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저기서 재미있다는 말을 듣고 누가 나오는지, 무슨 영화인지도 모르고 본 위플래쉬입니다.
포스터에서 부터 느낌이 옵니다.
뭔가 음악 영화처럼 보이기도 하면서, 덕지덕지 붙은 수식어와 수상 경력들은 음악 영화가 아닌 것처럼 느껴지기도 합니다.
조금은 어리둥절한 느낌으로 영화를 보다 보면...
일단 줄거리는 이렇습니다.
셰이퍼 음대의 그저 그런 보조 드러머였인 주인공 [엔드류 네이먼]는 연습 중 드리닥친 재즈 밴드 지휘자이자 교수인 [테런스 플레쳐]의 눈에 들어 [스튜디오 밴드]의 메인 드러머가 됩니다. 그것을 계기로 평소 아버지와 자주 가던 극장의 매점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던 여성에게 데이트 신청도 하게 되고 승락을 얻어 내는 등, 타인의 시선조차 잘 마주치지 못하는 소심남 주인공의 인생이 극적으로 달라지게 되는 이야기를 그리고 있습니다.
<한점의 자비심 없이 예쁜데 안꾸미는 풋풋한 여대생의 정석>
자, 지금부터 제가 써내려갈 부분은 이 영화의 중대한 스포일러를 담고 있으니, 아직 보지 않으신 분들은 뒤로 가기를 눌러 주시면 되겠습니다.
1. 넌 그저 소심하고 순한게 아니라 표출할줄 모르는거야.
인간관계가 서툴고 소심하지만, 마음속에는 어떠한 뜨거운 갈망을 지닌 주인공 네이먼은 플레쳐 교수에게 발탁된 순간 부터 모든 것이 바뀌기 시작합니다. 사람과 눈도 마주치지 못했던 그는 순식간에 미녀 아르바이트에게 데이트 신청을 하게 되는가 하면, 감추어 두었던 욕구를 드럼으로 폭발 시킵니다.
드럼을 쳐보신 분들은 아시겠지만, 스틱을 드럼에 내리치는 것, 팔을 휘둘러 박자를 만들어내는 카타르시스는 어마어마 합니다. 어쩌면 네이먼이 음악가가 없는 가정에서 자라나 드럼을 치게된 이유는 일찍 돌아가신 어머님의 사랑에 대한 결핍, 친구는 없는 데다 이렇다 할 자극 없이 평범하고 조용한 아버지 밑에서 자라며 불만은 없었지만 무언가에 목말라 왔던 네이먼의 욕구 분출 때문이었을 지도 모릅니다.
<왜 친구가 없는지 실제 언사와 배역의 연기로서 잘 보여주는 좋은 예>
아름다운 여자친구를 사귀게 되고 나서도 한번쯤 등장할 법도 한 키스신이나 베드신은 커녕 손잡는 장면 조차 나오지 않는 이유는 어쩌면 네이먼은 그의 욕구나 욕망을 해소하는 방법 그 자체를 몰랐던 사람일 수도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저 그에게 있어 사람이 가진 희노애락과 욕구의 분출은 드럼 뿐이었을 지도 모릅니다.
<들고있는 스틱이 어떤 스틱이냐에 따라 엄청 달라 보이지만 결국엔 욕구 분출하는 사진>
실제로 주인공 네이먼의 표정은 무미건조하기 짝이 없으며, 자신을 꾸미지도, 표현하지도 않으며 하고 싶은말은 꾹 참고 누구에게나 순종적인 모습을 보여주는 그의 행동은 더더욱 강한 심증을 갖게 합니다.
하지만, 그랬던 네이먼은 플레쳐 교수에게 발탁된 이후 네이먼은 변화하기 시작합니다.
2. 훌륭한 교육자가 아닌, 끔찍한 독재자.
이름난 지휘자이자, 셰이퍼 대학의 교수인 플레쳐의 교육 방식은 마치 70~90년대 헐리웃 전쟁영화에서 쉽게 만나볼 수 있는 교관과도 같습니다. 우선 인간의 자존심과 자존감을 짖밟아 순응하게 만듬과 동시에 분노를 자극시켜, 그 반발심을 이용해 연주자들을 이끌어가고 교육 시킵니다.
<딱 스테레오 타입인 80년대 WWF레슬러 서전 슬로터>
<워리어랑도 붙고 현 WWE의 전신인 WWF시절 인기가 많았음>
쌍욕은 물론이며, 성적 수치심을 불러 일으키고 심지어는 부모님 욕까지 절대 주저하거나 꺼리낌 없이 뱉어 냅니다. 무려 폭력에 매우 민감한 미국땅에서 제자의 뺌을 수차례 후려치면서 까지 가르치려 발버둥 치고 이끌어 가려 안간힘을 씁니다.
<언제 성질내고 쌍욕하며 때릴지 모르니 유심히 지켜봐야 함>
하지만, 여기서 문제가 있습니다.
문제는 바로, 그 가르침과 이끌어가려는 것은 제자들과 연주자들을 위함이 아닌, 자기 자신을 만족시키기 위해서라는 것 입니다.
