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게 살다보니 별 일도 다 있네. 하며, 바쁜 삶에 다시 파묻혀 그녀를 잊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친한 거래처직원이랑 밥 한번 하자해놓고 역시나 술을 펐다.
1차는 니가 2차는 내가. 하면서.
"야. 가위바위보."
"왜 임마."
"술 이래 먹었음 해장해야지 임마."
"...미친X. 해장술 먹자고?"
"아니. 오뎅먹자고-_-"
대개 가위바위보는 하자고 하는 놈이 지는지라, 그렇게 내가 내기로 하고 오뎅을 먹으러 포장마차에 갔다.
"...어?"
"...???"
그렇게 서울에 그 많은 오뎅포장마차 중에 한 군데서 그 애와 다시 만날 수 있었다.
참고로, 젊은 여자가 나보고 아는척하는걸 보고 당황한 거래처직원이 자기도 모르게 오뎅값을 내버렸다. 개꿀.
"알바?"
"...네."
오뎅국물을 들고 우리는 빌딩 아래 벤치에 앉았다.
옷깃만 스쳐도 인연인데, 무려 우리회사 창립기념 바람막이를 입고 간 지라, 인연도 보통인연이 아닌데,
이제 20살, 21살 쯤 되는 아가씨가 화려한 홀복을 코트 안에 입고 있으니 입맛이 참 썻다.
몇번이나, 고등학교때 교복 위에 입었을 그 코트 속 주머니에서, 핸드폰 진동소리가 들렸다.
빨리 보내줘야 할텐데 나는 그러질 못했고, 그 애도 안받으면 안될 전화같은데 받지를 못하고 다 식은 오뎅국물든 종이컵만 만지작 거리고 있었다.
"어이쿠. 이거 시간이...내일 아침 6시부터 회의인디-_-;;;;;;"
"저!!! 꼭 그 바람막이 돌려드릴께요. 전화번호 알려주세요."
"그 바람막이 하나 더 있어. 막내가 발주 잘못 넣어서 하나 더 받았어. 걱정말고 집에 남자있는 척 해야할때 남자빤스 대신에 빨랫줄에 걸어."
그런 모습으로 나와 재회해서 주눅이 들었던 그 애는 그때처럼 풋!!!하고 웃었다.
계속 전화번호를 알려달라는 그녀였지만, 여기서 더 뭐 말 섞으면 괜히 세상 좀 더 안다고 이래저래 인생사나 늘어놓는...내가 세상에서 제일 되기 싫은 아저씨짓 할 것 같아서, 평소에 잘 타지도 않는 택시를 잡아타고 뒤도 안보고 가버렸다.
꽃뱀에게 당할까봐 도망친다. 그런 생각은 1도 없었다.
그저 그 커피집에서 얼마 하지 않는 커피 한 모금에 사르르 녹는게 예뻣던 그 아이의 얼굴이...그 짙은 화장 속에서 갇혀있는게 속상해서였다.
그러나 만날 사람은 다시 만나는 법인가보다.
(안 만날 사람이라 그런지, 10년 사귀고 헤어진 여자친구는 고향에서 버스 4정거장 거리에 사는데 그 후로 진짜 한번도 본적없음-_-ㅋ)
"미친...이러니 살이 찌지.."
어느 주말 아침.
헬스장에서 1시간 동안 달리고 쇳덩어리 들고 와서, 나는 모닝세트를 파는 햄버거 집으로 들어갔다.
무려 순대국밥이랑 고민해서 들어온거였다.
맛있는거는 아무리 먹어도 살 안쪄.라며 되도않는 자기위안을 하며 카운터에 섰다.
"ㅁ모닝세트요. 음료는 아메리카노요... ... ... ...???"
아무리 기다려도 얼마입니다. 라는 말이 안나와서 핸드폰에서 흥미니 골 장면을 보다말고 고개를 드니,
풋!!!하고 웃는게 너무나 예쁜 그 아이가 눈이 동그래져서 서 있었다.
어설픈 짙은 화장이 아닌, 딱 그 나이대 여자애 얼굴로 보자, 나도 모르게 아빠미소가 나왔다.
"아. 그리고 아메리카노 젓지말고 흔들어서."
주말 아침 그 햄버거 가게는 모닝세트를 먹으러 오는 사람들이 퍽 많았다.
나는 구석진 곳의 창가테이블에 앉아 열심히 일하는 그 애를 가끔 바라보았다.
여자 쪽 반응은 모르겠는데, 남자들 반응은 참 한결같았다.
그 모습이 너무 예뻐서, 평소 같음 분리수거 대충 하고 다 일반쓰레기에 때려넣었는데, 그 날은 분리수거 철저히 해서 버려주었다.
그.리.고. 그 날 밤.
"저녁은 가족과 먹으라고. 주말 저녁마다 나랑 저녁에 술먹으러 올거면 결혼은 왜 했냐? 이 쉐키 이거 사실 게이아냐?"
"내가 게이라도 너한테 반할 일 없어. 이 쉐키야. 독거노인 고독사할까봐 걱정되서 찾아와줬더니."
"체육복에 오줌지리던 놈 체육복 바지 빌려줘가면서 중학교 졸업시켜줬더니, 많이 컸다?"
"닥쳐. 뇌하수체 끄집어내서 양잿물에 북북 씻어서 그 기억지워버리기 전에."
친구가 저녁먹으러 우리 동네에 넘어와서 고기랑 고기랑 고기중에 뭘 먹을까 고민하다가,
그러고보니 우리 감자탕 먹은지 오래됐네.
감자탕에 소주 좋지.
소주에 감자탕이 얼마나 좋은지 모르지? 이 오줌싸개야?
