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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게시물ID : love_40797
    작성자 : 철전열함
    추천 : 19
    조회수 : 1562
    IP : 210.57.***.240
    댓글 : 6개
    등록시간 : 2018/01/28 01:21:53
    http://todayhumor.com/?love_40797 모바일
    비가 오지 않았다면 만나지 못했을 그 여자 이야기(9).
    "다...다녀왔습니다."
    "어...어서와. 수고했어."

    어? 오늘은 저녁알바없나???
    몸에 열이 많은 편이라, 한겨울 집에서도 반팔에 반바지 입고 살던 나였지만, 이 애가 오고나서 몇일.
    내 방에 있을때 빼고는 항상 긴팔 긴바지 입고 있었던지라, 드러난 내 속살이 너무나 민망했다.



    잠깐 이야기 좀 할까???란 말을 하기에는 이 애의 얼굴이 너무나도 피곤해보인다. 
    "...얼른 씻고 좀 쉬어."
    "네."

    문이 닫히고나면 이 방음안되는 아파트 옷벗는 소리 들릴까봐 얼른 테레비 소리를 키워버린다. 
    평소라면 ㅋㅋㅋ대며 보고있었을 무도를 무표정하게 앉아 보고 있자니, 그 애가 나온다.

    촉촉히 젖은 머리와 비누냄새.
    그리고 기초화장품마저 거의 없어서 완전히 드러난 생얼.
    남자의 로망을 한업이 자극하지 좋은 조건을 갖추고 나타나셧지만, 
    밤에 들은 말이 있어놓으니, 로망이가 뭐고, 오죽하면 나한테 그런 소리까지...가슴만 한번 더 아파왔다.

    "...찌개 끓여드릴께요...아직 식사안하셨죠?"
    "응??? 어??? 아 그거."
    "금방 끓여드릴께요."
    "어. 고마...아니아니. 스톱스톱. D. 잠깐만 여기 앉아봐.



    나도 그랬지만, D도 올게 왔군. 하는 표정으로, 
    식탁에서 밥 안먹으면 밥상이 되고, 
    한달에 36번쯤 술상이 되며, 
    지금은 쇼파없는 거실에 테이블로 쓰이고 있는 작은 밥상을 사이에 두고 우리는 마주 앉았다.

    막상 앉혀놓으니 무슨 말을 먼저 해야할지 말문이 딱 닫혀버렸다.
    다행히도 그 애가 먼저 말을 꺼내주었다.
    "...신발 고맙습니다..."
    "어?...아. 신발...사이즈는 맞아? 그냥 대충 찍어서 샀는데;;;"
    "네. 저 230신어요. 고맙습니다...그런데 밤에 태우러 와주시기까지 했는데 그런 소리나 해버리구..."
    "...그래 좀 울컥했다...그런데 꿀밤 때린데는 좀 어때???"
    "...혹이..."
    "뭐어??? 어디 어디봐."




    뭘 해도 덤덤하게 있지만, 그래도 웃을 줄은 아는 사람. 
    그 애가 보는 내 인상은 그랬다고 한다. 
    그런데, 혹났다니까 나라잃은 표정으로 자기 머리를 막 헤집는걸 보니...세상에 이렇게 귀여운 사람도 있구나. 라는 생각을 했다고 한다.
    호적상 11살 차이...액면가는 그 이상 가는 아저씨한테서 말이다.




    "으아...미안...이렇게 쎄게 때려버렸던가...남의 집 귀한 딸한테 이런 짓을..."
    "..."
    그 시간쯤 지나면 붓기가 빠질법도 한데, 여전히 머리를 헤집고보면 보일정도로 또렷이 나있는 혹에 나는 엄청 당황했다. 
    "병원..."
    "네?"
    "응급실가자. 혹이 너무 커. 두개골에 금 간건지도 몰라."

    푸하하하하하하.
    처음으로 그 애는 크게 소리내서 웃었다.
    날아가는 참새 똥꼬만 봐도 웃을 나이인데, 이 아이는 그동안 참으로 웃음을 아끼고 있었다.
    평범한 21살 여대생의 웃음이었다. 

    그 웃음으로 우리의 어색함을 풀렸다.
    그리고 이야기를 나누었다. 

