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21살, 우리 아빠 55살
35살, 남들에 비해 빨리 얻은 자식은 아니었지만
가난한 집에서 태어나 말단공무원부터 시작한 우리 아빠한테는 어쩌면 이른 일이었을지도 모르겠다
공무원 월급이야 빤하고,
지방에서 내내 일하다 나 초등학교때 혹여 출세길이 있을까 전근을 간 서울은 집값이 너무 비쌌다.
몸을 누위면 방안이 가득찼고 냉장고에서 싱크대까지는 딱 한발자국이었다.
귀하게 자란 규수는 아니었지만 그래도 외벌이로 남들 만큼은 하고 살았던 우리 엄마는 공장에 나갔다.
서울은 정말 힘든 곳이었다.
서울에 가보니 학교 친구들 모두 학원에 세네군데는 다니고 있었지만 나는 학교가 파하면 곧장 집으로 갔다.
하루종일 코딱지만한 방구석에 쳐박혀서 난생 처음 보는 유선방송에 정신을 팔다가
몸이 찌뿌둥하면 어디서 얻어온 때가 잔뜩 탄 파란 롤러스케이트를 타고 동네를 사방팔방 돌아나녔다.
그렇게 해가 질 무렵이면 엄마는 공장에서, 아빠는 직장에서 돌아왔다.
가진거 하나없고 내세울거 하나없는 우리 부모님에게 유일한 자랑은
학원한번 보낸적 없는데도 반에서 1,2등을 하는 나였다.
나는 갖고싶은게 많았다.
한창 유행하던 바퀴달린 신발도, 말을 탄 사람이 왼쪽 가슴이 오바로크된 셔츠도,
넣을것도 없었지만 친구들은 색색깔로 가진 망치가방도,
하지만 나는 늘 부모님 앞에서는 젠체하며 말했다.
"그런거 필요없어. 학생이면 교복입고 다니고 아무가방에나 책이나 넣으면 되지!"
한달에 2만원하는 용돈을 하나 쓰지않고 일년을 모아야 갖고 싶은 물건중 하나는 가지려나?
비싼 물건이 갖고싶으면 되려 속마음을 반대로 말하며 부모님께 열을 올리며 말했다.
"엄마, 아빠! 요즘 애들은 하나에 20만원도 넘는 티를 입고다닌다. 나는 걔네가 도저히 이해가 안가. 학생이 무슨 그렇게 비싼옷을 입고다녀"
그렇게 잘난체하며 말하던 나도 꼭 갖고 싶은게 있었다.
한입 베어문 사과로고가 박혀있던 작은 엠피쓰리.
다른때처럼 저런건 사치야, 사치야, 생각하면 마음을 다스리려고 해도 자꾸만 생각났다.
결국 고민고민하다 생일선물로 그 엠피쓰리가 받고싶다고 말하자 엄마는 말도 안되는 소리라고 딱 잡아 거절했다.
단칼에 거절당하고나니 뭔가 억울했다.
나도 갖고싶은데..내가 얼마나 갖고 싶은걸 참으면서 사는데..
나는 학원도 안다니고 공부를 얼마나 잘하는데...
나는 엠피쓰리가 얼마나 필요한지, 외국어 영역 듣기 시험어쩌고 긴 잡소리를 늘어놓으며 엄마에게 내 의견을 피력했지만 엄마는 다시 한 번 거절했다.
그러다 나보다 공부는 훨씬 못하는데 말썽만 부리고 옷은 브랜드만 입는 같은 반 친구가 가진 그 엠피쓰리를 생각하니 더 화가나서 결국 소리소리 지르며 대들었다.
내가 얼마나 착한애인지, 내가 얼마나 그걸 받을 자격이 되는지,
눈물이 쏟아지려고하는걸 참아가며 악에받쳐 한참 엄마에게 화를 냈다.
그렇게 한참 화를내고 방으로 들어가려는데 아빠가 나를 잡고 말했다.
"아냐, 아빠가 사줄게. 너 공부하는데도 필요하다는데 뭘 못해줘."
"됐어! 그냥 공부 안하고 고졸해서 공장이나 취업할게!"
나는 아빠손을 뿌리치고 악을 지른 뒤 방에 들어가 방문을 잠구고 틀어박혔다.
자꾸 눈물이 났다. 겨우 엠피쓰리때문에 우는것같아 쪽팔리니까 이불을 뒤집어썼다.
갖고싶은데도 못 갖는게 억울해서가 아니라 아빠가 불쌍해서 자꾸 눈물이 났다.
우리아빠 한달 용돈보다 훨씬 비싼 엠피쓰리인데 갖고싶다고 대드는 싸가지없는 자식도 자식이라고 꼭 사준다고 말하는 우리아빠가 불쌍해서.
그 기억을 잊고 살았다.
나는 계속 착한 아이었으니까..
나쁜 친구들 한둘과 모르지는 않았지만 사고도 친 적이 없었고, 어차피 인기가 없어서 이성문제같은걸로는 부모님 속을 썩일래야 썩일수가 없었다.
계속해서 브랜드 옷도, 10만원이 넘는 신발도 부러워하지 않는척, 상설매장에서 사온 나에겐 조금 작은 떡볶이 코트에 만족한척 했고, 결국 남들같은 과외도 받지 않고, 학원도 안다니고 나름 알아주는 학교에 입학했다.
나는 그렇게 부모님의 유일한 자랑이 되었다.
휴학을 하고 고향에 내려와 빈둥거렸다.
미래를 세우는척 했지만 친구들과 놀러다니느라 정신이 없었다.
그런 나를 붙잡고 너만이 우리집 희망이라고 말하는 엄마가 미웠다.
아빠는 매일 술을 마시고 집에 들어오고 엄마는 아빠에게 매일 소리 질렀다.
나는 부모님이 싸우면 못들은척, 관심없이 티비를 보다가 방에 들어가 컴퓨터를 했다.
오늘은 아빠가 술을 드시고 오셨지만 엄마보다 일찍 집에 돌아오셨다.
현관을 들어서자마자 술냄새가 진동을 하는 아빠의 손에는 계란 한판과 초콜렛이 들려있었다.
계란은, 계란 없이는 밥 먹는걸 싫어하는 내 꺼.
초콜렛은, 초콜렛이라면 사족을 못쓰는 내꺼.
엄마가 들어오기전에 얼른 씻고 자야 엄마 잔소리를 피할수 있을거라고 아빠를 채근해서 잠자리에 드시는걸 확인하고 티비를 보는데 술에 취한 아빠의 잠꼬대? 술주정?이 들렸다.
"내 새끼 참 이뻐. 내 새끼때문에 내가 살아. 하는거보면 진짜 너무 이뻐."
이내 신경끄고 티비를 보는데 그냥 뭔가 잔뜩 서러워졌다.
우리 아빠 참 불쌍하다......진짜 불쌍하다.....
그냥 이 글은 배설글.
다 읽은 사람 있으면 너무 고마워요.
댓글 분란 또는 분쟁 때문에 전체 댓글이 블라인드 처리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