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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게시물ID : humorbest_423268
    작성자 : 에로홀릭
    추천 : 68
    조회수 : 3105
    IP : 180.68.***.99
    댓글 : 1개
    베스트 등록시간 : 2011/12/30 10:03:33
    원글작성시간 : 2011/12/30 02:11:25
    http://todayhumor.com/?humorbest_423268 모바일
    오오까의 밀감 - 홍세화, '나는 빠리의 택시운전사' 중
    민주투사 김근태가 오늘, 내일 한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고문후유증이 그의 병세를 악화시켰다는게 중론이다.
    우리사회가 오늘날 이만큼 민주주의의 열매를 영글어 놓은 것도,
    이들의 민주화 투쟁 결과라고 봐도 좋을 것이다.

    어디선가 읽기로, 김근태 씨는 다이얼비누를 못 쓴다고 한다.
    물고문을 받을 때, 대야에서 다이얼 비누 냄새가 났었기에.

    그를 고문했던 고문기술자 이근안을 비롯,
    고문을 명령하고 가담했던 정치세력들이 여전히 활개치고 심지어 정권을 차지하고 있기도 하다.
    아직까지, 우리사회가 갈 길이 멀다는 뜻이기도 하겠다.

    좁은 주제의 이야기로,
    고문이 왜 사람을 피폐하게 하는지,
    어떻게 인간성을 파괴하며 거짓증언을 이르게 하는지는
    '오오까의 밀감'이라는 이야기보다 생생하게 잘 나타나 있는 건 아직 보지 못했다.
    이 얘기는 홍세화 선생의 '나는 빠리의 택시운전사'에 나오는 건데,
    그 부분을 웹에서 발췌해 올려본다.  
      
    김근태의 쾌유를 기원하며..

    -------------------------------------------

    오오까의 밀감

    옛날 일본의 에도에 오오까라는 판관이 있었다.
    이른바 쇼군(將軍)이 할거하던 시대였다. 내란이 빈번했고 민중들의 삶은 어려웠다. 특히 가난한 사람들은 억울한 일을 당하는 게 일상사였다. 재판관의 판결은 뇌물을 얼마나 바치는가에 따라 결정되었다. 죄가 없어도 가난한 사람은 감옥에 들어갔고 심지어는 처형되기도 했던 반면에 돈만 있으면 아무리 몰염치하고 뻔뻔스런 죄를 짓고도 풀려났던 그런 시대였다.

    오오까는 판관이 되어 에도에 부임하자, 당시의 관습에 따라 큰 만찬을 베풀었다. 에도의 귀족 명사들과 관리와 그리고 다른 판관들을 합쳐 모두 3백 명을 초대하였다. 식사가 끝난 뒤 그들은 정종을 마시며 이 얘기 저 얘기를 나누었다. 얘기중에 판관들은 재판을 심리할 때 그 진실을 알기 위한 제일 빠른 길이 고문이라고 말하고 있었다. 

    판관들은 아무리 거짓말을 잘하고 뻔뻔스런 자들도 고문만 하면 다 불게 되어 있다는 의견에 입을 모았다. 오오까는 아무 말 없이 그들이 떠드는 소리를 들었는데 그의 표정은 침울했다. 그들이 술 마시기를 거의 끝마쳤을 즈음, 그는 자리에 일어나 입을 열었다.

    "모든 식사의 마지막에 과일이 빠질 수 없고 또 지금은 밀감이 아주 잘 익는 계절인데 내가 그것을 소홀히했으니 제빈들은 이 나의 불찰을 용서하시기 바라오. 즉시 조처하겠소."

    그리곤 그의 충복인 나오수까에게 3백 개의 밀감을 급히 가져오라고 지시하였고 나오수까가 급히 달려가 밀감이 든 푸대를 오오까에게 갖다 대령하였다. 그는 잠시 생각하더니 다시 나오수까에게 그 밀감을 헤아려보라고 지시하였다. 주인의 지시에 따라 밀감의 숫자를 헤아린 나오수까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나으리, 3백 개에서 한 개가 부족하옵니다."

    "너에게 3백 개를 가져오라고 하지 않았더냐! 빈객 중에 한 분이 못 잡숫게 되었단 말이냐!"

    "나으리, 틀림없이 3백 개였사옵니다. 소인이 직접 세면서 집어넣었사옵니다. 정말이옵니…"

    울상이 된 나오수까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오오까의 엄한 목소리가 터져나왔다.

    "그러니까, 네놈이 한 개를 먹었구나. 그렇지 않느냐?"

