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리그가 승강제 시행을 놓고 골머리를 앓고 있다. 한국프로축구연맹은 지난 20일 정기 이사회를 열고 자신들이 준비한 2012시즌 승강제 시행안을 의결하려고 했지만 각 구단의 이해 관계가 엇갈리면서 무산됐다. 결국 시행안 결정은 내년 1월로 미뤄지게 됐다. 리그 개막을 70여 일도 채 남겨두지 않은 가운데 커다란 암초를 만난 셈이다.
안기헌 프로연맹 사무총장은 "승강제 도입에 대해선 전 구단이 찬성했지만, 1부리그 팀 수에 대한 의견이 구단별로 달라 합의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무엇보다 전날 시·도민 구단의 극렬한 반발이 원인이 됐다. 이에 연맹 측의 안일한 업무 진행과 시·도민 구단의 뒤늦은 항변에 대한 비판 여론이 서로 엇갈리고 있는 형국이다.
논란의 번지수가 틀렸다. 진짜 문제는 현재 K리그가 구상하고 있는 승강제의 대전제가 잘못됐다는 점이다. 29년(햇수 기준) 역사 속에서 K리그는 통합 리그, 전·후기 리그, 4강 혹은 6강 플레이오프 등 수많은 제도 변화를 겪었다. 김은중(강원FC)은 "너무 잦은 제도 변화에 선수들조차 종종 잘못 알고 있는 경우가 있다"고 털어놨을 정도다. 그러나 다소간의 반발은 있었어도, 제도 변화 자체가 문제될 것은 없었다. 근본적으로 하나의 리그 안에서 일어난 일이었기 때문이다.
이번 승강제는 성격 자체가 다르다. 범위가 K리그를 넘어선다. 승강제는 단순히 어떤 팀을 올리고 내리는 일이 아니다. 2부리그라는 또 하나의 독립된 프로리그를 만들고, 그 구성원을 정하는 대단히 어려운 작업이다. 새로운 프로리그가 출범하려면 지속·발전 가능한 성격과 비전을 확인하는 작업이 전제돼야 한다. 그런데 이 과정이 '깔끔하게' 생략되어 있다.
최대 선결 과제는 2부리그다
현재 K리그 각 구단 실무자들의 공통된 생각은 "2부리그로 가면 팀이 해체된다"이다. 왜 그럴까? 강등될 팀이 뛸 2부리그 자체의 자생력이 전혀 담보되어 있지 않기 때문이다. 마치 하루도 못 가 물이 전부 마를 사막 속 수영장을 보는 듯하다. 물을 지속적으로 공급할 파이프를 연결해야 한다.
그런데도 프로연맹의 초점은 1부리그에 한정되어 있다. 지금껏 나온 승강제 시행안이 그렇다. 1부리그를 몇 팀으로 운영할지(12~14팀), 그에 앞서 1부리그를 어떻게 운영할지(스플릿 시스템), 기존 1부리그 클럽의 기득권을 어떻게 지켜줄지(30억 원 축구발전기금)에 대한 논의는 꾸준히 있어 왔다.
반면 2부리그에 대해선 의구심이 적지 않다. 새로운 리그를 만들어야 하는 상황인데, 당장 몇 팀으로 운영할지에 대한 얘기부터 확실한 것이 없다. 골격이 없으니 2부리그가 어떻게 축구시장에서 살아남을지에 대한 논의 자체도 불가능하다. 이런 상황에서 승강을 논한다는 것은 그야말로 어불성설이다.
그렇다면 우선적으로 논의돼야 할 것은 1부리그 강등팀 숫자가 아닌, 2부리그가 앞으로 어떤 비전을 갖고, 어떤 제도적 이점을 갖고, 어떤 활성화 방안을 가질 수 있는지다. 그래야 1부리그 팀들도 강등을 감내할 수 있으며, 2부리그에서 생존을 이어가며 다시 올라올 수 있다는 희망을 가질 수 있다.
일각에선 "도·시민 구단이 뒤늦게 말을 바꾸고 버틴다"며 불도저 같은 추진력을 얘기하지만, 현 상황에서 당장 프로연맹이 승강제를 밀어붙인다면 말 그대로 낭떠러지로 내모는 격이다. 2부리그에 대한 충분한 대안 마련이 먼저다. 그 이후에도 승강제 논의를 거부하는 팀은 그저 강등 자체가 싫은 것이다.
