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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이 매우매우 깁니다. 글자와의 전쟁을 피하시고 싶으신 분들은 맨 아래 요약을 읽어주세요!
(사실 그것만 읽어도 충분할만큼 글이 빈약한...)
“료타로 님, 부디 이 나라를 구원해주세요-.”
나, 사카자키 료타로(16세)는 어느 날 갑자기 이세계로 소환당해
용사로서 세계를 구하는 임무를 맡게 되었다.
이렇게 예쁜 공주님이 부탁하는데, 당연히 ‘맡겨달라고!’라고 할 수밖에 없잖아!
하지만 요즘 이런 게 유행인지, 기운차게 승낙하자마자
다시금 다른 장소로 다른 이에게 소환당하고 말았다.
“기뻐해라. 네 녀석을 이 나라의 마왕으로 만들어주지.”
어라? 여기, 내가 용사가 된 곳이랑 같은 세계 아니야?
그럼 내가 날 쓰러뜨려야만 원래 세계로 돌아갈 수 있다는 거?!
1. 시작
1990년대 후반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던 애니메이션 <에반게리온>은 오타쿠 문화에 큰 영향을 끼쳤다. <에반게리온>의 영향 중 하나는 오타쿠 문화에서 그려지는 새로운 형태의 ‘전쟁’의 이미지를 만들어낸 것이다. 소설가이자 오타쿠 평론가 마에지마 사토시는 이 새로운 전쟁의 특성으로 ‘화이트베이스의 부재’와 ‘적의 부재’를 꼽는다.[1]
‘화이트베이스의 부재’란 일상에서 전장이라는 비일상의 세계로 떠나는 배(화이트베이스, 애니메이션 <기동전사 건담>에 등장하는 군함)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쉽게 말해 이는 일상과 비일상의 공존을 의미한다. 주인공은 전장이라는 비일상에서 싸우면서 동시에 학교생활이나 미소녀와의 데이트와 같은 일상을 함께 겪는다. 현실적으로 전쟁이 그런 일상을 처참히 무너뜨리는 것임을 생각해보면 이러한 ‘화이트베이스의 부재’는 작품 내 구체적인 세계관의 부재로 이어진다.
‘적의 부재’란 적의 정체가 불분명하다는 것이다. 분명 주인공은 적과 싸우지만, 적의 정체가 무엇인지, 왜 싸우는지 등을 알 수 없다. 원인을 알 수 없지만, 어쨌든 적은 주인공과 동료들을 공격하고 주인공은 이에 대항하여 ‘그냥’ 싸운다. 이유를 알 수 없는 부조리 안에서 선과 악은 어설프게 구분된다. 그냥 선이고 그냥 악일 뿐이다. 현실적으로 선과 악은 서로의 입장과 견해의 차이에 따라 세심하게 구분되는 것임을 생각해보면 이러한 ‘적의 부재’는 작품 내 구체적인 설정의 부재로 이어진다.