음악시간에 단소를 불라니까 침을 태태태태황무중임중태황무로 단소구멍마다 뿜어낸 새끼가 뭐라는거야.라며,
서로 상처만 남을 소리만 주고 받으며, 오늘 이 저녁은 너랑 먹는 마지막 저녁이라며, 거의 20년 가까이 하는 소리를 하며 감자탕집에 들어갔다.
"남자가 둘이니까..."
"대자 시켜. 뼈다귀 추가 시키기 귀찮아."
"역시 내 친구야. 처먹는데는 주저함이 없지. 여기요~"
"네~"
"후레쉬 한병...아니아니 그냥 3병 주세요. 야. 너 묵은지들어간거 안 좋아하지? 그냥 감자탕 시킨다?...이 쉐키가 왜 말을 바루 못해. 야. 얌마?"
배고파서 메뉴판에 든 사진마저 뜯어먹을 기세이던 내 친구는 메뉴판만 쳐다보며 (미친X마냥)혼잣말을 지껄이다가
내가 대답을 안하자 이거 또 왜 말이 없어?하고 고개를 들었다.
멍하니 알바생을 쳐다보는 나를 보고, 드디어 이 쉐키가 여자보고 다시 반응이 왔다!!!며 기뻐했고,
역시나 나를 동그란 눈으로 쳐다보는 알바생의 얼굴을 보고는. 어? 저 쉐키 얼굴에 뭐 묻었나?하고 같이 쳐다봤다고 한다.
"..."
"왜 말이 없어?"
"닥치고 따러."
"어 그래."
아침엔 패스트푸드 저녁엔 감자탕집. 하루에 투잡이라...
주말이었다.
헤어진 사람잊으려고 워커홀릭 소리 들으며 그 전까지 1년에 신정 구정 추석 당일만 쉬고 일하기도 하던 나조차, 이제 정신 좀 차리고 보니까 주말에 노는게 얼마나 소중한지 알고 있다.
하물며, 이제 20대 초반. 한창 하고 싶을거 많은 나이에 오늘 본것만 두탕째 알바를 뛰고 있다니...
아침엔 커피가 평소보다 쓰더니, 저녁엔 소주가 또 쓰다.
"인상펴고 마셔라 임마. 왜 오늘은 아스파탐이 입에 착착 안 붙냐?"
"집에 가서 거울펴고 니 얼굴 보고 마셔봐. 고삼차 맛 나."
"요요요 주둥아리를...야. 근데 너 아까 저 알바랑 뭐 아는 사이야?"
"모르는 사이."
"근데 왜 얼굴을 멀뚱멀뚱 쳐다보고 그래. 저 알바생 꿈에 나올라 임마."
"이북에 두고 온 동생이 생각나서 그럼둥. 고조 고만 후벼파라우."
"동무래 호적이 내 알기로 남녘아님둥? 어디서 야바위질이야."
"닥치고 따라."
"네. 여기."
"아니. 니 모가지를 따라고."
"식도 열어. 간장에 다이렉트로 쏴줄께."
또 되도않는 만담을 주고받다가 뼈다구랑 소주 빨때만 잠깐 조용해졌다가, 다시 만담주고받다가 하다보니. 좀 늦은 시간이 되었다.
"전화다...여~제수씨. 아. 제수씨 웬수? 여깄어. 와~오늘 쭉쭉 빠는거 장난아니네."
"누구? 우리 허니?"
"허니는 니미. 제수씨...방금 이 쉐키가..."
"내놔 이 쉐키야!!!...여보세요? 여보? 허니? 아냐아냐. 빨긴 뭘 빨아. 감자탕 먹으러 와서 뼈다구 빨았단 소리야. 아냐 오해야. 뭔 소리야~"
ㅋㅋㅋㅋㅋㅋㅋ 그렇게 행복해서 나보고 장가가라고 그러냐.라며, 싸움 하나 붙인것 같으니 깽값으로 이거 내가 사겠다. 하고 카운터로 갔다.
"...아이스크림 딸기맛이 없네...이모~딸기맛 없어요?"
"네. 금방 갔다드릴께요."
"네. 그리고 계산도요."
"네. 애기야~계산 좀 해드려."
"네~"
아차차...술김에 깜빡했다. 가급적 그 애를 안보고 가려고 했는데...
카드랑 계산서를 주고 핸드폰을 저 놈 손에 두고 온걸 무지 후회하며, 얼른 전표를 주기를 기다리는데...안 준다.
"카드..."
"전화번호 알려주시면 드릴께요. 옷 돌려드려야하니까요."
"...글쎄 그거 그냥..."
"돌려드릴께요."
"야이씨. 오늘 니랑 절교한다. 단어선택 똑바로 안해???...뭐여?"
"아 카드를 안줘서 그래."
"도난카드죠? 내가 이거이거 언젠가 이럴줄 알았지."
손등으로 그 놈 모가지를 쳐서 입을 좀 다물게 했다.
"글쎄. 그 옷 안 돌려줘도 되요. 정말 괜찮아. 자. 이제 내 카드 줘요."
"돌려드릴테니까...전화번호 알려주세요."
"콜록콜록콜록...이 새끼 목젖때렸어...야!!! 니 옷 들고있으니까 꿈에 귀신나오고 그런다잖아!!! 그깟 전화번호 뭐 얼마나 비싼 새끼라고 안 알려줘.
자!!! 여기요!!!!"
친구는 자기 지갑에서 내 명함을 꺼내서 건네주었다.
"어?"
"뭐? 니 과장달았다고 신나서 준 명함 아녀. 어디 쓸떼도 없어서 이쑤시개로 좀 썻다. 아가씨. 그거 네 귀퉁이 잘라서 써요. 이제 카드주시고. 옳지. 가자!!"
그렇게 준 명함 덕에 우리는 며칠 후 다시 만날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