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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게시물ID : military_40600
    작성자 : 글로배웠어요
    추천 : 10
    조회수 : 2023
    IP : 211.109.***.168
    댓글 : 16개
    등록시간 : 2014/03/30 16:47:17
    http://todayhumor.com/?military_40600 모바일
    [해군] 초임하사의 하루 - 정박 중
    다른 분들은 소설 형식으로 쓰셨던데,
    저는 그냥 담백하게 쓰겠습니다.

    05:45
    총기상 15분 전 방송이 나오면 잽싸게 일어나서 선배들을 깨웁니다.
    선배들이 일어난 것을 확인하고 바로 뛰어서 육상에 집합합니다.
    보통은 5분 안에 영내에 있는 모든 인원이 집합을 완료합니다.

    05:55
    총기상 5분전 방송이 나오지만 이 때는 대부분 조별 과업 (아침 점호 및 체조, 구보 등)이 끝났거나
    한참 부두를 뛰어 다니고 있을 때가 대부분입니다.

    06:00
    15분 전과 5분 전 방송은 현문에서 하지만
    정시 방송은 함교에서 합니다.
    타군들은 이 시간에 일어나서 점호 받으러 나오겠지만
    해군들은 대부분 이 시간이면 조별 과업이 끝나고 청소를 하고 있을 시각입니다.
    초임하사들은 자기 직별 또는 부서의 수병들 -대부분 일, 이등병들 - 과 함께 각 격실(방) 청소를 합니다.
    한 직별이나 부서에서 쓰는 격실은 침실 뿐만이 아니라
    함내 곳곳에 흩어져 있기 때문에 서두르지 않으면 씻을 시간이 없습니다.
    발바닥에 땀 나도록 돌아다니면서 쓰레기 치우고 청소를 마치고 나면
    겨우 씻을 시간이 주어지지만,
    그 시각에 함 내부에 있는 화장실들은 인산인해기 때문에
    차라리 세면도구를 챙겨 들고 육상 화장실로 뛰어 가는 편이 빠릅니다.

    07:00
    아침밥을 먹으러 가면 사병식당 앞에 영내하사와 수병들이 구분 없이
    일렬로 길게 줄을 서 있습니다.
    해군에는 사관실과 CPO(원,상사)실을 제외하고는 간부 식당이란 것이 없으므로
    중사부터 이병까지 모두 사병식당에서 밥을 먹습니다.
    영외 거주 하사부터는 줄을 서지 않아도 되지만
    영내 하사들과 수병들은 짤 없이 줄을 섭니다.

    07:45
    오전 일과시작 15분 전 방송이 나오고 동시에 보수과업 시작이란 방송도 나옵니다.
    그러면 영내, 영외 구분 없이 각 부서별로 맡은 구역 보수과업을 시작합니다.
    반짝반짝 광을 내야 할 부분은 광약을 발라서 광을 내고
    구리스를 발라야 할 부분엔 구리스를 바르고
    녹이 슨 곳에는 녹을 제거하고
    페인트가 묻어 있지 말아야 할 곳에 묻어 있으면 까내는 작업도 합니다.

    07:55
    오전 일과시작 5분 전 방송이 나오면서 보수과업 끝이란 방송도 나옵니다.
    그럼 하던 일을 마무리 하고 선배들이 던져주는 헝겊, 사포, 기름통 등
    보수과업에 사용했던 각종 도구들을 정리하고 방송에서 지시하는대로
    어딘가에 집합을 합니다.

    08:00
    일단 함총원이 집합해서 오늘의 전반적인 훈련이나 일과를 알려 줍니다.
    끝나고 나면 각 부서별로 집합해서 일과 정렬을 합니다.
    그게 끝나고 나면 각 직별별로 집합해서 일과 정렬을 합니다.
    이 때, 초임하사인 내가 해야 할 일도 지시를 받습니다.
    뭐, 대부분은 장비 공부와 테스트로 점철된 하루지만요.