    "아니옵니다. 아니에요. 감히 어찌 소인이 그런 일을…"

    "그렇지 않다면 네놈은 지금 밀감한테 날개가 있어 날아갔다는 말을 하려느냐, 아니면 발이 있어서 도망쳤다고 말하려는 게냐, 이 발칙한 놈!"

    "아니옵니다. 감히 소인이 어찌 … 하오나 소인이 손을 대지 않았던 것은 사실이옵니다."

    나오수까는 어찌할 바를 몰라 목을 조아렸으나 주인의 목소리는 더욱 냉랭해졌다.

    "진실은 밝혀지게 마련인즉 … 게다가 명색이 판관인 내가 바로 가내에서 벌어진 일의 진실을 밝혀내지 못한다고 해서야 어디 판관 자격이 있겠느냐!"

    오오까는 형리에게 화로와 끓는 물 등 고문할 채비를 차리라고 명령하였다. 형리가 곧 화로와 끓는 물 그리고 인두 등을 준비하여 대령하자 오오까가 형리에게 이렇게 말했다.

    "이실직고하지 않을 때 어떤 일이 있을 것인지 저 못된 놈에게 하나하나 설명해주렷다!"

    오오까의 지시를 받은 형리가 말을 붙일 사이도 없이 새파랗게 질린 나오수까는 오오까를 향해 꿇어엎드려 목을 조아리고 이렇게 울부짖었다.

    "제발, 나으리! 소인이, 소인이 자백하겠나이다. 그러하오니 제발, 제발…"

    "좋다, 그럼 어서 이실직고하여라. 네놈이 어떻게 밀감 한 개를 훔쳤는지 세세히 자백하렷다!"

    "소인이 처음에는 그 밀감에 손댈 생각이 추호도 없었사옵니다. 하오나 밀감이 하도 잘 익었고 때깔도 좋고 먹음직스럽고 또 향내도 그윽하여 도저히 참을 수가 없었사와 한 개를, 딱 한 개를 꺼내 먹었사옵니다. 어떻게 맛이 있었사옵던지 지금까지도 입 안에 군침이 돌고 있나이다. 이렇게 자백하오니 제발 나으리! 제발, 나으리!"

    자백을 마친 나오수까는 계속 부들부들 떨고 있었다. 초대객들은 진실이 곧 밝혀진 것에 입을 모아 탄복했다. 그중에는 "역시 고문이야말로 진실을 밝혀낼 수 있는 첩경이라고 내가 말하지 않았더냐"고 떠드는 사람도 있었고 또 충복에 의해 도둑질당한 오오까를 비웃는 사람도 있었다. 이 말들을 조용히 다 듣고 난 오오까가 다시 나오수까에게 이렇게 다집하듯이 하였다.

    "그러니까 네놈이 진정 이 모든 빈객들 앞에서 밀감 한 개를 훔쳐먹었다는 것을 자백한다는 것이렷다!"

    "예, 예, 자백옵니다. 소인이 도둑질을 했사오니 어떠한 처벌도 달게 받겠사옵니다. 하오나 나으리, 처음 저지른 일이었사오니 나으리의 넓은 아량으로 … 한번만 그저 단 한번만 …"

    나오수까는 울면서 대답했고 또 그 울음을 그치지 못했다.
    오오까는 침울한 표정으로 나오수까를 그리고 빈객들을 바라보았다. 잠시 후, 오오까는 자리에서 일어나 나오수까에게 나다가 그 앞에 함께 엎드려 그를 안으며 이렇게 말했다.

    "부디 나를 용서하라. 너에게 참으로 못된 짓을 했구나. 이 모든 빈객들 앞에서 이렇게 사죄하노니. 그리고 이 불행한 일을 잊을 수 있도록 내 진정 갑절로 너를 돌볼 것을 약속하겠노라."

    그리고 그는 그의 넓은 소맷자락에서 밀감 한 개를 꺼내 빈객들을 향해 던지고 이렇게 외쳤다.

    "밀감을 훔친 자는 바로 나였소. 내 하인은 훔치지도 않았으면서도 훔쳤다고 자백했소. 그것도 그럴듯하게 꾸며서 말이오. 먹지도 않은 밀감의 맛으로 입 안에 아직도 군침이 돌고 있다고 한 말을 잊지 마시라! 고문이 있기도 전에 고문의 횡포가 그렇게 했던 것이었소! 그리하여 제빈들은 돌이켜보시라. 당신들의 감옥에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지금 이 시간에도 억울하게 썩어가고 있는가를! 그리고 제발 이 밀감을 잊지 마시라. 진실을 밝힌다는 미명 아래 고문을 하겠다는 생각이 떠오를 때마다 바로 이 밀감을 생각하시라!"

    - 홍세화, '나는 빠리의 택시운전사'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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