축구발전기금부터 포기하자
K리그가 가장 먼저 포기해야 할 것은 축구발전기금이다. K리그에서 신생 구단은 가입금 10억 원과 30억 원의 축구발전기금을 내야 한다. 그동안 승강제 도입을 막은 가장 큰 '악법'이다. 축구발전기금이 생긴 해는 수원 삼성이 창단된 1995년이었다. 프로스포츠 팀은 기업이 만들고 운영한다는 개념에서 벗어나지 못하던 시절이었다. 삼성이란 대기업이 뒤늦게 K리그 판에 뛰어들려 하니, 10년 넘게 K리그를 지켜온 기존 기업 구단은 불만을 가질 수밖에 없었다. 결국 자신들 사이의 기득권을 인정받는 차원에서 축구발전기금이란 일종의 '페널티'가 생겨난 것이다.
시대가 변했다. 1997년 프로스포츠 최초 시민구단 대전 시티즌이 창단되면서부터다. 더불어 2000년대 들어서 프로축구는 규모의 경제가 필요했다. 작은 파이를 여럿이 나누는 '분배'보다는 일단 파이 자체를 키워야 하는 '성장'에 주목해야 했다. 그런데 정작 K리그는 규모를 늘리고자 시민구단 창단은 독려하면서도, 분배를 강조한 축구발전기금은 여전히 강요해 오는 이율배반적 모습을 이어 왔다.
상황이 복잡한 것은 축구발전기금이 전부 완납된 것도 아니란 사실이다. 수원 삼성 이후 K리그에 참가한 7팀 가운데 축구발전기금을 완납한 것은 '막내'인 광주가 유일하다. 시·도민 구단 맏형 격인 대전이 아직 10억 원을 내지 않았고, 이를 전례 삼아 대구·인천·경남·강원도 각각 20억 원씩을 미납했다. 상주 상무는 가입금 10억 원도 겨우 냈을 정도다. 강등이란 문제를 두고 기업 구단이 형평성을 얘기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2부리그의 중흥을 위해서라면 대폭 수정이 불가피하다. 안 사무총장은 "2부리그에서 1부리그로 승격한 팀에게 발전기금을 받는 나라는 없다"며 이를 인정했다. 풍부한 자금력의 기업 구단들이 한 발 물러난다면 해결 방법은 무궁무진하다. 한 가지 대안은 축구발전기금을 '제로(0)'로 만드는 것이다. 기존에 축구발전기금을 냈던 팀들은 이를 2부리그 강등 시 지원금으로 매년 10억 원씩 되돌려 받을 수 있게 한다. 예를 들어 20억 원을 냈던 구단에겐 연맹 측이 향후 2부리그에서 보낼 처음 2년 동안 해마다 10억 원씩을 지급하는 것이다. 이 금액은 해당 클럽이 2부리그에서 생존을 이어 가고, 다시 1부리그로 승격을 꿈꿀 수 있는 토대로 활용될 수 있다. 이만하면 '축구발전'이란 원래의 용도에도 적합하다.
대신 앞으로 축구 구단 창단은 모두 2부리그로 제한한다. 축구발전기금은 받지 않고, 가입 비용 역시 10억 원에서 대폭 줄여준다. 이렇게 진입 장벽을 낮춰 프로축구 클럽 운영의 '벤처화'를 유도한다. 증권시장에 빗대면 2부리그를 코스닥으로 만드는 것이다. 이를 통해 추후 하부리그를 활성화할 수 있고, 전체 파이를 크게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과거 완산 푸마 같은 사태를 막기 위해 창단 제반 조건을 코스닥 상장 조건만큼 까다롭게 적용해야 할 것이다.
언론 노출 빈도를 늘려라
2부리그 생존의 가장 큰 선행 과제 가운데 하나는 언론 노출이다. 언론 노출 빈도가 낮다는 것은 그만큼 스폰서가 붙을 이유도 떨어진다는 셈이고, 악순환이 될 수밖에 없다. TV 중계는 차치하고라도, 당장 언론 매체가 2부리그 기사를 생산할 수 있어야 한다. 방송-지면-인터넷 언론을 막론하고 한 매체의 축구 담당 기자는 적게는 1~2명에서 많아야 8명 내외다. 이들은 토·일요일은 물론이고, 주중에 열리는 K리그와 ACL 경기 등에 각각 나뉘어 취재에 나서고, 새벽엔 해외축구까지 맡는다. 자연스레 2부리그는 취재 스케줄에서 제외되는 1순위가 될 수밖에 없다. 내셔널리그의 언론 노출 빈도가 낮았던 이유도 다르지 않다.
