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출이라는 결단의 문제 ; 결국 영화에서 무엇을 볼 것인가.
(영화이야기 네 번째) 우리는 영화에서 기본개념이자 방법이기도 한 네 개의 용어 쇼트와 씬, 미장-센, 몽타주를 시작으로 해서 영화에서 시선이 활동하기 시작하는 상상선을 먼저 알아보았습니다. 그런 다음 영화를 다루는 담론의 방식으로서 장르에 대해서 이야기를 했습니다. 비평가들이나 혹은 영화과 강의실에서 대부분 영화에 관해서 이야기할 때, 구체적인 작품을 분석할 때에, 이들은 가장 자주 사용되는 용어들이므로 영화에 관심 있으신 분들께서는 이 관련된 영화 서적들을 읽으신다면 도움이 될 것입니다.
하지만 아마도 여러분들께서는 이것으로 충분치 않다는 느낌을 받을 것입니다. 물론입니다. 영화는 카메라(와 그에 관련된 여러 매카니즘의 과정에서 만나는 기계)를 다루는 것이긴 하지만 그러나 그것을 도식적으로 활용하는 것만으로는 좋은 영화를 찍을 수 없으며, 또한 그것을 아는 것만으로 좋은 영화평을 쓸 수 없는 이치입니다. 영상인류학에는 영화를 원주민들에게 가르치는 프로그램이 있습니다. (이 프로그램에 대해서는 수업시간에 좀 더 자세히 설명하겠습니다) 이들은 영화를 접해본 적이 없는 지역에 들어가서 그 지역의 원주민들에게 영화를 가르치고 난 다음 그 결과물을 통해서 그들의 시각적 사고가 무엇인지를 밝혀내는 작업을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더 나아가 그들의 시각적 사고가 친족체계, 언어, 신화와 어떤 연관관계가 있는지를 설명합니다. 이 과정에서 프로그램에 따르면 영화를 단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사람에게도 일주일이면 영화의 매카니즘을 교육시키기에 충분한 시간이라는 것입니다. 어쩌면 오늘날 스마트폰을 들고 다니는 모든 현대인들은 각자가 각자의 방식으로 영화제작자들이며 영화감독일 지도 모릅니다. 우리들은 각자의 영화를 찍은 다음에 그 영화를 배급하고(아는 사람에게 발송합니다) 그리고 와이드 개봉하기도 합니다. (자기 블로그에 올려서 마음껏 보거나 좀 더 적극적인 분들은 YouTube.com에 올리기도 합니다) 하지만 우리들은 이 영화들을 모두 영화 예술의 태도를 갖고 존중하면서 그에 대한 설명이나 분석, 비판을 시도하지는 않습니다.
그러면 그 영화들에 결정적으로 빠진 것은 무엇일까요? 그건 연출이라는 문제입니다. 단지 감독이 거기 있느냐, 의 존재 유무를 말하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는 다소 까다로운 질문과 마주해야 합니다. 연출이란 무엇인가? 첫째, 상식적인 대답. 감독이 하는 일. 마치 음악에서 지휘자가 하는 것처럼 영화 전체를 ‘지휘’하는 일. 하지만 그것으로 충분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음악에서는 지휘가 악보의 해석의 차원에 머물지만 영화에서는 시나리오 자체를 고치거나 종종 그것을 무시하고 완전히 바꾸기도 하기 때문입니다.
두 번째, 기술적인 대답. 영화에서 연출은 두 가지 개념이 있습니다. 하나는 할리우드적인 것입니다. 연출은 전체 제작과정에서 영화현장을 진행하는 자리입니다. 프로듀서가 기획을 해서 이것을 맡기면(프로듀서) 시나리오가 나오고(시나리오 작가) 그러면 제작사에서 영화화 여부를 결정한 다음 배우를 캐스팅하고 스태프를 모으게 됩니다. 이때 감독은 스태프 중의 한 사람입니다. 그래서 할리우드에서는 언제든지 현장에서 감독을 해고시킬 수 있는 제작자의 권리를 계약서에 포함시킵니다. 연출은 현장에서 영화를 찍은 다음 편집실에 찍은 필름을 넘기게 됩니다. 여기까지 끝나면 연출의 역할은 마무리 짓습니다. 찍은 필름은 편집실에서 편집을 하고(편집) 사운드 믹싱을 하고(사운드) 색 보정을 한 다음 현상을 합니다.(현상소) 그리고 네가필름이 만들어지면 배급팀이 영화를 본 다음 규모를 결정하면 여기에 마케팅 팀이 합류하게 됩니다. 그러니까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과 달리 할리우드에서의 연출의 자리는 매우 작습니다. 다른 하나는 유럽적인 것입니다. 이 경우 연출은 시나리오를 직접 쓰거나 혹은 공동 시나리오작업을 합니다. 이때 보통 그 영화의 기획도 연출이 하면서 전체 흐름의 주도권을 쥐게 됩니다. 그리고 편집과정을 주도하거나 감독 자신이 직접 편집을 지휘합니다. 그래서 이것을 감독-중심주의 영화제작 방법이라고도 부릅니다.
