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제가 엔하위키에 투고했던 항목을 간략히 편집해서 올리는 글입니다. 그냥 독도관련 문제도 요즘 시끄럽고, 동해나 일본해 명칭 문제로 좀 시끄러운 것도 있고 해서 한 번 올려봅니다.
1. 페드라 브랑카는?
(위 지도는 위키백과에서 public domain으로 공개한 그림입니다.)
지도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페드라 브랑카는 남중국해와 싱가포르 해협 인근에 있는 섬입니다. 주변에 암초가 많아서 좌초사고가 빈번한 관계로 등대가 설치되어 있지만 상주하는 사람이 없는 무인도입니다. 위치상으로 보면 말레이시아와 가깝지만, 2008년 국제사법재판소(ICJ)에서 싱가포르가 영유권을 지닌다고 판결했기 때문에 현재 공식적으로
싱가포르의 영토입니다.
2. 분쟁의 원인
서로 이게 누구 땅인지 명확하게 관계를 긋지 않은 것이 원인입니다.
말레이시아 입장에서는 말레이 반도와 그 주변의 섬들은 역사적으로 자신들이 살아오던 땅이고 그래서 당연히 페드라 브랑카를 비롯한 세 개의 섬도 자신들의 땅이라 생각하고 있었죠.
반면 싱가포르 입장에서는 영국의 식민지로 할양된 이후로 싱가포르의 영국인들이 등대를 지었고 영국인들이 관리한 곳이었습니다. 그리고 영국에서 독립한 이후로는 싱가포르에서 등대관리 임무를 이양받았기 때문에 당연히 페드라 브랑카도 자신들의 섬이라 생각했습니다.
별 마찰없이 넘어가고 있던 이 일은 1979년 말레이시아 정부가 지도를 찍어내면서 페드라 브랑카를 말레이시아령으로 기재를 했습니다. 이에 싱가포르에서는 당연히 항의를 했고, 이후로 둘이서 거의 20년 가까이 영유권 문제로 아웅다웅했습니다. 그리고 결국 양 국가 모두 ICJ에 이 문제를 제소하기로 합의하고 법정공방이 시작됐습니다.
ICJ에 영유권 분쟁이 넘어갈 경우 크게 두 가지 사항을 토대로 판단합니다. 하나는 역사적 권원, 이게 원래 누구의 땅으로 볼 수 있나입니다. 이 때문에 유럽에서 영유권 분쟁이 벌어지면 1,000년전 자료를 들고와서 원래 우리 땅이었다고 싸우는 모습도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나머지 하나는 누가 현재 국제법상으로 적법한 실효주권을 행사하고 있나 입니다. 전자도 중요하긴 한데 후자가 더 중요합니다.
3.
페드라 브랑카/풀라우 바투 푸테는 역사적으로 말레이시아의 영토이다. 싱가포르는 페드라 브랑카가 Terra Nullius, 즉 주인이 없는 땅이었다고 주장을 했습니다. 국제법상 주인이 없는 땅은 먼저 찜하는 사람이 임자가 됩니다. 당연히 영국에서 이 주인이 없는 섬에 등대를 건설해서 국제법상에서 적법하게 취득한 섬이고, 계속 관리해오다가 싱가포르가 이양받아 관리해 왔으니 당연히 싱가포르의 영토라는 논리로 이어진거죠.
말레이시아는 역사적으로 페드라 브랑카가 자신들의 땅이었음을 입증하는 자료를 제출하여 싱가포르의 주장을 꺾으려 했습니다. 역사적으로 말레이 반도와 싱가포르 해협의 섬은 조호르의 영토였고, 조호르는 말레이시아를 구성하는 일부이므로 말레이시아의 영토라는 논리로 받아친 셈입니다.
실제 동남아시아 지역에서 식민지를 경영하던 유럽인들이 남긴 기록에 페드라 브랑카 인근 지역이 조호르 군주들이 다스리는 영토로 인식한 문서들이 상당수 있었고, 더불어 싱가포르 해협에 있는 섬에서 온 사람이 조호르의 백성으로 기록한 문서도 있었습니다.
결국 ICJ도 명백한 역사적 증거를 인정하여 페드라 브랑카는 역사적으로 말레이시아의 영토가 맞고, 무주지를 주장한 싱가포르는 틀렸다고 판단을 하게 됩니다. 즉, 역사적 권원 문제는 말레이시아의 판정승으로 끝났습니다.
4.
19세기 페드라 브랑카/풀라우 바투 푸테의 상황은 판단할 수 없다. 역사적 권원 문제는 해결이 됐지만 정작 등대를 건설하던 시점에는 양쪽 모두 혼돈의 카오스 수준이었습니다. 여기서 문제가 된 것이 두 가지가 있습니다. 그 중 하나는 영국과 조호르 사이에 정식으로 맺은 협정서로, 조호르가 어느 지역의 권리를 영국에게 이양한다는 내용이었습니다.
말레이시아는 싱가포르와 그 주변 10마일 이내의 섬으로 한정된다는 협정문 제2항을 들이밀면서 페드라 브랑카를 위시한 싱가포르 해협에 있는 섬들은 조호르의 영토였다고 주장합니다.
반면 싱가포르는 제12항에 기록되어 있는 Carimon 제도
or Bantam, Bintang, Lingin의 섬
or 싱가포르 해협의 섬들에는 영국이 확장할 수 없다고 된 조항을 들이밀면서 or 관계에 따라 싱가포르 해협도 취득을 했고, 본국에 보고한 문서에도 이 싱가포르 해협을 취득한 것으로 인지하고 있었다고 반박을 가했습니다.
그리고 두 번째는 영국에서 조호르의 군주와 재상에게 등대 건설에 대한 서신을 보냈고 이 때 조호르에서 보낸 답신을 번역한 버전이 남아있었습니다. 답신의 내용은 다음과 같았습니다.
