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 10일 서울 시청 광장을 비롯하여 전국에서 타오른 촛불이 10만에 이른다. 애초 서울시내에서 대학생들 몇 백명으로 시작한 촛불이 날이 갈수록 늘어가더니 두달이라는 시간을 거쳐 숫자는 10만으로 늘어났고, 서울에서 부산, 광주, 대전, 대구 등 전국으로 확산되고 있다.국정원의 대선 개입 사건 진실 규명을 위한 국정조사가 진행 중이지만 현재 핵심 인물인 김무성 의원(박근혜 캠프 총괄본부장)과 권영세 주중대사(박근혜 캠프 상황실장)은 증인으로 채택되지도 않았고, 원세훈 국정원장과 김용판 서울경창청장은 증인으로 합의는 되었지만 청문회에 출석할지, 출석하더라도 증언은 제대로 할지 여전히 의문이다.이번 국정원의 대선개입과 그 진실이 밝혀지는 과정은 1972년 미국 대통령 선거 과정에서 FBI와 CIA 전 직원들이 지휘하여 민주당 선거캠프에 도청장치를 설치하였던 워터게이트 사건을 무척 닮았다. 이번 국정원 선거개입 사건을 ‘국정원게이트’라 부르는 이유이다. 이 두 사건은 무엇이 닮았고, 무엇이 다른 지 따져보면서 국정원 대선 개입 사건의 진실을 살펴보자. 워터게이트 사건으로 불명예 퇴진한 리처드 닉슨 미국 제37대 대통령이 1974년 8월9일 백악관에서 관료들에게 마지막 인사를 전하는 모습(좌), 대통령 취임식에 참석한 박근혜 대통령(우)ⓒ제공 : NEWSIS, AP
국정원의 선거개입(국정원게이트)은 워터게이트의 판박이국정원게이트와 워터게이트 사건의 첫 번째 닮은 점은 국가정보기관이 선거에 개입한 사건이라는 점이다. 워터게이트 사건에서는 CIA와 FBI 직원이 지휘하여 정보부 요원 5명을 배관공으로 위장하여 민주당 캠프에 도청장치를 설치한 것이 발각되면서 시작되었다. 국정원게이트 역시 최고 정보기관인 국가정보원(NIS) 요원들이 국정원장의 지시에 따라 인터넷 사이트에 직접 댓글을 달거나 추천/비추천을 조작하고, SNS를 이용하여 선거에 개입한 사건이다.두 번째 공통점은, 둘 다 국가정보기관이 개입하면 정보기관 요원들이 신분을 속이고 선거공작을 했다는 것이다. 워터게이트 사건에서 CIA 등 정보부 요원들은 신분을 철저히 속이고 배관공으로 위장하여 민주당 선거 캠프에 잠입하여 도청장치를 설치하였다가 발각되었다. 국정원게이트 사건에서도 국정원장의 지시에 의해서 대북심리전의 이름으로 진행된 선거 공작에서 국정원 요원들은 철저히 신분을 속이고 ‘좌익효수’, ‘숲속의참치’ 등의 닉네임을 이용하여 댓글을 달고 추천/비추천을 조작하고, SNS 작업을 했다.세 번째로, 사건의 진상이 드러나는 과정에서 선거캠프와 청와대 등 수뇌부는 전혀 몰랐다고 발뺌을 하는 것과 책임지지 않는다는 점 역시 두 사건은 판박이처럼 닮아있다. 워터게이트 호텔의 민주당 선거캠프 도청기 설치가 발각되었을 때 닉슨과 선거캠프는 “선거 캠프와는 상관 없으며, 시킨 것도 아니다. 전혀 알지도 못했다.”라고 주장했다. 국정원 선거개입 사건 역시 새누리당과 박근혜 대통령은 자신들과 아무런 상관도 없으며, 아무런 도움을 받은 바도 없다고 주장하고 있다는 점에서 너무나 닮았다.워터게이트 사건을 지휘한 정보부 요원들과 도청장치를 설치한 이들은 기소되어 법원에서 유죄선고를 받았지만 선거캠프나 공화당 당직자들 누구도 처벌되지 않았다. 