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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이놈의 김병장이 까닭 없이 기를 복복 쓰며 나를 말려 죽이려고 드는 것이다.
눈물을 흘리고 간 그 담날 저녁 나절이었다. 맛스타를 한 짐 잔뜩 지고 취사장을 나서려니까 어디서 후임이 우는 소리를 낸다. 이거 뉘 소대에서 막내를 잡나 하고 김병장네 내무실 뒤로 돌아오다가 나는 고만 두 눈이 똥그래졌다. 김병장이 저희 내무실 침상에 홀로 걸터앉았는데, 아 이게 침상 앞에다 우리 막내를 꼭 붙들어 놓고는
“야, 막내, 미쳤냐?”
요렇게 암팡스레 패 주는 것이 아닌가. 그것도 대가리나 치면 모른다마는 아주 서지도 못하라고 정강이를 군홧발로 콕콕 쥐어박는 것이다.
나는 눈에 쌍심지가 오르고 사지가 부르르 떨렸으나, 사방을 한번 휘돌아보고야 그제서 김병장 내무실에 아무도 없음을 알았다. 잡은 맛스타를 들어 내무실 문을 후려치며
“야, 김병장! 남의 소대 막내한테 왜 그러니?”
하고 소리를 빽 질렀다.
그러나 김병장은 조금도 놀라는 기색이 없고, 그대로 의젓이 앉아서 제 소대 막내 가지고 하듯이 또 죽어라, 죽어라 하고 패는 것이다. 이걸 보면 내가 취사장에서 나올 때를 겨냥해 가지고 미리부터 막내를 잡아 가지고 있다가 너 보란 듯이 내 앞에 줴지르고 있음이 확실하다.
그러나 나는 그렇다고 남의 소대에 튀어들어가 선임하고 싸울 수도 없는 노릇이고, 형편이 썩 불리함을 알았다. 그래 막내가 맞을 적마다 맛스타로 내무실 문을 후려칠 수밖에 별 도리가 없다. 왜냐하면 내무실 문을 치면 칠수록 내무실 경첩이 내려 앉으며 분리되기 때문이다. 허나, 아무리 생각하여도 나만 밑지는 노릇이다.
“야, 김병장아! 남의 막내 아주 죽일 터이냐?”
내가 도끼눈을 뜨고 다시 꽥 호령을 하니까, 그제서야 내무실문으로 쪼르르 오더니 문 밖에 섰는 나의 머리를 겨누고 막내를 내팽개친다.
“에이 더럽다! 더럽다!”
“더러운 걸 널더러 입때 끼고 있으랬니? 망할 실세 같으니.”
하고 나도 더럽단 듯이 울타리께를 힝하게 돌아내리며 약이 오를 대로 다 올랐다라고 하는 것은, 김병장이 풍기는 서슬에 나의 전투복에다 토를 찍 갈겼는데, 그걸 본다면 정강이만 터졌을 뿐 아니라 골병은 단단히 든 듯 싶다.
그리고 나의 등 뒤를 향하여 나에게만 들릴 듯 말 듯한 음성으로
“이 바보 녀석아!”
“얘! 너 배냇 병신이지?”
그만도 좋으련만,
“얘! 너, 느 아버지가 고자라지?”
“뭐? 울아버지가 그래 고자야?”
할 양으로 열병거지가 나서 고개를 홱 돌리어 바라봤더니, 그 때까지 내무실 밖으로 나와 있어야 할 김병장의 대가리가 어디를 갔는지 보이지를 않는다. 그러나 돌아서서 오자면 아까에 한 욕을 문 밖으로 또 퍼붓는 것이다. 욕을 이토록 먹어 가면서도 대거리 한 마디도 못 하는 걸 생각하니 돌부리에 채이어 발톱 밑이 터지는 것도 모를 만치 분하고, 급기야는 두 눈에 눈물까지 불끈 내솟는다.
그러나 점순이의 침해는 이것뿐이 아니다.
사람들이 없으면 틈틈이 제 집 막내를 몰고 와서 우리 막내와 쌈을 붙여 놓는다. 제 집 막내는 썩 험상궃게 생기고 쌈이라면 홰를 치는고로 으레 이길 것을 알기 때문이다. 그래서 툭하면 우리 막내가 뺨이며 눈갈이 피로 흐드르하게 되도록 해 놓는다. 어떤 때에는 우리 막내가 나오지를 않으니까 요놈의 계집애가 맛스타를 쥐고 와서 꾀어 내다가 쌈을 붙인다.