그렇다면 제도적으로 보안이 필요하다. 가장 쉬운 방법은 1부리그와 2부리그가 열리는 요일 자체를 달리하는 것이다. 2부리그는 토요일, 1부리그는 일요일에만 열린다면 어떨까? 자연스럽게 언론사 취재는 물론 방송 중계도 1·2부에 고르게 분포될 수 있고, 그만큼 언론 노출 빈도도 높아지게 된다.
인터리그도 하나의 대안
현재로서 2부리그 팀은 적으면 6팀, 많게는 8팀 정도밖에 구성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홈 앤드 어웨이를 두 번씩 치러둬 최소 20경기, 최대 28경기에 불과하다. 경기 수가 절대적으로 부족하다. 따라서 2부리그만큼은 플레이오프제도가 유지된다면 흥미를 돋울 수 있다. 8개 팀 가운데 상위 3개 팀이 계단식 홈 앤드 어웨이 플레이오프를 치르게 해 관심을 유도하는 것이다.
만약 1부리그가 스플릿 시스템을 이후에도 유지한다면 인터리그도 그 해답이 될 수 있다. 이전부터 과도기적 제안으로서 인터리그를 강조해 왔던 한준희 KBS 해설위원은 "1부와 2부로 나누어 승강제를 시행하는 동시에, 1부와 2부 전체를 '한 묶음의 양대 프로리그'로서 보이게끔 하는 것이 인터리그 아이디어의 요체"라고 말했다.
스플릿 시스템 후반기를 1부리그끼리만 치르는 것이 아닌, 1부리그 상위 8팀 경기(우승 경쟁)와 1부리그 하위 4팀-2부리그 상위 4팀(승강 경쟁)이 참가하는 방식으로 이원화시키는 것이다. 그 결과 1부 리그 최하위 팀은 강등, 2부리그 최상위 팀이 승격한다. 물론 이때도 인터리그 경기는 토요일, 1부리그 경기는 일요일에 열리게 해 언론 노출 빈도는 유지한다.
2부리그 팀들의 재정 부담을 줄여주기 위한 방편으로 임대 활성화 방안도 고려할 수 있다. 1부리그 팀 1군에서 기회를 잡기 어려운 선수를 2부리그 팀으로 임대시키고, 대신 해당 선수 연봉을 서로 반반씩 부담하거나 일정 기간에 한해 1부 팀이 전액 부담해주는 것을 제도적으로 마련하는 것이다. 1부리그 팀들이 2부리그 정착을 위해 희생을 감수한다는 측면도 있다.
여기서 나온 얘기들은 모두 하나의 대안일 뿐이다. 한낱 기자 머리에서 나온 게 이만큼인데, 축구인 모두가 머리를 맞댄다면 더 좋은 대안은 무궁무진하게 나올 수 있다. 중요한 것은 일단 모두가 터놓고 얘기할 수 있는 자리가 마련돼야 한다. 이를 통해 2부리그의 생존 가능성이 담보가 돼야 승강제도 가능해진다. 그러나 승강제를 위한 공청회는 지난해 12월 열린 것이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다. 시·도민 구단이 "1·2부리그의 건전한 운영을 위한 재원 마련이나 제도 및 인프라 구축, 지원 방안, 수익 구조 등 구단 간 및 1·2부리그 간 형평에 맞는 발전 대책과 함께 지자체, 언론, 기업 등을 대상으로 공청회 등의 과정을 거쳐야 한다"고 강조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그동안 시·도민 구단은 배제된 채 기업 구단과 연맹 주도로 진행된 실무위도 투명해질 필요가 있다.
연맹의 가장 큰 잘못은 지금까지도 이런 과정에 대해 손 놓고 있었다는 것이다. 잘못은 잘못이고, 늦었다고 생각했을 때가 가장 빠르다고 했다. 승강제는 향후 K리그 백년대계의 첫걸음이다. 가장 좋은 것은 이 모든 것이 약속한 내년 1월까지 마무리되는 것이겠지만, 시간에 쫓긴다고 허투루 일을 진행시켜서도 안 된다. 밤낮을 가리지 않는 고민, 끊임없는 토론과 대책 논의가 이뤄져야 한다.
승강제 실시의 미시적 이유는 아시아축구연맹(AFC) 챔피언스리그다. 그러나 다시 한 번 강조하지만 가장 중요한 대의명분은 '한국프로축구 발전'이다. 좀 더 급진적으로 얘기해본다면 챔피언스리그 1~2년을 포기하더라도 2부리그를 제대로 갖추고 승강제를 실시해야 한다. 급하다고 아무 상처에나 빨간약만 바르고 보면 오히려 덧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설마 그때도 연맹이 이번처럼 미적거리지는 않으리라 믿는다면 너무 순진한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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