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날에 이런 일이 있었다 신동아 1992년 5월호에 그때까지 군부대에서 시행한 부재자 투표에 대한 비리폭로가 실렸는데 육군 9사단의 이지문 중위가 3.22에 폭로한 군부대 투표부정이 그것이다. 내용인 즉 군부대 장병 투표시 공개투표, 기표검열, 대리투표가 행해졌음이 그것으로 당연히 그동안 관행처럼 내려온 군장병의 여당 몰표 관행이 그것이다.
군부대 투표과정의 구체적 유형 몇 가지를 당시 공선협이 공개한 내용으로 알아보면 다음과 같다.
▲제1사단 ○○연대 ○대대 - 선거 한달 전부터 대대병력을 연병장에 집결시켜 대대장이 "이 자리에 여러분이 와 있는 것은 나라를 안정시키기 위한 것이며 따라서 집권당을 밀어주어야 한다"는 요지의 교육을 시켰다. 부재자 투표 첫날 10명을 시험적으로 투표하게 한 후 야당표가 많이 나오자 공포분위기속에서 중대장이 이유 여하를 막론하고 여당을 찍으라고 강요했다. 이후 기표소에서 기표한 후 중대장과 인사계에게 확인검사를 받은 후 투표용지를 봉투에 넣어 발송하게 했다.
▲5사단 - 부재자투표 첫날은 비밀투표를 하였으나 기무사의 검열결과 야당지지표가 많은 것으로 나오자 중대장이 상관에게 호출됐고, 다음날부터 완전한 공개투표가 이루어졌다.
▲공군제3579부대 - 선거 전 부대장과 인사장교가 "안정을 위해서는 여당을 찍어야 한다"는 내용의 정신교육 실시, 기표소를 설치하지 않았으며, 투표용지를 넣은 봉투를 봉인하지 못하게 했다.
▲제36사단 - 여당지지 정신교육실시, 투표용지 도착 후 중대, 소대별로 간부와 사병들간 면담에서 여당후보를 찍도록 종용, 투표장소에서는 간부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공개투표했으며, 야당표를 더 찍은 경우엔 다른 곳에서 더 기표하는 방식으로 무효표를 만들었다.
▲수방사 - 단기사병들이 간부들 앞에서 공개투표.
▲5사단 - 광역선거 당시의 투표성향을 기초로 선거상황판을 만들고 개별접촉, 이에 앞서 군단지휘서신으로 여당지지 호소.
▲9사단(이지문중위가 양심선언한 부대로 휴가중이라는 한 사병이 추가로 폭로) - 행정반에서 중대장 입회 아래 투표 실시, 대대장이 야당성향 사병들과 면담. "사단에서 우편검열기를 통하면 다 알게 되니 지금 얘기해라. 여당을 얼마나 찍었는지가 지휘관의 진급과 관계가 있으니 여당을 찍기 바란다"고 종용.
명령에 죽고 사는 군바리들이니 어쩔수 없는가?
솔직히 이런건 군부대 만의 문제가 아니다. 아이들 코붙은 돈까지 모아서 북한의 수공공격애 대비하는 댐까지 만들던 시절 정부와 여당에 반대하는건 그야말로 빨갱이 짓이다 (요즘 이명박 욕하면 어찌되는지 함 봐라 하물며 전두환 시절에!)
군부대 여당 몰표관행도 군부가 종식을 고하는 시기가 와서야 공론화 될 수 있었던 누구나 다 아는 당연한? 비밀이었다.
아 참고로 저 비리를 폭로한 이지문 중위는 근무이탈 명령불복종 죄로 구속되셨다 ㅡㅡ;
또 이런 일이 있었다.
육군 보안사령관에서 10.26 사건을 계기로 합동수사본부장과 중앙정보부장직을 겸임하고 쿠데타를 이르켜 정권을 잡은 전두환은 이어진 공포분위기 조성과 이에 대한 저항이었던 5.18 민주화운동을 재빠르게 학살로 진압하며 권력을 거머 쥐었다 그리고 그렇게 주변 정리가 되자 권력쟁취의 당연한 수순으로 의회정치도 박살을 내어 버리셨다. 우선 19년 전의 5.16 쿠데타 세력을 모방하여 기존 거물급 정치인들을 죄다 부정부패 혐의를 씌어 구속해 버리는 방법과 정치규제법을 만들어 기존 정당 해산과 정치인들의 활동을 금지하기 시작한 것이 그것인데 예를 들어 김종필의 경우 부정부패 혐의로 연행되었고 김영삼은 가택연금에 취해졌으며 김대중의 경우 사형을 선고해 버렸다.
