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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게시물ID : military_42405
    작성자 : aeio
    추천 : 42
    조회수 : 8444
    IP : 121.173.***.42
    댓글 : 32개
    등록시간 : 2014/05/12 18:07:04
    http://todayhumor.com/?military_42405 모바일
    판초우의 잃어버린 이야기
     
    훈련소에 입소하고 기간병이 나눠주는 전투복을 처음 입는순간 내가 느낀 기분은 거북함과 불편함이었다.
    동기들 중엔 전투복을 입으면 알러지 증상을 보이는 동기들도 있었다. 그정도 까진 아니었지만 까끌까끌한
    새 전투복이 살에 스치는 느낌은 썩 좋은 느낌은 아니었다. 이 거북함이 사라지기까진 꽤 오랜시간이 필요했다.
    특히 훈련소에선 빨래를 자주 할 수 있는 것도 아니라 훈련을 받으면서 땀에 절은 전투복이 마르고 젖기를
    반복하다 보면 어느새 하얗게 소금기가 올라왔고 안그래도 빳빳한 전투복은 더 빳빳해져 나중에는 내가 옷을
    입고 있는건지 사포를 입고 있는건지 헷갈릴 지경이었다. 처음에 전투복을 잘못 받아 자기 사이즈 보다 좀 작은
    사이즈를 받은 동기들은 그 정도가 더 심했다. 땀에 절은 전투복 바지가 고간을 스칠때마다 사타구니에 고통을
    호소하고는 했다. 물론 시간이 지나면서 자연스럽게 불편함과 거북함은 사라졌지만 시간도 해결해 줄 수 없을
    때가 있었다. 바로 비가 올 때였다.
     
    군인은 우산을 쓰지 못한다. 지금은 규정이 바뀌었는지 모르겠지만 내가 복무할 당시만 해도
    부대에서는 물론이고 휴가를 나가서도 우산을 쓰지 못하게 하는 규정이 있었다. 그래서 우리는 우의를 입었다.
    부대에서 사용하는 우의는 보통 두 종류였다. 판초우의와 장교우의.
    장교우의 같은 경우는 원래 보급품이 아니기 때문에 사람수보다 물량이 부족해 주로 고참들이 많이 입었고
    짬 안되는 후임들은 보통 비가 오면 판초우의를 입었다.
    생긴건 그냥 네모난 방수천에 가운데 후드가 달린 구멍하나 뚫린게 전부였지만 뒤집어 쓰면 의외로 방수는
    잘 되는 편이었다. 다만 입는 방법과 오래된 연식이 문제였다.
     
    판초라는 이름에서부터 풍기는 분위기처럼 그냥 뒤집어 쓰면 왠지모르게 나초를 먹고싶고 기타를 쳐야만
    할것 같은 메히꼬 필의 외향이 완성되지만 그렇게 입는 일은 별로 없었고 따로 입는 법이 있었다.
    일단 우의를 뒤집어 쓰고 팔 부분을 말아 올려서 어깨 안쪽으로 집어넣은 다음 풀어지지 않게 탄띠로
    고정시킨다. 그리고 후드까지 말아서 안쪽으로 집어 넣으면 완성이었다. 이렇게 입으면 팔부분에 걸리적 거리는게
    없어서 움직이미 편해진다는 장점이 있었다. 다만 한가지 단점이 있다면 방수를 포기해야 한다는 점이었다..
    거의 안입은 것과 차이가 없었다. 그리고 조금만 움직여도 어깨 부분이 흘러내려 거울을 보면 어느새
    나메크성인이 되어있는 나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었다.
     
    사실 장교우의도 별반 다를건 없었다. 입는게 좀 더 편하다 뿐이지 어차피 판초우의나 장교우의나 코팅이 다 벗겨져
    있어 입고 돌아다니다 보면 금새 빗물이 스며들었다. 게다가 방수가 된다 쳐도 안쪽에 습기가 엄청나게 차다보니
    땀이 비오듯 흘렀고 결국 비에 젖느냐 땀에 젖느냐의 문제일 뿐이었다. 그리고 습기에 찬 우의가 전투복에 달라 붙는 
    그 느낌은 가히 최악이었다. 고참들은 어찌 보면 짬의 상징인 장교우의를  입었지만 나는 고참이 되어서도 판초우의를 즐겨 입었다.
    밥먹으러 갈때나 가까운 거리를 이동할때는 장교우의보다  그냥 판초우의를 뒤집어 쓰고 가는게 더 적게 젖기 때문이었다.
    장마철이라 그날도 비가 부슬부슬 오고 있었다. 식당에 가기 위해 어제 널어놓은 판초우의를 걷으러 식당으로 향했다.
     
    하지만 우의는 보이지 않았다. 혹시 후임들이 걷어갔나 해서 후임들에게 물어보아도 보지 못했다는 대답 뿐이었다.
    주변을 샅샅이 뒤져보았지만 우의를 찾을 수 없었다. 이내 나는 격렬한 분노에 휩싸였다. 내가 가진 보급품 중
    몇 안되는 A급중 하나였고 그 중에서도 평소에 가장 유용하게 쓰는 물건 이었기에 분노는 더 커져만 갔다.
    범인은 분명 아직도 빗물이 닿자마자 그대로 스르륵 흘러내리는 영롱한 코팅에 영혼을 빼앗겨 우발적 혹은 계획적으로
    범행을 저지른게 분명했다. 아마 우리소대나 옆소대는 아니었을 것이다. 알콜중독이나 지방간, 울혈 등으로 간비대 증상이 
    나타나지 않는 이상 겁도 없이 고참 우의를 훔쳐다가 당당하게 입고다닐 사람은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날부터 다른 중대를 중심으로 탐문수사를 시작했지만 별다른 소득이 없었다.
     
    그 후로도 한참동안을 부대내를 뒤지고 다녔지만 도무지 우의는 보이지 않았고 포기하려 할 때 쯤이었다.  
    막사 2층 흡연구역에서 담배를 피우고 있는데 창 밖으로 누군가 판초우의를 입고 지나가는 모습을 보게 되었다. 
    낯설은 얼굴로 봐선 우리 중대 사람은 아니었다. 이상한 촉이 와 유심히 그 모습을 살펴 보았다. 왠지 낯 익은 
    판초우의였다. 내꺼 같다는 생각이 자꾸만 들었고 그렇게 내꺼인듯 내꺼아닌 내꺼같은 판초우의를 유심히 살펴보다
    건물밖으로 뛰쳐나갔다. 하지만 이미 그 사람의 모습은 사라진 뒤였다. 이제는 헛것이 보이는 것 같았다.
    그렇게 한참을 앓다 결국은 마음을 비웠고 현실을 받아들이기로 했다.
     
    그리고 의외의 곳에서 판초우의를 발견하게 되었다. 전역하는 날 영창에 간 고참이 하나 있었다.
    갓 전입온 이등병의 하계 전투복이 탐이 나 자기가 입던 다 닳아빠진 전투복과 바꾸자고 협박아닌 협박을
    해 기어이 바꿔갈 정도로 양아치 중의 양아치 고참이었는데 전역 하는 날 온갖 보급품들을 몰래 빼돌릴려다
    간부에게 걸려 영창에 가게 된 것이었다. 어디 혼자서 파병이라도 가는지 텐트부터 반합까지 온갖 보급품
    들이 나왔다. 가능만 하다면 총까지 들고나갈 기세였다. 그리고 물론 그 중엔 판초우의도 있었다.
    내 이름이 선명히 새겨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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