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의 이상한 법칙 ; 상상선이란 무엇인가
아마도 당신께서 지금까지 영화에 관한 어떤 개론서로 읽어보시지 않았다면 상상선(想像線, imaginary line)이란 말을 처음 들어보셨을 것입니다. 하지만 이 말은 영화를 일단 만들기로 한 모든 이들은 반드시 알고 있는 말이기도 합니다. 그건 전문가들이건 아마추어들이건 마찬가지입니다. 상상선이란 간단하게 말하면 두 개의 쇼트를 연결할 때 둘 사이의 관계를 만들어내기 위해서 만들어낸 임의의 선(線)입니다. 예를 들어보겠습니다. 두 사람이 마주보고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왼쪽과 오른 쪽에 두 사람이 각각 서서 이야기를 할 때 일반적으로 영화는 왼쪽 사람을 한번 보여주고 난 다음(A 쇼트) 오른 쪽 사람을 보여줍니다. (B 쇼트) (이것을 영화에서 쇼트(shot)-상대쇼트(reverse shot)라고 합니다) 이때 두 사람을 그냥 마주보게 만든 다음 찍어서는 안 됩니다. 우선 두 사람을 마주보게 만들고 그런 다음 둘 사이에 180도로 임의의 수평선을 긋습니다.
첫 번째 원칙. 일단 선을 그으면 그 선을 중심으로 해서 두 사람 사이를 찍을 때 카메라가 그 선을 넘어가서는 안 됩니다. 이건 절대로 안 됩니다. (물론 강제로 넘어가는 방법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건 일종의 편법이거나 영화적인 곡예입니다. 혹은 영화의 법칙에 대한 일종의 미학적 도전입니다. 말하자면 이때는 예외의 법칙입니다) 만일 이것을 지키지 않으면 단지 영화의 법칙에 틀렸다는 차원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영화를 보던 당신께서는 누가 누구를 보는 지 어리둥절해질 것입니다. 이것은 단지 형식적 차원의 문제가 아니라 구체적으로 영화를 본다는 문제입니다. 현장에서는 이런 경우를 ‘컷트가 붙지 않는다’는 표현을 씁니다.
두 번째 원칙. 그런 다음 그 중간에 90도로 다시 선을 긋습니다. 그때는 어느 쪽이건 상관없습니다. 그러면 두 개의 선을 그은 셈이지요. 그리고 두 개의 면이 생긴 셈입니다. 이것을 왼쪽의 면과 오른 쪽의 면이라고 부르겠습니다. 그런 다음 중간에 선을 그을 때 두 선이 마주한 곡지점을 하나의 출발점으로 하고 서 있는 사람을 다른 하나의 곡지점으로 한 다음 다시 선을 긋습니다. 그리고 그 선과 처음의 90도로 그은 선 사이에는 90도 각도 사이의 수많은 선을 그을 수 있을 것입니다. 왼쪽의 사람을 찍고 싶을 때에는 왼쪽의 면에서 180도로 그은 선에서 90도로 그은 선을 향해서 45도에서 30도 안에서 촬영을 하게 됩니다. 45도 바깥으로 벗어나거나 30도 안으로 들어오게 되면 다소 불안정하거나 종종 다음 장면을 연결하기 힘들어질 수 있습니다. 그러나 첫 번째 원칙에 비하면 비교적 유연성 있게 사용할 수 있습니다. 그런 다음 실제 영화 촬영 현장에서는 좀 더 까다로운 몇 가지 원칙이 있기는 하지만 이 자리에서는 먼저 기본적인 개념만 설명하도록 하겠습니다. (이건 글로 설명하면 복잡해보이지만 강의를 하면서 예를 들어 보이겠습니다)
어쩌면 반문할 지도 모릅니다. 이 말은 전문가들을 위한 말인가요? 그렇지 않습니다. 오히려 이 말에 대해서는 문학에 대해서 문장을 설명하기 위해 문법을 아는 것과 같다고 말하고 싶습니다. 다소 따분한 이야기가 될 수 있지만 참고 들어주십시오. 문장은 단어만을 열거하지 않은 다음에는 주어와 술어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이때 술어는 동사이거나 동사+부사로 이루어지게 됩니다. 물론 주어는 술어의 앞에 가겠지요. 이것은 그 작품이 얼마나 훌륭한지를 설명하기 전에 문장의 기본 구조입니다. 완전히 실험적인 문학 소설을 쓰는 경우에도 여기서 시작한 다음 그것을 어떻게 위반하는 지가 하나의 미학적 가능성이 되는 것입니다. 만일 이것을 무시하게 되면 단지 문장이 말이 안 될 뿐만 아니라 의미 전체가 전달되지 않을 것입니다.