국정원게이트에서도 직접 지휘한 원세훈 국정원장과 이를 은폐 조작한 김용판 서울경찰청장은 기소되어 재판을 앞두고 있지만 배후로 의심되는 새누리당이나 박근혜 선거캠프의 어느 누구도 기소되거나 책임을 진 바가 없다. 그러나, 이런 어머어마한 사건을 여당이나 선거캠프와 사전 모의 없이 단독으로 했다는 것을 믿을 국민은 별로 없어 보인다.워터게이트 도청 사건의 진실을 규명하기 위한 미 의회 차원의 노력이 진행 되었다. 연방의회에 워터게이트 사건 특별위원회가 구성되고, 특별검사가 임명되었다. 우리도 국정원게이트의 진실 규명을 위한 국정조사특별위원회가 만들어지고, 청문회가 예정되어 있다. 이런 의회 차원의 진실 규명 노력이 있었다는 외형 외에 두 사건의 또 다른 공통점은 사건의 증거가 삭제되고 진실의 조작, 은폐 시도가 있었다는 점이다. 워터게이트 사건의 사건 모의와 처리 과정의 관계자들이 백악관 대통령 집무실에서 했던 대화의녹음자료가 있다는 사실이 폭로됐다. 당연히 닉슨 대통령과 백악관의 사전 인지 또는 공모가 의심될 수밖에 없었고, 의회 특별위원회가 닉슨에게 이 녹음테이프의 제출을 요구하자 닉슨은 면책특권을 들먹이며 거부했다. 버티던 닉슨도 국민 여론이 나빠지지 결국 테이프를 제출했는데 대화의 주요 부분이 삭제되어 있어 증거 조작 의혹이 제기되기에 이르렀다.국정원게이트에서도 최초 김모 국정원 요원이 3일간 방안에서 셀프 잠금을 하면서 증거를 삭제했다는 의혹이 제기되었고, 이를 조사하던 경찰청 역시 댓글이 삭제되고 있다는 사실을 발견하고도 댓글을 발견하지 못했다는 허위 수사 결과를 발표하며 증거 은폐를 시도했다. 마지막으로 정보기관의 불법적인 대선 개입의 증거를 삭제하고 진실을 은폐하려는 시도뿐 아니라 정권과 여당 차원에서 적극적으로 진실 규명 노력을 방해했다는 공통점도 존재한다. 닉슨 대통령은 의회특별위원회와 특별검사의 조사가 자신을 향하여 올가미가 조여오자 이를 방해하기 위하여 특별검사인 A.콕스를 해임해 버렸다. 이에 반발하여 E.리차드슨 법무장관이 사표를 내는 사태까지 발생하자 국민의 여론은 닉슨에게 급격하게 등을 돌렸고, 이것이 대통령의 탄핵에 이르게 하는 결정적 요인이 되었다.국정원게이트에서도 박근혜 캠프와 새누리당이 적극적으로 진실 규명을 방해하는 양상도 나타나고 있다. 특히, 닉슨이 진실규명에 적극적인 특별검사를 해임하는 극단적인 수단을 사용한 것처럼 새누리당은 민주당 국정조사 특위위원이었던 진선미, 김현 의원을 보이콧하면서 이들을 국정조사 특위에서 배제시켰다. 그리고, 국정원과 경찰청, 새누리당과 박근혜 캠프의 연결고리인 김무성 의원과 권영세 주중대사의 증인채택을 반대하고 있는 것 역시 여당의 조직적 진상규명 방해 행위로 보인다.증인으로 합의된 원세훈 국정원장과 김용판 서울경찰청장은 이미 검찰에 의하여 기소된 상태이므로 재판을 이유로 증인 출석을 거부하면 동행명령장을 보내더라도 출석을 강제하기 힘들고, 혹시 증인으로 출석하더라도 재판을 이유로 증언을 거부해 버리면 강제할 수 있는 방법이 없다. 이런 상황에서 새누리당 소속의 김무성 의원과 권영세 주중대사의 증인채택마저도 반대하는 것은 진실 규명을 방해하려는 의도 외에 달리 볼 여지가 없는 듯하다.워터게이트와 국정원게이트, 이건 너무 달랐다워터게이트 사건과 국정원게이트 사건 사이에 많은 공통점에도 불구하고 몇 가지 결정적인 차이가 있다. 