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이 너무 길다고 생각하시면 맨 끝으로 가세요. 다섯 줄 요약이 있습니다.]]
게임 개발자로 살면서 업계의 암담한 현실이 보일 때도 많습니다. 물론 저는 현재 몸담고 있는 프로젝트의 핵심 개발자로 인정을 받고 있고 열심히 일하면서 좋은 대우를 받고 있습니다.
많은 젊은 청년들이 게임 개발에 대해서 별거 아닌 것 처럼 생각하는 경향이 있는데
지금 게임 개발자, 프로그래머, 디자이너가 되고 싶은 사람들은 이 글을 읽고 한 번 생각해 보는 것도 좋을 것 같습니다.
우선 대기업 중심의 업계 재편이 서서히 진행되고 있고요. 이 속도는 점점 빨라지고 있습니다. 대형 게임 포탈과 자금력, 웹의 영향력을 무기로 하는 대기업의 헤게모니가 앞으로는 점점 더 고착화 되고 중소 게임 업체들은 말라 죽을겁니다.
사실 지금 게임 회사들은 너무 많고 이들 회사가 개발하고 있는 게임의 개성도 거의 없습니다.
비슷한 세계관에 비슷한 스타일, 비슷한 전투 방식과 시스템 게다가 비슷한 마케팅...
아주 극심한 레드 오션이지요. 이런 상황에서는 기존의 유저들을 가지고 있는 회사. 마케팅에 더 자금을 쏟아 부을 수 있는 회사. 개발에 더 자금을 투자할 수 있는 회사가 유리하고 이런 회사들은 거의가 대기업이거나 대형 퍼블리셔의 전폭적인 투자를 받은 회사일 겁니다. 지금 난립하고 있는 중소규모의 업체들은 미래가 아주 불투명해요.
최근 기업간 M&A와 드랍된 수 많은 프로젝트로 인해서 구조조정이 발생했고 앞으로 몇 년 이내에 이런 업계의 재편, 구조조정 바람은 계속 이어질 것입니다. 어느 정도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개발업체라 하더라도 안심할 수는 없습니다. 제가 알고 있는 중견 업체도 최근 연이어 두 개 프로젝트가 드랍되면서 개발자들이 구조조정 됐거든요.
결국 그렇게 되면 인력 시장에 경력자들이 쏟아져 나오게 됩니다. 이것은 신입 입사 지망자들과 경력자들 모두에게 매우 불운한 상황이 될 수 밖에 없습니다. 예. 저는 개발자들의 IMF시대가 오고 있고 곧 도래할 것이라 보고 있습니다.
기존 업체들의 구조 조정도 그렇지만 앞으로 신입 지망자들의 수가 날이 갈 수록 증가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게임 관련하여 각 대학이나 교육기관에서는 게임 관련 학과들을 설립하고 있고 스쿨이나 아카데미도 더 늘어날 것입니다. 왜냐하면 업계에서 은퇴했거나 구조조정으로 회사를 떠난 경력있는 개발자들이 세우는 교육 기관은 더 늘어나면 늘었지 줄지는 않을 것이기 때문이지요.
각 학교에서도 최근 취업률이 좋았던 게임 관련 학과를 세우는 것이 메리트가 있다고 판단하고 있고 특히 외진 곳에 있는 학교일 경우 특성화 하여 이를 홍보하고 입학생을 유치하기가 비교적 용이하기 때문에
이에 따라서 시간이 지날수록 관련 교육기관, 관련 학과에서 배출하게 되는 수료자, 졸업자의 수는 더 늘어날 것입니다. 기업은 줄어드는데 업계에 입사하기를 희망하는 지망생은 공급 과잉으로 가치가 떨어지게 되는 거지요.
기업에서 필요로 하는 규모 이상의 인력들이 시장에 나와있다는 것은 장기적으로 큰 문제가 될 것입니다.
기업 입장에서는 좋아요. 공급이 많다는 것은 결국 가치가 낮아진다는 것이고 인력을 더 싸게 쓸 수 있거든요. 문제는 개발자들(지망생과 경력자들을 다 합쳐서)입니다.
또 장기적으로 봤을 때에 한국의 게임 산업이 지금과 같이 호황을 누릴 것이라고 장담할 수 없다는 겁니다.