이러한 두 가지 특성에 의해 오타쿠 문화의 작품은 세계관의 구축, 설정의 구상이 아닌, 모에한 캐릭터 표현과 주인공의 내면에 초점을 맞춘 이야기에 힘을 쏟는다. 여기서 어설픈 세계관과 설정은 ‘그냥 그렇다’라는 오타쿠들 사이의 전제가 된다. 따라서 오타쿠 문화에 익숙하지 않은 일반인에게 이러한 작품을 보여주면 당황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예를 들어 라이트노벨 원작 애니메이션 〈인피니트 스트라토스(IS)〉를 일반인에게 보여준다면 ‘왜 IS가 여성에게만 반응하는 거야?’라는 어설픈 설정에 대한 의구심 때문에 작품을 제대로 감상할 수 없을 것이다. 물론 제대로 감상해도 볼 수 있는 건 뽕빨뿐이다…
▲ 〈인피니트 스트라토스(IS)〉. 라우라 기여어!!![3]
설정이 어설프다는 것은 좋게 말하자면 어떻게 구성해도 상관없다는 것이다. 즉, 설정에 있어서 엄밀해야 한다는 강박 없이, 작가는 심리 묘사나 모에 표현에 필요한 적절한 모티프를 오타쿠들의 전제에서 적당히 빌려와 자유롭게 이야기를 만들어낼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방식은, 소설 《반지의 제왕》으로 유명한 소설가 톨킨(J. R. R Tolkien)이 ‘세계관을 먼저 완벽하게 구축하고 그 가상의 세계에 인물, 상황, 사건을 대입해 시뮬레이션하여’ 소설을 쓰는 방식과는 정반대이다. 사실 과거 (〈에반게리온〉 이전) 오타쿠 문화에도 이런 경향이 강했다. 대표적인 예시로 1979년 방영된 애니메이션 〈기동전사 건담〉이 있다. 하지만 현대 오타쿠 문화의 주류는 어설픈(자유로운) 설정 속에서 펼쳐지는 ‘모에’와 ‘이야기’다.
오타쿠 문화에서 자주 등장하는 ‘용사와 마왕’이라는 클리셰(패턴, 기믹) 또한 위에서 언급한, 새로운 형태의 ‘전쟁’의 이미지를 잘 담고 있다는 것이다. 용사가 마왕을 왜 물리쳐야 하는가? 마왕은 ‘그냥’ 악이고 용사와 마왕의 싸움은 운명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마왕에 의해서 일상이 붕괴하였는가? 그렇지 않다. 용사에게는 마을 사람들과 함께 살아가거나 왕국의 공주님과 므흣한 이벤트를 벌이는 일상과 함께 마왕 성(소굴)에 들어가 마왕을 무찌르러 가는 비일상이 혼재되어있다. 여기서 세계관이나 설정의 ‘어설픔’을 지적하는 것은 작품에 대한 적절한 감상이라 보기 힘들다. 그러한 것은 일단 ‘전제’로서 받아들이고 그다음 얼마나 모에가 잘 표현되었는지, 이야기는 어떻게 진행되는지를 살펴보는 것이 더 바람직하다고 생각한다.
이야기 창작의 자유는 모티프가 되는 전제에 다양한 응용, 변형을 불러오기도 한다. 용사와 마왕 클리셰 또한 다양한 형태로 변형되어 오타쿠 문화에 나타났다. 이를테면 2ch 웹 소설을 기반으로 한 애니메이션 〈마오유우 마왕용사〉에서는 마왕이 용사와 싸우는 운명을 거부하고 용사와 동료가 되어 세상을 바꾸어 나간다. 마왕은 거대한 가슴(….)과 덜렁이(도짓코) 성향을 지닌 미소녀로, 작품은 마왕과 용사의 연애를 그려가며 모에를 표현해냈다. 이런 식으로 용사와 마왕이 한 팀이 되어 활동하는 것은 용사와 마왕 클리셰의 대표적인 변형이며 현재 많은 작품들이 이러한 방식을 사용한다. 변형은 본래 용사와 마왕 클리셰가 갖고 있었던 어설픈 선과 악의 구분을 아예 허무는 것이다.
오타쿠 문화에서 작품 설정에 대한 자유도가 높은 만큼, 작품을 바라보는 주안점은 설정이 얼마나 자세한가보다는 얼마나 신선한가(전제가 어떻게 응용, 변형되었는가)에 맞춰지게 된다. 그런 점에서 이 작품, 《더블 롤!》의 설정은 주목할만하다. “사카자키 료타로 16세. 평범한 고등학생입니다만 용사와 마왕도 하고 있습니다.” 작가 사쿄우 준은 전작 《용사가 되지 못한 나는 마지못해 취직을 결심했습니다》에 이어 다시 한 번 ‘용사와 마왕’ 클리셰를 들고 왔다. 전작에서는 마왕이 쓰러지는 바람에 일상이 아닌 비일상(용사와 마왕의 싸움)이 무너져 내렸다는 독특한 설정으로 작품은 용사 후보자인 ‘라울’과 마왕의 딸인 ‘피노’가 함께 일상을 살아가는 러브코미디가 되었다. 이번 《더블 롤!》에서는 용사와 마왕이 동료가 되는 것을 넘어서 아예 용사=마왕 한 사람이 된다. 이러한 설정은 용사와 마왕, 선과 악을 한 몸에 지니게 된 주인공의 내적 갈등, 고난을 중심으로 ‘이야기’가 펼쳐질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감을 심어준다.
