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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게시물ID : humordata_398567
    작성자 : 인생의예술
    추천 : 22
    조회수 : 714
    IP : 59.28.***.170
    댓글 : 6개
    등록시간 : 2007/06/11 02:08:36
    http://todayhumor.com/?humordata_398567 모바일
    뉴요커와 엄마친구아들

    엄마 친구분들 중에 숙이아줌마라는 분이 있다.




    엄마의 소꿉친구로, 내가 어릴 때부터




    우리 집에 자주 드나들던 분이었다.













    숙이아줌마는 마치 친엄마처럼 나에게 잘해주셨고




    집에 오실 때마다 과자 따위를 사오시곤 했지만




    나는 숙이아줌마가 집에 오는 것이 별로 달갑지 않았다.




    어린 시절부터 지금까지 좋지 않은 추억만 가득하기 때문이다.













    숙이아줌마한테도 나만한 아들이 하나 있었는데




    나만한게 아니라 하필이면 나와 동갑이었다.




    물론 한번도 만나본 적은 없고




    항상 말로만 들어오던 전설 속의 인물이었다.




    나는 어릴 때부터 지금까지




    항상 상상 속의 그놈과 비교를 당해야만 했었다.













    귀여움이 잔뜩 묻어나던 초딩시절.







    “엄마! 나 이번 시험 두 개밖에 안틀렸으셈. 겜보이 사주셈.”




    “숙이네 큰애는 이번에도 올백이라던데...에휴...”




    “......”













    똘똘하던 중딩시절.







    “엄마, 나 중간고사 평균 90점 넘었어. 반에서 3등이야. 나이키운동화 사줘.”




    “숙이네 큰애는 이번에도 어김없이 전교 1등. 걔는 르까프 신던데...”




    “......”













    타락한 고딩말년.







    “그래도 이 점수면 수도권대학은 갈 수 있을 것 같은데...원서에 도장 좀...”




    “숙이네 큰애는 서울 OO대 경영학과 특차합격하고 벌써 과외하러 다닌다는데...”




    “......”













    그랬던 탓에 나는




    사실 남들보다 그다지 꿀리지 않는 스펙임에도 불구하고




    비굴한 인생을 살아와야만 했던 것이었다.













    다행히도 대학을 간 뒤에는




    혼자 나와서 자취를 시작한 덕에




    더 이상 숙이아줌마를 본 적도




    그 아들 얘기를 들을 일도 없었지만




    얼굴도 모르는 그녀석에 대한 나의 증오는




    가슴 한구석에 언제나 자리잡고 있던 터였다.













    마지막 대학시험을 끝내고




    잠시 집에 내려가 쉬고 있을 때였다.




    졸업을 코앞에 두고 있으니




    아직 취직도 못한 나에게




    엄마의 잔소리가 날아오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학점도 엉망이고 자격증도 하나 없으니 제대로 취직이나 하겠니?”




    “......”




    “숙이네 큰애는 작년에 벌써 졸업하고 지금은 부동산쪽 일 한다더라.”




    “......”













    오랜만에 들은 그놈의 소식이었다.




    어릴 때야 그렇다쳐도




    성적순으로 성공하는 건 아니라고 생각했는데




    이 나이가 되어도 여전히 녀석을 앞지르지 못했다는게




    괜히 분하고 심술이 났다.













    사춘기는 이미 지나버린지라




    차마 엄마한테 반항은 못하고




    아무 말없이 그대로 집을 뛰쳐나왔다.













    그리고는 만화책을 잔뜩 빌려




    30분 뒤에 집에 다시 들어갔다.




    그날따라 좀 추웠다;













    거의 하루 종일 만화책을 보며 낄낄대던 중




    호랑이도 제말하면 온다고,




    마침 숙이아줌마가 집에 놀러오셨다.













    “어이쿠, 이게 누구야? 랑이 아니야?”




    “안녕하세요, 아줌마.”




    “그래, 오랜만이구나. 랑이도 이제 다 컸구나.”













    크기는 고딩때 이미 다 컸다.




    똘똘이도 그전에 벌써




    성장을 중단했던 것 같다.













    숙이아줌마에게 인사를 하고 있는데




    아줌마 뒤에서 머뭇거리며 뻘쭘하게 서 있는




    놈팽이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젊어보이는 것으로 봐선




    아줌마 애인같지는 않았다.













    “아, 얘는 우리 큰아들 동건이야. 내 운전기사 해준다고 따라오지 뭐니, 호호홋.”




    “......”













    개뻥인거 같았다.




    녀석의 면상에는 귀차니즘이 잔뜩 묻어 있었다.




    한참 스타를 하는데 엄마가 장보러 가자고 했을 때




    내 얼굴에 나타나던 그 표정이었다.




    사정은 잘 모르지만 억지로 끌려나온 것 같았다.













    초딩때부터 늘 들어왔지만




    실제로 만나보는 것은 처음이었다.




