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염인지 축농증인지 코가 막힌 지 이주일 째, 일주일은 첫 번째 갔던 이비인후과에서 비염으로 듣고 칙칙이? 뿌리면서 버티다가 나머지 일주일은 다른 데서 축농증으로 듣고 휴지통을 벗삼아 보냈는데요.
축농증 그 특유의 코가 막히긴 막혔는데 코를 풀어도 농축된 콧물스프가 깊숙한 곳 위에서 끓는 느낌이 있거든요... 칙칙이가 없어서 콘푸로스트야 호랑이 기운을 빌려줘 하고 크흐으읔ㅁ킄ㅋ킄크킄ㅋ킄ㅇ! 졸라 세게 풀어댔어요. 그러면 이따금씩 왕건이가 퉹 하고 세상 밖으로 튀어나와서 휴지 위에서 저랑 아이콘택트해요. 아시는 분은 아시겠지만 완전 시원... 이게 한 사흘 전부터는 붉은 끼가 섞여나오기 시작함.
오늘도 고기뷔페 갔다와서 코 푸니까 귀요미! 하고 피딱지느님 갑툭튀하시길래 아 후련하다 오늘은 역시 운수가 좋을랑가보다(ㅠㅠ 면허 반년 간 4번 낙방하고 2종으로 바꿔서 오늘 합격ㅠㅠㅠ) 별 생각 없이 지나쳤는데 코피가 주르륵;
처음엔 똑똑 흐르면서 존재감 어필만 했는데 나중엔 무슨 실개천마냥 라임맞춰 끊임없이 뚝주르르르 뚝뚝쥬르르릇 뚝주르르르 하고 흐르는 거에요. 도저히 안되겠다 싶어서 비염이라던 이비인후과 갔는데...
ㅋㅋㅋㅋㅋ 피가 안 멈춰가지고 나중엔 얼굴 각도 내리면 피비를 뿜어대고 올리면 꿀꺽꿀꺽 토마토주스가 미친 듯이 넘어가는 거ㅋㅋㅋ 하도 안 멈춰서 휴지통 몇 통을 갈아치우며 진료실과 대기실 패트롤 찍어놓고 사십 분 째 오가면서 피진창을 만들어 놓으니까 의사가 '응급실 가야겠다' '?? 코피로 응급실을 감?' '야 코피로 입원하는 수도 있어' 하고 겁을 주더니 진료의뢰서를 들려서 내보내요. 이때 착하신 의사 선생님 돈 안 받으심 ㅠㅠ 고마워
근데 이때 사십 분 째 제가 진료실 왔다 갔다 해서 대기실에 손님들이 그득히 쌓여가지고 하나같이 저 새끼 뭐지 하는 눈빛으로 쳐다보는 중이었음. 의사 선생님이 많이 급하셨나봐요. 저도 이쯤되니 은근 무서워서 코피 뿌뿌뿜! 하면서 집앞에 3분거리 대학병원으로 질주했거든요. 그러다가 횡단보도 앞에 멈춰섰을 때서야 손에 쥔 진료의뢰서에 신경이 닿아서 펼쳐봤거든요. 보니까 거기에 뭐라고 쓰여 있냐면
코 피
ㅋㅋㅋ구라 안 치고 딱 이 두ㄱ글자 밖에 없음
병원 가는 길에 피랑 침 섞인 걸 꿀꺽꿀꺽 세 참치캔은 마셨나 슬슬 역해가지고 도저히 못 마시겠더라고요. 나오는대로 꿀꺽꿀꺽퉤퉤 꿀꺽꿀꺽퉤 뱉다가 나중에는 기 모아서 코와붕...캌ㅡ 하고 전에 마신 것까지 꿀럭 내뱉으니까 보도블럭에 피가 한 웅덩이 쫙 깔림ㅋㅋㅋ
휴지로 코 둘둘 감아쥔 채 턱밑으로 피 뚝뚝 흘리면서 달려가다가 갑자기 웩 하고 피 토하니까 주변 사람들이 히익 하고 놀라는 소리가 들려요. 막 저 사람 병원 가야겠다 수군수군대고. 진짜 무슨 영화의 한 장면이 따로 없음ㅋㅋㅋ 영화 속 주인공 된 기분 잼
스릴러액션 추격극 찍는 기분으로 총상에 내출혈 입은 것마냥 쿨럭대면서 뒤에 쫓아오는 적 상상했더니 생존본능 발동돼서 발이 미친 듯이 빨라지더라고요. 거짓말 안 치고 그때부터 초 단위로 병원에 도착함. ㅋ 피 더 흐름 괜히 뛰었다
병원에 도착해서 응급실 일단 갔어요. 이쁜 여느님 있더라고요. 혈압 재고 거즈 조정 다시 하고... 그리고 진료의뢰서 보고 뿜는 삼 단계의 절차가 신속하게 시행됐음. 참 근데 처치해주는 분이 참 예뻤어요. 중요한 듯해서 두 번 써봄