2. 이야기
주인공 료타로는 얼렁뚱땅 이세계에 소환당하고, 얼결에 용사, 마왕의 계약을 맺게 된다. 이야기는 료타로가 용사와 마왕의 일을 겸직으로 수행하면서, 동시에 그것이 상대방 진영에게 걸리지 않도록 노심초사, 불철주야 노력하는 내용이다. 료타로가 용사로서 활동하면서 자신이 마왕임을 숨기고, 반대로 마왕으로 활동하면서 자신이 용사임을 숨기는 과정이 유쾌하게 그려진다. 자신이 마왕이 아님을, 혹은 용사가 아님을 얼버무리는 주인공의 행동은 사실 매우 어설프지만, 이것은 애초에 어설펐던 설정과 다소 멍청한(귀여운) 캐릭터들에 의해 흐지부지 넘어간다. 용사 퀘스트와 마왕 지지율, 마왕을 죽이는 성검과, 용사를 죽이는 마검, 이렇게 용사로서의 활동과 마왕으로서의 활동이 서로 비슷하게 교차하고 대비되는 과정에서 마침내 용사와 마왕이 서로 만나서 싸워야만 하는 상황에 다다르면서 료타로의 갈등(고난)이 극대화된다.
료타로를 중심으로 용사 측(인간족) 캐릭터와 마왕 측(마족) 캐릭터 또한 대비되어 나타난다. 왕국의 공주 로벨리아와 선대 마왕의 딸 이리스가 대비되고, 선대 용사의 딸이자 료타로의 동료가 되는 리나와 마족 사천왕의 우두머리 라이자가 대비된다. (물론, 다 여자 캐릭터이다.) 인간족과 마족은 서로 대립하지만, 중심에 있는 료타로의 입장에서는 두 진영 다 착한 존재들이다. 즉, 본래의 용사와 마왕 클리셰에서의 어설픈 선과 악의 구분이 무너진 채, 모두가 다 선이 된 것이다. 사실 이렇게 선과 악이라는 핵심 갈등 요소가 사라진 상황에서 이야기는 방금 언급한 네 명의 여자 캐릭터와 료타로 사이의 모에 이벤트로 도배될 가능성이 높았다. (즉, 이야기가 무너져 내리고 모에만 남게 되는 것이다.) 하지만 작품은 이에 그치지 않고, 용사와 마왕이 모두 ‘선’이 된 상황에서 그 클리셰와는 별개인 또 다른 ‘악’의 존재를 암시하며 1권을 마친다. 다음 권이 궁금해지도록 만드는 악독한 상술이다!!
이야기 진행에서 아쉬운 점은, 료타로가 주인공치고는 지나치게 수동적이라는 것이다. 주어진 환경과 상황에 끌려다닐 뿐, 료타로 스스로 주도적으로 이야기를 진행해가지는 않는다. 다만, 그 상황에서 자신의 정체를 잘 숨기는 임기응변이 발휘될 뿐이다. 우선 이세계로 강제 소환당한 료타로에게는 용사나 마왕이 되려는 의지가 없었다. 그저 로벨리아 공주와 이리스의 미인계(?)에 혹해 덜컥 계약을 해버리고 만다. 이후 나타나는 상황에서도 료타로는 다른 캐릭터들에게 끌려다닌다. 그런데 이런 상황들이 작품에서 지나치게 작위적으로 나타난다. (이는 작가의 의도한 것이다.) 여기서 독자는 용사와 마왕과는 별개인 또 다른 ‘악’의 존재가 있음을 쉽게 눈치챌 수 있다. 하지만 수동적인 료타로는 누군가에 의해 교묘하게 만들어진 상황에서 자신이 꼭두각시처럼 움직인다는 것을 깨닫지 못한다. 료타로와 독자 사이 인식의 엇갈림은 답답함을 유발한다. 마치 하렘물에서 이도 저도 못하는 남자 주인공을 보는 것과 같은 느낌을 선사한다.
