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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게시물ID : humorbest_400592
    작성자 : StarDream
    추천 : 16
    조회수 : 4586
    IP : 121.182.***.180
    댓글 : 3개
    베스트 등록시간 : 2011/10/27 18:36:58
    원글작성시간 : 2011/10/26 21:55:52
    http://todayhumor.com/?humorbest_400592 모바일
    [펌][단편,브금]조난


    - 조난 -

    도훈은 서서히 눈을 떴다. 암흑이었다. 마치 누군가가 페인트를 쏟아 부어 놓은 것처럼 온통 검은색 뿐이었다. 그는 자신의 몸을 내려다봤다. 하지만 보이질 않았다. 진공상태에 있는 것처럼 숨통이 조여왔다. 시간감각은 커녕 공간감각도 상실한지 이미 오래였다.

    얼마간의 시간이 흐르고 나서야 도훈은 차츰 어둠에 익숙해졌다. 그제서야 자신의 몸과 주변의 물체들이 어렴풋이 보이기 시작했다.

    사방이 온통 바위들로 꽉 막혀버린 좁디 좁은 동굴 안.
    어디선가 물방울 떨어지는 소리만이 간헐적으로 들려올 뿐이었다. 도훈은 몸을 조금 움직여 보았다. 하지만 집채만한 바위틈에 끼어있어 옴짝달싹 할 수 없었다.

    이곳에 갇힌지도 벌써 삼일째.
    그는 아마추어 케이빙 동호회의 회원이었다. 케이빙은 그에게 있어 취미에 불과했지만 풋내기 대학시절부터 서른이 넘은 지금까지 지속되어왔기에 그의 실력은 거의 프로나 마찬가지였다. 그동안 도훈은 초보 수준의 쉬운 동굴을 비롯해 깊고 위험천만한 동굴까지 수십, 수백번 탐험해왔다. 남들은 산을 오름으로써 승부욕과 쾌감을 느낀다지만 그는 동굴을 내려감으로써 그런 것들을 느꼈다. 특히 깊이를 가늠할 수 없는 미지의 동굴을 탐험할 때면 그의 가슴은 짜릿함으로 인해 떨려오기까지 했다.
    하지만 그러한 댓가로 조난을 당하는 경우도 있었다. 비록 드문 일이었지만 예상치 못한 상황으로 인해 사고가 나는 것이었다.

    이번에 그가 탐험한 곳은 어느 깊은 산 속의 동굴이었는데, 구조가 헐거운 것도 모르고 호기로 들어갔다가 바위들이 무너지면서 같이 구덩이에 떨어져 버렸다. 다행히 크게 다친 곳은 없었지만 이렇게 꼼짝 못하는 상태로 삼 일 간이나 갇혀있는 상황은 그에게 있어 최악의 상황이었다.

    "영진아...."

    도훈은 영진을 바라보았다. 영진은 도훈을 안심시키려는 듯 희미한 웃음을 지어보였다. 동굴이 어두운 탓에 얼굴이 자세히 보이진 않았지만 도훈은 그의 표정을 어림짐작으로 읽을 수 있었다.
    영진은 도훈으로부터 불과 3미터도 떨어지지 않은 가까운 곳에 있었다. 하지만 그 역시 바위때문에 꼼짝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짜식, 웃는거 보니까 아직 버틸만한가 보구나? 근데 진짜 드럽지 않냐? 어떻게 사고가 나도 둘다 꼼짝 못하게 됐냔 말야. 이래가지구 어디 빠져나갈 수나 있겠어?"

    도훈의 말처럼 그들은 대책 없이 구조대가 오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물론 출발할 때 위치추적과 휴대폰 무전기 등 각종 장비들을 챙겨왔지만 구덩이에 떨어지면서 모두 부서져 버렸다. 더구나 도훈이나 영진의 손에 닿는 곳에 있었으면 어떻게든 고쳐보기라도 하겠지만 안타깝게도 그것들은 멀찌감치 떨어진 곳에 있었다.

    "기억나냐? 우리 고등학생 때 의리 운운하면서 툭하면 살아도 같이 살고 죽어도 같이 죽자고 했던 거. 말이 씨가 된다더니...킥킥."

    도훈은 옛날 생각이 났는지 자기도 모르게 웃음이 나왔다. 두 사람은 고등학교 동창이었다.
    햇수로 따지자면 16년 전. 당시 도훈은 학교에서 싸움 잘하기로 유명했었다. 나이에 비해 키도 크고 체격도 좋아서 3학년 선배들도 그에게 함부로 하지 못할정도였다. 더구나 그는 성적도 좋은 편이었기에 선생들도 그에게 관대했다.