    "집은 다음집 보증금을 구하거나, 그 전에 룸메이트를 구해 집세문제등이 해결될때 이사가고 그동안 적절하게 집세를 낼게요,"
    "안받아."
    "받아주세요, 그래야 제가 편해요..."
    "...응 그래."
    "빨래나 밥하는것 다 제가 할께요."
    "...식모 구한거 아닌데? 그리고 원래 이 집에서 그런거 안했어;;;;"
    "할께요. 집세 부족한건 그런거라도 대신할께요...그래야 제가 편해요..."
    "...일단은 그리 하되, 각자 측간 청소는 각자가 하고...분리수거같은건 내가할께. 그거 내가 안하면 경비아저씨가 심심해하셔."
    "그리고 식비라던가도 최대한 낼께요."
    "스톱스톱. 이건 안내도 돼. 이 집에서 여자사촌동생들도 몇달씩 살다 나갔는데, 나 걔네들한테 딴건 다 받아도 식비는 안받았어. 
    혼자 쓸쓸하게 밥 안먹게 해주는데 내가 돈 드려야 할 판이야. 식비건은 각하."
    "그치만..."
    "안돼."
    "...네...아. 그리고 신발값은..."
    "다음에 이자쳐서 받겠다. 다음 건."
    그렇게 당분간 동거할 동안의 일들을 그 애는 진지하게, 나는 만담같이 듣고 넘겼다.

    솔직히 비는 방 하나 내주는거고, 그 날로 3일째지만, 여자애가 씻는데 그렇게 물 조금 쓰는거 처음 봤다. 
    처음엔 샤워도 안하는 줄 알았는데, 그 물 조금 쓰고 샤워에 양말빨래까지 다 하고 나오더라. 
    전기세같은건 뭐 말할것도 없겠지.

    나도 내 처지를 말해주었다.

    너보다 11살 더 많은 32살 아저씨다. 
    또래들보다 좀 더 벌고 혼자사니까 돈 이렇게 쓰고 있지, 막 억단위연봉받고 사는 사람은 아니다.
    내가 너한테 뭐 하나하나 주고 그러는거, 다 내가 생각하는 지출범위 이내다. 나 그거 넘어가면 담날부터 밥 안먹는 사람이다.
    참으로 희한한 인연으로 만났는데, 너가 새 방 구하고 나갈때까지는 좀 편하게 있다가 나가줬으면 좋겠다.

    내 의사를 이렇게 말해주었다.

    하지만 기승전돈이야기돈이야기...회사에서도 돈이야기에 치여사는데 여기서까지 이러고 있으니 골치가 욱신거렸다.

    "헉. 벌써 시간이...오늘이...장보러 간다."
    "네?"
    "너가 냉장고 다 치워놔서 새 식료품이 들어갈 공간이 생겼어. 채우러 간다."
    "다...다녀오세요..."
    "...넌 왜 안가?"
    "네?"
    "넌 안먹을거야?"




    배고플때가면 충동구매한단 말이예요. 밥먹고 가요.라는걸,
    이번 달에 사야되는거 벌써 이렇게 적어놓았다고 보여주고서야 간신히 마트로 갈 수 있었다.



    "밥먹자."
    "네?"
    "시식코너 한바퀴 돌고나서 쇼핑시작하는거지. 그 전에 사면 충동구매하게 되거든."
    의외네요. 막 사지를것 같은데. 
    예전엔 그랬는데, 라면도 유통기한 지나서 버린 이후로, 못 먹고 사는 애들 생각해서 안 그래.

    하던대로, 어차피 사갈 요구르트랑 우유를 사다가 카트에 넣어놓고, 우리는 호호호~네~우리는 고객이랍니다. 티를 풍기며 진짜 시식코너를 싹 돌고 왔다. 
    세상 참 꿋꿋이 사는 애인줄 알았는데, 시식코너에선 머뭇거리는 애를, 아. 잡솨봐 글쎄. 라며 내가 하나 더 입에 넣어주고 다녀야했다.