    11:00
    지난 며칠동안 그랬던 것처럼 오전 내내 CIC에서 장비에 대해 공부만 시키던 선임하사(중사)가
    책을 덮게 하더니 눈을 감으라고 합니다.
    드디어 올 것이 왔습니다.
    그리고 장비에 있는 200여 개의 버튼을 모두 빼서 자기 모자에 담고서는
    오른쪽으로 돌리고 왼쪽으로 돌리고 양손으로도 돌리면서 수리수리 마수리를 외칩니다.
    주문을 모두 외운 선임하사가 앞에다 모자를 던져 주면서 버튼을 제자리에 끼우라고 합니다.
    그냥 끼우기만 하는게 아니라 해당 버튼의 기능과 눌렀을 때 어떤 현상이 생기는지까지 얘기하면서 해야 합니다.
    30개 쯤 끼우다가 버벅 거렸습니다.
    머리를 박으라고 하더니 그 상태에서 설명을 해 줍니다.
    일어나라고 하더니 다시 해보라고 합니다.
    대여섯개 하다가 또 버벅 거렸습니다.
    또 머리를 박았습니다.
    또 버벅 거렸습니다.
    또 머리를 박았습니다.
    선임하사 없을 때는 정말 잘 외워지던 것이
    선임하사 앞에만 서면 버벅 거리게 됩니다.

    11:30
    점심 배식시간이 되자 오후에 다시 테스트 해봐서
    그 때도 오전처럼 버벅거리면 지옥을 경험하게 될거라고 엄포를 놓고는
    룰루랄라 식당으로 갑니다.
    선임하사가 떠나간 뒤 남겨진 나머지 버튼들은
    책을 봐 가면서 열심히 끼워 맞춰 놓습니다.

    12:10
    어차피 일찍 식당에 가 봐야 줄만 길게 늘어설 것이 뻔하고
    선배들 눈치도 보이기 때문에 조금 늦게 식당에 갑니다.
    조리장 선배가 뭐하다 이렇게 늦게 왔냐며 이것저것 챙겨줍니다.
    열심히 밀어넣고 있는데 다른 부서 한 깃수 선배가 툭 치며 한마디 합니다.
    "엊그제 준 거 다 외웠지? 이따 보수공작실로 와. 테스트 할테니까"
    함장부터 바로 위 선배들까지 출신, 직별, 기수가 적혀 있는 쪽지입니다.
    그걸 외우지 못하면 선배들로부터 개맞듯이 맞습니다.
    무거운 마음으로 밥과 반찬을 대충 밀어넣고
    배 제일 꼭대기의 우리 장비가 있는 곳에 숨어서 담배를 한대 피웁니다.
    내가 이병인지 하사인지 분간이 안 갑니다.
    가슴팍에는 분명 하사 계급장이 달려 있는데, 생활은 이병만도 못한 것 같습니다.

    12:45
    오후일과 시작 15분 전이 나오고 또 각 부서 보수과업을 하라고 방송이 나옵니다.
    또 합니다.
    끝나면 또 정리합니다.

    13:00
    오후 일과정렬은 각 부서별로 간단하게 진행하고 바로 일과를 시작합니다.
    선임하사가 CIC로 들어옵니다.
    책을 펼쳐놓고는 있지만 불안, 초조, 긴장으로 글씨가 눈에 들어오질 않습니다.
    제자리에 끼워져 있는 버튼들을 쭈욱 둘러보더니 누가 끼웠냐고 묻습니다.
    책을 보면서 끼웠다고 했더니 별 말이 없습니다.
    선임하사가 모자를 벗으려는 찰나 우렁찬 방송이 나옵니다.
    "알림!!! 영내하사 이하 수병 총원 육상에 집합!!! 잠시 후 부식 작업이 있을 예정!!!"
    아~~~ 살았습니다.
    우리가 먹을 반찬거리가 왔으니 영내 대원들 모두 와서 한삽 거들라는 얘깁니다.
    즉, 잠시나마 여기서 해방이라는 얘깁니다.
    선임하사가 빨리 갔다 오라며 보내줍니다.
    부식 작업을 끝내고 돌아오니 이번엔 옆 배에서 선임하사 동기가 왔습니다.
    눈치를 보다가 잽싸게 뛰어가서 커피 두 잔을 뽑아다 두분께 드렸더니
    선임하사가 고맙다며 천원짜리 하나를 던져 줍니다.
    그리고는 이따 세시에 테스트를 할테니 준비하고 있으라며
    동기와 함께 어디론가 사라집니다.