    녀석의 풍채는 위풍당당했다.




    키도 훤칠하니 큰데다 얼굴도 제법 훈훈하게 생겼다.




    재보진 않았지만 고추도 나보다 클 거 같았다.













    “둘이 동갑이지 아마? 같이 얘기라도 좀 하고 있어.”




    “아, 네.”




    “......”













    그렇게 말하고는 엄마와 숙이아줌마는




    안방으로 쏙 들어가 버리셨다.




    뭔가 재미있는 수다꺼리가 있는 모양이었다.













    “......”




    “......”













    그러나 나는 이녀석과 할 말이 없었다.




    어릴 때부터 지금까지 이십년 이상을 비교당하며 살아왔으니




    이놈을 보자마자 죽빵을 날리지 않은 것이 천만다행이었다.













    사실 맞짱까도 내가 질 거 같긴 했다.













    “저...차라도 한잔...”




    “아...괜찮습니다...”




    “......”




    “......”













    가뜩이나 서먹서먹하던 분위기가




    급속도로 어색해져 버렸다.




    얼마나 잘난 놈인지는 몰라도




    별로 재미는 없는 녀석임에 틀림없었다.













    녀석을 소파로 안내해주고 나란히 앉았지만




    여전히 할 말도 없고 할 일도 없었다.




    그냥 앉아만 있기가 뭐해서




    내가 보던 만화책 한권을 녀석에게 권했다.













    “저...이거라도 보실래요? 데쓰공책이라고...완결까지 나왔는데...”




    “아뇨. 괜찮습니다.”




    “......”




    “......”




    “...재미있는데...”




    “......”













    냉정한 놈이었다.




    기껏 만화책을 내밀었더니 내말은 무시한 채




    소파 위에 있던 신문을 펼쳐들었다.













    그런데 마침 그 신문이 경제신문이었다.




    내가 고딩일 때부터 구독해왔지만




    나는 단 한번도 읽어본 적이 없는 그 신문이었다.




    역시 이놈은 뭔가 달랐다.




    만화책보다 저런 재미ㅇ벗는 신문을 더 좋아하다니.













    나도 지고 싶지 않아서




    데쓰공책을 던져두고 옆에 있던 교차로를 펼쳤다.













    “음...주식시세가 어쩌고...코스닥이 이러쿵...나스닥이...”




    “에...플스2 팝니다...완전 새삥...가격절충...”




    “......”




    “......”













    왠지 내가 한심해 보여서 다 집어치우고




    읽던 만화책이나 다시 펼쳤다.




    녀석은 한참이나 그 재미없는 신문을 뒤적이더니




    시간이 좀 지난 뒤에 신문을 내려놓고




    주위를 두리번거리기 시작했다.













    “저...담배 필려는데...나가서 피면 됩니까?”




    “아, 네. 요 앞 복도에 나가서 피시면 되거든요.”













    마침 나도 담배가 슬슬 땡기던 차라




    같이 나가서 한 대 필 생각이었다.




    그래서 녀석과 함께 현관문 쪽으로 나갔다.













    신발을 신으려다 말고 나는 움찔했다.




    녀석이 신고 있는 신발 때문이었다.













    “...푸마예요?”




    “...네.”













    말로만 듣던 푸마 미하라 빨검이었다.




    신발에 전구라도 박아놓은 듯이




    번쩍번쩍 광채가 났다.




    구라안까고 졸라 멋있었다.




    그러나 꿀리고 싶지 않았다.













    “내꺼는 나이킨데...”




    “......”













    나는 숨겨둔 비장의 아이템 나이키 에어맥스를




    신발장에서 꺼내 녀석에게 보여주었다.




    혹시나 닳을까봐 신발장에 넣어둔 채




    신지도 않던 신발이었다.













    “내꺼는 에어도 있어서 시내 나갈 때 신으면 완전 캐간지거든요.”




    “......”













    순간 녀석의 눈동자가




    좌로 0.2미리 우로 0.4미리정도 흔들리는 것이




    나의 뛰어난 동체시력에 포착됐다.




    부러워하는 눈빛이었다.













    “...짭이네요.”




    “......”




    “......”




    “...짭...아닌데...”




    “......”













    예리한 새끼였다.




    나름 퀄리티있는 놈으로 공동구매한 거였는데




    녀석의 날카로운 안목 앞에서는 통하지 않았다.













    나는 은근슬쩍 짭맥스를 도로 집어넣고는




    현관에 있던 삼디다스 쓰레빠를 신고




    문을 열고 복도로 나갔다.













    복도 창문을 열고 담배를 꺼내 무는데




    녀석이 피식 웃으며 말했다.













    “독한 거 피시네요.”




    “......”













    그리고 나서 녀석은 주머니에서




    회색 던힐을 꺼냈다.




    내껀 디스플러스.




    담배까지 녀석에게 꿀릴 줄은 몰랐다.




    겨우 사백원 차인데.




