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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마하니 발제지 쓰던 도중에 이런 글을 쓰게 되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시발.
가볍게 기분이나 전환할 겸 들렀는데 기분을 잡치게 되어서 정말 짜증도 나고요. 그나마 5일동안 다운받고 있던 스카이림 모드팩을 간신히 다 다운받았다는 데에서 어떻게든 기분을 전환할 수 있기는 하겠습니다만.
아무튼 사건의 발단은 역시 한국과 우즈벡의 최종예선 경기겠지요. 그 경기에서 한국은 시종일관 우즈벡에 끌려다니다가 똑같은 패턴으로 두 골을 내주고 말았고, 그나마 선수들의 분투로 두 골을 우겨넣어 간신히 무승부를 기록, 우리에게는 용납할 수 없는, 우즈벡에게는 아쉬울 수밖에 없는 승점 1점을 나누고 말았습니다.
지금껏 K리그 선수들을 중용했던 최강희 감독이기에 K리그 선수들에 대한 비판─ 아니 비난이 뒤따르리라는 건 쉽게 예상이 가능했습니다. 지금도 네이트나 다음 댓글창을 보면 '모니터 앞에서는 과르디올라, 무리뉴, 퍼거슨, 벵거, 안첼로티'인 사람들이 어째서 K리그는 글러먹었는지 논설 - 그네들 주장으로는. 제가 보기에는 폐에 켜켜이 쌓인 썩은내 이상도 이하도 아닙니다만; - 하느라 바쁩니다. 더불어 애초에 원 포인트 릴리프로 최종예선까지만 대표팀을 이끌기로 했던 최강희 감독을 얼른 경질시켜야 한다는 말도 돌았죠. 그만큼 우즈벡과의 졸전은 파급력이 큰 것이었습니다. 게다가 올림픽 동메달의 기억이 채 가시지 않았던 때였으니… 말입니다.
K리그와 K리그에서 뛰는 뛰어난 선수들이 비난받는 걸 참다 못한 몇몇 팬이 'K리그 보지 않으면 (현재) 국대를 깔 자격이 없다'고 주장을 한 모양입니다. 저는 이 점에 동의하지 않습니다. 저는 잉글랜드 챔피언십 리그를 보지 않지만 챔피언십 리그의 수준이 이청용에게 전혀 도움이 되지 않을 거라고 합니다. 즉 에둘러 비난을 하는 것이죠. 아마 제가 이에 관한 글을 쓰면 많은 분들이 고개를 끄덕이실 지도 모르겠습니다. 기성용에 관한 글을 썼을 때처럼 말입니다. 그것이 가능한 이유는 제가 챔피언십 리그까지 찾아보는 열혈 축구팬이라서가 아니라, 나름대로의 근거와 논리를 가지고 글을 쓰기 때문일 것입니다. 좀 자화자찬하는 기분이라 쓴웃음이 지어집니다만.
따라서 K리그를 보지 않아도 얼마든지 K리그 선수들이 주축이 된 국가대표팀에 대한 비판은 가능합니다. 비난 역시 가능한 것입니다. 물론 가능하다, 와 올바르다, 는 전혀 다른 말이지만요.
얘기가 옆으로 샜습니다. 본론으로 돌아와보죠.
K리그를 보지 않고 K리그 선수가 주축이 된 한국 대표팀을 평가하는 것은 EPL을 보지 않고서 EPL 선수가 주축이 된 잉글랜드 대표팀을 평가하는 것과 같은 짓입니다. 우리는 흔히 잉글랜드 대표팀을 두고 이렇게 말합니다. "이름값을 못하는 대표팀." 이건 정확한 평가일 겁니다. 잉글랜드 대표팀은 이상하게도 선수들 면면의 이름값에 비해 국제대회에서 거둔 실적이 미미한 편입니다. 만약 EPL을 보지 않는 사람이라면 잉글랜드 대표팀을 어떻게 평가할까요? 과연 잉글랜드 대표팀에 대한 일반적인, 그리고 진실에 가까운 평가인 '이름값을 못하는 대표팀'이라고 평을 할까요? 아니면 다르게 평가를 내릴까요?
간단히 말하자면 K리그를 본다는 것은 일종의 자격을 부여하는 것이 아닙니다. K리그를 본다는 게 라이센스 시험 같습니까? 그럼 성남 팬질만 10년이 넘은데다 탄천이나 상암, 수원 등 경기장 방문횟수가 100여 회에 이르는 저는 마이스터 자격증도 받을 수 있겠군요. 말이나 됩니까? 축구를 보러 간다는 건 아무런 자격이 되지 못합니다.
다만, 대상에 대한 올바른 평가를 위한 척도는 제공합니다. 하대성이 저번 우즈벡과의 경기에서 기대에 못 미치는 활약을 보였다고 합니다. K리그를 전혀 보지 않은 사람이라면 하대성을 '글러먹은 선수'라고 할 지 몰라도 K리그를 계속 봐온 사람은 다르게 생각을 하겠죠. 저는 이렇게 생각합니다. 하대성의 A매치 경험은 나이가 어린 기성용보다도 적습니다. 그가 외국인 선수를 만나는 건 K리그 내의 용병 선수를 상대할 때, 그리고 ACL에서 외국 팀을 상대할 때가 고작입니다. 하대성이 FC서울의 키 플레이어이기는 하나 많은 A매치 경험과 셀틱으로 이적한 후 많은 유럽 선수를 상대해야 했던 기성용과 비교한다면 당연히 대응방식이 더 서투를 수밖에 없습니다. 그가 국제 경험을 더 쌓는다면 그때 보여준 것 이상을 보여줄 수 있는 선수입니다.
이 평가가 가능한 이유는 제가 K리그를 보기 때문입니다.
시간이 부족하므로 뜬금없지만 바로 결론을 짓도록 하겠습니다.
K리그는 자격증을 주지 않습니다. 그러나 한 가지 척도를 줍니다.
위치를 정확하게 파악할 수 없을 때 인간은 삼각측량이라는 것을 합니다. 오차범위를 최대한 줄이기 위해서입니다. 또한 군대에서는 표창이나 훈장을 수여할 때 수여자의 전공이 진실이라는 것을 확인하기 위해 교차 검증을 펼칩니다. 역사적으로 이 기준이 가장 물렀던 군대도 3인 이상의 교차검증은 필수였습니다. 그래야지 사실을 알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지금 우리는 국가대표팀의 진실을 알고 싶어합니다. 그러기 위해 많은 잣대를 들이밀었습니다. K리그는 그 잣대 중 하나입니다. 보다 더 정확한 평가를 위한 잣대입니다. 그러나 K리그라는 잣대는 다른 잣대보다 중요할 수밖에 없습니다. 대표팀의 주축은 K리그 선수이거나 K리그 선수들이었기 때문에. 이것을 의도적으로 빼놓고 대표팀을 평가하는 건, 마치 김태희를 평가할 때 몸매와 얼굴을 보지 않고서 평가를 하는 것이나 다름이 없습니다.
혹여나 읽기 귀찮은 분이 있어 여기까지 글을 내렸다면, 한 마디로 요약해드리겠습니다.
K리그를 보지 않은 사람의 비판과 평가도 분명 평가는 맞습니다. 그러나 그게 정확할 거라고 생각되진 않네요.
P.S. K리그 겁나 재미 없는데 왜 보라고 지랄이냐! 라는 귀축이 있어서 한 마디 더 씁니다.
어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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