    15:00
    선임하사가 또 수리수리 마수리를 외칩니다.
    저는 또 버벅거립니다.
    또 머리를 박습니다.
    또 버벅거립니다.
    또 머리를 박습니다.
    어디서 돌대가리가 하나 들어왔다고 엄청 까입니다.
    그 상태로 책을 던져주면서 나머지 버튼들 기능들을 외우라고 합니다.
    머리를 박은 상태로 힘겹게 나머지 기능들을 찾아 외웁니다.
    다행스러운건 이제 몇개 남지 않았다는 겁니다.
    그리고, 신기하게도 그 상태에서 외우니까 더 잘 외워집니다.
    다음 테스트에서 무사히 합격을 했습니다.
    하지만 그래봐야 소용이 없습니다.
    내일은 레이더실입니다.
    레이더실에는 버튼이 더 많습니다. ㅠㅠ

    16:30
    일과가 끝날 시간이 됐으니 청소를 시작합니다.
    아침에 했던 청소를 오후에도 똑같이 합니다.
    식당에서는 이미 저녁 식사 배식을 하고 있지만
    퇴근 전에 밥을 먹고 가려는 총각 영외거주자들과
    영내 고참 선배들밖에 없습니다.

    17:00
    드디어 오늘 하루의 모든 일과가 끝나고 저녁을 먹습니다.
    저녁을 먹고 있는데, 아까 점심 때의 그 선배가 17:30까지 보수공작실로 집합하라고 합니다.
    밥이 제대로 목구멍으로 넘어가질 않습니다.

    17:30
    보수공작실은 무서운 곳입니다.
    각종 공구들을 비롯해서 공작기계들도 있는 곳입니다.
    직별장들까지는 수월하게 외웠는데,
    선임하사들로 내려오니까 깜깜해집니다.
    150명 타는 배에 장교가 열댓명에 부사관들이 80명 정도 됩니다.
    머리가 지끈거리는데 선배가 또 머리를 박으라고 시킵니다.
    그상태에서 전진, 후진을 시킵니다.
    하루종일 머리를 박아서 아픈데 전진, 후진까지 하니까 머리가 쓰라립니다.

    19:00
    겨우 보수공작실에서 풀려나서 침실로 돌아와보니
    직별 선배가 서무실로 오라고 합니다.
    서무실로 가보니 서류 뭉치들을 잔뜩 꺼내 보이면서
    앞으로 네가 맡게 될 일이니까 잘 봐두라고 합니다.
    이 선배는 서무사일을 저에게 떠넘길 요량인가 봅니다.
    한 깃수밖에 차이가 안 나는데,
    나한테 다 떠넘기면 자기는 도대체 뭘 하겠다는 건지...

    20:00
    한 시간 정도 서류를 뒤적이며 설명을 하던 선배가
    이제 가서 좀 쉬라면서 풀어줍니다.
    저녁을 먹고 세 시간 만에 담배를 하나 피워 뭅니다.
    담배를 피워 물고 달빛이 물든 바다를 바라보니
    그냥 콱 빠져 죽고 싶은 충동이 입니다.

    21:00
    점호를 받기 위해 청소를 시작합니다.
    해군에서 점호 청소는 바닥 쓸고 닦고 각 맞추는게 전부가 아닙니다.
    체스트(관물함) 안팎, 각종 배관 위, 케이블 위 등
    눈에 보이지 않는 곳까지 모두 걸레질을 하여 깨끗하게 해야 합니다.

    21:45
    점호 15분 전 방송이 나오자 바로 당직사관이 들어옵니다.
    다행히 오늘 당직사관은 청소 검사를 대충 하고 지나갔습니다.

    22:00
    당직사관이 점호를 대충 돌아준 덕에 점호가 일찍 끝났습니다.
    숨겨 두었던 빨래들을 다시 널고 잠을 청합니다.
    내일은 현문당직이 있어서 오늘보다 더 스펙타클한 하루가 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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