    도훈은 자신을 우러러 보는 아이들의 모습에 우월의식을 느끼기도 했다. 하지만 영진이 나타나면서부터 그의 생활은 달라졌다. 영진은 전학오자마자 농구며 축구며 각종 운동을 잘하는 아이로 주목 받았다. 더구나 그가 학년 대항 농구대회에서 역전을 성공시켜 1학년을 승리로 이끌자, 모두의 관심은 당연히 영진에게로 쏠렸다. 1학년이 승리한 경우는 교내 역사상 처음이었기 때문이다.

    도훈은 견딜수가 없었다. 왠지모를 패배감이 느껴졌다. 학교에서의 모든 것을 그가 송두리째 빼았아 갔다고 생각하니 울화가 치밀었다. 그래서 도훈은 다짜고짜 영진을 찾아가 싸움을 걸었다.

    "그때 너의 황당한 표정이란...큭큭. 사진으로 찍어뒀어야 하는건데 지금 생각해보면 아깝단 말야. 하긴, 생전 첨보는 건방진 녀석이 갑자기 튀어나와 한판 붙자고 설쳐댔으니..."

    도훈은 뭐가 그리 재밌는지 계속 실실거렸다.

    그는 자신이 압도적으로 승리를 할 것이라 생각했지만 결과는 예상 밖이었다. 놈은 싸움도 보통이 아니었던 것이다. 결국 무승부로 끝났고 그일로 인해 둘은 친구가 되었다.

    "근데 말야. 비록 우린 둘도 없는 친구였지만 어쩌면 그건 너 혼자만의 착각이었는지도 몰라. 솔직히 난 니가 죽이고 싶을 정도로 미웠거든."

    2학년 2학기가 끝나갈 무렵, 학교에서는 진로상담이 한창이었다. 도훈은 성적에 자신있었기에 남들처럼 일류대에 가기를 원했다. 특히 S대. 하지만 담임의 반응은 뜻밖이었다.

    '지금 니 성적으론 S대는 택도 없다. 차라리 지망대학을 낮춰. 그 학교 말고도 일류대는 많잖아?
    아, 니 친구 중에 영진이라는 애 있지? 혹시 너 걔 따라 들어갈려는 거냐? 정 들어가고 싶으면 지금부터라도 죽어라 공부만 하든지...'

    도훈에겐 충격이었다. S대 갈 성적이 안되서 충격을 받은게 아니라 영진이 자기보다 공부를 잘한다는것이 믿어지지 않았다.

    항상 둘이 같이 붙어다녔지만 서로의 진로에 대해 깊게 이야기 해 본 적은 없었다. 그는 영진도 자기 못지 않은 수재라는 것은 알았지만 자기보다 월등한 성적을 가지고 있을 줄은 꿈에도 생각치 못했다. 더구나 영진은 고리타분한 범생이들처럼, 공부한답시고 유난을 떠는 애도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담임의 말에 의하면 영진은 S대 갈 실력이 충분히 되고 자신은 턱없이 부족했다.

    두번째 느끼는 패배감.
    그 후로 도훈은 잠자는 시간은 물론 밥먹는 시간까지 아껴가며 공부했다. 말 그대로 죽어라 공부한 것이다.

    "그땐 친구고 뭐고 없었어. 그냥 널 죽여버리고 싶다는 생각만 들더라. 그때 너랑 같이 S대에 들어가지 못했다면 난 아마 널 진짜로 죽였을지도 몰라. 큭큭..."

    도훈이 장난스럽게 웃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때부터 난, 너의 사소한 것 하나까지도 따라잡아야 한다는 강박관념에 시달린 것 같아. 솔직히 말하면 넌 참 완벽한 놈이었지. 내가 아무리 따라잡으려해도 널 따라잡을 수 없었어. 넌 인간 김도훈이의 자존심을 짓밟은 최초의 단 한사람이었던 거야."

    도훈은 잠시 말을 멈추고 영진을 바라보았다. 그는 여전히 미소띤 얼굴로 조용히 도훈의 말을 듣고 있을뿐이었다.