    그러나 끝까지 지고 싶지 않아서




    이리저리 둘러댈 수밖에 없었다.













    “아, 그게...뉴 뉴욕에 있을 때는...던힐이 없어서...버릇이 돼서...”




    “......”




    “저...뉴욕에...가 보셨어요?”




    “...아 아뇨;”




    “......”













    옳거니.




    이건 기회였다.




    모든 면에서 녀석에게 뒤지고 있던 내가




    유일하게 잘난 것을 찾아냈다.













    내가 뉴요커였다는 사실을 십분 활용하기로 했다.




    나는 씨익 미소를 지으며 말을 이어나갔다.













    “엄...우리 뉴욜~에서는 던힐 그런 거 안 피거든요.”




    “...아, 그런가요?”




    “암...우리 뉴욜~에서는 말보로 오얼 벌쥐니아 이런 거만 펴서...엄...”




    “......”













    솔직히 개뻥이었다.




    나는 뉴욕에서도 면세점에서 구입한 디플만 폈다.




    뉴욕은 담배값이 하도 비싸서




    차마 사서 필 엄두조차 못 냈다.













    “거기...맨하탄은 좋던가요?”




    “네? 맨하탄요? 맨하탄이 뭔가요?”




    “아...”













    제대로 걸려들고 말았다.




    맨하탄 얘기를 꺼낸 건 크나큰 실수였다.




    녀석도 아차싶은 표정이었다.




    녀석은 거기서 말을 중단했지만




    그냥 둘 내가 아니었다.




    나는 혼잣말을 하기 시작했다.













    “맨하탄? 맨하탄이라니? 맨하탄이 뭐지? 그게 뭘까?”




    “......”




    “맨하탄이라...아하, 맨하탄! 하하핫, 맨하탄이요?”




    “......”




    “한쿡에서는 맨하탄이라고 하나 봐요. 하하하, 맨하탄이라...재미있네요.”




    “......”













    녀석은 똥씹은 표정을 짓기 시작했다.




    담배를 쥔 손도 가늘게 떨리고 있었다.













    “엄...우리 뉴욜커들은 맨하탄이라고 하면 못 알아듣거든요.”




    “...네...”




    “원어민들은 이렇게 발음하죠. 맨햇든.”




    “...매네뜨?”




    “오우~노우~그게 아니에요. ‘햇’할때 액센트를 줘아죠. 자, 따라해 보세요. 맨햇든!”




    “아, 예.”




    “맨햇든!”




    “......”













    따라하지 않았다.




    비겁한 자식.













    그리고 나서 우리는 한동안




    말없이 조용히 담배만 빨았다.




    딱히 할말도 없었다.




    담배가 거의 다 타들어갔을 때쯤 녀석이 말을 꺼냈다.













    “저랑 동갑이시라던데...졸업은 하셨어요?”




    “아뇨, 이번에...”




    “아...그럼 취직은요?”




    “......”













    역시 만만찮은 놈이었다.




    20년 이상을 녀석과 비교당하며 살다가




    이제야 간신히 내가 뉴요커였다는 사실로




    녀석을 제끼는가 했더니




    ‘취직’이라는 한마디 앞에




    어이없이 무너지고 말았다.













    따지고 보면 그렇게 큰 자랑거리도 아니었다.




    뉴욕에 잠시 있었다는 것이




    뭐가 그리도 잘난 것이란 말인가.




    그곳에 특별히 잘난 사람들만 사는 것도 아니고




    딱히 잘난 동네도 아닐진데...













    내가 녀석에게 늘 비교당해온 이유를 알 것 같았다.




    나는 언제나 내 단점을 고치려하지 않고




    나보다 잘난 것들에 대해 질투만 해왔을 뿐이었다.













    이제는 인정해야겠다.




    엄마친구아들인 이 녀석은




    분명히 나보다 잘났고 그렇기 때문에




    보이지 않는 곳에서 언제나 나의 비교상대가 되어왔다.




    이제는 남자답게 녀석의 좋은 점을 배워야겠다.













    “저...그쪽은 무슨 일 하세요?”




    “......”













    녀석은 말없이 담배연기를 한모금 빨고는




    천천히 뱉어냈다.




    저것이 바로 잘난 자의 여유란 말인가.













    “부동산쪽 일 하신다던데...구체적으로 어떤 일인지...”




    “...백수예요.”




    “......”




    “......”













    백수라니...




    그새 짤렸단 말인가.













    “아...그만두셨나 보네요...”




    “졸업하고 계속 백수였는데요?”




    “......”




    “......”




    “그럼...아무 것도 안 하세요?”




    “그냥 집 봐요.”




    “......”




    “......”













    부동산쪽 일 한다는게 집 본다는 소리였어?




    그럼 그냥 찌질이였잖아 카카캇.













    “뉴욕에는 얼마나 있었어요?”




    “삼박사일요.”




    “......”




    “......”













    둘 다 병신이었다.













    -웃대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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