그러나 이것은 두 대륙 사이의 영화 제작방식의 차이이며 또한 위에 설명한 것처럼 완전하게 대별되는 것이 아니라 양쪽의 방법을 양 끝으로 하여 감독이나 영화에 따라 서로의 장점을 취하고 있습니다. 말하자면 대부분의 영화는 양쪽을 끝으로 하여 늘어선 선 위의 어느 자리에 있는 것입니다. 한 가지 더 오해하시면 안 되는 것은 할리우드 방식이 영화 공장과도 같은 결과를 만드는 것은 아니며 유럽 방식이 항상 예술적인 것은 아닙니다. 영화사에서 할리우드의 위대한 감독들, 이를테면 존 포드나 하워드 혹스, 알프레드 힛치콕, 더글라스 서크, 니콜라스 레이로부터 시작하여 지금 활동 중인 클린트 이스트우드에 이르기까지 이 스튜디오 방식 안에서도 자기의 영화를 만들어내고 있습니다. 이것을 정식화시켜서 1950년대에 프랑스 영화비평지 카이에 뒤 시네마에서는 ‘작가정책(La Politique des Auteurs)’라는 이론을 발전시키기도 했습니다. 영화감독들은 어떻게 문학에서 소설가에 해당하는 자기의 작가적 서명을 남기는가에 관한 연구의 방법입니다. 이것이 1960년대에 영미 비평에서 영화비평가 앤드류 새리스에 의해서 작가주의(Auteurism)로 소개되어 논쟁이 시작되었습니다. (이에 대해서는 수업시간에 좀 더 자세하게 설명하겠습니다.)
세 번째, 미학적인 대답. 영화에서 무엇을 볼 것인가. 자, 우리가 영화에서 해석의 활동이라고 부르는 것은 이 영역의 문제일 것입니다. 영화가 무한한 자유를 누리는 것처럼 보이지만 영화에 대한 방법과 기술을 익히자마자 이것이 매우 제한적일 뿐만 아니라 무척 불편한 예술이라는 것을 알게 됩니다.
여기서 연출은 두 개의 카테고리가 있습니다. 하나는 연출을 설계하는 것입니다. 이 경우 연출은 스튜디오 세트를 만들거나 혹은 어떤 장소를 헌팅해서 찍을 때에도 이 모든 것을 통제하고 싶어 합니다. 그리고 배우들의 의상은 물론이고 헤어스타일까지 의도한 연출에 맞게 고칩니다. 그런 다음 촬영을 할 때에 카메라의 위치는 물론이고 렌즈까지도 일일이 지시하게 됩니다. 그래서 영화의 모든 요소가 연출의 의도에 수렴하도록 만드는 것입니다. 이 경우 영화의 쇼트나 씬, 몽타주, 미장센은 할 수 있는 한 연출의 의도에 따라 통제하게 됩니다. 물론 음악도 여기에 포함될 것입니다. 이때 이 연출자들은 시나리오를 쓴 다음 사전 준비로서의 콘티작업을 철저하게 합니다. 심한 경우는 콘티작업이 끝나면 현장에 (연출을 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콘티를 확인하기 위해 가는 것이라고까지 말하기도 합니다. 한국에서 대표적인 경우는 박찬욱감독입니다. 그리고 이런 카테고리의 하나의 정점에 이른 연출을 한 사람은 알프레드 힛치콕입니다. 박찬욱감독이 많은 인터뷰에서 자신이 가장 영향을 받은 감독으로 힛치콕을 이야기하는 것은 이유가 있습니다.
다른 하나는 자신이 영화를 찍고 싶어 하는 이야기가 결정되면 그 다음 가능하면 의도한 구체적인 장소를 찾아가고 거기서 영화를 찍기 시작합니다. 이런 경우 연출자는 그 장소를 찾았기 때문에 가능하면 그 장소의 어떤 자연스러운 부분도 건드리고 싶어 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그 부분을 찍는 것이야말로 연출의 의도라고 믿기 때문입니다. 이런 경우 연출자에게는 그것을 어떻게 만지거나 고쳐서 자기의 의도를 반영하느냐의 문제가 아니라 그것을 찍을 것인가, 말 것인가에 의도가 담겨있다고 생각합니다. 이런 경우의 연출자들은 스튜디오를 혐오하게 됩니다. 또한 배우들의 연기에 대해서 시나리오를 나눠준 다음 그것을 그들의 의도대로 연기하게 내버려둡니다. 다만 그 연기의 해석이 자기가 의도하는 방향으로 가는지 마는지를 판단할 따름입니다. 이때 연기자는 자기가 해석한 연기를 선보여야 하며, 종종 연기자 자신의 개인적인 습관을 보여주기도 합니다. 위에서 설명한 연기 지도가 인물 중심의 연기라면 지금 설명한 연기는 배우 중심의 연기입니다. 종종 이 연출자들은 맑은 날, 이라고 시나리오에 쓰여져 있는데도 촬영 당일에 비가 오면 그냥 시나리오를 고쳐서 비가 오는 상황으로 바꿔버립니다. 시나리오 상으로 같은 날인 장면이기 때문에 날씨의 연결이어야 하는 경우가 아니라면 그런 변화를 자연스럽게 생각합니다.