    역시나 술 사시네요.
    ㅇㅇ. 해외맥주 행사하잖아. 12개 살건데 6~8개는 내가 먹던거. 나머지는 새로운 시도. 
    한달에 30일인데 의외로 그거 밖에 안사시네요?
    ...나머지는 밖에서 먹거든-_-;;;
    세상에...안돼요. 건강버려요.
    그럼 절반쯤 너가 먹어.
    네에?
    ㅋㅋㅋㅋㅋㅋ

    가전제품매장도 기웃거리고, 이거 가성비최악인데...이거 마셔보니까 별로드라. 그러면서 우리는 일요일 저녁 마트를 누비고 다녔다. 

    "아. D."
    "네"
    "할인이 많이 걸려서 지출액이 줄었다."
    "네..."
    "가서 너 먹을 과자 사와."
    "네?"
    "과자사오시라구요."
    "괜찮아요."
    손까지 내저으며 사양.
    "사. 결국에 내 안주야. 나 따로 살거 있으니까 이따 과자코너에서 봐."
    "뭐 사시려구요."
    "...빤스-_-"
    "아!!!! 네!!!! 다녀오세요!!!!!"

    빤쓰는 개뿔...나는 요리조리 가서 D 줄 앞치마를 사러갔다. 
    집에서 갈아입을 옷도 몇 장 없어보이던데, 김치국물 튈라...신발 하나에 저 호들갑을 떠는데 옷 사줘봐...또 무슨 일이 날라고.
    이건가...아니아니...고니한텐 코발트블루가...아.참. 내가 정마담이 아니지 참. 

    이 정도면 어울리겠지 뭐. 하고 카트 저 밑에 넣어두고, 과자코너로 돌아갔다.

    나도 거기서 꽤나 시간을 보내고 온 것 같은데, 그 애는 아직도 과자 하나 손에 못 들고 이 중에 어떤걸...하고 고민 중이었다.
    특히 갈매기주면 잘 먹지만 먹고 토하는 그 과자를 들었다놨다하고 있었다. 으이구. 답답이.
    "이거이거이거이거이거."
    나는 그 갈매기밥 포함 과자 몇개를 카트에 집어넣었다.
    "내가 이거 좋아해. 기억해 둬. 뭐 고를지 모르겠으면 너가 내 입맛 맞춰."
    "네??? 네."
    "가자. 집에....너 또 알바있어?"
    "아뇨. 내일은 수업."
    "가자."



    인파가 너무 몰리자, 나랑 세 걸음두고 따라오던 그 애는, 어느새 내 등 뒤에 딱 붙어 내 옷자락을 꼭 잡고 따라오고 있었다.




    "푸쉭."
    "어어어. 흔들었나. 넘치네. 넘쳐."
    들어와서 대충 장봐온걸 정리하려는데, 제가 할께요. 라며, 나를 거실로 떠민다.
    앞치마보고 눈이 동그래진다.
    안비싸. 옷에 김치국물 튈까봐 샀어. 라니까, 이건 순순히 고맙습니다.하고 받아준다. 

    노래방용 큰 갈매기밥가져다가 한모금 하니까 그 애가 온다.
    "정리다했어요."
    "고생했어...D. 요거 쪼끔 마셔볼래?"
    "네?"
    "목타지? 이거 한캔은 좀 많아보이시고, 쬐끔만 따라줄께."
    "...무슨 맛인지 궁금하긴 했어요."
    "맛은 무슨 맛. 맥주 맛이지."

    우리는 잠시 그렇게 앉아 예능재방송을 보고 깔깔 웃고, 과자를 조금 나눠먹고, 잘 자. 안녕히 주무세요.
    나는 월요일 아침에 회의가 있어서 더 일찍 나가니까 신경쓰지말고 자. 
    그 시간에 아침먹으면 더 부대끼고, 회의끝나고 아침먹으니까.
    너 진짜로 새벽에 일어나지마. 푹 자고 학교 가. 예전 집보다 학교가는 시간 15분은 단축되니까 그 시간만큼 더 자. 알았지? 꼭이다?
    그렇게 몇번이나 다짐하고 방에 들어왔다.




    지난 3일. 어떡게 지나갔는지 모르겠다.
    출처 내 가슴 속.
    철전열함의 꼬릿말입니다
    감자칩인줄 알고 먹는데 감자반죽인 그 ㅍ과자를 좋아하는데, 
    (자기 생각에...그리고 솔직히...) 너무 비싸서 차마 집지 못했다고 합니다.

    그 말 듣고 마음이 너무 아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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