이리하여 기존의 정당과 야당은 죄다 공중분해 되어 버리고 전두환은 민정당을 창당하였지만 구색을 맞추기 위해 다당제를 모방하며 정당을 창설했으니 그 이름하여 민주한국다(민한당) , 민주국민당 (국민당), 신정당 이 그것이다. 전두환 세력이 만든 정치규제법을 통해 제외된 떨거지들 혹은 전두환에 순응하는 인사들을 중심으로 심사를 통해 만들어진 이 정당은 당연히 그 목적이 민정당의 들러리였고 보안사와 청화대의 승인과 입김에 따라 움직여 졌기에 이때 붙어진 명칭이 그 유명한 민정당 2중대, 3중대, 4중대 ....ㅡㅡ;; (세월이 변해 이 용어 장본인들이 경쟁 정당을 노동당 2중대 어쩌구 페러디 할 정도이니 시대가 변하긴 변했다) 혹시 그거 아시는가? 지금 공산주의 국가인 중국이 1당 독재가 아니란다. 중국 공산당이 당연 중심이 맞지만 형식적으로 '민주당'이라는 들러리 정당을 만들어서 듣도보도 못한 양당제 구색은 맞추고 있다. 그렇다고 하여 누구도 중국의 민주당이 정상적인 정당이니 중국 공산당에 대응하는 야당이라 여기지 않는다. 그래 당시엔 우리가 이랬다.
전두환 시절 집권을 위한 안정 장치가 중국 빨갱이 같은 정도면 안심하련만 그래도 안정빵을 더 만들었으니 전두환 시기 11대 12대 총선에서 시행된 대선거구제와 전국구의원이 그것이다. 즉 1지역구에서 2인의 의원을 선발하게 하여 설사 들러리 야당에 의원직을 주는 경우가 생긴다 하여도 1명은 민정당이 당선되도록 여건을 조성하였고 더불어 전국구 의석의 2/3 를 민정당에 배분함으로써 어떤 발악을 해도 반드시 민정당이 과반수 이상을 차지하도록 조치한 것이 그것.
이게 어떤 의미인가 하면 예를 들어 12대 총선의 경우 이전 11대 총선에서 기존 거물급 야당지도자들이 대부분 연금 혹은 구속된 상황과 정치인들 참여가 금지되었던 반면 이에 대한 저항이 지속적으로 일어나자 12대 총선 바로 직전 전두환은 깜짝쑈로 선거를 불과 한달여 남기고 과거 야당인사들의 정치활동을 허용해 주었던 것이다. 이때 김영삼, 김종필, 김대중 같은 인사들이 겨우 숨을 쉬게 되었다 당연히 선거를 코앞에 두고 몇년간 연금 당하다가 나왔으니 12대 총선을 위해 정당을 만들어 참여해 봤자 힘을 못 쓸거라는 것이 당시 정부의 계산이었다. 명분과 실리를 함께 챙기자는 것!!
근데 왠걸? 야당인사들이 급조한 신민당이 가까스로 선거에 임하였는데도 당시 신민당은 돌풍을 일으키며 단박에 지지율 29%와 지역구에서 50석을 얻게 되었다. 당시 정부가 공안정국을 조성한 상태에서 경찰력과 행정력을 총동원하였던 여당인 민정당이 지지율 35%에 87석을 얻었음을 생각하면 급조한 정당으로 준비없이 선거에 임한 정당의 돌풍은 기절 초풍할 노릇이었다.
근데 눈치챘겠지만 지지율 29%와 지지율 35%의 (민정당 득표 : 7,040,477 35.2% , 신민당 득표 5,843,827, 29.3%) 표를 받은 양당의 차이가 야당인 신민당이 지역구 50석을 얻고 민정당이 87석을 얻었다는 사실에서 보듯 1지역구 2의석을 얻는 대선거구하에서 신민당이 아무리 잘해 해보았자 민정당은 의석을 얻게 되어있었고 의석수는 30석 이상 벌어지게 되는 구조다 더불어 민정당이 2/3를 챙겨가는 전국구 의석이 있었으니 결국 12대 총선에서 민정당 의석은 148석 신민당은 67석으로 2배를 넘는 격차를 유지하게 만든다.
11대, 12대 총선의 민정당 체제는 이렇게 완성이 되었다.
이게 5.18 이후 벌어진 5공화국 시절의 자랑스런 의회민주주의의 역사다.
누군가 5.18 이후 11대 12대 총선에서 민정당이 압도를 했으니
국민들은 광주를 지지한게 아니라 전두환을 심적으로 지지하고 있었다는 증거란다.
아주 질알을 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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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1님 그 시대를 겪어보지 않고.... 어떻게 그 시대를 알수가 있겠습니까? <--- 이거 님의 하신 말씀이신데... 아랫글에 모순된 행동을 하시니 어처구니가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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