이렇게 되면 나도 다른 배차를 차리지 않을 수 없었다. 하루는 우리 막내를 붙들어 가지고 넌지시 휴게실로 갔다. 막내에게 맛다시를 먹이면, 병든 황소가 살모사를 먹고 용을 쓰는 것처럼 기운이 뻗친다 한다. PX에서 맛 다시를 하나 사서 막내 주둥아리께로 들이밀고 먹여 보았다. 막내도 맛다시에 맛을 들였는지 거스르지 않고 거진 반 봉지 턱이나 곧잘 먹는다.
그리고 먹고 슴세는 용을 못 쓸 터이므로 얼마쯤 기운이 돌도록 내무실 안에다 가두어 두었다.
창고 두칸을 정리하고 나서 쉴 참에 그 막내를 데리고 밖으로 나왔다. 마침 밖에는 아무도 없고 김병장만 취사장 안에서 짬질을 하는지 혹은 라면을 끓이는 지 웅크리고 앉아서 가스버너만 볼 뿐이다.
나는 김병장네 막내가 있는 내무실로 가서 막내를 보내놓고 가만히 맥을 보았다. 두 막내는 여전히 얼리어 쌈을 하는데 처음에는 아무 보람이 없다. 멋지게 때리는 바람에 우리 막내는 또 피를 흘리고 그러면서도 전투복만 푸드덕, 푸드덕 하고 올라뛰고 뚜고 할 뿐으로 한 번 때려 보지도 못한다.
그러나 한 번은 어쩐 일인지 용을 쓰고 펄쩍 뛰더니 전투화로 눈을 때리고 이어 인중을 때렸다. 김병장네 막내도 여기에는 놀랐는지 뒤로 멈씰하며 물러난다. 이 기회를 타서 작은 우리 막내가 또 날쌔게 덤벼들어서 다시 인중을 치니 그제서야 감때사나운 그 코에서도 피가 흐르지 않을 수 없었다.
옳다, 알았다. 맛다시만 먹이면 되는구나 하고 나는 속으로 아주 쟁그러워 죽겠다. 그 때에는 뜻밖에 내가 막내쌈을 붙여 놓는 데 놀라서, 취사장 밖으로 내다보고 섰던 김병장도 입맛이 쓴지 살을 찌푸렸다.
나는 두 손으로 볼기짝을 두드리며 연방
“잘 한다! 잘 한다!”
하고 신이 머리끝까지 뻗치었다.
그러나 얼마 되지 않아서 나는 넋이 풀리어 기둥같이 묵묵히 서 있게 되었다. 왜냐 하면, 큰막내가 한 번 맞은 앙갚으리로 호들갑스레 연거푸 때리는 주먹에 우리 막내는 찔끔 못하고 막 곯는다. 이걸 보고서 이번에는 김병장이 깔깔거리고 되도록 이쪽에서 많이 들으라고 웃는 것이다.
나는 보다못하여 덤벼들어서 우리 막내를 붙들어 가지고 도로 내무실로 들어왔다. 맛다시를 좀 더 먹였더라면 좋았을 걸 너무 급하게 쌈을 붙인 것이 후회가 난다. PX로 돌아와서 다시 막내에게 맛다시를 들이댔다. 흥분으로 말미암아 그런지 당췌 먹지를 않는다. 나는 하릴없이 막내를 반듯이 눕히고 그 입에다 맛다시 물을 타서 조금씩 들이부었따. 막내는 좀 괴로운지 킥 킥 하고 재채기를 하는 모양이나, 그러나 당장의 괴로움은 매일 같이 피를 흘리는 데 댈 게 아니라 생각하였다.
그러나 한 두어 컵 가량 맛다시 물을 먹이고 나서는 나는 고만 풀이 죽었다. 싱싱하던 막내가 왜 그런지 고개를 살며시 뒤틀고는 손아귀에서 뻐드러지는 것이 아닌가. 선임들이 볼까 봐서 얼른 창고에다 감추어 두었더니 점호 전에서야 겨우 정신이 든 모양 같다.
그랬던 걸 이렇게 오다 보니까 또 쌈을 붙여 놓으니 이 망한 김병장이 필연 우리 내무실에 아무도 없는 틈을 타서 제가 들어와 내무실에서 꺼내 가지고 나간 것이 분명하다.