여성부의 게임 셧다운제를 비롯한 게임 업계 규제는 시장을 더 축소 시킬 것이고 외국의 게임 개발 역량 역시 치고 올라오는 상황입니다.
전통의 강호인 미국은 말할 것도 없고 유럽에도 꽤 괜찮은 회사들이 있습니다. 일본이 갈라파고스에서 벗어나서 본격적으로 온라인 게임 시장에 뛰어 든다면 그것도 역시 경계해야 될 일이겠지요. 그러나 여기까지는 예상 가능한 수준입니다. 문제는 예상 이상의 폭발적인 상황이 발생했을때 어떻게 될 것이냐 하는 겁니다.
특히 한국의 개발자들과 기업, 핵심 기술을 일부 먹어치운 중국의 발전이 클 것이고. 아직은 난장판이지만 중국 내부에서 천재적인, 감각적인 코어 개발자들이 등장하게 되면 그들의 기획과 월드 디자인을 중심으로 얼마든지 물량과 인력을 투입하여 대작을 만들 수도 있는 것이 중국의 잠재력입니다.
중국이 해외 게임사들의 그래픽 관련 외주사업이 활성화 되고 있는 것도 그 성장 동력 중 하나가 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가장 무서운 상황은 중국에서 눈앞의 수익을 목적으로 하는 것이 아닌 게임의 재미와 완성도를 최우선 가치로 생각하고 개발력이 있는 개발사가 등장하는 것입니다.
지금 주목받고 있지는 못하지만 러시아의 개발력 역시 굉장한 수준입니다. 러시아는 월드 디자인과 이를 유기적으로 구현하는 것에 굉장히 강합니다. 때때로 거침없이 새로운 시도도 하고요. 게임 아트에 관해서도 본래 예술적 개성과 기반이 강한 나라이다보니 좋은 그림들이 많이 나옵니다.
한국은 악재가 될 상황이 쌓여있습니다. 일단 앞에서 언급한 정부에서 셧 다운제 실시 등 강력하고 적극적으로 게임 업계를 규제하겠다는 것이 그 하나. 기업간 M&A와 이미 레드 오션이 된 시장 상황이 둘.
인구가 계속 줄어들어 실질적으로 게임을 소비하는 유소년, 청소년 인구는 점차 감소하게 되는 것이 그 세 번째...
이 와중에서 인력 시장에서는 경력자들과 신입 지망생들이 자리를 두고 경쟁해야 합니다. 구직자만 문제가 생기는 것이 아닙니다. 업계 임금 수준이 내려가게 되면 기존 개발자들의 임금 상승 폭도 높아질 필요가 없습니다.
결국 핵심적인 개발능력을 가진 개발자만이 살아남는 살벌하고 치열한 업계가 될 것입니다. 사실 게임 업계는 지금도 치열합니다. [대리->팀장->차장->부장->동네 통닭집 사장] 이게 농담이 아니라 실존하는 이야기입니다.
프로그래머나 디자이너라면 다를 수도 있지만 기획자라면 늦어도 30대 중반에는 회사의 임원이 되거나 임원이 될 수 있는 코스를 밟고 있거나, 그도 아니라면 능력을 인정받아 한 개발 파트의 장이 되어 있어야 합니다.
어중간하게 각오를 가지고 업계에 들어온 사람, 자신만의 개발 능력이 없는 사람은 결국 회사에서 털려나게 되고 수 많은 신입 지망생들의 발길에 채이게 될 것입니다. 앞으로는 이런 상황이 더욱 가시화 될 것이고요.
게임 개발 관련하여 교육기관 사이의 헤게모니, 혹은 엘리트화도 가속화 될 것입니다. 소위 명문이 등장하고 그 명문 교육기관을 통해서만 취업이 용이해지는 사태가 발생할 지도 모르지요.
결론은
[어중간한 게임 개발자가 될 것이라면 차라리 다른 일을 해라] 입니다.
[하고 싶어서 게임을 개발하려는 사람이 되기 보다는 실질적인 개발 능력을 갖추어라] 입니다.
[게임 개발자에게는 춥고 냉혹한 경쟁과 현실이 기다리고 있다는 것을 각오해라] 입니다.
[게임을 즐기는 것과 개발하는 것은 분명히 다르다] 입니다.
지금까지 두서없이 긴 글을 썼습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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