우리 현실에서는 이 차이점이 너무나 부러워 보인다.첫 번째 결정적 차이는 정치적 성향과 상관없이 진실을 밝히려한 워싱턴포스트와 같은 언론사의 존재와 보도 양식이다. 사실 워터게이트 사건은 처음 알려졌을 때 무단 주거 침입에 의한 단순 절도 사건쯤으로 취급되었다. 대선 결과에도 영향을 미치지 못하여 닉슨은 민주당 후보를 선거인단 기준 520:17이라는 너무 큰 차이로 누르고 당선되어 국민의 관심사도 아니었다.해프닝 정도로 넘어갔을 워터게이트 사건을 끝까지 파헤친 것은 워싱턴 포스트라는 신문사였다. 국민들의 무관심과 닉슨 지지자들의 협박에 굴하지 않고 워싱턴포스트의 밥 우드워드와 칼 번스타인 기자는 포기하지 않고 이 사건을 추적했다. 우스운 것은 워터게이트 사건을 처음부터 끝까지 파고 들면서 세계적인 특종(다음해인 1973년에 세계 최고 권위의 언론상인 풀리처 상 수상)을 하여 닉슨 대통령의 하야를 가져온 워싱턴포스트 지는 대표적인 보수언론이라는 점이다. (최근 아마존 설립자에게 매각된 바로 그 신문이다.)워싱턴포스트의 이 기자들은 목숨 걸고 워터게이트 사건을 취재했고, 언론사주도 이들의 기사가 보도될 수 있도록 지지해 주었다. 정략보다 국민의 알 권리라는 언론의 사명을 더 중요하게 생각한다는 점에서 우리나라의 보수 언론과는 너무도 달라 보인다. 100%는 것은 아니지만 미국 언론은 상당한 정도로 일선 기자들이 기사에 대한 결정권을 가지는 지면책임제가 실현되고 있다는 점이 워터게이트와 국정원게이트의 커다란 차이점을 만든 것이다. 두 번째 두 사건의 결정적인 차이는 내부고발자의 존재 여부이다. 워터게이트 사건에는 결정적인 내부고발자가 있었다. 기소된 이들이 진실을 감출 때 백악관에서 사면을 조건으로 이들을 회유했다는 사실, 백악관과 닉슨 선거 캠프가 관련성을 부정할 때 백악관 집무실에 진실 은폐를 모의하는 이들의 대화가 녹음된 테이프가 존재한다는 사실 등을 deep throat라는 익명으로 제보해 주는 내부고발자가 있었던 것이다. 당시에는 누구인지 몰랐지만 나중에 이 내부고발자가 FBI의 부국장이었음이 밝혀졌다. 우리나라로 치면 국정원 부원장이 정보기관의 선거 개입에 부끄러움을 느껴 진실을 익명으로 고발한 것인데, 현재 국정원 요원들뿐 아니라 경찰들까지 진실을 은폐하고 조작하는데 나선 우리의 국정원게이트와는 너무 달라보인다. 대통령의 하야... 국정원게이트와 워터게이트 결말은?모르쇠로 일관하고, 선거 캠프와의 관련성을 부인하면서 워터게이트 사건 자체를 무시하려고 했지만 진실을 파헤치려는 노력이 계속 이어져 닉슨 캠프 재선위원장과 닉슨의 보좌관 등 측근들이 관련되었다는 사실과 백악관의 불법적인 정보활동이 드러나자 닉슨 대통령은 자신의 보좌관 2명과 법률 고문, 법무장관 등을 사임하게 하는 선에서 정리를 시도했다.그러나 딥 쓰로트와 언론의 집중적인 추궁으로 계속 새로운 사실들이 밝혀지자 닉슨 대통령은 백악관 집무실의 녹음테이프의 주요 부분을 삭제한 채 제출하고, 급기야 특별검사를 해고하는 등 진실 규명을 방해하는 극단적인 행동까지 했지만 이런 행동이 오히려 국민이 닉슨 대통령으로부터 완전히 등을 돌리는 계기가 되고 말았다.대통령으로 재선된 지 2년이 다되어 가던 1974년 8월 하원 법사위원회에서 닉슨에 대한 탄핵안이 의결되었고 본회의에 상정되자 닉슨은 워터게이트 사건의 은폐에 관여했으며 사건 발생 후 수사의 범위를 백악관까지는 확대하지 말도록 연방수사국(FBI)에 지시했었다는 사실을 털어놓았다. 