물론 작품 안에는 수동적인 료타로가 능동적으로 움직이도록 계기를 만들어주는 이야기가 존재한다. 본래 료타로는 미인계에 당해 계약을 맺었지만, 매혹을 넘어서 그가 용사와 마왕으로 활동하는 적극적인 의지를 다지게 하는 이야기가 들어있다. 료타로에게 용사와 마왕으로서의 당위성을 부여하는 것이다. 료타로가 ‘반드시 해야 해!’라는 의지를 다지도록 만들기 위해서는, ‘발단-전개-위기-절정-결말’이라는 이야기의 5단 구성에서 절정에 다다르고 그것이 해소되는 어떤 ‘극적인’ 상황이 필요했다. 하지만 여기서 그 상황에 대한 서술이 지나치게 가볍다보니 료타로가 의지를 다지는 일이 독자로서는 공감하기 어렵고 부자연스럽게 느껴질 수밖에 없다. 작품이 전체적으로 가벼운 것이 문제인 것은 아니지만, 경우에 따라 적당히 무게를 조절할 필요가 있었다. 그 점에서 이 작품 《더블 롤!》은 아쉬움이 남는다.
작품은 료타로의 용사와 마왕으로서의 고난을 유쾌하게 그려냈지만, 이야기를 통해 주인공의 내면에 공감하기는 힘들었다. 개인적으로는 조금 더 내적 갈등에 집중하여 이야기가 전개되기를 바랐지만, 작가는 이 작품이 전작 《용사가 되지 못한 나는 마지못해 취직을 결심했습니다》보다 조금 더 가볍게 진행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애초에 라노벨이 너무 무거우면 그것이 라노벨이겠는가? 나의 바람은 너무 무거웠는지도 모른다. 이야기에 대한 비판은 이쯤에서 마치고 다음으로 넘어가보자. 오타쿠 문화의 작품에서 이야기와 더불어 중요한 것은 바로 모에다. 캐릭터들이 과연 얼마나 모에하게 그려졌는가?
3. 모에
앞서 말한 네 명의 여자 캐릭터, 로벨리아, 이리스, 리나, 라이자는 각자 나름대로 특색이 있다. 왕국의 공주 로벨리아, 우아한 금발에 영롱한 푸른 눈동자, 따듯하고 우아한 이미지를 갖고 있다. 선대 마왕의 딸 이리스, 투명한 은발에 깊고 붉은 눈동자, 연약하고 가냘픈 이미지를 갖고 있다. 두 캐릭터는 서로 대비된다. 로벨리아는 그 우아한 품위와 공주라는 권위로 료타로에게 동기를 부여하고 반면, 이리스는 지켜주고 싶어지는 연민을 자극하여 동기를 부여한다. 다만, 두 캐릭터는 용사와 마왕이 대결하는 운명에 대해 수동적인 존재로서 주인공에게 의존한다는 공통점이 있다. 이어서 선대 용사의 딸 리나, 검고 긴 생머리, 실수가 많은 덜렁이다. 사천왕의 우두머리 라이자, 붉은색 트윈테일, 료타로에게 한없이 엄격하고 차가운 츤데레다. (사실 1권의 내용으로는 거의 툰드라에 가깝다.) 이 두 캐릭터 역시 서로 대비된다. 리나는 용사가 되고자 하는 올곧은 마음이 있으나 행동이 어설프고, 반대로 라이자는 빠릿빠릿하게 행동하지만 동시에제 멋대로 생각하고 판단한다. 다만, 두 캐릭터는 주인공과 어느 정도 적대적 공생관계에 놓여있다는 공통점이 있다.