별실로 들어가서 코에서 거즈를 살살 뽑아내며 코피와 코딱지의 팡파레를 즐긴 후(바바리맨 된 기분이었음) 숫제 후두둑 쏟아내기 시작하는 피 보고 새로운 남자 의사 분이 등장해서 무슨 거즈로 코를 틀어막더라고요. 이 분도 잘생겼어요. 왠지 더 좋았음...(?) 아니 근데 여기는 무슨 선남선녀만 뽑나
그래서 이 글의 하이라이트는 이건데
전 거즈를 틀어막은 게 무슨 응급처치고 어떤 조치가 있을 줄 알았어요. '자 이제 가서 기다리세요' '네?' '? 가서 기다려요' 이해 못하는 문답이 두 번 반복됨. 알고 보니까 지혈전용 거즈라서 일단 여기가 일 단계 처치 끝이고 여기서 안 멈추면 다른 조치가 들어가야 한다네요. 괜히 의심해서 미안한 기분이 들었음. 아니 의심했어야 하는데
한 삼십 분쯤 코막고 기다리다보니까 진짜 이게 효과가 직빵이라 코피가 서서히 멎음. 나중엔 거의 멈추더라고요. 정말 거의 멈춰서, 아까 전까지 출혈량이 100프로였으면 한 10프로 쯤? 그 정도 밖에 안 흐름.
그러니까 남자 의사 오고, 혈관이 드러나서 피가 멈추질 않는거다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다 어쩌고등등 싸바싸바 썰을 풀면서 '아 진짜 거의 멈췄네요. 이 정도면 곧 그칠 피네.' 하고 약 갖고 집에 가라며 거즈 꽂은 채로 처치 완료함. 그리고 수납하는데...
ㅋ 접수비 6만원 진료비 5만원 약값 2만원
ㅅㅂ 차라리 13만원어치 금부스러기를 쳐넣어주던가 거즈 콧구멍에 쑤신 거 말고 대체 뭘했는데
곧 멈출 거라던 코피 10프로는 아직도 계속 흐름.
거의 멈췄어요. 진짜 기존에 비하면 거의 멈췄음. 거의 멈췄는데... 졸라게 터져나오던 게 팍 줄어서 그냥 일반 코피 수준임. 피 삼키랴 코피 닦느랴 존나 쳐 바빠서 잠도 못 자고 있다. 금방 멈출 거라며. 센 코피든 약한 코피든 6시간 넘게 지속되고 있으면 그게 문제지 뭐가 해결된 거야 대체
덕분에 코피의 짭짤한 맛에 13만원의 눈물이 더해져서 간이 아주 제대로임^^
아 까는 글 쓰려던 게 아닌데. 어찌되었든 지금은 와서 약 먹고 거즈로 틀어막은 채 글 쓰고 있네요. 흘러나오는 양이 비슷한지라 확신은 못하겠지만 코피 색깔이 (아마 콧물에 섞여) 많이 흐려진 거로 봐서 점점 출혈량이 줄고 있는 것 같긴 해요. 일단 어떻게든 잠을 자보고 내일 아침에 인나서 안 멈추면 그때 한 번 더 가봐야겠네요. 출혈과다로 죽을 거 같은 양은 아니니까.
아무튼 코피 나서 영화도 찍고 13만원도 버려보고 오늘 참 하루가 스펙타클했슴당. 방콕이 일상인 제게는 나름 격변이라면 격변임 ㅋㅋㅋ 즐거운 사건이라기엔 그렇지만 뭐 지나고 보면 재미도 있고 이런 게 다 쌓이는 거 아니겠어요?
제 인생을 소설로 쓴다면 목차에 이름붙여 등장할 정도로 중요한 부분은 아니겠지만 나름 굵은 글씨로 쓰여진 챕터 하나라고 할 수 있지는 않을까 싶어요. 그래서 왠지 이 기억을 꼭 남겨놓고 싶어서 적어봤습니다. 왜 보통은 응급실 갈 일 자체가 별로 없잖아요. 근데 그게 코피라니! 이걸로 또 괜찮은 술 안줏거리 하나가 생겼음.
그래서 이 글의 결론은:
여러분 응급실 가서 거즈 주면 13만원짜리인지 일단 의심하고 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