선승제 경기에서 내리 2패를 하였고
우승은 떡집 아줌마에게 돌아갔다.
나는 아쉬었지만, 아버지는 2등한 부인을 보며 매우 자랑스러운 표정이셨다.
그렇게 명절을 지내고 서울로 돌아가는 차 안에서 팔씨름에서 준우승해서 아깝다라고 말했다. 부인은 휴게소에서 산 오징어를 질겅질겅
씹으며 말했다. "아.. 그거 내가 일부러 진거야.. 첫 판 이기고 잠깐 쉴때 아버님 표정 봤는데, 식은 땀 흘리시더라고.. 우승해서 백만원 달라고
하기도 그렇잖아. 뭐.. 집에 쌀도 없고 해서 쌀이나 받자 하는 마음에 그냥 진거야" (참고로 1등은 시장 상품권, 2등은 쌀 햅쌀 20KG였다.)
부인이 강철 체력에 배려심까지 갖춘 대인배구나 하는 생각도 있었지만, 사는 동안 함부로 깝치지 말아야 겠다라는 생각이 더 크게 들었다.
신혼 초 부터 그랬지만 아무리 맛이 없는 음식을 먹여도, 나 몰래 홈쇼핑에서 용도를 알 수 없는 물건을 24개월 할부로 질러도 난
살기 위해 절대 불평 불만을 하지 않는다. 맞아 죽고 싶지는 않다.
아직 9개월밖에 안된 아들은 자기 엄마가 얼마나 무서운 사람인지 모르고 겁없이 가끔 땡깡을 부리는데
아마 아들도 걷기 시작할 무렵이면 얼마나 자기 엄마가 대단한 다스베이더같은 존재인지 깨닫게 될거라 생각된다.
**아.. 마지막으로 어제 부인에게 맞아 죽을뻔한 이야기..
집에 놀러온 부인 친구(물론 여자/솔로)가 아들을 안았는데, 아들이 그 친구의 가슴을 본능적으로 만졌다고 함.
웃으면서 이야기하는 부인에게 나도 모르게 "서로 윈윈했네" 이랬다가 청소기로 맞아 죽을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