그는 매우 독선적이며 오만한 사람입니다. 철저하게 자신이 옳다고 믿고 있으며 자신은 해낼 수 있다라고 믿고 있습니다. 안타깝게도 그의 지위와 명성은 그의 독선과 오만에 기름을 드리부어 활활 타오르게 만들었습니다.
<그런데 오스카 상까지 줘버림>
자신의 실수인지, 그저 상대방이 싫었던 것이었는지 몰라도연 엉뚱한 사람을 붙잡고 주를 틀렸다 몰아 세워 온갓 멸시와 모멸을 주고 그 때문에 자살한 제자가 있었으며, 자신의 제자 중에서 이름난 연주가가 나오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끝까지 절대적인 자신의 편에 서 있습니다.
<스파이더맨 사진을 찍어 오라고오!!!>
제자의 자살과 네이먼의 증언에 의하여 학교에서 쫓겨나 교수직은 물론 스튜디오 밴드 지휘자에서도 물러났어야 했음에도 그는 자기자신이 정답이라 굳게 믿고 그것을 모르는 사람들이 문제라고 생각 합니다.
단순히 영화에서 비춰지지 않았을 뿐인지는 모르지만, 플레쳐에게는 가족이 등장하지 않습니다. 또한 지휘와 밴드에 관한 장면 외에 그 어떠한 사적인 장면도 없으며, 그에게는 오직 지휘와 가르침 뿐인 인간으로 그려지고 있습니다.
어쩌면 모든 면에서 실패한 사람일지도 모르는 그의 인생에서 그가 하루하루를 살아가며 그의 자존심과 자존감을 지키기 위해서는 끊임없이 남을 짖밟아 그 위에 올라서는 방식으로 밖에 자신을 추켜 세우는 수 밖에 없었으며, 그 수단을 이용하여 주변은 물론 자기자신까지 철저하게 속여왔던 것일지도 모릅니다.
제자의 죽음에 거짓일지는 모르지만 눈물을 흘리며 그것을 또 이용하는 사이코패스 처럼 보여지는 이유는 철저하게 자기 자신을 속이기 위함 이었을까요? 아니면, 사이코페스나 다름없는 플레쳐라도 조금의 양심은 남아 있었기 때문이었을까요?
3. 1+1=2 , 미친놈 + 미친놈 = ?
결핍 투성이인 네이먼과 거짓 투성이인 플레쳐가 만나 둘은 서로를 파멸로 이끌어 갑니다.
네이먼은 플레쳐에게 아버지에게서 느끼지 못한 카리스마와 위대함을 느끼게 되고 동경과 집착을 갖게 됩니다. 물론 자신의 전부나 다름 없었던 드럼연주 때문이기도 하지만 플레쳐에게 인정받기 위해서 자신의 모든 것을 쏟아 붓습니다.
논리적으로는 반박할 수 없지만 들을 가치조차 없는 말로 여자친구를 밀어 내고, 자신의 행동에 정당성을 부여하기 위하여 주변사람에게 상처를 줍니다. 스스로를 한계까지 몰아붙이며 의구심을 배제하고 그 모습에 취하여 삐뚤어진 자존감을 형성하게 됩니다.
<미쳤어... 분명히 네이먼은 미쳤어...>
네이먼은 그 삐뚤어진 자존감과 플레쳐에 대한 집착으로 차가 전복되는 교통사고를 당했음에도 불구하고 피칠갑을 하여 두블럭을 달려 드럼 연주를 하러 갑니다. 욕구 분출의 수단이었던 드럼은 어느새 광기의 분출이자 넘처나는 광기에 기름을 붓는 격이 되어버려 그를 파멸로 이끌었습니다.
<미녀 여친 차버리는 바보 네이먼 : "네이먼 피 난다, 네이먼 아프다, 하지만 드럼 친다."
반면 플레쳐는 네이먼을 철저하게 이용합니다. 귀신같은 당근과 채찍으로 네이먼을 현혹, 꼭두각시로 만들어 자신의 삐뚤어진 이상을 현실화 하려 합니다. 하지만, 네이먼의 광기 때문인지 네이먼 역시 수 많은 장기말에 불과 했는지 성에 차지 않아 그를 쫓아내게 됩니다.
<드럼 때려치우고 스파이더맨 사진이나 찍어 오라고 X꺄!>
역설적으로 밴드에서 네이먼을 내친 것은 플레쳐 였지만, 밴드에서 플레쳐를 내친 것은 네이먼이었습니다.
마지막 연주회에서 두사람의 일그러진 성격과 삐뚤어진 광기가 만나 영화의 마지막에 이르러 관객의 혼을 빼놓을 만큼의 광기를 뿜어내게 됩니다. 그 마지막 광기어린 네이먼의 연주는 또 하나의 역설로서 플레쳐로 부터 내쳐지고 그에게서 벗어나고 싶었던 피해자 네이먼이 오히려 플레쳐를 완성시키게 됩니다. 플레쳐가 그토록 바라던 한계를 뛰어넘은 연주자를 네이먼이 완성시켰기 때문입니다.