캐릭터의 다양성은 이 정도로 충분하다. 주목할만한 점은 이 캐릭터들이 단순히 중구난방으로 나열된 것이 아니라 인간족과 마족의 대비를 바탕으로 주인공과의 관계에서 안정적인 구조를 구축하고 있다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하렘의 문제는, 너무 많은 여자 캐릭터가 다소 의미 없이 나열되어 이야기가 산으로 가면서 모에가 이야기와 조화를 이루지 못하고 오히려 이야기를 해치거나, 혹은 캐릭터 사이에 비중이 뚜렷하게 구분되어 작중에 누구는 많이 나오고 누구는 공기가 된다는 것이다. 이 점을 고려할 때, 이 작품의 캐릭터들이 만들어낸 구조적 안정감은 높은 점수를 줄 만하다. 이런 구조에서는 이야기 진행과 상황에 따라 각각의 캐릭터들이 자신만의 매력을 한껏 뽐낼 기회가 만들어진다.
하지만 문제는 그렇게 매력을 뽐낼 수 있는 상황이 작품에서 잘 만들어지지 않았다는 점이다. 우선, 너무 진부하다. 오타쿠 문화의 작품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므흣한 이벤트가 이 작품에서도 등장한다. 한 가지 예시로, 료타로는 리나와 함께 용사의 퀘스트를 수행하러 나가면서 ‘슬라임’이라는 몬스터를 만난다. 사실 이 ‘슬라임’이라는 소재를 보자마자 ‘슬라임이 닿는 것을 녹이는 성질이 있어서 여자 캐릭터의 옷이 녹아내리는 이벤트가 등장할지도 모른다.’라고 예측할 수 있었다. 그리고 그 예측을 조금도 벗어나지 못한 상황전개에 다소 식상함을 느꼈다. 물론 곁들여진 일러스트는 예쁘게 그려졌지만, 역시나 너무나도 익숙한 전개가 자극을 주기는 힘들었다. 사실, 이런 뻔한 패턴에서 오타쿠들에게 자극을 주는 방법의 하나는 그 상황을 치밀하게, 혹은 신선하게 묘사하는 것이다. 이를테면, 소설 《고양이 이야기(흑)》에서는 주인공 아라라기가 동급생 여자아이 하네카와의 치마 속을 우연히(바람 때문에) 목격하게 되는 뻔한 패턴의 장면에서 주인공이 느낀 감정을 약 2페이지가 넘게 서술하여 큰 충격과 공포와 즐거움을 선사했다. 작가의 필력을 엿볼 수 있는 부분이었다. 하지만 이 작품에서는 그러한 필력이 발휘되는 부분이 없어 아쉬움을 남긴다.
뻔한 패턴의 모에 이벤트 이외의 이야기에서도 캐릭터의 매력을 더욱 드러낼 수 있는 상황이 잘 만들어지지 않았다. 한 가지 예시로, 료타로와 리나가 성검을 찾으러 미궁을 탐험하는 장면이 있다. 여기서 리나는 덜렁이라는 모에 속성을 유감없이 드러내게 된다. 그런데 이 덜렁이 속성은 단순히 캐릭터가 실수를 많이 하는 것뿐만 아니라 실수했음에도 불구하고 더욱 노력할 때, 그 매력이 극대화된다. 이를 드러내는 이야기는 ‘노력-실수-실패-좌절-극복’ 이러한 다섯 가지 단계로 구성된다. 실제로 이 작품의 성검을 찾아가는 장면에서도 이러한 구성이 드러난다. 문제는, 앞의 이야기 부분에서 말한 ‘무게조절’의 실패로 서술이 지나치게 가벼운 바람에 이 좌절과 극복 사이에서 리나가 느끼는 감정(그리고 이를 바라보는 주인공의 감정)에 충분히 공감하기 어려웠다는 것이다. 결국, 덜렁이의 매력이 이야기로 잘 소화되지 못했다.