"당신들이 그곳에 등대를 짓는 것에는 아무 이견이 없고, 건설하는 것은 당신네들 자유이다. 술탄께서도 무역선들의 안전에 도움이 된다면서 흡족해하셨다."
말레이시아는 영국에서 허락을 구하는 서신을 보냈기에 조호르 군주가
허락한 것이라 해석했습니다.
반면 싱가포르는 과거 조호르로부터 식민지 경영권을 인정받을 때는 협정서를 작성하고 서명한 예를 들면서 등대를 건설하는 과정에서 조호르의 승인을 받았다는 기록이나 협정서가 없으므로 이는 허락을 받은 것이 아님이 명백하고, 등대를 건설하는 과정에서 조호르의 행동이 없었기 때문에 조호르의 영토가 아니었다고 맞받아쳤습니다.
이에 ICJ는 19세기의 문제에 대해서는
판단을 유보했습니다. 요컨데 앞서 맞붙었던 권원문제에 비해 쌍방 모두의 주장을 납득할만한 증거도 있고 납득할 수 없는 증거도 있었다는 점이죠. 여기까진 일단 역사적인 문제입니다.
5.
1980년까지 말레이시아는 대체 뭘 했나? 마지막 문제는 20세기에서 재판이 이뤄지던 시점까지로 넘어왔습니다. 이 부분이 그리고 중요합니다. 양쪽 국가가 모두 수립된 이후로 누가 실효적 주권을 행사하고 있었는가의 문제입니다.
하지만 여기서 말레이시아는 두 번의 큰 패착을 저지른 상황이었습니다. 우선 1953년 영국이 "싱가포르 해협에 영해 경계선을 확실히 그어야 되는데 어떻게 그을까?"라 물어봤을 때 조호르에서 "페드라 브랑카는 우리 땅이라 주장안할거임"이라 답을 했습니다. 그리고 1960년대와 70년대 초반까지 지도에 페드라 브랑카 밑에다가 싱가포르라 친절히 써놓았었죠. 당연히 싱가포르 입장에서는 이게 좋은 공격거리가 됐습니다. 말레이시아도 인정했다는 거죠.
한편말레이시아는 당시 말레이 연방이 구성된 상황이라 조호르에서 주장한건 말레이시아의 공식입장이 아니라 반박했고, 지도 밑에는 그 섬에 싱가포르가 관리하는 등대가 있기 때문에 기재한 것일 뿐이라 일축했습니다.
그 외에 짜잘한 것들, 페드라 브랑카 인근에서 벌어진 좌초사고에 대한 조사를 싱가포르에서 행하고 있었다는 점과, 싱가포르가 대신 등대를 관리해주고 있는 다른 섬에서는 국기 계양 문제로 난리를 쳤으면서 페드라 브랑카에 대해선 태클을 안걸었다는 점, 군사 관련 시설을 만들 때 태클을 안걸었다는 등을 거론하면서 말레이시아는 아무것도 한게 없다고 주장했습니다
이에 말레이시아는 좌초사고는 국제법에 따라 하는 것이라 주권행사가 아니고, 깃발은 소속을 나타내는 것이지 영유권을 나타내는 것이 아니다, 군사시설은 늬들이 비밀리에 해놓고 항의안했다고 억지 쓴다면서 맞받아쳤습니다.
결과는 말레이시아가 그야말로 개털렸습니다. 싱가포르는 적법한 주권행사를 계속 해오고 있었고 그에 대한 문서적 증거도 많이 남아있는 반면, 말레이시아는 지도를 찍어내기 전까지는 순순히 싱가포르의 땅으로 인지하고 있었다고 판단한 것이죠.
결국 ICJ는
"1980년을 기준으로 페드라 브랑카의 영유권은 말레이시아에서 싱가포르로 넘어갔다"고 판단을 내립니다.
요약하면 말레이시아가 역사 파트는 이겼는데, 현대 파트에서 박살난 재판이 됐습니다. 이게 2008년에 나온 판결인데 향후 10년안에 결정적인 증거가 나타나면 재심을 요청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말레이시아는 새로운 증거를 찾는데 혈안이 되어 있습니다. 일단 현재는 판결이 나온 상황이지만 아직 포기 안했다는 뜻이죠.
이 판례를 바탕으로 독도 문제를 보면 우리는 역사적인 증거를 많이 찾은 상황입니다. 한 때 일본도 무주지 취득을 주장한 적이 있었는데 아마 권원문제로 붙으면 이길 확률이 높다고 할 수 있겠죠.
반면 20세기 이후의 문제로 들어오면 비관적인 부분도 있다고 합니다. 일단 대한제국의 고종황제가 영토를 선포한 이후에 이렇다 할 문서증거가 안남아있는데, 일본애들은 이걸 너무 철저하게 남겨놔서 입법, 행정, 사법 3권에 대한 문서증거가 풍부하다고 합니다. 중간에 일제강점기도 있었죠. 더불어 현재도 일본에서 이런 3권에 대한 기록들이 계속 작성되어가고 있는 실정이라더군요. 특히 ICJ의 경우 이런 문서증거를 더 선호하기 때문에 실제 맞붙을 경우 불리한 결과가 나올 수도 있답니다.
하지만 한 가지 핵심은 ICJ는 쌍방합의 하에 올라갑니다. 동의 안해주면 재판을 할 일도 없을뿐더러 그 전에 현재 우리가 점유하고 있는 땅입니다. 일본이 원하는대로 분쟁화시킬 필요는 없습니다. 감정적으로 나갈게 아니라 이성적으로 대응하면서 일본애들 살살 놀려먹는 정도면 좋겠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