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짤방은 달력 ㅎㅎ)
감히 이순신제독과 넬슨제독을 라이벌로 역어 보았습니다.
라이벌이라기 보다는 서양해전의 유명한 해군사령관과 동양해전의 유명한
해군사령관으로 비교해보자 의도로 적어보았습니다.
도고 제독의 변론
러일전쟁 당시 쓰시마 해전에서 러시아의 발틱함대를 괴멸시켜 일약 세계적인 해군 지휘관이 된 일본의 도고 헤이하치로 제독은 자신에 대한 영웅적인 평가가 있을 때마다 이순신 장군을 거론하며 겸손해하곤 했다.
그는 자신이 영국의 유명한 해군제독 넬슨에 버금가는 군신(軍神)이라는 말을 듣고는,
"영국의 넬슨은 군신(軍神)이라고 할만한 인물이 못된다. 해군 역사상 군신이라고 할 제독이 있다면 오직 이순신 장군뿐이다. 이순신 장군과 비교한다면 나는 일개 하사관도 못된다. "
당시 도고 제독의 함대는 정부가 외국에서 빚을 끌어다 전함을 사들이고 해군을 적극 육성하는 등 국가적, 국민적인 차원에서 더할 나위 없는 지원을 받아 상당한 전력을 보유했었다. 하지만 이순신 장군은 조정의 지원도 없이 자신의 힘만으로 수적 열세에 놓여 있던 함대를 이끌고 다수의 일본 수군을 상대로 눈부신 전공을 세웠다. 훗날 조정에 불려가 감옥에 갇히고, 수군을 포기하고 육지에서 싸우라는 조정의 명이 떨어졌지만, '신에게는 아직도 전선 12척이 있사오니 . . . '란 말을 남기고 분전하여 결국 일본 수군과 23번 싸워 23번을 모두 이기는 세계 해전사에 유례가 없는 전적을 남겼다.
아울러 도고 제독은 자신을 이순신 장군과 비교한 것에 대해 다음과 같은 변론을 펼쳤다.
"나를 조선의 이순신 장군에게 비교한다는 것은 당치도 않은 소리이다. 나는 천왕 폐하의 부름을 받고 온 국민의 정성어린 지원으로 단 한번의 싸움을 이겨냈다. 그러나 조선의 이순신 장군은 조정에서조차 버림받고 국민 누구 하나 도와 주는 사람 없이 스스로 무기를 만들고 스스로 식량을 조달하여 수없이 일본 군대를 쳐부숨으로써 그가 지키는 지역에는 일본 군대가 한 발짝도 발을 들여 놓지 못하게 했다. 당대의 어떤 과학자가 거북선이라는 우수한 과학 병기를 만들 수 있겠는가 ? 그 뿐만이 아니다. 군인에게 있어 가장 중요한 충성심과 애국심을 놓고 볼 때 동서고금을 통해 이순신 장군에 비견될 인물이 그 누가 있겠는가 ? 죄인복을 입으면서까지도 죽음으로써 조국에 최후까지 봉사하지 않았던가 ? 나를 이순신 장군에 비교하는 것은 이순신 장군에 대한 엄연한 모독이다."
일본 해군준장 사토-데쯔라로의 이순신장군 논평.
1926년 "조선지방행정" 제6권 2월호 "절세의 명장 이순신"에서 "장군의 위대한 인격, 뛰어난 전략, 천제적인 창의력, 외교적인 수완등은 이 세상 어디에서도 찾을 수 없는 절세의 명장이라고 하면서 다음과 같은 말을 남기고 있다.
해군장군인 나로서는 평생을 두고 경모하는 바다의 장수로 네덜란드의 Ruyter Michiel과 조선의 이순신이 있다. 그 중에서 갑과 을을 정하라 한다면 서슴치 않고 이순신을 갑으로 추천하는 바이다. 영국의 넬슨이 세계적인 명장으로 명성이 높은 것은 누구나 잘 아는 바이지만 그 인격에 있어서나 청의성에 있어서는 도저히 이순신의 짝이 될 수 없다.
프랑스의 장군 "스후란", 미국의 장군 "아랏카트"와 같은 세계적인 명장들도 존경할 만하다 하지만 넬슨 이하의 인물이다. 로이테르는 인격과 역량, 경력도 이 장군과 비슷하지만 장군으로서 필요로 하는 창의성에 있어서는 한 수 꺾이는 것같이 보인다. 이순신 장군은 풍신수길의 목적을 좌절케 하였으며 바다를 제압하는 것이 국방상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 사실적으로 증명한 명장이었는데 중도에서 모함을 당하여 백의종군 하였으나 어떠한 원망도 하지 않고 고통을 달게 받았으니 이 한가지 사실만 보더라도 장군의 인격의 고매함을 알 수 있다.
장군은 군기에 엄하고 위엄이 있으며 부하 사랑하기를 친자식같이 하였으며 기분에 따라 행동하지 않고 매사에 정성으로 임하는 모범적인 장군이었다.
장군은 평소 그의 뜻을 전하기를 "장부가 세상에 태어나서 나라에 쓰이게 되면 죽음으로 충성을 다 할 것이오, 만약 쓰이지 못하면 들에서 밭갈이 하는 것으로 족하다. 사람에게 아부하여 영화를 도모하는 것은 나의 큰 수치다"라고 하였으니 이 한마디로 그의 인격을 알아보기 충분하다.
영국 해군준장 G. A. Ballard 의 논평.
