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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게시물ID : love_40664
    작성자 : 철전열함
    추천 : 15
    조회수 : 1740
    IP : 210.57.***.240
    댓글 : 7개
    등록시간 : 2018/01/22 23:11:40
    http://todayhumor.com/?love_40664 모바일
    비가 오지 않았다면 만나지 못했을 그 여자 이야기(4).
    "내가 무슨 부귀영화를 누릴라고 이 시간까지..."

    꽤 늦은 시간이었다.
    평소에도 남들보다 늦게 퇴근하는 편인데, 그 날은 더 늦게 끝나서 기분이 참 더럽고 좋았다.

    "...???...!!!"
    나는 직진으로 가려다 말고, 우회전해서 비잉 돌아 아까 그 자리로 다시 돌아갔다.

    "이 시간에 버스정거장에서 뭐해?"
    "어? 아젔....안녕하세요."
    "안녕히 주무세요 겠지. 타. 어디가?"
    "아뇨. 저 버스타고 들어갈거예요. 괜찮아요."
    "이 시간에 버스가 어딨어. 타. 안잡아먹어."

    그 애는 굉장히 쭈볏거리며 내 차에 탔다.

    심야버스도 안가는 동네. 버스전광판이 고장나서 나오지 않으면, 스마트폰으로 버스시간 확인해도 될텐데, 그 애의 핸드폰은 피처폰이었다.

    "오늘은 알바아냐? 거기 감자탕집?"
    "오늘 학교에서 스터디있어서 하루 말씀드리고 쉬는거예요."
    "피곤하겠다. 30분 넘게 걸릴거야. 좀 자."
    나는 듣고있던 노래를 끄고 네비게이션 볼륨도 내렸다.
    "아...아니예요. 괜찮아요. 저는 신경쓰지 마세요."

    ...교차로 두개 지나니까 그 애는 잠이 들어있었다.

    훗날 들은 바로는, 그애의 하루 용돈을 초과하는 커피집에서 스터디를 했다고 한다.
    스터디가 길어져서 버스 막차를 놓쳤는데, 상경한지 1년이 넘었는데도 막차시간을 모르던 그 애는 버스가 오나, 하고 그 시간에 버스정거장에 서 있었다고 한다.

    뜨거운 히터바람을 싫어해서 운전석 열선만 켜고 다니는 나였지만, 히터를 따듯하게 틀었다.
    하도 많이 다녀서 어디에 카메라있고 어디 어느 타이밍에 치고들어가야 신호 한번 덜 걸리고 통과할수 있는지 다 아는 길이었지만,
    혹시라도 나의 핸들링에 이 애의 잠이 깰까봐 rpm조차 움직이지 않게 가만히 차를 몰았다.

    무슨 사연인지 모르겠지만 나에게 묻지마살인을 하려던 여자애와 술도 한번 마셔보고, 지금은 내 차 조수석에 앉혀도 보고...
    인생 이제 반쯤 살았는데, 영화 찍고 있네. 피식 헛웃음이 나왔다.

    저번에는 추운데서 입돌아갈까봐 얼른 들어가라고 했지만, 뜨거운 히터가 돌아가는 차 안에서 곤히 잠든 이 애를...차마 깨울 수가 없었다.
    이러다 불편하면 깨겠지. 

    형님. 이거 지금 달면 싸게 해드릴께.
    차정비갔다가 그 놈의 싸게해준단 말에 달았던 워크인 이란걸 이 날 처음 써보았다.
    혹여 깰까봐 조심조심. 스위치를 조작하여 조수석 시트를 눕혔다. 

    이거 연기아닌가 싶었지만, 정말 쌔근쌔근 곤히도 잠들었다. 
    선글라스 두는 자리에서 이어폰을 꺼내, 노래를 들으며 이런저런 딴 생각을 하다보니...

    "삐리리릭!!!"

    "헉!!! ㅆㅂ!!!!"
    "어? 어? 어?"
    새벽 5시. 내 기상 시간. 그리고 동시에 울린 그 애의 알람.
    우리는 그렇게 차에서 잠들어버렸다. 
    우린 둘 다 당황해서 서로 얼굴만 쳐다보았다.
    "어. 미안. 깨웠어야했는데 너무 곤히 자길래;;;;"
    "제가 더 죄송해요;;;;;;;"
    "나야 이제 일어나서 출근준비한다만, 넌?"
    "네?...아!!! 아르바이트!!!"
    "뭐? 어디? 언제?"
    장소와 시간을 들으니 대충 감이 온다.
    "10분 줄께. 가서 머리감고 옷갈아입고 수건들고 와. 바로 쏴줄께."
    "네?"
    "10초 지났다. 어서!!!"
    그 애는 후다닥 차에서 내려 반지하방으로 뛰어내려갔다.
    나는 얼른 전기면도기를 꺼내서 대충 수염을 밀고, 샘플로 받고 팽개쳐뒀던 로션을 대충 얼굴에 펴발랐다.
    아침회의 또 늦겠는데, 팀장님께 뭐라 핑계대나...이러고 있는데, 저기 새벽을 뚫고 그 애가 뛰어왔다.
    "타. 벨트매고."

    그 애가 새벽알바나가는 24시간 패스트푸드점에 내려다주고, 나는 회사로 내밟았지만, 절반쯤 왔을때 이미 돌이킬 수 없음을 알고, 그냥 천천히 갔다.
    5분 늦나 20분 늦나 어차피 똑같이 먹을 욕. 걍 천천히 가기로 했다.

    "...오늘말이다..."
    "넵. 사장님께 직접 대면보고."
    "옷은 왜 또 어제 입은 거야? 또 술먹고 외박해...아니 야 너 아무리 술먹어도 집에는 들어가서 자고 나오잖아."
    "내가 뭐 15살먹은 중2꼬맹이도 아니고...;;;; 외박 좀 할 수 있잖아요."

    아침에 사장님께 직접 대면보고를 드리는 날이었는데, 사장님이 내 보고기다리느라 10분을 기다리게 하는 대형사고를 쳐드렸다.
    그리고 이어지는 팀장님 잔소리.
    고만하자 고만하자 시말서쓰기에도 시간없는데

    "너 저번에는 옷 갈아입었드만?"
    "그때는 두고 간 와이셔츠 갈아입을 시간이 있었으니까요. 오늘은 없었고."
    "핑계 골라서 대라. 납득가는 걸로 대면 3대 때릴거 2대만 때릴께."
    "...팀장님 믿고 말함다."
    "어. 말해봐. 뭐 여자랑 있었냐?"
    "네."
    "오케이. 오전에 사우나가서 자고와."
    "예? 진짜 그래도 되요?"
    "...니가 여자랑 밤을 샜다니 형이 감동에 겨워서 그래. 얼른가. 맘바뀌기전에."

    변덕쟁이 팀장님 맘 바뀌기 전에, 냉큼 사우나로 가서 씻고 수면실에 누워 핸드폰을 꺼냈다.
    "진짜없네..."
    까똟에 진짜 그 애의 번호가 뜨질 않았다.
    기계치인 우리 오마니도 스마트폰쓰고, 팔순 우리 할머니도 스마트폰쓰는데...
    뭔가 짠했다.



    그리고 다음에 그 애를 만난 곳은 근처사는 친구 집 근처 빵집이었다.
    출처 내 가슴 속.
    철전열함의 꼬릿말입니다
    나는 아직도 그 애 손에 있던 그 작고 낡은 핸드폰을 또렷히 기억하고 있습니다.

    물론 자면서도 그 핸드폰을 꼭 쥐고 있던 그 작고 예쁜 손을 더 또렷히 기억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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