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자료가 전에도 있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중복검사 안했슴^^;;
오늘 베오베에 흑백사진을 컬러로 재현한 사진들을 보다가 그중에 문득
퓰리처 상 수상작도 있길래 몇년전에 동호회 카페에 제가 올렸던 글이 떠올라
가서 퍼와서 여기 올려봅니다.
물론 출처는 사진은 작가이고, 설명은 몇년전 어느 블로그에서 본 글을
약간 수정과 아울러 제 느낌을 조금 보탠 겁니다.
그러니, 퓰리처상 수상작가 & 어느 블로거 분 펌 + 제가 원작자 되겠네요^^
(요즘 민감한것 같아서)
첫번째 사진은 론 올시왱어라는 기자가 찍은 사진으로 1989년 퓰리처상 수상작이라고 합니다.
1988년에 미국 세인트루이스에서 발생한 화재현장으로, 소방관이 아파트에서 2살난
아기를 구출해서 나오지만 상태가 위독해 인공호흡을 하는 모습입니다.
하지만 아기는 병원으로 옮겼지만 6일후에 하늘나라로 갔다고 합니다.....ㅠ.ㅠ
두번째 사진의 제목은 사이공식처형이라고 합니다.
1969년 수상작으로 에드워드 T 아담스라는 기자가 찍은 사진입니다.
1968년 베트남서부 초론이라는 곳에서 이 기자는 남베트남민족해방전선의 간부인
사진의 남자가 손이 뒤로묶인채 연행되는것을 보고서는 뒤따라갔다고 합니다.
지프가 멈춘곳에는 권총을 든 남자, 베트남국립경찰장관이 있었고 그는 연행된남자가
지프에서 내리자마자 권총을 뽑아들고 머리에 대고 쏴버립니다. 쏘는 순간 이 기자는
카메라 셔터를 눌렀고, 이 충격적인 대낮의 대로에서의 처형장면은 전세계로 보도가
되었습니다. 결국 정의를 위한 전쟁이라던 베트남전은 무엇이 정의인지에 대한 목적을
잃었고 미국내에서는 반전운동이 크게 일어났다고 합니다.
세번째 생명의 키스라는 1967년 수상작입니다.
전신주의 보수작업을 하던 동료가 감전으로 쓰러진채 매달리자 황급히 올라가
전신주에 매달린채 인공호흡을 하며 필사적으로 살리는 모습입니다...
네번째 사진은
참으로 따뜻한 사진...
윌리엄 벨의 1958년 수상작입니다.
워싱턴의 차이나타운에서의 축제중에 찍은 사진으로, 모두가 축제행렬에 환호하며
시선을 집중하고 있을때 사진의 경찰관은 작은꼬마가 인도에서 걸어나오는 것을
봅니다. 그리고는 꼬마앞으로 다가가 제지를 하기위해 허리를 숙입니다.
경찰관의 정중하고 따뜻한 태도와 꼬마의 믿음이 담긴 천진한 눈망울을 본순간
기자는 셔터를 눌렀습니다.
이 아름다운 정지된 모습은 워싱턴뉴스지에 실렸고 큰 반응을 불러일으켰다고 합니다.
그리고 여전히 정지된 모습으로 따뜻하게 남아있습니다...
다섯번째 사진은
너무도 슬픈 사진입니다.
사진의 무대는 아프리카의 수단.
종교와 민족간의 오랜대립, 거기에 가뭄에 전염병까지...
1980년대부터 90년대 중반까지 수단에서는 1백만명이상이 죽었습니다.
독재정권의 탄압으로 국제기구들의 원조와 도움도 가난하고 굶주린 사람들에게는
전해지지 못했고, 케빈 카터라는 사진기자는 이런한 실상을 전하기 위해 수단으로
갔습니다. 그가 수단으로 가서 아요드의 식량센터로 가는 길에서 한 소녀를 만납니다.
소녀는 너무도 굶주려 깡마른 몸으로 걸어가다 탈진해서 쓰러집니다.
그런 소녀의 뒤에는 살찐 독수리가 어서 소녀가 죽기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이 장면을 케빈 카터는 카메라에 담았고, 그 후 독수리를 내쫓습니다.
하지만 소녀는 죽고 맙니다.
그리고 퓰리처상을 수상합니다.
하지만 이 사진은 전세계에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습니다.
사진기자로서의 직업적 의무감보다는 사진을 찍기에 앞서 소녀를 구했어야 한다는
윤리적비판을 받게됩니다.
결국 케빈 카터는 1994년 7월 28일에 편지 한통을 남기고 서른셋의 삶을 자살로 마감했다고
합니다.
다음에도 이런 류 사진과 좋은 해설글 보면 날라오겠습니다....
추운날씨지만, 모두들 마음만이라도 따뜻한 하루 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