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밀히 말하자면...표절이 아닙니다.
영어로 이걸 technically 라고 하나 이럴 텐데요.
http://www.multiwriter.co.kr/m/1035 여기 서태지의 난 알아요 가 왜 표절이 아닌가 잘 정리된 글이 있습니다.
읽어보시면 아시겠지만, 이 글의 요지는 샘플링 cd에서 누구나 사용 가능한 멜로디를 자신만의 방식으로 조합했기 때문에 표절이 아니라는 겁니다. 표절의 원본 대상이 된 곡도 마찬가지로 이 샘플링을 사용해서 작곡한 다른 곡이기 때문에 표절이 아니라는 것이죠.
비유가 정확하지는 않겠지만 서로 어머니가 같은 형제 곡이지 베낀 곡은 아니라는 것이지요.
(좋아하지는 않지만) 주영훈이 예전에 서태지를 평가할 때 독보적이란 식으로 누가 이야기하니 샘플링을 잘한 것 뿐이다라고 평했던 일이 있는데, 어떻게 보면 같은 음악업계 종사자로서 주영훈이 할 수 있는 비교적 객관적인 평가가 아니었나 싶습니다.
예전에 이수만 대표가 파워인터뷰라는 프로그램에 나와서 HOT 표절 논란에 대해 "표절이 아닌데 왜 표절이라고 하죠?"라는 대답으로 대중의 공분을 산 것 또한 음악업계 종사자로써 할 수 있는 정확한 입장 표명이었습니다.
여기까지는 정말 음악업계에서 이야기하는 표절에 관한 이야기였습니다. 그런데 서태지 난 알아요를 듣고 어린 시절을 자라온 저에게 처음에 밀리 바닐리의 girl you know it's true 를 들었을 때의 그 배신감은 이루 말로 할 수 없었습니다. 그 후에 비스티 보이즈의 사보타지를 듣고 난 후 태지보이즈의 필승을 가장 좋아했던 저는 그 동안 모아온 엘피와 씨디를 다 내다 버렸습니다. 1집은 엘피판이었는데 바닥에 던져서 부쉈는데 판이 튀면서 발등에 상처를 내서 피가 났던 기억이 아직도 나네요.
저는 음악업계 종사자가 아니니까 서태지의 난 알아요 필승 교실이데아 컴백홈이 기술적으로 표절이 아니라면 그게 팩트이고 맞다고 봅니다. 하지만 제가 생각하는 표절은 양심의 문제였고, 노래 가사나 제목을 보면 서태지가 밀리 바닐리의 노래를 듣고 따라하려고 작곡했다는 의심이 개인적으로 너무 컸기 때문에, 제 스스로 표절이라고 단정했었습니다. 제가 서태지를 좋아했던 건 그의 독창성이었고, 문화 대통령이라고까지 불리던 그의 음악성이었는데, 외국곡을 듣고 비슷하게 만든 건, 제가 좋아한 그 지점을 정확하게 반대로 실망시키던 지점이었거든요.
그러나 이렇게 표절에 대해서 꼬치꼬치 개인적 잣대로 따지면 대한민국 가요 중에 샘플링 아닌 노래가 거의 없기 때문에 들을 곡이 없고, 많은 팝 또한 샘플링이 다수이고, 힙합은 아예 샘플링을 기반으로 한 장르인데 그 장르 전체를 등지게 되고, 결국은 들을 음악이 남지 않는 것이죠.
그러니 음악을 들을 때 독창성에 대한 집착은 조금 버리시는 게 정신 건강에 좋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레퍼런스니 오선지의 한계니 뭐니 이런 말로 작곡가들이 자신이 저지른 비양심적인 행동을 정당화시키는 것도 우스운 일이지만, 음악을 듣는 리스너로서, 좋은 곡을 들으면 표절 아닌가 의심병이 도질 정도로 독창성에 집착하는 것도 마음을 피폐하게 할 뿐 어떤 이득도 없지 않은가 싶습니다.
마술을 볼 때 어딜 어떻게 속이나 눈에 불을 켜고 보면 의미가 없는 것과 같은 이치라고 개인적으로 생각합니다.
저는 기술적인 표절의 정의보다 어떤 네티즌이 오마쥬와 표절을 구분한 정의가 더 와닿더라고요.
자기 작품 속에서 원작의 흔적을 발견해 주길 바라면 그건 오마쥬고(킹스맨1 - 올드보이) 들킬까봐 전전긍긍했다면 그건 표절이다.
최근의 프라이머리의 경우처럼 원작자가 걸고 넘어지지 않으면, 표절은 음악업계에서 성립하는 말이 아닙니다.
앞으로 음악을 들으실 때 좀 더 즐기기를 바라는 맘에서 이렇게 뜬금포로 글을 쓰게 되었습니다. 독창성에 대한 집착을 우리 조금 내려놓아보아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