캐릭터에 매료되는 것에는 두 가지 구분이 있다. 하나는 조형, 즉 외모에 매료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처한 상황이나 이야기 설정 등에 매료되는 것이다. 철학자 아즈마 히로키는 전자를 ‘모에’, 후자를 ‘다치’로 구분한다. 하지만 나는 캐릭터의 매력 자체를 뭉뚱그려 모에로 보고, 아즈마 히로키가 말하는 다치는 모에를 부각하는 요소라고 본다. 사실 아무런 맥락 없이 예쁜 캐릭터를 보여줘도 오타쿠는 이에 모에할 수 있다. 하지만 조형과 더불어, 이를테면 ‘학교가 문을 닫는 것을 막기 위해 노력하는 스쿨 아이돌’과 같은 다치가 있을 때, 오타쿠는 더욱 모에할 수 있다. 이 작품의 ‘모에’에 대한 비판은 그런 의미에서 ‘이야기’에 대한 비판과 연결된다. 《더블 롤!》은 분명 모에할 수 있는 캐릭터가 나오긴 했지만, 더욱 모에할 수 있는 다치가 부족했다.
4. 끝
감상문을 쓰면서 아직 이 책을 읽지 못한 사람들을 고려해 미리니름을(스포일러를) 최대한 안 하려고 자세한 설명은 생략했다. 하지만 이 때문에 도리어 감상문에서 살짝 이해가 안 되는 부분도 있었으리라 본다. 역시 정확하게 이해하고 싶다면 작품 《더블 롤!》을 꼭 읽어주길 바란다. 감상문을 쓰기 위해 다소 힘을 줘서 무거운 마음으로 읽다보니 이것저것 비판을 많이 했지만, 힘 빼고 가볍게 읽기에는 좋은 책이다. 조금은 쓸데없이 긴 글이 되어 유감이다. 이러한 글자와의 전쟁을 싫어하는 분들을 위해 요약하겠다.
[세 줄 요약]
(1) 이야기는 흥미롭지만, 마음을 끌지는 못했다.
(2) 캐릭터는 모에했지만, 표현이 다소 식상했다.
(3) 진득하니 읽기엔 나쁘지만, 가볍게 보기엔 좋다.
*이런 사람들에게 추천해요! - 1) 가벼워서 부담 없이 읽기 편한 게 좋아! 2) 모에한 여자 캐릭터와의 므흣한 이벤트가 좋아! 3) 다음 이야기가 궁금해지는 떡밥을 적당히 뿌려주면 좋아! |
*이런 사람들에겐 반대해요! - 1) 시간을 들여 천천히 읽을 수 있는 게 좋아! 2) 주인공이 주도적으로 이야기를 진행해나가는 게 좋아! 3) 캐릭터의 매력을 극대화하는 치밀한 서술, 묘사가 좋아! |
[1] 마에지마 사토시(前島 賢), 김현아∙주재명 옮김, 『세카이계란 무엇인가(セキイ系とは何か(2014)), 워크라이프, 2016, 77쪽
[2] 사진출처(https://ko.wikipedia.org/wiki/%EC%8B%A0%EC%84%B8%EA%B8%B0_%EC%97%90%EB%B0%98%EA%B2%8C%EB%A6%AC%EC%98%A8)
[4] 사진출처 (http://kover.tistory.com/1033)
[9] 사진출처 (https://lh3.ggpht.com/P8frpbAqFD9ehd-CvapTbW7uaefLYFZYBS2mZ83uXHNHSQjbomHMclyIvp9Agtraolc=h900)
출처 | http://blog.naver.com/mlnookang/22085439299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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