이순신은 서양 사학자들에게 잘 알려지지 않고 있다. 이순신은 전략적 상황을 널리 파악하고 해군전술의 비상한 기술을 가지고 전쟁의 유일한 참 정신인 불굴의 공격원칙에 의하여 항상 고무된 통솔원칙을 겸비하고 있었다. 그의 맹렬한 공격은 절대로 맹목적인 모험이 아니었다. 영국인에게 Nelson,과 견줄 수 있는 해군제독이 있다는 사실을 시인하기는 힘든 일이지만 이순신이 동양의 위대한 해군사령관이라는 것은 틀림없는 일이다.
동,서양의 혁혁한 전공을 세운 해군사령관의 비교.
동양의 이순신장군(1545~1598)
본관 덕수(德水), 자 여해(汝諧), 시호 충무(忠武), 서울 출생이다. 1576년(선조 9) 식년무과(式年武科)에 병과(丙科)로 급제, 권지훈련원봉사로 처음 관직에 나갔다1591년(선조 24) 유성룡의 천거로 절충장군·진도군수 등을 지내고 같은 해 전라좌도 수군절도사에 승진, 좌수영에 부임하여 군비 확충에 힘썼다.
이듬해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옥포에서 적선 30여 척을 격파하고 이어 사천에서 거북선을 처음 사용, 적선 13척을 분쇄한 것을 비롯하여 당포에서 20척, 당항포에서 100여 척을 각각 격파하여, 자헌대부에 승품되고 7월 한산도에서 적선 70척을 무찔러 한산도대첩의 큰 무공을 세웠다.1597년 원균의 모함으로 서울에 압송되어 사형을 받게 되었으나 우의정 정탁(鄭琢)의 변호로 도원수 권율(權慄)의 막하에서 두 번째 백의종군을 하였다. 왜군이 다시 침입하여, 정유재란때 원균이 참패하자 이순신은 삼도수군통제사에 재임명되어, 12척의 함선과 빈약한 병력을 거느리고 명량에서 133척의 적군과 대결, 31척을 부수었다.
다음해 고금도로 진을 옮겨 철수하는 적선 500여 척이 노량에 집결하자 명나라 제독 진인의 수군과 연합작전을 펴, 적군을 기습하여 혼전중 유탄에 맞아 전사하였다.
서양의 넬슨제독(1758.9.29~1805.10.21)
노퍽 출생. 1770년 해군에 입대하여 1780년 미국 독립전쟁에 참전한 후, 프랑스의 혁명전쟁에 종군하여 지중해와 대서양에서 싸웠다. 1794년에는 코르시카섬 점령에 공을 세웠으나 오른쪽 눈을 잃었으며, 1797년의 세인트 빈센트 해전에서도 수훈을 세웠으나 오른쪽 팔을 잃었다. 그러나 이에 굴하지 않고 나폴레옹 대두와 더불어 프랑스 함대와 대결하는 중심인물이 되었다. 1798년 나일강 입구의 아부키르만 해전에서 프랑스 함대를 격파하여 ‘나일강의 남작’이라 불렸다. 그러나 나폴리 체재 중 알게 된 해밀턴 부인과의 친교로 일시 군무(軍務)를 포기하고 귀국하였다. 1801년부터 다시 해상에 나갔고, 같은 해에 자작이 되었으며, 1803년부터는 지중해 함대 사령관으로서 프랑스 함대를 견제하였다. 1805년 봉쇄한 풀롱항(港)에서 탈출한 프랑스 함대를 추격하여, 그 해 10월 21일 트라팔가르 해협에서 프랑스-에스파냐 연합 함대를 포착, 대담한 분단작전으로 이를 격멸시켰으나, 완승 직전에 적의 저격을 받아, “하느님께 감사한다. 우리는 우리의 의무를 다했다”라는 최후의 말을 남기고 기함 빅토리아호(號)에서 전사하였다.
동,서양의 두장군을 비교하여 보았습니다.
여러 나라의 해군사관학교에서는 생도들에게 역사적으로 유명한 세계 4대 해전(世界四大海戰)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그 내용을 보면,
1) B.C. 480년 그리스의 데미스토클레스(Themistocles)제독의 살라미스(Salamis)해전,
2) 1588년 영국 하워드(Howard) 제독의 칼레(Calais) 해전,
3) 1592년 거북선을 앞세워 승리를 거둔 이순신(李舜臣) 제독의 한산대첩(閑山大捷),
4) 1805년 영국 넬슨(Nelson) 제독의 트라팔가(Trapalgar) 해전 등이 있습니다.
이순신 제독은 국가를 풍전등화의 위기에서 구한 세계적인 위인으로 존경 받고 있으며, 그의 전투에서 큰 공을 세운 거북선은 미국 워싱톤의 전쟁기념관 (War Memorial Museum), 영국 해사박물관(Maritime Museum), 중국, 독일, 불란서, 캐나다 등 세계 각지의 역사기념관에 전시되어 있습니다.
그만큼 이순신장군의 전공은 세계에서 가장빚나는 해전사의 선봉에 서있습니다.
넬슨제독은 영국국민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으며 전장에 나섰고 프랑스, 에스파냐 연합함대와 비슷한 전력에서 이긴것 입니다.물론 넬슨제독도 영국이 자랑할만한 세계적인 전공을 세운것 이지만 그러나 이순신장군은 조정에서 버림받은 처지에서도 나라에대한 충성심과
애민정신으로 23번싸움에 한번도 진적이 없으니 그경이적인 이순신장군의 전공은 전세계 해전사에 누구도 따를수없는 전적을 세운것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