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점심 쯤 용산역 앞 횡당보도에 후배들이랑 같이 서있는데 웬 할머니가 날 툭툭 치더니 단조로운 말투로 "아프리카" "아프리카"라고 함. 순간 상황 이해가 안돼서 멍하니 있었더니 옆에 있는 후배에게 "아프리카야, 한국인이야" 하고 물어봄. 후배도 당황해서 머뭇거리는데 난 그제야 맥락이 이해 되어서 "예, 한국인 맞아요"라고 대답했더니 근데 왜 수염을 기르냐며 폭풍비난. 부모가 기르지 않는데 자식이 수염 기르는 것은 나쁜 짓이라고 수염 기르는 본인 조카 얘기까지 꺼내며 싸잡아서 강약중강약으로 비난함.
우리 부모님이 수염 기르는지 안 기르는지 알어? 우리 엄마 수염 기른다 시발 평생 안 깎았어
웃고 넘기려는데 옆에서 계속 인신공격하며 수염은 윤리도덕적으로 잘못된 일임을 강조하길래 "조선시대엔 다 길렀는데 뭘 이거 가지고 그러세요" 하고 웃으면서 가볍게 대응했음. 그랬더니 할 말이 없었는 지 대뜸 "대학교가 어디냐"며 물어봄.
질문의 의도가 너무 뻔히 보여 기분이 확 상함. 어차피 후배랑 같이 있고 해서 "ㅇㅇ대학교요" 라고 바로 대답했더니 약간 당황은 했으나 전혀 믿기지 않는다는 표정으로 "근데 왜 뱃지가 없어?" "ㅇㅇ대생 같이 안 생겼는데?" "ㅇㅇ대생이 이러고 다니나?" 하며 인신공격을 원투스트레이트로 쏴줌.
이쯤 되니 진짜 짜증이 치솟는 데다 가만히 있어도 계속 건드리니 빨리 조용히 시키고 싶어져 "학생증 보여드릴까요? 보여드리면 믿겠어요?" 했더니 어이가 없다는 표정으로 뜬금 없이 자긴 고려대학교를 나왔다며 당시에 스무 명 밖에 안되는 여자 고려대생이었다고 자랑을 늘어놨다.
후배들은 어쩔 줄 몰라서 지켜만 보고 있고 나는 '뭐 어쩌라는거야...' 하는 표정으로 가만히 있으니 "다 각자의 알아서 사는거고 다른 사람 인생에 뭐라고 하면 안 된다" "그냥 내 생각을 말한 거야" 라더니 다른 곳으로 휙 가버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