위에서 설명한 연출자들은 날씨의 문제를 매우 골치 아프게 생각하기 때문에 스튜디오 안에서 찍는 것을 선호합니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이 연출자들은 계절의 문제에 대해서 영화 제작의 여건에 따라 바꿀 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후자의 경우는 그날의 날씨에 대해서는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면서 계절을 포기하지 않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만일 그 계절을 놓치면 차라리 이야기를 바꾸기보다는 영화를 포기하기도 합니다. 그렇게 되면 이제 후자의 연출자들에게 자기가 선택할 수 있게 남은 것은 쇼트의 길이와 순서, 그리고 씬의 구성. 몽타주의 방법이라는 형태론적인 것만이 남게 됩니다. 이 후자의 대표적인 한국감독은 홍상수입니다. 그리고 영화사적으로 이러한 전통을 택했을 뿐만 아니라 미학적으로 개념화 시키고 그것을 현장에서 영화 연출의 방법으로 실현한 것은 이탈리아 네오리얼리즘 영화에서 시작되었습니다. (물론 그 이전에 이 방법의 원형을 시도한 감독은 프랑스의 장 르누아르입니다. 하지만 이 문제는 영화미학사적으로 다소 복잡한 문제입니다)
이 두 가지 카테고리의 감독은 여러 가지 부분에서 완전히 반대의 방법을 택하기 때문에 영화를 분석하거나 비판을 할 때에도 다른 방법으로 다가가야 하며 다른 기준을 가져야 합니다. 종종 한쪽의 미덕이 다른 쪽에서는 매우 불합리하게 여겨질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물론 모든 감독을 두 개의 카테고리를 놓은 다음 어느 쪽에 속하느냐고 물어볼 수는 없습니다. 이 역시 위에서 설명한 할리우드 스튜디오의 방식과 유럽 감독중심의 방식이 있지만 그 사이의 스펙트럼의 다양성 위에 수많은 감독들의 방법이 놓이는 것과 마찬가지로 여기서도 두 가지 카테고리 사이에 수많은 방법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이때 연출의 결단이라고 부르는 문제는 결국 ‘방법의 의도’를 읽어내는 것입니다. 영화에서 연출은 실용적인 문제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물론 직업으로 고용된 감독들은 그렇게 영화를 만들고 있습니다. 대부분의 상업영화들, 혹은 스튜디오 영화들은 프로듀서 중심으로 진행되고 그런 방식으로 실용적인 이유로 두 개의 카테고리 방법을 선택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여기서 제가 말하는 것은 어느 카테고리에 속하건 영화에서 연출자가 자기 의도를 가지고 그걸 영화적으로 보여주고 싶어 하는 경우에 한해서 말씀드리는 것입니다. 사실상 단지 시나리오에 쓰여져 있는 대사와 상황을 잘 보여주는 것이 유일한 목표라면 사실상 거기서 결단이라고 불러야 할 만한 것은 있을 리 없기 때문입니다.
이 연출의 결단이라는 문제는 만일 100편의 영화가 있다면 100개의 결단이 있는 것이기 때문에 이것을 분류해내거나 일정한 도표를 만들 수는 없습니다. 100명의 영화감독은 서로 전혀 다른 세계관을 가지고 자기의 선택을 할 것입니다. 심지어 한 명의 감독은 영화에 따라 다른 결단을 내려야하는 순간과 마주하게 될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가 지금 만들고 있는 영화의 주제나 소재, 혹은 인물에 대해서 그가 가져야하는 어떤 태도 때문일 것입니다. 어떤 점에서 비평의 역할은 이 결단을 읽어내는 것일 수도 있습니다. 그러므로 저는 수업시간에 이에 관해서 위에 서술한 내용을 간단하게 설명한 다음 전혀 다른 몇 편의 영화에서 몇 개의 씬을 선정한 다음 이에 대해서 구체적으로 설명하도록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영화 이야기 네 번째 시간 끝)
추신_ 7월에는 이제까지 함께 공부한 내용에 대해서 간단하게 환기한 다음 수강생 여러분들에게 이제까지의 내용에 대해서 궁금한 질문을 받고 대답하는 자리의 대화 형식을 취할 것입니다. 수업이 끝난 후에 다시 공지 사항을 알려드리겠지만 그날 미리 준비해야할 답변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7월 29일 금요일 강의 이전 일주일 전에 미리 질문지를 (여러분에게 매달 강의 날짜를 공지해주는) 서대문 문화원 담당자 앞으로 이메일을 보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강의의 원활한 진행을 위해서 메일로 질문을 주신 분들에게 우선적으로 답변을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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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서대문 문화원 홈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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