소속 정당인 공화당까지 닉슨에게서 등을 돌리자 연방의회 본회의에서의 탄핵 의결을 피할 수 없다는 판단을 한 닉슨은 둘 중 하나를 선택할 수밖에 없었다.끝까지 버틴다가 탄핵으로 쫓겨난 최초의 미국 대통령이 될 것이냐, 아니면 탄핵이 의결되기 전에 스스로 물러난 최초의 미국 대통령이 되느냐 하는 길밖에 없었다. 결국 닉슨은 부정선거를 획책한 주범이라는 이유보다는 부정선거 시도를 은폐하고 국민을 속였다는 이유로 임기 중 대통령에서 물러난 최초의 대통령이 되고 말았다. 미국 정치인에게 가장 큰 비난은 Liar(거짓말쟁이)이기 때문에 닉슨이 국민에게 거짓말을 한 것은 용서받을 수 없는 일이었다.닉슨이 대통령으로 재선된 1972년의 표차이에 비하면 박근혜 대통령의 48:51 당선은 훨씬 작은 차이이다. 사실 워터게이트 사건은 사전에 도청장치 설치가 발각되었기 때문에 대선 결과에 아무런 영향을 주지도 못했다고 볼 수도 있다. 그러나 닉슨은 진실을 은폐하려고 했던 것 때문에 결국 국민에게서 버림을 받았다.현재 박근혜 대통령은 국정원으로부터 도움을 받은 바도 없고, 국정원 댓글로 국민의 선택이 달라지지도 않았으며, 대선은 이미 끝났다는 식의 변명을 하고 있는데 닉슨 사건을 돌이켜보면 설득력이 떨어진다. 게다가 박 대통령은 잘못한 것이 하나도 없고 정당한 대북심리전의 일환이라고 강변하는 국정원에 스스로 개혁안을 마련하라고 지시했다. 이른 바 ‘국정원 셀프개혁’주문인데, 잘못한 것이 없다는 이들에게 스스로 개혁하라는 것은 코미디 같은 일이다.워터게이트 사건과 국정원게이트는 발생 사유부터 진실이 밝혀지는 과정 등에서 많은 공통점이 존재한다. 워터게이트의 결말은 닉슨 대통령의 비참한 하야였다. 국정원게이트가 박대통령의 하야로 이어질 것이라고 전망하기는 어렵다. 확실한 것은 워터게이트보다 국정원게이트가 훨씬 더 심각한 사건이며, 이것이 정말로 박근혜 캠프와 새누리당이 국정원과 경찰청과 사전에 모의하여 조직적으로 이루어진 선거부정이라면 이것은 명백한 승부조작사건이다. 스포츠에서와 마찬가지로 정치에서도 승부조작은 결코 용납될 수 없다. 스포츠에서 승부조작에 승복할 수 없듯이 정치에서도 승부조작은 없어져야 한다.더 중요한 것은 사건의 진실은 언젠가 드러날 수 밖에 없으며, 진실을 은폐하고 나아가 진실 규명을 방해하는 세력이라면 결국에는 국민의 심판을 받을 수밖에 없다는 것이 워터게이트 사건의 교훈이다. 새누리당과 박근혜 대통령이 국정원게이트 진실 규명에 나서야 하는 이유다. 구체적으로 현재 가장 중요한 것은 원세훈 국정원장과 김용판 서울경찰청장의 증언을 보장하는 것이고, 증인 채택을 반대하고 있는 김무성 의원과 권영세 주중대사를 청문회에 출석하게 하는 것이다. 김무성 의원과 권영세 의원은 박근혜캠프의 핵심간부였으며, 현재 모두 새누리당 당원이며, 특히 권영세 주중대사는 박근혜 대통령이 임명한 사람이다. 새누리당과 박근혜대통령이 이들이 국회청문회 증인으로 출석해야 한다는 입장을 밝히는 것만으로 이를 거부할 수 없는 인사들이다. 새누리당과 청와대 참모들은 박근혜 대통령을 닉슨으로 만들지 않기를 바란다.
길지만 읽어볼만한 칼럼이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