    “짜식. 너도 말 좀 해봐라. 나 혼자 씨부렁대기 힘들다.
    하긴, 항상 그래왔지. 넌 조용히 있어도 돋보이는 존재였고 난 그것을 부정하고 싶었기에 말 많은 허풍쟁이가 되어버렸어. 그래서 더욱 널 시기했는지도 몰라.
    넌 날 진정으로 대해줬지만 난 단지 가식일 뿐이었어. 곁에 있는 널 보면서 항상 마음속으론 수 없이 짓이기고 밟아서 망가뜨리는 상상을 해왔거든.
    나 정말 나쁜놈이지 않냐? 니 앞에서 이런 말을 쉽게 내뱉다니.......”

    도훈이 멋쩍게 웃었다.

    “하지만 말이야. 영진아 사실은......”

    그가 쑥스러운 얼굴로 말을 이었다.

    “니가 부러웠어. 비록 널 미워하고 시기한 나였지만 한편으로는 니가 그렇게 부러울 수가 없었어. 넌 언제나 동료들의 우상이었잖아. 그래서 조금이라도 너랑 친해지고 싶었어. 하지만 처음부터 굽히고 들어가기엔 나의 도량이 그리 넓지 않았지.”

    잠깐의 침묵.
    도훈은 차마 영진을 똑바로 바라볼 수 없는지 고개를 숙이고 말했다.

    “내생각은 이래.
    지금은 이렇게 갇혀있지만 조만간 이 동굴을 빠져나가게 된다면 난 그 동안 너에게 쌓인 감정들을 훌훌 털어버릴거야. 그리고 이번에는 진심으로 널 대하려구. 너의 진정한 친구로 거듭나고 싶거든.
    있잖아. 난 감사하고 있어. 뭐에 감사하는지 궁금하지 않냐?”

    도훈이 물었다. 하지만 그는 영진이 미처 대답하기도 전에 말을 이어갔다.

    “나의 시기심에, 동호회에, 그리고 이 동굴에게 감사해.
    내가 널 시기하지 않았다면 케이빙 동호회에 따라들지 않았을테고, 동호회에 가입하지 않았다면 이곳에 오지도 못했을거고 동굴이 무너지지 않았던들 우리가 단 둘이 갇힐 수나 있었겠어?
    이곳에 갇히지 않았다면 서로의 속마음을 알 수 없었을 것 아니야. 하하하하!”

    도훈은 뭐가 그리 좋은지 연방 큰소리로 웃어댔다.

    “그런데 영진아.
    배고프지 않냐? 생각해보니까 며칠동안 아무것도 못 먹었잖아.
    넌 참을성이 대단한 것 같아. 난 지금 배고파 미칠 것 같거든.”

    그때였다.
    동굴을 가로막고 있는 집채만한 바위 틈에서 실낱 같은 빛 한줄기가 안을 비집고 들어오기 시작했다. 아마도 바깥 세상에서 해가 뜬 모양이리라.
    비록 가느다란 빛이었지만 어두컴컴했던 동굴 안이 조금씩 밝아지기 시작했다.

    도훈은 바위에 다리가 낀 채 앉아 있었는데, 봉두난발에 피골이 상접한 모습으로 맞은 편의 영진을 다정하게 바라보고 있었다.

    영진......

    영진은 두개골이 박살 난 채 온통 피범벅이 되어 꼼짝않고 앉아있었다. 언제 흘렀는지 이미 시커멓게 굳은 피는 예전의 말끔했을 법한 그의 얼굴을, 알아 볼 수 없을 정도로 흉측하게 만들어 놓았다. 그로 인해 일그러진 영진의 얼굴은 마치, 미소짓는 것 처럼 보였다.
    그리고 영진의 곁에는 여기저기 조각난 두개골의 파편들과 살점들, 피묻은 바위덩어리들이 뒤섞여 어지럽게 흩어져 있었다.

    도훈이 웃으며 말했다.

    “야, 너 그 일 생각나냐? 왜 우리 대학 때 너랑 나랑 같은 여자 좋아했던 거. 서로 먼저 작업 건다고 맨날 티격태격 싸우다가 결국엔 니가 그 여자랑 사귀었잖아. 그때 내가 너랑 절교한다고 무척 화냈던 거 기억나냐?
    지금 생각해보면 아무것도 아닌데 그 당시에는 얼마나 심각했었는지.....큭큭.....
    아, 참. 너 저번에 그것도 기억하는지 모르겠네......”

    부패해 가는 영진의 시신 앞에 서서히 미쳐가는 도훈.
    오늘도 그렇게 하루가 시작되고 있었다.



    출처 : 붉은 벽돌 무당집 작가 : 시우(始旴) 님 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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