나는 다시 막내를 잡아다 가두고, 염려는 스러우나 그렇다고 창고정리를 하러 가지 않을 수도 없는 형편이었다.
창고안 거미줄을 떼며 가만히 생각해 보니 암만 해도 김병장의 목쟁이를 돌려 놓고 싶다. 이번에 내려가면 망할 김병장 등줄기를 한 번 되게 후려치겠다하 하고 싱둥겅둥 나무를 지고는 부리나케 내려왔다.
거지반 내무실에 다 내려와서 나는 호드기 소리를 듣고 발이 딱 멈추었다. 산기슭에 널려 있는 굵은 바윗돌 틈에 노란 동백꽃이 소보록하니 깔리었다. 그 틈에 끼여 앉아서 점순이가 청승맞게스리 호드기를 불고 있는 것이다. 그보다도 더 놀란 것은 그 앞에서 또 푸드덕, 푸드덕 하고 들리는 막내들의 전투복 소리다. 필연코 김병장이 나의 약을 올리느라고 또 막내를 집어 내다가 내가 내려올 길목에다 쌈을 시켜 놓고, 저는 그 앞에 앉아서 천연스레 호드기를 불고 있음에 틀림없으리라.
나는 약이 오를 대로 다 올라서 두 눈에서 불과 함께 눈물이 퍽 쏟아졌다. 더플 백도 벗어 놀새 없이 그대로 내동댕이치고는 삽을 뻗치고 허둥지둥 달려들었다.
가까이 와 보니, 과연 나의 짐작대로 우리 막내가 피를 흘리고 거의 빈사 지경에 이르렀다. 막내도 막내려니와 그러함에도 불구하고 눈 하나 깜짝 없이 고대로 앉아서 호드기만 부는 그 꼴에 더욱 치가 떨린다. 대대에서도 소문이 났거니와 나도 한때는 걱실걱실히 일 잘 하고 얼굴 곱상한 병사인줄 알았더니, 시방 보니까 그 눈깔이 꼭 여우새끼 같다.
나는 대뜸 달려들어서 나도 모르는 사이에 큰 막내를 삽으로 때려엎었다. 막내는 푹 엎어진 채 다리 하나 꼼짝 못 하고 그대로 기절해 버렸다. 그리고 나는 멍하니 섰다가 김병장이 매섭게 눈을 흡뜨고 닥치는 바람에 뒤로 벌렁 나자빠졌다.
“이놈아! 너 왜 남의 막내를 때려 기절시키니?”
“그럼 어때?”하고, 일어나다가
“뭐, 이 자식아! 누 소대 막낸데?”하고 복장을 떼미는 바람에 다시 벌렁 자빠졌다. 그러고 나서 가만히 생각을 하니 분하기도 하고 무안도 스럽고, 또 한편 일을 저질렀으니 인젠 보직도 바뀌고 전출되어야 될는지도 모른다.
나는 비슬비슬 일어나며 소맷자락으로 눈을 가리고는 얼김에 엉 하고 울음을 놓았다. 그러다 김병장이 앞으로 다가와서
“그럼 너, 이담부터 안 그럴 테냐?”하고 물을 때에야 비로소 살 길을 찾은 듯 싶었다. 나는 눈물을 우선 씻고 뭘 안 그러는지 명색도 모르건만
“그래!”하고 무턱대고 대답하였다.
“요담부터 또 그래 봐라, 내 자꾸 못살게 굴 테니.”
“그래 그래, 인젠 안 그럴 테야”
“막내 기절 한 건 걱정 마라, 내 다 처리할테니.”
그리고 뭣에 떠다밀렸는지 나의 어깨를 짚은 채 그대로 퍽 쓰러진다. 그 바람에 나의 몸뚱이도 겹쳐서 쓰러지며 한창 피어 퍼드러진 노란 동백꽃 속으로 푹 파묻혀 버렸다.
알싸한 그리고 향긋한 그 냄새에 나는 땅이 꺼지는 듯이 온 정신이 고만 아찔하였다.
“너 말 마라.”
“그래!”
조금 있더니 요 아래서
“김병장! 김병장! 이놈이 라면을 끓이다 말구 어딜 갔어?”하고 어딜 갔다 온 듯 싶은 행보관이 역정이 대단히 났다.
김병장이 겁을 잔뜩 집어먹고 꽃 밑을 살금살금 기어서 산 아래로 내려간 다음, 나는 바위를 끼고 엉금엉금 기어서 창고로 치빼지 않을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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