간단한 예로 “나는 당신을 사랑합니다”라는 문장을 “사랑합니다 당신을 나는” 이라고 쓰면 단지 문장을 반대로 쓴 것이 아니라 무슨 말인지 알 수 없게 될 것입니다. 하지만 지금 읽고 있는 것이 시(詩)라면 이야기가 달라질 것입니다. 그러나 시에서 문법을 부정하는 것과 무시하는 것은 완전히 차원이 다른 것입니다. 시는 문법을 부정하는 것이지 무시하는 것이 아닙니다. 문법을 부정하는 것은 근본적으로 문법을 긍정한다는 전제 위에서만 가능한 것입니다. 문법을 통해서 문장이 쓰여지고 그 문장으로 소설을 쓰고 그런 다음 그 문장을 음미하면서 시가 되는 것입니다.
영화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만일 영화에서 반드시 지키지 않으면 보는 쪽에서 완전히 혼란에 빠져버릴 수 있는 사태가 벌어지게 될 것입니다. 말하자면 법칙이라고까지 말할 수 있는 일종의 문법들. (그러나 이 표현 때문에 영화를 언어의 문법과 같은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말아주십시오) 그 중의 하나가 상상선의 원리입니다. 이 법칙을 지키지 않아도 되는 경우는 영화 한편을 단 한 번도 편집을 하지 않고 촬영을 하면 몰라도 상관없습니다. 혹은 이런 문제와 부딪칠 염려가 없습니다. 하지만 1시간 30분 동안 상영시간의 영화가 단 한 번도 장면을 나누지 않고 진행되는 경우에는 수많은 불합리한 상황과 마주치거나 장면을 나누지 않았다는 이유로 불필요한 시간을 남겨놓아야 하는 경우와 마주쳐야만 할 것입니다. 혹은 불필요한 카메라의 움직임이나 원치 않는 카메라의 구도를 받아들여야 합니다. 왜 그런 것일까요?영화는 결정적으로 두 가지 한계가 있습니다.
첫 번째 한계. 일단 영화에서 카메라가 찍는 장면은 전체 장소를 바라보는 시선의 180도만 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항상 나머지 180도를 영화는 볼 수 없습니다. 영화가 매우 자유로운 예술인 것처럼 말하여지지만 실제로 영화를 만들어본 사람들은 이 매체가 매우 다루기 까다로울 뿐만 아니라 그 기계적 성질 때문에 수많은 제한과 마주할 수밖에 없다는 것을 경험하게 됩니다.
이때 상상선을 지켜야하는 것은 A 쇼트와 B 쇼트가 사실상 촬영을 한다는 물리적 방법의 차원에서만 말한다면 서로 아무 관계가 없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두 쇼트 사이의 시선의 문제입니다. 누가 누구를 보는가.
예를 들어보겠습니다. 카페에 두 사람의 연인이 있습니다. 그때 A와 B가 서로 마주보면서 이야기할 때에는 문제가 되지 않을 것입니다. 그런데 A는 B를 보면서 이야기하는 데 B는 당신을 보면서 이야기하는 상황을 상상해봅시다. 이때에는 두 사람이 이야기를 하지만 두 사람의 관계는 앞의 상황과 완전히 다른 것일 뿐만 아니라 (만일 이것이 영화라면) 당신은 이 이야기의 세 번째 등장인물이 되는 것입니다. 당신이 제 3자로 머문다는 것과 세 번째 등장인물이 되는 것은 전혀 다른 이야기입니다. 여기서 염두에 두어야 할 점은 상상선의 문제는 영화의 촬영 단계에서 결정되는 것이며 결코 편집 단계에서 이렇게도 할 수 있고 저렇게도 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심지어 편집실에서 이 문제가 잘못된 것을 알게 되면 때로는 그 씬 전체를 버리기도 합니다. 게다가 이 문제는 기계적으로 편집실에서 붙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촬영현장에서 촬영을 한 다음 비디오 모니터를 이용해서 연결시켜보기도 합니다.
실제로 상상선을 지켜 영화를 찍을 때에 두 가지 방법을 사용합니다. 하나는 홀짝 촬영이라고 부릅니다. A와 B의 장면이 교차되면 A를 보여준 다음 B를 보여주고 다시 A에게로 돌아갈 것입니다. 이때 A는 쇼트의 순서상 1_3_5_7_9가 될 것이고 B는 2_4_6_8이 될 것입니다. 그래서 이것을 홀수와 짝수라고 부릅니다. 가장 기능적으로 찍는 것은 홀수를 몰아서 찍고 짝수를 몰아서 찍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 방법은 실제로 많은 영화들이 빠르게 현장을 진행해야 할 때 실제로 사용합니다. 왜냐하면 한쪽 방향을 촬영할 때 단지 카메라뿐만 아니라 조명까지도 모두 세팅이 되어있기 때문에 반대를 번갈아 찍으면 조명 세팅을 매번 다시 해야 한다는 뜻이 되기 때문입니다. 문제를 이렇게 찍으면 매우 단조로워 보일 수 있습니다. 그래서 홀짝으로 촬영하면서 매번 홀수의 위치에서 (그런 다음 짝수의 위치에서) 카메라의 위치를 바꾸는 경우도 있습니다.