<You complete me!!!>
하지만 사실, 그 마저도 플레쳐가 추구하던 완벽히 새로운 연주가 아닌, 전설적인 드러머 버디 리치의 아류에 불과했지만 말입니다.
4. 사람은 자신이 보고 싶은 것을 본다.
우리는 쉽게 사람들의 의견이 나뉘게 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정치, 음악, 책, 드라마, 사람, 영화 등 그 모든것에서 부터 절대적으로 의견이 일치하는 경우는 오히려 지극히 드문 현상입니다.
<지극히 드문 현상의 장본님>
그것은 사람마다 개개인의 성향, 취향, 사고방식, 지식, 감성 그 모든것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자면 국가적 이슈와 연예계 이슈가 동시에 터졌을 경우, 누군가는 국가적 이슈에, 또 다른 누군가는 연예계 이슈를 더 무게를 두며 관심을 기울입니다.
영화로 치자면, 누군가는 트랜스포머를 스토리에 무게를 두며 봐서 미친듯이 실망하고, 누군가는 반지의 제왕을 원작에 무게를 두며 봐서 미친듯이 실망합니다.
<지극히 드문 현상으로 네임벨류에 비하여 절대 다수가 실망한 바로 그 영화>
저는 개인적으로 영화를 볼때 최대한 사전 정보를 제한하는 편입니다. 영화에 대한 편견도 기대도 최대한 갖고 싶지 않아서인데, 어쩔 수 없이 출연진이나 포스터, 감독등의 색깔 때문에 편견과 기대감을 완벽히 배제하고 볼 수는 없습니다. 개인적으로 위플래쉬 포스터 같은 영화는 절대로 찾아서 보지 않는 편입니다. 음악영화나 뮤지컬은 별로 취향이 맞지 않거니와 교훈 짙은 드라마나 휴머니즘과는 더더욱 맞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위플래쉬를 보며 그 어떠한 기대도 음악에 대한 설레임도 없었습니다. 저에게 있어 음악은 이 영화를 판단하는데 아무런 기준점이 될 수 없었던 것 입니다. 그런데 이 영화를 보는 도중 네이먼의 감정 기복은 순식간에 저를 매료 시켰습니다.
속된 말로 찌질이에서 또라이로 변해가는 네이먼의 모습은 스피드 하며 긴장감 넘치게 진행되었고, 그 어떠한 상황에서도 독선과 아집을 버리지 못하던 플레쳐의 사이코패스 같은 모습에서는 분노는 커녕 동정심 밖에 느껴지지 않을 정도로 와닿았으며 마지막 네이먼과 플레쳐의 광기어린 하모니에서는 귀를 즐겁게 하는 음악 넘어로 극도의 허탈감을 느낄 수 밖에 없었습니다.
<네이먼 : "나 잘해쪙?" // 플레쳐 : "아니, 내가 잘해쪙.">
모든 것을 내려놓은 자신만의 연주를 무아지경에 빠져 플레쳐를 압도하려던 네이먼의 혼신의 연주 조차, 아집과 독선이 극에 달한 플레쳐의 염원을 이루어 그를 완벽하게 만들어 주었기 때문입니다. 아마도 네이먼은 그 어떠한 방법으로도 플레쳐에게 인정받지 못했을 것 입니다. 플레쳐는 그 어떠한 거짓말과 수단을 써서라도 자기 스스로를 설득했을 테니까요.
결국 네이먼은 플레쳐에게 인정 받기는 커녕, 플레쳐가 스스로를 인정하게 되는 도구에 지나지 않았으니까요.
그 결말에 이르기 까지, 저에게 앤드류 네이먼 역의 마일즈 텔러와 테렌스 플레처 역의 J.K 시몬스, 이 두사람의 과격하되 넘치지 않고 담백하되 지루하지 않은 연기는 음악과 드럼 따위는 아무래도 좋은, 훌륭한 심리 서스펜스 영화를 보여주었습니다.
혹자는 위플래쉬를 보고 자기 자신에게 채찍질을 할 수 있는 좋은 기회를 보았고
혹자는 강압적이고 폭력적인 교육자의 모습에서 역겨움과 염증을 보았고
혹자는 피나는 노력으로 한 길을 걸어 성공하는 승리를 보았으며
혹자는 눈과 귀를 즐겁게 하는 드럼연주를 보았습니다.
아무것도 보지 못하고 아무런 흥미도 재미도 느끼지 못했을 수도 있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결코 멍청해서도, 영화를 볼줄 몰라서도 아닙니다. 그저 안맞는 것 뿐입니다. 반대로 여러가지를 보고 재미와 감동을 느꼈다고 똑똑하고 이해력이 좋으며 영화를 볼줄 알아서가 아닐 수도 있습니다. 그저 잘맞는 것 뿐일 수도 있으니까요.
정답은 없습니다.
당신은 위플레쉬에서 무엇을 보았습니까?
<보리! 보리! 보리! 보리! 보리! 보리! 보리! 보리! 보리! 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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