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제학 이병태가 임금님의 명을 받아 경기도 동쪽과 강원도를 암행어사로서 순찰하게 되었다.
강원도 홍천을 지나가게 되었는데, 읍내와 거리가 10리 정도 떨어진 곳이었다.
홍천은 순찰 구역이 아니었기에 이병태는 그냥 지나가려 하였다.
그리하여 한 마을 앞에 도착했는데, 몹시 배가 고파 어느 집 문 앞에서 밥을 구걸했다.
그러자 한 여자가 나왔다.
[남자가 없는 집이라 무척 가난합니다. 집에 시어머니가 계시는데도 아침 저녁을 굶고 있는데 나그네에게 줄 밥이 있겠습니까?]
이병태가 물었다.
[남편은 어디에 갔습니까?]
여자가 말했다.
[알아서 어디 쓰시려고 하십니까? 우리 남편은 바로 이 읍의 이방인데, 요망한 기생에게 홀려 어머니를 박대하고 아내를 쫓아냈습니다.]
여자가 이렇게 말하며 끊임 없이 원망의 말을 쏟아내자 방 안에 있던 노파가 말했다.
[며늘아, 무슨 이유로 쓸데 없는 말을 해서 남편의 흉을 보느냐? 그런 말까지 할 필요는 없지 않니?]
이병태가 그 모습을 보며 몹시 마음이 아팠다.
그래서 그는 읍내로 들어가 이방을 찾아갔다.
마침 시간이 낮 12시였다.
이방의 집에 들어서니 이방이 마루 위에 앉아 점심밥을 먹고 있었고, 그 옆에는 기생이 마주 앉아 밥을 먹고 있었다.
이병태는 마룻가에 턱 걸터 앉으며 말했다.
[나는 서울에서 온 과객이오. 우연히 이 곳까지 오게 되었는데 밥 한그릇 얻어 요기라도 때울 수 있게 해주시오.]
그 당시는 전국에 흉년이 들어 조정에서 쌀을 나누어 주어야 할 정도로 힘든 시절이었다.
이방은 한참 동안 이병태를 아래 위로 훑어 보더니, 종을 불러 시켰다.
[조금 전에 새끼 낳은 개에게 주려고 쑤었던 죽이 남아 있느냐?]
[있습니다.]
이방이 말했다.
[이 거지놈에게 그 죽이나 한 그릇 주어라.]
조금 있자 종이 술지게미와 쌀겨를 넣어 끓인 죽 한 그릇을 가져와 이병태의 앞에 던졌다.
이병태가 분노하여 외쳤다.
[그대가 비록 넉넉하게 살고 있다한들 한낱 이방일 뿐이고, 내 비록 구걸하고 있다한들 양반이다. 양반인 내가 밥을 구걸하면 그대는 먹던 밥이 아니라 새로운 밥을 지어 내놓거나 먹던 밥을 덜어서라도 주어야 할 것이다. 그런데 짐승들이 먹고 난 찌꺼기를 사람에게 주다니 이 무슨 행패냐!]
이방은 눈을 동그랗게 뜨고 이병태를 바라보다 욕을 했다.
[네놈이 양반이면 어찌하여 사랑방에 있지 않고 이따위로 돌아다니느냐? 지금은 흉년이 심하여 이 죽도 사람들이 먹지 못해 굶는데 네놈이 얼마나 대단하길래 감히 그따위로 말을 하느냐!]
이방은 죽사발을 들어 이병태를 때렸다.
이병태의 이마에서 상처가 나 피가 흐르고, 온 몸에 죽이 끼얹어졌다.
이병태는 분통함을 참고 그 집에서 나와 그대로 암행어사 출두를 외쳤다.
마침 그 읍의 사또가 백성들에게 나누어 주어야 할 곡식을 횡령하여 서울로 보낸 것이 발각되었다.
이로 인해 사또는 봉고파직당하고, 이방과 기생은 곤장으로 때려 죽였다.
한 여자의 원망이 한 읍을 뒤흔들어 놓았으니, 옛 말에 [여자가 한을 품으면 오뉴월에도 서리가 내린다.] 는 것은 바로 이런 일을 두고 하는 말일 것이다!
원문 및 번역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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