다른 하나는 2대의 카메라를 사용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전적으로 배우의 일관성 때문입니다. 홀짝으로 찍게 되면 항상 상대방은 찍고 있는 상대를 위해서 대사를 연기하지만 자기를 찍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집중도가 떨어질 수 있습니다. (게다가 배우에 따라서 누구를 먼저 찍느냐에 매우 예민하게 반응하기도 합니다) 그래서 두 사람을 동시에 촬영함으로써 배우의 집중도를 높이고 동시성을 살리는 것입니다. 그러나 문제는 이렇게 되면 2대의 카메라가 사용되기 때문에 상대 카메라가 찍힐 수도 있어서 촬영의 각도가 매우 제한된다는 문제를 발생시킵니다. (여기에 더해 제작비의 문제도 있습니다) 그래서 이 두 가지 문제를 동시에 해결하기 위해 하나의 화면에 두 사람을 동시에 담아서 찍는 방법을 택하기도 합니다. 문제는 이렇게 되면 선택은 둘 중의 하나입니다. 그 대화가 끝날 때까지 화면을 나누지 않고 (즉 편집하지 않고)하나의 테이크로 모두 찍어야한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매우 장시간 동안 화면이 바뀌지 않을 수 있고 (그것이 미학적 이유가 아니라면) 관객으로서 집중력이 떨어질 수 있습니다. 그래서 많은 영화에서 이런 경우는 카메라를 들고 찍거나 아니면 트랙이나 달리를 이용해서 카메라가 두 사람 주변을 돌면서 이동시킵니다. 이때에는 단조로움은 덜할 수 있지만 관객 쪽에서 집중력이 떨어질 수 있습니다. 이런 경우 비평에서는 쇼트가 산만해진다, 고 말합니다.
두 번째 방법은 좀 까다롭긴 하지만 두 인물에 표준적인 거리보다 더 다가간 다음 대화의 리듬에 따라서 각도를 달리하여 촬영을 하고 편집을 하는 것입니다. 이때에는 두 사람이 모두 프레임 안에 있기 때문에 구태여 상상선을 지키지 않아도 상관없습니다 (라고 교과서에 써 있지만 그러나 이 경우에는 180도 라인을 벗어나면 시선의 방향은 문제가 되지 않지만 카메라의 위치가 반대가 되었기 때문에 일종의 마스터 쇼트가 바뀐 경우가 되므로 편집을 했다는 ‘컷트’라는 형식적 기술이 눈에 보입니다)
매우 간단해보이기는 하지만 (그리고 홈 비디오 수준의 작업을 하는 대부분의 아마추어 영화제작자들은 이 문제를 그렇게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지만) 본격적으로 영화를 만드는 프로페셔널 영화제작자들의 경우에는 매우 미세한 데도 불구하고 작은 각도의 차이가 이상하게 좁혀지지 않으면서 끝내 컷트가 붙지 않는 경우가 있습니다. (이 문제만을 다룬 편집에 관한 많은 책들이 이 사실을 시사적으로 보여주고 있습니다) 사실상 영화평론가들 사이에서도 이 지점을 발견하기란 쉽지 않으며 이 문제를 얼마나 잘 발견하는지가 그 평론가의 안목이며 그가 얼마나 섬세하게 영화를 느끼는지를 볼 수 있는 대목이기도 합니다. (말하자면 피아노 연주에서 악보를 들여다보지 않으면서도 피아니스트의 미스 터치를 발견하는 비평가들의 안목과 비슷하다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아마도 여기까지 설명을 읽으신 다음 영화에서의 상상선이란 대화 장면을 찍을 때 매우 중요하구나, 라고만 생각하실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이 문제는 영화에서 일단 시나리오 상의 장면을 두 개의 쇼트로 나누면 언제나 부딪쳐야 하는 형식입니다. 이를테면 두 사람이 서로에게 총을 쏘거나, 두 대의 자동차가 질주를 하거나, 모두 같은 문제와 만나게 됩니다. (이에 대해서는 강의를 하면서 실제로 몇 편의 영화에서의 예를 보겠습니다) 혹은 그저 혼자 거리를 걸어가는 장면을 찍는데 저 멀리 무언가를 볼 때에도 마찬가지입니다. 상상선이란 문학에서 문장을 만드는 것과 같은 문제입니다. 여기서부터 생각을 해야만 영화를 본다는 문제 안으로 들어설 수 있습니다. (두 번째 이야기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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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서대문문화원 홈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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